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페이스북
플랫폼 제국을 넘어 메타버스의 창조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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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소셜 플랫폼 제국은 어떻게 탄생했나
빅테크가 주도하는 기술 산업은 어떤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려 하는가
“미국 최고의 테크 저널리스트”가 선보이는 페이스북 성공 신화의 결정판! 전현직 임직원 및 외부 관계자와 3년간 300여 차례 인터뷰로 재구성한 이 대작에서 저자는 대학생 인맥 쌓기 앱에서 SNS 왕국, 플랫폼 제국을 거쳐 메타 월드 구축으로 나아가는 페이스북의 거침없는 행보를 낱낱이 추적하고 해부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2학년 때 캠퍼스 소셜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사소한 대학 기반 스타트업은 오늘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라는 세계 4대 소셜 플랫폼을 보유한 채 절반 가까운 지구인의 일상을 좌우하는 기술 거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에 근거해 메타버스의 창조를 선도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연결과 공유라는 21세기 사회 문화의 대표 아이덴터티를 선도하는 아이콘 기업이 되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이상을 추구해온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MS 등 빅테크는 어째서 인간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낙인찍혔나? 그들은 우리 삶과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꾸어놓았으며, 어떤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려 하는가? 소셜 미디어 산업과 기술 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가 이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
빅테크가 주도하는 기술 산업은 어떤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려 하는가
“미국 최고의 테크 저널리스트”가 선보이는 페이스북 성공 신화의 결정판! 전현직 임직원 및 외부 관계자와 3년간 300여 차례 인터뷰로 재구성한 이 대작에서 저자는 대학생 인맥 쌓기 앱에서 SNS 왕국, 플랫폼 제국을 거쳐 메타 월드 구축으로 나아가는 페이스북의 거침없는 행보를 낱낱이 추적하고 해부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2학년 때 캠퍼스 소셜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사소한 대학 기반 스타트업은 오늘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라는 세계 4대 소셜 플랫폼을 보유한 채 절반 가까운 지구인의 일상을 좌우하는 기술 거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에 근거해 메타버스의 창조를 선도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연결과 공유라는 21세기 사회 문화의 대표 아이덴터티를 선도하는 아이콘 기업이 되었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이상을 추구해온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MS 등 빅테크는 어째서 인간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낙인찍혔나? 그들은 우리 삶과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꾸어놓았으며, 어떤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려 하는가? 소셜 미디어 산업과 기술 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가 이 한 권에 집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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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ㆍ 《메타버스》 저자 김상균 강력 추천
ㆍ 《파이낸셜타임스》 테크 분야 올해의 책
ㆍ 미국 최고 테크 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 신작
ㆍ IT METAVERSE NFT XR 미래 스타트업 교과서
ㆍ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추천
페이스북은 왜 메타로 변신했나
"오늘부터 우리 회사는 이제 메타(Meta)가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선포합니다."
2021년 10월 28일 마크 저커버그는 가상현실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북극성이 있습니다.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를 현실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모든 범위와 우리가 앞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미래가 반영된 이름입니다."
놀라운 발표였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을 '메타'의 한 부문으로 격하하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기술 업계를 장악한 이른바 '빅테크' 중 하나다.(여기에는 구글, 아마존, 애플이 포함되며 마이크로소프트를 더해 '빅 파이브'라고도 한다.) 또 세계 5대 소셜 플랫폼 중 구글의 유튜브를 제외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4곳을 프랜차이즈로 보유했다.
2020년 페이스북의 매출은 860억 달러, 이익은 330억 달러에 달했다. 2021년 시가 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했고 마크 저커버그의 개인 재산은 900억 달러를 웃돌았다. 총 이용자 수는 2020년 30억 명을 넘어 "인류의 절반 가까이"를 연결했다.(2021년 3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페이스북 프랜차이즈 전체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35억 80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45퍼센트를 차지했다.)
이토록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왜 페이스북은 회사명 변경이라는 모험을 단행한 것일까? 마크 저커버그의 끝없는 열망과 비전 때문일까? 아니면 비판자들이 이야기하듯 페이스북 브랜드의 돌이킬 수 없는 손상 때문일까?
경이롭고 유익한 소셜 제국
2015년 페이스북 홍보팀은 10억 명이 같은 날 페이스북에 로그인했다고 발표했다. 전례가 없는 이 현상에 충격을 받은 "미국 최고의 테크 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는 페이스북이 품은 야심의 너비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레비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와 2인자 미셸 샌드버그를 비롯한 전현직 임직원들, 그리고 동업자와 경쟁자 등 외부 관계자들과 3년간 300여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이 "페이스북 이야기의 결정판"에서 저자는 2004년 하버드 기숙사에서 "뚝딱 만들어진" 대학생 인맥 쌓기용 앱이 어떤 원칙과 전략으로 세계 최대 소셜 제국으로 성장하는 성공 신화를 쓰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이 어떤 명과 암, 공과 과를 초래했는지 낱낱이 추적, 해부해 파헤친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직 젊은 페이스북 수장은 이러한 전례 없는 현상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세계를 연결한다는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온갖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막강한" 이 거대한 소셜 제국에서 사람들은 친구, 친척, 지인, 타인과 허물없이 소통한다. 댓글을 달고, 뉴스 기사를 올리고, 웃기는 밈을 퍼뜨린다. 물건을 사고팔고, 정치 운동을 조직한다. 그러면서 전에 없던 발언권과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이런 유익함에서 보자면 페이스북은 정말 경이롭다.
