아버지의 창(당그래 젊은 시인선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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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봉은 철학ㆍ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모악산 아래 들꽃교회에서 목사로 살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시집을 냈다. 그 시집을 축하하며 시인 박형진이 짧고 간결하게 이렇게 썼다.
그가 처음으로 시집을 냈다. 그 시집을 축하하며 시인 박형진이 짧고 간결하게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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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아내한테 바치는 헌사
유채림(소설가)
안녕리 마을은 음전한 곳이었다. 단층의 기와집들 사이로 돌담길은 정겨웠다. 한여름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능소화 지고 나면 코스모스가 피어났다. 마을 앞 들판은 서서히 익어갔다. 그맘때 돌담길은 노란 은행잎으로 난분분했다. 그 돌담길 끄트머리에 그리운 기역자집이 있었다. 녹슨 철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왔다. 마당 한가운데엔 수도꼭지가 있어, 빨래든 설거지든 웬만한 부엌일은 그곳에서 할 수 있었다. 남향의 안채는 50대 아주머니와 여고생 딸이 살았고, 서향의 바깥채는 월세를 놓았다.
대학 시절, 서향의 바깥채에서 우리는 살았다. 복학생인 이기봉과 대두, 내가 뒤엉켜 지냈다. 방은 아주 비좁았다. 짐이라고는 책상 하나, 철제 책꽂이 하나가 전부였는데도 셋이 다리 펴고 누우면 방안이 꽉 찼다. 부엌은 방보다 더욱 조악했다. 수도가 없는 부엌이기에 개수대가 없는 건 당연했다. 부엌세간이라고는 석유곤로 하나, 구석에 연탄 수십 장이 쌓여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라면이라도 끓이노라면 둘은 못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우리는 그 서향의 바깥채에서 월세 이만 원을 내고 살았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 거리였다.
학교 앞에 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만족할 만한 방이 없을 뿐이었다. 집집마다 서너 개씩 방을 만들어놓고 학생들을 받았기에 학교 앞은 늘 번잡하고 시끄러웠다. 우리는 신산스러운 벗들로부터 벗어나 개인적 사색을 즐기고 싶었다. 비록 등하굣길이 만만찮은 거리였으나 안녕리의 음전함이 우리를 충분히 매료시킨 거였다.
우리는 그 안녕리에서 두 학기를 버텨냈다. 버텨내다니? 언뜻 안녕리 생활을 두고 쉽게 식상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리야? 우리는 공간을 택할 수 있었으되 시대를 택할 권리는 없었다. 우리의 시대는 잔인하고 야비하고 비열했다. 살인마 전두환이 영구집권을 획책하던 때였다. 교정은 늘 최루가스로 매캐했다. 최루탄에 맞아 누군가는 실명하고, 누군가는 끌려가고, 누군가는 수배 중이었다. 우리 앞에 저항의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안녕리의 삶인들 그윽하고 안온할 리 있었겠는가. 하지만 안녕리였기에 가혹한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안녕리의 시간이 우리에겐 여백이었기에 그랬다. 혹독하고 치열한 시간 속에서 빠져나와 숨 돌릴 여유를 준 곳이 안녕리였다는 얘기다. 만약 학교 앞이었다면 어땠을까? 매캐한 최루가스와 붉은 화염병 말고 다른 무엇을 떠올릴 수 있었겠는가.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안녕리는 돌아가고픈 곳으로 남아 있다. 시위가 없는 날, 수업을 마치고 안녕리 자취방으로 향하던 길은 여태도 또렷하다. 멀리 보통리저수지 너머로 해가 넘어갈 무렵, 노을은 그렇게 붉을 수 없었다. 다가갈 수 없는 노을을 따라 걷는 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슬픔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지고는 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거나, 혹은 현재의 쓰라림 때문이었겠다.