인간성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두려운 존재
반면에 페이스북은 "유독한 주의력 흡수제"이자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 유포, 음모론과 증오 발언 만연, 자살과 살인 생방송, 독재와 학살에 악용, 폭력과 테러 조장, 선거 개입, 개인 정보 유출,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서 보듯 페이스북은 또한 너무나 두려운 존재다.
페이스북의 이러한 이중성은 한편으로 디지털 산업, 거대 기술 기업의 행보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거대 기술 기업들이 강도 높은 조사와 의심의 눈초리를 겪었다. 창업자의 이상주의는 한때 이 거대 기술 기업들의 중요한 토대였으나 이제는 파우스트식 거래의 소산으로 치부된다. 그들이 가져다준 경이로운 혜택을 누리는 대가로 우리는 주의력과 프라이버시와 인간성을 내주어야 했다."
페이스북 이야기는 소셜 미디어 산업의 역사 자체이자 IT 업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빅테크와 기술 산업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경험과 비즈니스를 바꾸어왔는지, 어떤 미래로 세상을 데려가려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소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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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이어서
이후 며칠 사이에 스탠퍼드와 예일에서도 더페이스북이 출범했다. 패턴이 확립되었다. 그 뒤로 몇 달간 더페이스북팀은 100여 곳의 캠퍼스에 진출했다. _〈본문 127쪽〉
그해 9월 커넥트유팀은 6500만 달러짜리 합의로 끝나게 된 기나긴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 그들이 저커버그와 유형의 계약을 전혀 맺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짭짤한 성과였다(한 판사는 그들의 거래를 "기숙사 잡담dorm chit-chat"이라고 표현했다). 어쨌든 커넥트유팀 사이트는 1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차였고 저커버그가 늑장을 부린 탓에 늦어진 기간은 두 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나렌드라와 윙클보스 쌍둥이는 훗날 합의금 산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처럼 마크 저커버그에게 불만을 제기해 거액을 받아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우스시스템의 그린스펀 또한 '페이스북'이라는 단어의 저작권과 관련해 수백만 달러 합의를 얻어냈으며, 에이해브 선장이 모비딕을 경멸하듯 저커버그를 경멸했다. _〈본문 133쪽〉
4장 실리콘밸리 입성
그해 여름과 이후 몇 달간 저커버그는 자신의 이 프로젝트 하나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지금껏 그는 언제나 이 아이디어에서 저 아이디어로 건너뛰었다. 저커버그는 더페이스북이 1~2년 뒤에도 건재할 것 같으냐고 종종 파커에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파커는 그럴 거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모든 캠퍼스를 장악한 지금 저커버그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인맥이 탄탄한 연쇄 창업가 파커는 사업을 시작할 때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문외한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프로젝트를 본격적인 사업으로 여기지조차 않았다. 저커버그는 그해 여름을 이렇게 회상했다. "101번 국도를 달리면서 그 모든 위대한 회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우와. 저 어마어마한 회사들 좀 봐. 언젠간 나도 회사를 차릴 수 있겠지.' 그때 이미 페이스북을 시작해놓고서 말이죠!" _〈본문 144쪽〉
파커가 저커버그를 포트레로힐에 있는 핑커스의 사무실에 데려간 건 그해 2004년 8월이었다. 핑커스의 눈에 저커버그는 안하무인이었다. 열네 살처럼 보였는데 비치 샌들과 긴 농구 반바지 차림에 완전히 제멋대로였다. 그의 명함에는 "나는 최고경영자다 …… 잡년아I'm CEO … bitch"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핑커스를 혹하게 한 것은 (적어도 파커가 설명한) 더페이스북의 스토리였다. 더페이스북의 이용자 약 80퍼센트가 매일 접속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핑커스 자신의 소셜 소프트웨어 트라이브닷넷의 일일 접속자 수는 가입자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쳤으니 말이다. _〈본문 148쪽〉
숫자는 정확했다. 게다가 콜러가 이용자들과 대화를 했더니 정성적 데이터는 정량적 데이터보다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사진첩인지 뭔지를 이용하고 있느냐고 그가 물으면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어리둥절해했다. 마치 이 수돗물인지 뭔지를 사용해봤느냐고 묻는 식이었으니까. "이용하느냐고요? 더페이스북은 내 삶이에요."
틸은 회사 가치를 500만 달러로 평가해 50만 달러를 투자하고 7퍼센트의 지분을 확보했다. 호프먼과 핑커스는 각자 3만 7500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핑커스가 말한다. "그들이 나와 리드에게 그 라운드의 투자 기회를 제안했을 때 마치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죠."
틸은 면담을 끝내면서 자신의 새 제자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깽판 치지만 말게." _〈본문 151쪽〉
겨울 방학이 가까워지면서 그들 모두 이 프로젝트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임을 알았다. 저커버그가 더페이스북을 론칭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캘러핸이 말한다. "더페이스북이 10억 달러짜리가 되리라는 생각은 첫날부터 하고 있었어요."(그가 말한 건 하버드에 들어간 첫날이 아니라 '자신'이 입사한 첫날이다.) 하지만 몇십 억인지는 아무도 감을 잡지 못했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여전히 버젓한 비즈니스 모델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가 캘러핸에게 떨어졌다. _〈본문 162쪽〉
5장 스타트업의 길
액셀의 수석 투자자 짐 브라이어Jim Breyer가 마침내 제안한 금액은 《워싱턴포스트》의 두 배에 가까웠다. 그는 스무 살짜리가 운영하는 한 살배기 회사의 가치를 자그마치 9800만 달러로 산정해 1270만 달러를 제안했다. 게다가 그는 저커버그가 회사 경영권을 장기 보유하는 것에 동의했다. 브라이어와 틸이 이사회에 참석하겠지만 저커버그에게 2석, 파커에게 1석의 의결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 파커가 당했던 것과 달리 저커버그는 결코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을 터였다. _〈본문 167쪽〉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온 뒤 최우선 업무는 Facebook.com 도메인을 사들여 회사 이름에서 꼴사나운 '더'를 떼어버리는 것이었다. 도메인 소유주는 어바웃페이스AboutFace라는 회사였다. 대학과는 아무 관계 없고 법률 사무소와 기업 대상 직원 인명록을 제작하는 곳이었다. 파커는 도메인을 20만 달러에 낚아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더페이스북이 페이스북으로 간결해지는 길을 닦았다.
벤처 자금으로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인력 채용이었다. 하버드 코더들은 사이트를 출범시키는 일은 잘해냈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거대한 인구에 맞게 서비스 규모를 키우려면 실제로 컴퓨터과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저커버그가 수강한 운영체제 과목의 강사 맷 웰시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페이스북의 원래 버전은 기술적으로 볼 때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엔지니어 채용은 스타트업에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학생 이용자만 상대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한 가지 전술은 스탠퍼드대학교 컴퓨터과학과 바깥에 서 있다가 컴퓨터 도사처럼 보이는 학생들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콜러가 애용한 전술은 미끼 수법이었다. 그는 우등생들을 여름 인턴으로 꾀어서는 결국 학교를 중퇴하게 만들었다. _〈본문 170~171쪽〉
페이스북 방식의 특징은 새 코드를 내보내는 속도였다. 이를테면 아가르왈은 오라클에 있을 때 몇 달이 지나고서야 코드베이스code base에 첫 '커밋commit'(최신 변경 사항 추가를 통한 버전 관리)을 허락받았으며 그런 다음 다시 코드 변경이 아무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4명의 검토자에게 네 번 확인받아야 했다. 그런 뒤 실제 변경 사항이 고객에게 선보이기까지는 또 몇 년이 걸렸는데 제품 발표 주기가 2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하루에 네댓 번씩 코드를 내보냈다. 사실상 저커버그와 모스코비츠는 페이스북을 기숙사 방 프로젝트일 때와 같은 규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회사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들의 방식이 얼마나 전복적인지 알지 못했으며, 이 방식이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통용되는 모범 관행을 사실상 능욕했다는 사실 또한 깨닫지 못했다. 구글조차 데이터베이스 인덱스를 재수정할 때 약 2주 간격을 두어 정기 업데이트 때 변경 사항이 반영되도록 했다. 아가르왈이 말한다. "우리는 도그마가 없었기에 벗어날 필요도 없었죠. 확실하다면 기다릴 이유가 없잖아요?" 옛 패러다임에 젖어 이런 방식을 신성 모독으로 여기는 베테랑은 페이스북에 한 사람도 없었다. 페이스북의 태도는 이랬다. "예전 직장에서 코드 작성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상관 안 해. 페이스북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고 싶어 한다고." _〈본문 174~175쪽〉
이제 엔지니어팀은 점점 커져갔고 이용자는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업무는 사이트를 확대하고 새 캠퍼스로 확장하는 데 치중했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힘을 늘리고 중독성을 키우는 새 기능을 도입하는 일이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기능을 통해 야심 찬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빨리 움직이고 나중에 고친다"라는 자신의 방침을 회사가 유지하기를 바랐다. 이것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요리된 프로젝트를 지휘할 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가치를 끌어올릴 가망이 있는 한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 권한을 직원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업무라는 요리에다 뭐든 시도해보라는 양념을 치는 셈이었다. _〈본문 179쪽〉
6장 변화의 장
"세상에서 변화를 보고 싶다면 스스로 그 변화가 되라."
-마하트마 간디 _〈본문 190쪽〉
"어떻게 하면 실제 안전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안전해 보이도록 할 수 있을까?" _〈본문 195쪽〉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기막힌 기능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도 이용자에게 도달하기까지 1년 넘게 걸렸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몇 시간이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다. _〈본문 200~201쪽〉
저커버그가 입을 열었다.
"음, 우리는 다른 회사들이 구리다고 생각해요."
댄 로즌스와이그Dan Rosensweig 야후 사장이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우스갯소리를 내뱉었다. "그래도 야후는 덜 구리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_〈본문 210쪽〉
저커버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용자들의 반발이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이미 믿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소음을 무시하면 사람들은 적응할 것이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이용자의 아우성은 없던 일이 될 터였다. 캘러핸이 말한다. "마크는 이번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정말 처참하게 틀렸죠."
페이스북은 대체로 밤늦게 제품을 출시했으며 사전 공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새 기능은 부활절 달걀처럼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러면 이용자들은 새 기능을 받아들였으며 디자인상의 결함이나 버그는 나중에 수정되었다. 뉴스피드의 경우에는 이런 전환이 유난히 갑작스러웠다. _〈본문 216쪽〉
페이스북은 최초의 홍보 위기에서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잘못된 교훈이었는지 모르지만). 급조한 제품에는 심각한 프라이버시 문제(직원들도 알고 있던 문제)가 있었으나 페이스북은 무시하고 출시했다. 케이티 게민더가 몇 년 뒤 이 사건을 되돌아보며 말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대범했어요. 무감각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대단한 걸 만들려면 눈 딱 감고 밀어붙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위기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빠른 대처와 (진심에서 우러나지는 않은) 사과가 상황을 가라앉혔다. 사람들은 결국 뉴스피드를 사랑하게 되었다. (… )
페이스북은 곧이어 가입제한해제를 도입하면서는 좀 더 신중을 기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오픈레지가 페이스북 정책의 중대 변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를 연결한다는 저커버그의 원대한 야심을 위해 내장형built-in 프라이버시 보호 대책을 버리는 조치였다. _〈본문 222~223쪽〉
7장 개발자 플랫폼 구축하기
저커버그는 모린에게 애플이 혁신 기업이기는 하지만 페이스북은 혁명 기업이라고 말했다. _〈본문 230쪽〉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소셜 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라고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스크톱 세상을 장악했듯 페이스북은 소셜 세상을 장악하리라 생각했다.