물보라
초여름, 밤이 되면 그 안녕리에서 우리는 번갈아가며 부엌을 드나들었다. 부엌은 수도가 없고 개수대도 없었으나 용케 하수구 구멍은 있었다. 낮에 흘린 땀을 씻느라 우리는 양동이에 물을 받아 그 부엌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몇 바가지의 물을 끼얹은 뒤에야 상쾌한 기분으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대두는 책상에 앉아 과제물 정리를 하고, 이기봉은 책상 대용인 두리반을 펴놓고 앉아 히브리어 공부를 했다. 배를 깔고 엎드린 나는 주로 소설을 읽었다. 자세로 보아 쉽게 곯아떨어지는 건 나였고, 다음이 이기봉, 마지막이 대두였을 것이다. 물론 책 보는 분위기가 다였다면 우리 중에 학과 수석을 넘어 전교 수석인들 안 나왔을까. 어차피 나야 성적과 상관없는 인생이었다. 온갖 고뇌를 짊어진 듯 보이는 게 나였고, 실은 아무것도 아닌 서글픔으로 사는 게 나였다. 이기봉과 대두? 실인즉 그들인들 별 수 있었겠나. 그들한테서도 장학금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젠장, 어쨌든 나보다야 월등했겠지.
여하튼 쏟아지는 별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서정적인 밤 또한 우리의 밤이었다. 그런 밤이면 어울리는 게 뭐였을까. 삼겹살은 가난한 자취생들 형편에 어울리지 않았다. 활명수만 마셔도 취하는 내게 소주 역시 가당찮았다. 그런 밤 이기봉은 종종 기타를 들었다. 운동가요 말고는 흥얼거릴 수 있는 게 거의 없던 나와 달리 이기봉은 탁월했다. 그는 아는 노래의 폭부터 차원이 달랐다. 뿐만 아니라 대학 합창단 지휘를 한 데서도 알 수 있듯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러니 안채에서조차 시끄럽다는 소리 한번 없을 만큼 그의 노래는 빼어났다. 그는 기타를 잡으면 서너 곡 정도는 가볍게 불렀다.
그의 노래가 여태도 감미롭게 귓가에 떠돌고는 한다. 특히 최진희의 '물보라'가 그랬다.
그의 노래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는 흩어졌다. 이기봉과 대두는 뜻한 대로 들어선 길이었는지는 몰라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대두는 일산을 거쳐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기봉은 뜻밖에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를 대두에게 넘기고 작은 민중교회를 거쳐 홀연히 목포로 내려갔다. 어떻게든 서울에 붙어 있겠다고 발버둥 치던 시절에 이기봉은 굳이 좁은 길을 택한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보기에 좋았다.
느닷없이 이기봉한테서 전화가 온 건 불과 얼마 전이다. 목회에만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줄 알았더니 틈틈이 써온 시를 출판할 계획이니 발문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의 시를 본다는 것, 그것 자체로 흥미로웠다. 나아가 그와 나의 아주 다른 삶이 드디어 서로의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보내준 시편들을 읽었다. 기뻤을까?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까? 아, 나는 우울했다. 그의 시편들 행간에 담긴 것들이 무척 답답하면서도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가벼이 읽을 수 없었다.
사거리 횡단보도 끝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지난여름엔
뭐하며 사셨을까? [지난여름엔] 전문
배추가 푸른 건
심은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들이
푸르기 때문이다 [배추가 푸른 이유] 전문
그는 왜 포장마차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붕어빵을 사면서 지난여름까진 뭐하셨느냐고 왜 묻지 않았을까. 연민을 능가하는 건 궁금증이다. 궁금증을 능가하는 건 행동이다. 하면 그는 당연히 포장마차 속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보여야 하는 거였다. 못 들어갈 이유가 있었다면 그냥 지나쳐 간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행동하지 않는 연민은 자칫 마음의 짐으로 남을 뿐이다. 오지랖 넓다는 힐난이 괜히 나왔을까.
이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철학의 근본문제이기도 하다. 보이는 현상만으로 과거와 현재를 유추해낼 때 어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위험한 시적 상상력의 결과는 [배추가 푸른 이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린 노동에 대한 이기봉의 시선은 각별하다. 오죽하면 심고 가꾼 농민의 수고에 대한 찬사로 푸른 사람이라는 상찬을 올렸을까. 하지만 씨 뿌리고 가꾼 농민이라고 해서 모두 도매금으로 푸른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푸르다면 십분 양보해도 이는 지나치다. 나만 해도 그렇다. 푸른 배추를 봤기로서니 내가 왜 푸르단 말인가. 나는 푸르지 않다. 나는 몸도 마음도 지독히 늙은 데다 인색하고 성정마저 더럽다. 푸른 배추를 바라보는 현상만으로 다들 푸를 거라는 믿음은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가 [지난여름엔]이나 [배추가 푸른 이유]를 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그는 30여 년 동안 성직자로 살아왔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그는 늘 모범적인 길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부드러워지고 모든 행동은 은근히 조심스러워졌을 게 아닌가. 날것을 경계하고 자기검열에 꽤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을까. 그의 다른 시편들 속에서 그런 면을 엿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실은 그 점이 나를 우울하고 서글픈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하긴 그랬기에 나는 나의 벗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던 거다. 그의 또 다른 시를 보자.