소셜 운영체제 구축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작업이다. 사진 앱을 예로 들어보자. 각각의 사진은 잠재적 프라이버시 제한이 걸려 있다. 자신의 정보를 누가 볼 수 있는지를 이용자가 지정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매 단계마다 이 사진을 누구나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친구들만 볼 수 있는지 제약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페이스북은 외부인이 독자적으로 사진 앱을 만들면 페이스북이 자체 앱에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개발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외부인에게 정보를 믿고 맡겨도 될까. _〈본문 234쪽〉
수백, 아니 수천 명의 개발자가 페이스북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자신들의 앱에 대한 콘텐츠를 유포했다. 그러자 뉴스피드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해변처럼 쓰레기 게시물로 가득 찼다. 정상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개발자들이 앱에 대한 '소식'을 유포하는 수단인 알림도 이용자들에게 융단 폭격을 퍼부었다.
그리하여 '플랫폼'의 출범을 자축하던 페이스북은 동시에 부정행위 때문에 시스템이 오염될까봐 우려했다. 데이브 모린이 말한다. "벤처 투자자들이 찾아오고 기업인들이 찾아오고 개발자 이벤트를 비롯한 온갖 행사가 열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이용자 경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죠. 스팸성spammy으로요. '스팸성'이라는 단어가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유행어가 된 건 그해였던 것 같아요." (… )
페이스북은 사태를 바로잡고자 나서 뉴스피드와 알림에 대한 개발자들의 접근을 제한했다. 애덤 댄절로가 말한다. "개발자 수와 처리해야 하는 스팸 양이 우리가 대비한 것보다 훨씬 빨리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단속 조치를 시행해야 했죠."
당연히 개발자들은 새 규정들을 증오했다. 슬라이드의 맥스 레브친은 페이스북이 미끼 수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이 자신들에게 이용자 참여를 이끌어내라고 독려한 것은 그들의 전술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페이스북이 참여를 내부 기준으로 활용했으며 슬라이드가 만들어낸 온갖 활동은 페이스북의 사업을 뒷받침한 셈이라며 이렇게 회상한다. "그들은 '두려워 말고 시도해요'라고 말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스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오락일 수 있다면서요." _〈본문 249쪽〉
뉴스피드 스팸 전쟁 이후에도 페이스북과 개발자들의 실랑이는 계속 이어졌다. 페이스북이 규정을 바꾸면 개발자들은 바뀐 규정을 우회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개발자들은 수법을 서로 공유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기능을 시도할 때면 페이스북 직원으로 되어 있는 사람에게 안 보이도록 하거나 위치 등록을 이용해 샌프란시스코베이에어리어를 제외하는 방법을 썼다. 페이스북의 조시 엘먼이 말한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고양이와 쥐처럼 쫓고 쫓기는 게임을 하고 있었죠. 대개는 쥐에게 뒤처졌던 것 같아요."
더 심각한 부정행위 사례 중 하나는 개발자들이 페이지 공간을 저질 광고 업체에 판매한 일이다. 이름난 광고주들은 페이스북에서 돌아가는 한심한 앱에 하등 관심이 없었다. 페이스북 광고를 구매하는 회사 대부분은 기만적 수법을 이용해 사람들의 돈이나 데이터를 탈취하는, 이른바 '잠재 고객 발굴lead generation'이라는 위험한 관행으로 이용자를 등쳐먹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어떤 광고는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해 브라우저를 설치한 다음 그 뒤로 이용자의 모든 웹 행동을 몰래 추적한다. 이런 브라우저를 제거하는 것은 컴퓨터과학 학위가 필요할 정도로 까다로운 일이다. _〈본문 252쪽〉
페이스북 커넥트는 마크 저커버그의 회사를 인터넷에서 사실상의 신원 확인 기관으로 만드는 구상에 한 발짝 다가가는 정책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페이스북 로그인 정보를 수천 개의 사이트에서 쓸 수 있으며, 페이스북을 거쳐 로그인하기 때문에 저커버그의 회사는 이용자의 모든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된다.
페이스북은 이미 수천 명의 개발자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 숫자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터였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이용자(자신의 의사로 페이스북 커넥트를 이용해 앱에 가입한 사람)와 그들의 친구(자신의 정보가 가입은커녕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앱에 전달된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이미 개발자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이 개발자들에게 무슨 데이터를 주는가는 규정에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부 개발자의 증언과 훗날 법적 조치로 공개된 이메일들에 따르면 실제로는 규정에 융통성이 있었으며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개발자들에게 도매금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_〈본문 258쪽〉
8장 소셜 광고 시대의 개막
페이스북은 마이스페이스에 비하면 아차상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미친'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만큼 큰 수익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언젠가 페이스북을 인수하겠다는 (어림없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기회를 덥석 물었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두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페이스북 국내 광고 판매 독점권을 가지는 제휴 관계를 맺었다. 이듬해 페이스북 매출의 절반이 이 계약에서 나오게 된다. 제휴 책임자로 페이스북에 신규 채용되어 이 계약을 담당했던 댄 로즈가 말한다. "홧김에 하는 데이트였죠 _〈본문 271쪽〉
"페이스북에서 효과가 있는 건 친구를 통해 아는 것들이었죠. 친구라는 렌즈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확실히 먹히는 방법일 겁니다. 내 친구들에 대한 적절하고 유관한 정보가 광고에 들어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고요."