부엌 창문을 열더니 아내가 웃었다
포장지도 없이 달랑 꽃대를 드러낸 프리지어 열 송이가
아내 손에서 아내처럼 웃고 있었다
투박한 손을 가진 초로의 남자가
도둑 걸음으로 창문에 놓고 간 프리지어 앞에서
아내는 정말 행복하게 웃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환하게 웃는 건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읽었다는 것
아내는 환하게 웃는데 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내가 웃었다] 전문
그는 창문에 프리지아 열 송이를 올려놓았다.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라면 분명, 이거 받아, 선물이야, 하고 잔뜩 폼을 잡았을 텐데, 표현키 어려운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꽃을 발견한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행복해서 웃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아내의 환한 웃음에 그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그는 가난한 목회자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의정부 기지촌 부근에서 거기 사람들과 얼마간 지내더니, 졸업을 앞두고는 서울의 큰 교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곳 생활을 접고 지역사회학교, 세칭 야학이라는 곳에서 노동청년들과 뒹굴며 함께 놀았다. 그리고 그는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훌쩍 목포로 떠났다. 청춘에 냉온탕을 거치더니 그는 서울을 벗어나버렸다. 시쳇말로 잘나가는 것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그는 가난한 목회자다. 그게 그의 정체성이다. 그 처지에 아내한테 번듯한 무언가를 해줬을 리 있겠나? 그런 그의 아내는 교사다. 처녀 때 교사였는데 지금도 교사다.
평생을 어부로 살았다는 제주 어부 고 씨
서슬 퍼렇게 달려드는 바다에서 다금바리를 주로 잡는 고 씨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다금바리를 넣고 씹었다고 갈매기처럼 웃어댔다
정말 처음 드셔본 다금바리 회라고요?
직접 잡으시는데도 그럴 수가 있나요?
돈이니까 그랬지
돈도 큰돈이었으니까 그랬지
통발 얼레처럼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고 씨는 그날 잡은 다금바리 여섯 중에서 가장 작은 아가미에 칼을
들이밀었다
회 한 점 집어 들고 아내의 입에 찔러 넣으니
아내는 금방 부용꽃이 되고
배는 파도를 북처럼 두드리며 달렸다
잡은 이도 먹질 않았으니 잡은 자의 아내야 말해 뭐할까
제주 앞바다에 주름 가득한 꽃 두 송이가
포말 속에서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다금바리가 돈이 아니라 꽃이 되는 제주 바다에서
어부 고 씨는 오늘도 그물을 던져 돈을 건진다 [내 입에 다금바리] 전문
다금바리, 농어과 생선으로 최고의 횟감. 값이 비싸니 그 다금바리를 전문으로 잡는 고 씨조차 쉽게 먹어치울 수 없다. 카메라 앞이기 때문이었을까. 웬일로 고씨는 방금 잡은 다금바리 한 마리를 회쳐서 아내의 입에 넣어준다. 다금바리를 받아먹는 아내의 모습에 감격한 이는 고 씨가 아니다. 이기봉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며 이 시를 써내려간 듯하다. 금슬 좋은 부부를 두고 누군들 감격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기봉은 그 농도가 짙다. 오죽하면 아들조차 아내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시집 한 권을 들고 변기에 앉았다
시가 끝나며 배변도 끝났는데
화장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들, 아들아!
두 번 만에 답이 왔다
화장지!
이보다 명료한 주문이 또 있을까
문득, 아들이 아내 같았다 [문득, 아들] 전문
이기봉은 가족의 고마움이나 소중함이 여일하다. 그는 그 반경 안에서 시적 상상력을 키워나간다. 덕분에 그의 시들은 메시지가 단순한 편이다. 전복적이지 않으니 편안하고, 한정된 세계 안에서 사유하니 소박하다. 파도에 휩쓸릴 위험도 없다. 아내의 희생에 대한 경외의 감정을 드러낸 [고백]에 이르면, 역시 그래, 하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이 된 나를 벗고 간다
산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산보다 더 산 같은
여인에게로 나는 간다 [고백] 전문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둘째 아들한테 당대의 시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한다.