이것이 페이스북에서 대대적으로 공개한 광고 비즈니스의 주제였다. 코드명 '판다Panda'는 '페이지와 광고Pages and Ads'의 준말이다. 나중에 코드명은 별로 귀엽진 않은 '팬데믹Pandemic'으로 바뀌게 된다.
광고주들에게 내세운 모토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화는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며 이제 펩시나 월마트 같은 대기업이 직접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펩시가 애초에 대화에 끼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사람들이 친구와 대화할 때 펩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펩시의 편을 들 리는 만무했다. 자신이 펩시를 샀다는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개념이야말로 소셜 광고의 핵심 차별점이자 페이스북 전략의 주요 요소였다.
또 다른 요소는 더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페이스북은 현행 광고 시스템을 바꾸고자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광고를 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올바른 사람을 타기팅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_〈본문 273쪽〉
팬데믹 출시를 알리는 머리기사들은 마이크로타기팅과 소셜 광고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관심은 이내 비컨으로 옮겨갔다. 켈리를 비롯한 사람들이 경고했듯 지정된 웹사이트에서 이루어진 구매 소식을 자동으로 퍼뜨리는 것은 달갑잖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누군가 제휴 사이트에서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샀는데 상대방이 이 사실을 무릎 꿇은 남자에게서가 아니라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알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구매 내역이 다른 사람들의 뉴스피드에 올라오기 시작하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름난 업계 분석가 샬린 리Charlene Li였다. 그녀는 오버스톡닷컴Overstock.com에서 커피 테이블을 구입했다는 소식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전달된 데 "경악"했다고 블로그에 썼다. _〈본문 281쪽〉
9장 셰릴 월드와 '좋아요'의 탄생
물론 모든 책임은 최종적으로 저커버그에게 귀결되었다. 샌드버그가 말한다. "내게 보고되는 건 모두 저커버그에게 보고돼요. 내가 그에게 보고하니까요. 그러니 역할 분담은 내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결정한 셈이죠."
그럼에도 그 뒤로 10년간 대규모 성장과 이 엄청난 규모 때문에 전례 없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페이스북에는 사실상 2개의 조직이 존재했다. 하나는 저커버그의 영토, 다른 하나는 셰릴 월드였다. 둘은 결코 동등하지 않았다. 저커버그가 제품 부문인 엔지니어링을 이끈 것은 그쪽에 더 유능해서가 아니라 엔지니어링이야말로 회사의 심장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당연해 보였다. 이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저커버그가 깨달은 것은 10년이 지나서였다. _〈본문 293쪽〉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의 비즈니스가 광고업이고 나머지 모든 것이 곁다리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모든 사람이 그 생각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특히 몇몇 젊은 직원들은 광고는 구리며 페이스북은 뭔가 덜 …… 가식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커버그조차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았다. _〈본문 298쪽〉
구글이 가장 두려워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은밀한 스카우트 방지 협약이 없을 경우 거액의 인재 쟁탈전이 벌어지리라는 우려였다. 그 뒤로 몇 년간 두 회사는 상대 회사의 인력을 유인하고 경쟁사의 유혹으로부터 자사 인력을 지키려고 수억 달러를 쓰게 된다. _〈본문 301쪽〉
세계 최대의 기업들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사람들을 유인해 자사 페이지에 좋아요를 받으려는 주목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때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주는 사람들에게 특전을 제공했다. 어떤 페이지는 좋아요 암시장에 뒷돈을 댔다. 일정액을 내면 좋아요 수천 개를 살 수 있었다. 이따금 중국 같은 나라의 저임금 노동자 군단이 노동력 착취 사업장에 앉아 집게손가락을 마우스 단추에 올린 채 좋아요를 눌러 브랜드를 홍보했다.
좋아요 단추는 페이스북 자체의 상징이 되었으며 엄지손가락 아이콘은 페이스북 본사 사옥 앞에 전시되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셀카를 찍어 소셜 네트워크에 사진을 올렸다. 물론 친구들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리라 기대하면서.
그리하여 단순하기 그지없는 요소 하나가 페이스북의 비즈니스를 부양하고 이용자들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손쉬운 방법을 선사했다. 동시에 사소하거나 분노를 유발하는 콘텐츠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회사를 내몰았다. 좋아요 단추가 페이스북이 자기네 테두리를 넘어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관문 마약이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좋아요의 창안자 로즌스타인, 펄먼, 모겐스턴(지금은 누구도 페이스북에서 일하지 않는다)은 최근 자신들의 작업이 사회를 타락시키고 옛 고용주가 이용자 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데 일조했다는 깨달음(후회까지는 아니지만)을 진심으로 표명했다. 그들은 모두 당시에는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벌어지지 않도록 페이스북이 노력했어야 한다며 아쉬워한다. 그들은 페이스북의 사업 전반에서 이런 아쉬움을 느꼈으리라.
좋아요 단추의 웹 정복은 페이스북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비컨의 참패를 보기 좋게 설욕한 셈이었다. 비컨은 웹사이트에서 얻은 데이터를 페이스북의 다른 이용자들에게 공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좋아요 단추는 페이스북이 이 데이터를 자기네 목적을 위해, 주로 이용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광고에 활용하는 쪽으로 이용하게 해주었다._〈본문 307~308쪽〉
10장 성장, 또 성장
"저커버그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능은 뭐가 됐든 아무 관심 없다고 말했다. 성장이야말로 유일하게 중요한 관심사였다." _〈본문 319쪽〉
'알 수도 있는 사람'은 페이스북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친구가 될 만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은 회원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그들이 더 많이 공유할 가능성을 높이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떠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알 수도 있는 사람'은 반가운 기능이다. 페이스북 활동을 유익한 경험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도록 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따금 '알 수도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애매한 관계이거나 때로는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왜 뉴스피드에 카메오 출연을 하는지 의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매춘부는 자신의 고객들을 페이스북 친구로 추천받았다(그녀의 신원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한 정자 공여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생물학적 자녀를 추천받았다. 한 정신과 의사는 페이스북이 자신의 환자들을 서로 친구로 추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녀의 친구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배우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10년 전 소개팅 상대와 관계를 맺으라는 페이스북의 권유에 수많은 사람이 역겨움을 느꼈다. _〈본문 328~329쪽〉
하지만 2013년 국제적 성장과 관련한 페이스북의 우려는 그런 결과가 아니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조만간 이용자 수가 정점에 도달할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물론 페이스북이 10억~20억 인구를 자기네 커뮤니티에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 세계는 아니었다. 인터넷이 깔려 있고 데이터 이용료를 낼 돈이 있는 여유로운 인구만 페이스북 이용자가 될 수 있었다. 아직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은 수십억 명 중 상당수는 여유로운 인구에 포함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 보기에 그들은 너무 가난하거나 인터넷에 접속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또는 둘 다이거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페이스북 버전을 만들어야 했다. 그다음에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 발상을 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추진력은 전 세계인을 페이스북에 연결한다는 성장팀의 목표에서 비롯했지만, 저커버그는 이 사업을 수십억 명의 삶을 바꾸는 박애주의적 시도로 볼 것을 주장했다. 그가 이 인터넷 보급 사업에 붙인 이름은 비영리 단체나 재단에서 주로 쓰는 최상위 도메인 접미사를 붙인 '인터넷닷오그Internet.org'였다. _〈본문 341~342쪽〉
저커버그는 전 세계인을 연결한다는 사명을 주창했지만 이를 실현하는 임무는 성장 조직 소관이었다. 그러니 페이스북의 진정한 사명은 연결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페이스북 홍보 책임자 브랜디 바커는 2009년경 저커버그와 면담한 일을 회상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페이스북에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한 이유는 성장과 참여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다. "성장과 참여야말로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라는 거죠!" _〈본문 347쪽〉
11장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
어떤 의미에서 페이스북의 자기규정은 6개의 알파벳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레이엄이 말한다. "우리는 회의실에 소집단으로 모여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입사 지원자나 친구에게, 엄마에게, 형제에게 페이스북을 어떻게 묘사하나요? 최근 3명의 입사 지원자에게는 뭐라고 말했나요? 어떤 표현을 썼나요?'" 그러자 단어 하나가 거듭거듭 등장했다. 'hacker'(해커)였다.
일반인에게 '해커'라는 단어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대단히 위험한 허무주의자 또는 원격 시스템을 파괴하거나 신용카드 정보를 훔치는 악당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스타트업 문화에서는 단어가 원래 의미대로 쓰였다. 바로 '자신의 노력이 망가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꾼다고 믿는 뛰어난 실력의 정의로운 코더'다. _〈본문 353쪽〉
이 가치들 중 하나가 페이스북 특유의 것, 저커버그 특유의 것으로 부각되었다.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페이스북과 동의어였다. 정확한 문구가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아마 팰러앨토 해밀턴스트리트 사무실에서 열린 전 직원 회의에서였을 것이다. 회사 규모가 너무 커져 모든 아르바이트생이 댄절로나 다른 임원에게 일일이 보고할 수 없게 되자 처음으로 관리자들을 채용했을 때였다. 먹이 사슬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 '노'라고 말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 저커버그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래서 그는 모두에게 두려워할 여유가 없으니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고 강조했다. _〈본문 354쪽〉
페이스북의 초창기(종종 현재까지) 성격을 묘사할 때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숙사 방"을 관형어로 쓴다. 이에 반해 경쟁사 구글은 대학원생 이미지였다. _〈본문 357~358쪽〉
ㆍ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가 페이스북 대뇌 피질에서 나온 것 같다면(빠른 속도는 다른 회사와 격차를 벌리는 전술적 강점이었다) 이 도발적 질문은 페이스북의 심장에서 꺼낸 것 같았다. 이 슬로건을 비공식 사훈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페이스북은 비즈니스를 대하는 자세뿐 아니라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을 표현한 셈이었다. _〈본문 356쪽〉
저커버그가 트위터에 쓴 수법은 이후 그가 경쟁자를 상대하는 친숙한 전략이 되었다. 첫째, 현재나 미래에 위협이 되는 회사를 찾아낸다. 둘째, 인수를 시도한다. 셋째, 팔지 않으면 베낀다. _〈본문 377쪽〉
이제 페이스북 역시 공개의 길을 걸을 터였다. 무엇보다 저커버그는 이용약관을 개정하고 싶어 했다. 핵심 변화는 기본 설정을 '친구만'에서 '전체 공개'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용자가 공개를 제한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들의 게시물, 좋아요, 친구 명단, 일부 프로필 정보는 페이스북 내에서 공개될 뿐 아니라 구글 같은 검색 엔진에도 표시되었다(이전에는 이용자의 이름과 어느 네트워크를 이용하는지만 공개했다).