"요즈음 시의 경향을 보면 예스러우면서 힘 있고, 기이하면서 우뚝하고, 한가하면서 뜻이 심원하고, 맑으면서 환하고,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그런 기상에는 전혀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기봉의 시들 속에서 다산의 시론을 잣대로 들이민다면 걸맞은 걸 찾기란 쉽지 않다. 그의 시 대부분은 가족과 자연이라는 반경을 통하여서 사람과 세상을 조심스레 들여다보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첫 시집 『아버지의 창』은 아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상실되어가는 가족이 세상의 시작임을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십 수년간 가난한 목회자로서 살아온 그의 건강한 정신이 모든 시편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것은, 내가 가슴에 담아두고 떼어내지 못하는 부분이다. 어연번듯한 삶 대신 궁핍한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는 구도자의 모습 말이다. 그건 기쁘고 희망적이지 않은가.
어쨌든 지금 당장 이기봉의 목소리로 최진희의 '물보라'를 듣고 싶으니 이를 어쩌나?
유채림(소설가)
안녕리 마을은 음전한 곳이었다. 단층의 기와집들 사이로 돌담길은 정겨웠다. 한여름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능소화 지고 나면 코스모스가 피어났다. 마을 앞 들판은 서서히 익어갔다. 그맘때 돌담길은 노란 은행잎으로 난분분했다. 그 돌담길 끄트머리에 그리운 기역자집이 있었다. 녹슨 철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왔다. 마당 한가운데엔 수도꼭지가 있어, 빨래든 설거지든 웬만한 부엌일은 그곳에서 할 수 있었다. 남향의 안채는 50대 아주머니와 여고생 딸이 살았고, 서향의 바깥채는 월세를 놓았다.
대학 시절, 서향의 바깥채에서 우리는 살았다. 복학생인 이기봉과 대두, 내가 뒤엉켜 지냈다. 방은 아주 비좁았다. 짐이라고는 책상 하나, 철제 책꽂이 하나가 전부였는데도 셋이 다리 펴고 누우면 방안이 꽉 찼다. 부엌은 방보다 더욱 조악했다. 수도가 없는 부엌이기에 개수대가 없는 건 당연했다. 부엌세간이라고는 석유곤로 하나, 구석에 연탄 수십 장이 쌓여 있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라면이라도 끓이노라면 둘은 못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우리는 그 서향의 바깥채에서 월세 이만 원을 내고 살았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 거리였다.
학교 앞에 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만족할 만한 방이 없을 뿐이었다. 집집마다 서너 개씩 방을 만들어놓고 학생들을 받았기에 학교 앞은 늘 번잡하고 시끄러웠다. 우리는 신산스러운 벗들로부터 벗어나 개인적 사색을 즐기고 싶었다. 비록 등하굣길이 만만찮은 거리였으나 안녕리의 음전함이 우리를 충분히 매료시킨 거였다.
우리는 그 안녕리에서 두 학기를 버텨냈다. 버텨내다니? 언뜻 안녕리 생활을 두고 쉽게 식상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리야? 우리는 공간을 택할 수 있었으되 시대를 택할 권리는 없었다. 우리의 시대는 잔인하고 야비하고 비열했다. 살인마 전두환이 영구집권을 획책하던 때였다. 교정은 늘 최루가스로 매캐했다. 최루탄에 맞아 누군가는 실명하고, 누군가는 끌려가고, 누군가는 수배 중이었다. 우리 앞에 저항의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안녕리의 삶인들 그윽하고 안온할 리 있었겠는가. 하지만 안녕리였기에 가혹한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안녕리의 시간이 우리에겐 여백이었기에 그랬다. 혹독하고 치열한 시간 속에서 빠져나와 숨 돌릴 여유를 준 곳이 안녕리였다는 얘기다. 만약 학교 앞이었다면 어땠을까? 매캐한 최루가스와 붉은 화염병 말고 다른 무엇을 떠올릴 수 있었겠는가.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안녕리는 돌아가고픈 곳으로 남아 있다. 시위가 없는 날, 수업을 마치고 안녕리 자취방으로 향하던 길은 여태도 또렷하다. 멀리 보통리저수지 너머로 해가 넘어갈 무렵, 노을은 그렇게 붉을 수 없었다. 다가갈 수 없는 노을을 따라 걷는 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슬픔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지고는 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거나, 혹은 현재의 쓰라림 때문이었겠다.
물보라
초여름, 밤이 되면 그 안녕리에서 우리는 번갈아가며 부엌을 드나들었다. 부엌은 수도가 없고 개수대도 없었으나 용케 하수구 구멍은 있었다. 낮에 흘린 땀을 씻느라 우리는 양동이에 물을 받아 그 부엌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몇 바가지의 물을 끼얹은 뒤에야 상쾌한 기분으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대두는 책상에 앉아 과제물 정리를 하고, 이기봉은 책상 대용인 두리반을 펴놓고 앉아 히브리어 공부를 했다. 배를 깔고 엎드린 나는 주로 소설을 읽었다. 자세로 보아 쉽게 곯아떨어지는 건 나였고, 다음이 이기봉, 마지막이 대두였을 것이다. 물론 책 보는 분위기가 다였다면 우리 중에 학과 수석을 넘어 전교 수석인들 안 나왔을까. 어차피 나야 성적과 상관없는 인생이었다. 온갖 고뇌를 짊어진 듯 보이는 게 나였고, 실은 아무것도 아닌 서글픔으로 사는 게 나였다. 이기봉과 대두? 실인즉 그들인들 별 수 있었겠나. 그들한테서도 장학금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젠장, 어쨌든 나보다야 월등했겠지.
여하튼 쏟아지는 별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서정적인 밤 또한 우리의 밤이었다. 그런 밤이면 어울리는 게 뭐였을까. 삼겹살은 가난한 자취생들 형편에 어울리지 않았다. 활명수만 마셔도 취하는 내게 소주 역시 가당찮았다. 그런 밤 이기봉은 종종 기타를 들었다. 운동가요 말고는 흥얼거릴 수 있는 게 거의 없던 나와 달리 이기봉은 탁월했다. 그는 아는 노래의 폭부터 차원이 달랐다. 뿐만 아니라 대학 합창단 지휘를 한 데서도 알 수 있듯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러니 안채에서조차 시끄럽다는 소리 한번 없을 만큼 그의 노래는 빼어났다. 그는 기타를 잡으면 서너 곡 정도는 가볍게 불렀다.
그의 노래가 여태도 감미롭게 귓가에 떠돌고는 한다. 특히 최진희의 '물보라'가 그랬다.
그의 노래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는 흩어졌다. 이기봉과 대두는 뜻한 대로 들어선 길이었는지는 몰라도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대두는 일산을 거쳐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기봉은 뜻밖에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를 대두에게 넘기고 작은 민중교회를 거쳐 홀연히 목포로 내려갔다. 어떻게든 서울에 붙어 있겠다고 발버둥 치던 시절에 이기봉은 굳이 좁은 길을 택한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보기에 좋았다.
느닷없이 이기봉한테서 전화가 온 건 불과 얼마 전이다. 목회에만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줄 알았더니 틈틈이 써온 시를 출판할 계획이니 발문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의 시를 본다는 것, 그것 자체로 흥미로웠다. 나아가 그와 나의 아주 다른 삶이 드디어 서로의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보내준 시편들을 읽었다. 기뻤을까?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까? 아, 나는 우울했다. 그의 시편들 행간에 담긴 것들이 무척 답답하면서도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가벼이 읽을 수 없었다.
사거리 횡단보도 끝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지난여름엔
뭐하며 사셨을까? [지난여름엔] 전문
배추가 푸른 건
심은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들이
푸르기 때문이다 [배추가 푸른 이유] 전문
그는 왜 포장마차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붕어빵을 사면서 지난여름까진 뭐하셨느냐고 왜 묻지 않았을까. 연민을 능가하는 건 궁금증이다. 궁금증을 능가하는 건 행동이다. 하면 그는 당연히 포장마차 속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보여야 하는 거였다. 못 들어갈 이유가 있었다면 그냥 지나쳐 간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행동하지 않는 연민은 자칫 마음의 짐으로 남을 뿐이다. 오지랖 넓다는 힐난이 괜히 나왔을까.