크리스 콕스는 기자들과 전화 통화에서 트위터가 이 변화의 계기였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추동력은 성장팀에서 왔다. 페이스북의 정보를 구글에서 더 잘 보이게 하면 사람들이 구글에서 더 많은 친구를 찾고 어쩌면 가입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의 가입까지 유도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과 이용자가 애초에 맺은 계약을 완전히 파기하는 셈이었다. _〈본문 386쪽〉
12장 모바일 전환 위기에 대처하기
2012년이 다가오면서 페이스북은 그해가 가기 전에 10억 이용자를 돌파할 기세였다. 광고주들이 페이스북에 합류하면서 매출은 40억 달러에 육박했다. 그중 10억 달러가 이익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세운 모든 것이 위험에 처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업계에 닥친 거대한 변화를 준비하지 못했다. 이 변화는 페이스북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다.
세상은 스마트폰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페이스북은 전환에 서툴렀다. _〈본문 401쪽〉
그는 페이스북이 모바일과 씨름하는 과정을 쭉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의 근심거리는 훌륭한 앱이 없다는 점이 아니었다. 그는 진화하는 모바일 생태계 자체가 페이스북의 존재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디지털 업계에서 앞서가려면 자신의 모바일 운영체제를 운영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런 업체의 졸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버젓한 운영체제가 있는 곳은 애플과 구글뿐이었다.
팔리하피티야는 해결책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페이스북이 독자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_〈본문 414쪽〉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주식 구조 운용에 대해 확고한 견해가 있었다. 핵심은 저커버그 자신이 계속, 아마 영원히, 통제권을 쥐는 것이었다. 방법은 주주를 두 등급으로 나누어 상위 등급(자신이 절대다수의 지분을 가진 등급)에 모든 표결에서의 지배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멘토 돈 그레이엄의 《워싱턴포스트》 같은 가족 소유 신문 기업들이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수법과 비슷했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역시 같은 방법을 썼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계획은 창업자 1인이 가진 통제권 면에서 그들을 뛰어넘었다. 저커버그는 의결권주의 56퍼센트를 보유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주주들이나 이사들의 명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
또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운영 방식을 "해커 방식"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단어에 "(부당한) 부정적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만난 해커 대부분은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해커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커 방식은 끊임없는 개선과 반복을 통해 만들어가는 접근법입니다. 해커들은 무언가가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으며 무엇도 결코 완벽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해커의 할 일은 바로잡는 것뿐입니다. 때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면전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_〈본문 420~421쪽〉
비슷한 수법으로 주가를 떠받칠 수 없게 되자 페이스북 주가는 하향세를 걸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주가는 32달러까지 떨어졌다. 2012년 9월에 접어들었을 때는 20달러 지폐로 페이스북 주식 1주를 사면 2달러와 잔돈까지 돌려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3만 7500달러의 투자로 수억 달러를 벌어들인 초기 투자자 리드 호프먼조차 페이스북 기업공개를 "얼토당토않은 얼간이짓egregious fuck-up"으로 평했다. 그 뒤로 몇 달간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페이스북, 나스닥, 주간사 회사에 소송을 제기하느라 여러 관할지의 법원을 계단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이후 몇 년에 걸쳐 페이스북, 은행가들, 나스닥은 합의금으로 수백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_〈본문 425쪽〉
뉴스피드 속 모바일 광고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페이스북의 연 매출을 수백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물론 뉴스피드 광고의 창의적 작동 방식이 언젠가 국가적 선전 공작에 악용되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란, 위기, 긴장의 해였던 2006년과 마찬가지로 2012년에 페이스북은 새로운 차원의 성공을 거둘 토대를 놓았다. 페이스북을 집어삼킬 듯하던 스마트폰 물결은 뉴스피드 이후 최대의 호재로 드러났다. 페이스북 홈이 참담하게 실패하긴 했지만 iOS용과 안드로이드용 네이티브 앱은 각 플랫폼에서 단연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북 자체의 '플랫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천 명의 개발자가 자신들이 만든 앱의 로그인 수단으로 페이스북 커넥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_〈본문 431쪽〉
13장 미래를 사다
저커버그는 자신에게 지평선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으며, 자신의 계획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회사이든 기술 변화이든) 주시했다. 2011년 구글이 자체 소셜 네트워크 상품 '구글 플러스Google Plus'를 출시하자 저커버그는 몇 주 동안 회사 문을 걸어 잠근 채 아무도 퇴근하지 못하게 했으며 주말에도 구내식당을 운영했다. 전 직원 대상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고대 로마 영웅 카토를 소환해 "카르타고 델렌다 에스트Carthago delenda est"(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합니다)라는 외침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아날로그연구소는 인쇄기를 켜서 이 라틴어 명구가 적힌 포스터를 찍어냈다. 사실 저커버그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구글 플러스는 실패작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누군가 소셜 사진 공유의 미래를 낚아채면 페이스북이 곤란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좋은 방안은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_〈본문 440쪽〉
어떤 의미에서 스피걸의 거절은 2006년 저커버그가 야후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것과 비슷했다. 두 경우 다 창업자들은 큰 회사가 일을 망칠 것이라 생각했다. 10년 전 저커버그는 인터넷에서 성장한 십 대였으며, 이런 이점 덕에 당시 기술 업계를 지배하던 늙은 용의 목을 벨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신세대의 기술 DNA에는 모바일 사고방식이 속속들이 배어 있었다.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을 낳은 웹사이트 세상이 한물갔음을 알고 있었다. _〈본문 451쪽〉
마크 저커버그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오나보 수치에 따르면 왓츠앱은 세계적 강자가 될 터였으며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 자체 메시징 사업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왓츠앱 이용자는 4억 5000만 명이었는데
ㆍ 《파이낸셜타임스》 테크 분야 올해의 책
ㆍ 미국 최고 테크 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 신작
ㆍ IT METAVERSE NFT XR 미래 스타트업 교과서
ㆍ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추천
페이스북은 왜 메타로 변신했나
"오늘부터 우리 회사는 이제 메타(Meta)가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선포합니다."