이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철학의 근본문제이기도 하다. 보이는 현상만으로 과거와 현재를 유추해낼 때 어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위험한 시적 상상력의 결과는 [배추가 푸른 이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린 노동에 대한 이기봉의 시선은 각별하다. 오죽하면 심고 가꾼 농민의 수고에 대한 찬사로 푸른 사람이라는 상찬을 올렸을까. 하지만 씨 뿌리고 가꾼 농민이라고 해서 모두 도매금으로 푸른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푸르다면 십분 양보해도 이는 지나치다. 나만 해도 그렇다. 푸른 배추를 봤기로서니 내가 왜 푸르단 말인가. 나는 푸르지 않다. 나는 몸도 마음도 지독히 늙은 데다 인색하고 성정마저 더럽다. 푸른 배추를 바라보는 현상만으로 다들 푸를 거라는 믿음은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가 [지난여름엔]이나 [배추가 푸른 이유]를 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그는 30여 년 동안 성직자로 살아왔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그는 늘 모범적인 길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부드러워지고 모든 행동은 은근히 조심스러워졌을 게 아닌가. 날것을 경계하고 자기검열에 꽤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을까. 그의 다른 시편들 속에서 그런 면을 엿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실은 그 점이 나를 우울하고 서글픈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하긴 그랬기에 나는 나의 벗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던 거다. 그의 또 다른 시를 보자.
부엌 창문을 열더니 아내가 웃었다
포장지도 없이 달랑 꽃대를 드러낸 프리지어 열 송이가
아내 손에서 아내처럼 웃고 있었다
투박한 손을 가진 초로의 남자가
도둑 걸음으로 창문에 놓고 간 프리지어 앞에서
아내는 정말 행복하게 웃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환하게 웃는 건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읽었다는 것
아내는 환하게 웃는데 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내가 웃었다] 전문
그는 창문에 프리지아 열 송이를 올려놓았다.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라면 분명, 이거 받아, 선물이야, 하고 잔뜩 폼을 잡았을 텐데, 표현키 어려운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꽃을 발견한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행복해서 웃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아내의 환한 웃음에 그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그는 가난한 목회자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의정부 기지촌 부근에서 거기 사람들과 얼마간 지내더니, 졸업을 앞두고는 서울의 큰 교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곳 생활을 접고 지역사회학교, 세칭 야학이라는 곳에서 노동청년들과 뒹굴며 함께 놀았다. 그리고 그는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훌쩍 목포로 떠났다. 청춘에 냉온탕을 거치더니 그는 서울을 벗어나버렸다. 시쳇말로 잘나가는 것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그는 가난한 목회자다. 그게 그의 정체성이다. 그 처지에 아내한테 번듯한 무언가를 해줬을 리 있겠나? 그런 그의 아내는 교사다. 처녀 때 교사였는데 지금도 교사다.
평생을 어부로 살았다는 제주 어부 고 씨
서슬 퍼렇게 달려드는 바다에서 다금바리를 주로 잡는 고 씨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다금바리를 넣고 씹었다고 갈매기처럼 웃어댔다
정말 처음 드셔본 다금바리 회라고요?
직접 잡으시는데도 그럴 수가 있나요?
돈이니까 그랬지
돈도 큰돈이었으니까 그랬지
통발 얼레처럼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고 씨는 그날 잡은 다금바리 여섯 중에서 가장 작은 아가미에 칼을
들이밀었다
회 한 점 집어 들고 아내의 입에 찔러 넣으니
아내는 금방 부용꽃이 되고
배는 파도를 북처럼 두드리며 달렸다
잡은 이도 먹질 않았으니 잡은 자의 아내야 말해 뭐할까
제주 앞바다에 주름 가득한 꽃 두 송이가
포말 속에서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다금바리가 돈이 아니라 꽃이 되는 제주 바다에서
어부 고 씨는 오늘도 그물을 던져 돈을 건진다 [내 입에 다금바리] 전문
다금바리, 농어과 생선으로 최고의 횟감. 값이 비싸니 그 다금바리를 전문으로 잡는 고 씨조차 쉽게 먹어치울 수 없다. 카메라 앞이기 때문이었을까. 웬일로 고씨는 방금 잡은 다금바리 한 마리를 회쳐서 아내의 입에 넣어준다. 다금바리를 받아먹는 아내의 모습에 감격한 이는 고 씨가 아니다. 이기봉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며 이 시를 써내려간 듯하다. 금슬 좋은 부부를 두고 누군들 감격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기봉은 그 농도가 짙다. 오죽하면 아들조차 아내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시집 한 권을 들고 변기에 앉았다
시가 끝나며 배변도 끝났는데
화장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들, 아들아!
두 번 만에 답이 왔다
화장지!
이보다 명료한 주문이 또 있을까
문득, 아들이 아내 같았다 [문득, 아들] 전문
이기봉은 가족의 고마움이나 소중함이 여일하다. 그는 그 반경 안에서 시적 상상력을 키워나간다. 덕분에 그의 시들은 메시지가 단순한 편이다. 전복적이지 않으니 편안하고, 한정된 세계 안에서 사유하니 소박하다. 파도에 휩쓸릴 위험도 없다. 아내의 희생에 대한 경외의 감정을 드러낸 [고백]에 이르면, 역시 그래, 하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산이 된 나를 벗고 간다
산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산보다 더 산 같은
여인에게로 나는 간다 [고백] 전문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둘째 아들한테 당대의 시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한다.
"요즈음 시의 경향을 보면 예스러우면서 힘 있고, 기이하면서 우뚝하고, 한가하면서 뜻이 심원하고, 맑으면서 환하고,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그런 기상에는 전혀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기봉의 시들 속에서 다산의 시론을 잣대로 들이민다면 걸맞은 걸 찾기란 쉽지 않다. 그의 시 대부분은 가족과 자연이라는 반경을 통하여서 사람과 세상을 조심스레 들여다보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첫 시집 『아버지의 창』은 아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상실되어가는 가족이 세상의 시작임을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십 수년간 가난한 목회자로서 살아온 그의 건강한 정신이 모든 시편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것은, 내가 가슴에 담아두고 떼어내지 못하는 부분이다. 어연번듯한 삶 대신 궁핍한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는 구도자의 모습 말이다. 그건 기쁘고 희망적이지 않은가.
어쨌든 지금 당장 이기봉의 목소리로 최진희의 '물보라'를 듣고 싶으니 이를 어쩌나?
목차
목차
1부
물잠자리 떠난 교회ㆍ 13
생일도 관사(官舍)ㆍ 14
봄ㆍ 15
아내의 밥상ㆍ 16
28년째 아내ㆍ 18
아내가 웃었다ㆍ 19
당신의 봄옷ㆍ 20
아빠와 아들ㆍ 21
아버지1ㆍ 22
아버지2ㆍ 23
생일ㆍ 24
바늘귀를 꿰다ㆍ 25
아버지의 창ㆍ 26
쪽팔린 목사ㆍ 27
이방인ㆍ 28
다시 부는 바람ㆍ 29
땅 맴ㆍ 31
체리를 따며ㆍ 32
내가 무섭다ㆍ 33
이런 날ㆍ 34
밥 짓는 냄새ㆍ 35
수선화 성경책ㆍ 36
장마ㆍ 37
인생 숙제ㆍ 38
2부
봄비ㆍ 41
현상ㆍ 42
꽃이 지니ㆍ 43
나무를 심으며ㆍ 44
그대여ㆍ 45
보리의 꿈ㆍ 46
지난여름엔ㆍ 47
가을인가?ㆍ 48
증명ㆍ 49
서두름ㆍ 50
공부ㆍ 51
배추가 푸른 이유ㆍ 53
학교 종이 땡땡땡ㆍ 54
풀과 작물의 차이에 관하여ㆍ 55
소낙비ㆍ 56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말ㆍ 57
3부
목포 엄마ㆍ 61
산책ㆍ 62
용서ㆍ 63
개가 좋은 이유ㆍ 64
그냥 그랬다ㆍ 65
타인ㆍ 66
모과로부터ㆍ 67
선생님ㆍ 68
물티슈ㆍ 69
물감ㆍ 70
도둑놈ㆍ 71
첫사랑ㆍ 72
횡단보도에서ㆍ 73
입원실 풍경ㆍ 74
내 입에 다금바리ㆍ 75
형진 형ㆍ 77
금화식당 아저씨 1ㆍ 78
금화식당 아저씨 2ㆍ 79
4월에 따르는 꽃술 한 잔ㆍ 81
눈물ㆍ 83
4부
간자(間者)ㆍ 87
상식ㆍ 88
냉수ㆍ 89
정직ㆍ 90
등기부 등본ㆍ 91
체중계ㆍ 92
변비ㆍ 93
책, 책, 책ㆍ 94
채찍ㆍ 95
계시ㆍ 96
놈, 놈, 놈ㆍ 97
문득, 아들!ㆍ 98
5부
합체(合體)ㆍ 101
바람이 전하는 말ㆍ 102
벙어리 산ㆍ 103
운장산의 꽃ㆍ 104
천룡사에서ㆍ 105
사랑 길ㆍ 106
외뿔고래(鯨角)산에서ㆍ 107
산이 아니었다ㆍ 108
우중산행(雨中山行)ㆍ 109
분실ㆍ 110
산 같다ㆍ 111
다시 산ㆍ 112
고백ㆍ 113
물 뜨러 가는 길ㆍ 114
다섯 시 햇살ㆍ 115
산수화ㆍ 117
잠깐 1ㆍ 118
잠깐 2ㆍ 119
■아내한테 바치는 헌사 / 유채림(소설가)ㆍ 121
물잠자리 떠난 교회ㆍ 13
생일도 관사(官舍)ㆍ 14
봄ㆍ 15
아내의 밥상ㆍ 16
28년째 아내ㆍ 18
아내가 웃었다ㆍ 19
당신의 봄옷ㆍ 20
아빠와 아들ㆍ 21
아버지1ㆍ 22
아버지2ㆍ 23
생일ㆍ 24
바늘귀를 꿰다ㆍ 25
아버지의 창ㆍ 26
쪽팔린 목사ㆍ 27
이방인ㆍ 28
다시 부는 바람ㆍ 29
땅 맴ㆍ 31
체리를 따며ㆍ 32
내가 무섭다ㆍ 33
이런 날ㆍ 34
밥 짓는 냄새ㆍ 35
수선화 성경책ㆍ 36
장마ㆍ 37
인생 숙제ㆍ 38
2부
봄비ㆍ 41
현상ㆍ 42
꽃이 지니ㆍ 43
나무를 심으며ㆍ 44
그대여ㆍ 45
보리의 꿈ㆍ 46
지난여름엔ㆍ 47
가을인가?ㆍ 48
증명ㆍ 49
서두름ㆍ 50
공부ㆍ 51
배추가 푸른 이유ㆍ 53
학교 종이 땡땡땡ㆍ 54
풀과 작물의 차이에 관하여ㆍ 55
소낙비ㆍ 56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말ㆍ 57
3부
목포 엄마ㆍ 61
산책ㆍ 62
용서ㆍ 63
개가 좋은 이유ㆍ 64
그냥 그랬다ㆍ 65
타인ㆍ 66
모과로부터ㆍ 67
선생님ㆍ 68
물티슈ㆍ 69
물감ㆍ 70
도둑놈ㆍ 71
첫사랑ㆍ 72
횡단보도에서ㆍ 73
입원실 풍경ㆍ 74
내 입에 다금바리ㆍ 75
형진 형ㆍ 77
금화식당 아저씨 1ㆍ 78
금화식당 아저씨 2ㆍ 79
4월에 따르는 꽃술 한 잔ㆍ 81
눈물ㆍ 83
4부
간자(間者)ㆍ 87
상식ㆍ 88
냉수ㆍ 89
정직ㆍ 90
등기부 등본ㆍ 91
체중계ㆍ 92
변비ㆍ 93
책, 책, 책ㆍ 94
채찍ㆍ 95
계시ㆍ 96
놈, 놈, 놈ㆍ 97
문득, 아들!ㆍ 98
5부
합체(合體)ㆍ 101
바람이 전하는 말ㆍ 102
벙어리 산ㆍ 103
운장산의 꽃ㆍ 104
천룡사에서ㆍ 105
사랑 길ㆍ 106
외뿔고래(鯨角)산에서ㆍ 107
산이 아니었다ㆍ 108
우중산행(雨中山行)ㆍ 109
분실ㆍ 110
산 같다ㆍ 111
다시 산ㆍ 112
고백ㆍ 113
물 뜨러 가는 길ㆍ 114
다섯 시 햇살ㆍ 115
산수화ㆍ 117
잠깐 1ㆍ 118
잠깐 2ㆍ 119
■아내한테 바치는 헌사 / 유채림(소설가)ㆍ 121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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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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