2021년 10월 28일 마크 저커버그는 가상현실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북극성이 있습니다.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를 현실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모든 범위와 우리가 앞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미래가 반영된 이름입니다."
놀라운 발표였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을 '메타'의 한 부문으로 격하하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기술 업계를 장악한 이른바 '빅테크' 중 하나다.(여기에는 구글, 아마존, 애플이 포함되며 마이크로소프트를 더해 '빅 파이브'라고도 한다.) 또 세계 5대 소셜 플랫폼 중 구글의 유튜브를 제외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 4곳을 프랜차이즈로 보유했다.
2020년 페이스북의 매출은 860억 달러, 이익은 330억 달러에 달했다. 2021년 시가 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했고 마크 저커버그의 개인 재산은 900억 달러를 웃돌았다. 총 이용자 수는 2020년 30억 명을 넘어 "인류의 절반 가까이"를 연결했다.(2021년 3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페이스북 프랜차이즈 전체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35억 80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45퍼센트를 차지했다.)
이토록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왜 페이스북은 회사명 변경이라는 모험을 단행한 것일까? 마크 저커버그의 끝없는 열망과 비전 때문일까? 아니면 비판자들이 이야기하듯 페이스북 브랜드의 돌이킬 수 없는 손상 때문일까?
경이롭고 유익한 소셜 제국
2015년 페이스북 홍보팀은 10억 명이 같은 날 페이스북에 로그인했다고 발표했다. 전례가 없는 이 현상에 충격을 받은 "미국 최고의 테크 저널리스트" 스티븐 레비는 페이스북이 품은 야심의 너비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레비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와 2인자 미셸 샌드버그를 비롯한 전현직 임직원들, 그리고 동업자와 경쟁자 등 외부 관계자들과 3년간 300여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이 "페이스북 이야기의 결정판"에서 저자는 2004년 하버드 기숙사에서 "뚝딱 만들어진" 대학생 인맥 쌓기용 앱이 어떤 원칙과 전략으로 세계 최대 소셜 제국으로 성장하는 성공 신화를 쓰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페이스북이 어떤 명과 암, 공과 과를 초래했는지 낱낱이 추적, 해부해 파헤친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직 젊은 페이스북 수장은 이러한 전례 없는 현상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세계를 연결한다는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온갖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막강한" 이 거대한 소셜 제국에서 사람들은 친구, 친척, 지인, 타인과 허물없이 소통한다. 댓글을 달고, 뉴스 기사를 올리고, 웃기는 밈을 퍼뜨린다. 물건을 사고팔고, 정치 운동을 조직한다. 그러면서 전에 없던 발언권과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이런 유익함에서 보자면 페이스북은 정말 경이롭다.
인간성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두려운 존재
반면에 페이스북은 "유독한 주의력 흡수제"이자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 유포, 음모론과 증오 발언 만연, 자살과 살인 생방송, 독재와 학살에 악용, 폭력과 테러 조장, 선거 개입, 개인 정보 유출,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서 보듯 페이스북은 또한 너무나 두려운 존재다.
페이스북의 이러한 이중성은 한편으로 디지털 산업, 거대 기술 기업의 행보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거대 기술 기업들이 강도 높은 조사와 의심의 눈초리를 겪었다. 창업자의 이상주의는 한때 이 거대 기술 기업들의 중요한 토대였으나 이제는 파우스트식 거래의 소산으로 치부된다. 그들이 가져다준 경이로운 혜택을 누리는 대가로 우리는 주의력과 프라이버시와 인간성을 내주어야 했다."
페이스북 이야기는 소셜 미디어 산업의 역사 자체이자 IT 업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빅테크와 기술 산업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경험과 비즈니스를 바꾸어왔는지, 어떤 미래로 세상을 데려가려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소중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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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이어서
이후 며칠 사이에 스탠퍼드와 예일에서도 더페이스북이 출범했다. 패턴이 확립되었다. 그 뒤로 몇 달간 더페이스북팀은 100여 곳의 캠퍼스에 진출했다. _〈본문 127쪽〉
그해 9월 커넥트유팀은 6500만 달러짜리 합의로 끝나게 된 기나긴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 그들이 저커버그와 유형의 계약을 전혀 맺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짭짤한 성과였다(한 판사는 그들의 거래를 "기숙사 잡담dorm chit-chat"이라고 표현했다). 어쨌든 커넥트유팀 사이트는 1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차였고 저커버그가 늑장을 부린 탓에 늦어진 기간은 두 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나렌드라와 윙클보스 쌍둥이는 훗날 합의금 산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처럼 마크 저커버그에게 불만을 제기해 거액을 받아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우스시스템의 그린스펀 또한 '페이스북'이라는 단어의 저작권과 관련해 수백만 달러 합의를 얻어냈으며, 에이해브 선장이 모비딕을 경멸하듯 저커버그를 경멸했다. _〈본문 133쪽〉
4장 실리콘밸리 입성
그해 여름과 이후 몇 달간 저커버그는 자신의 이 프로젝트 하나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지금껏 그는 언제나 이 아이디어에서 저 아이디어로 건너뛰었다. 저커버그는 더페이스북이 1~2년 뒤에도 건재할 것 같으냐고 종종 파커에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파커는 그럴 거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모든 캠퍼스를 장악한 지금 저커버그는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인맥이 탄탄한 연쇄 창업가 파커는 사업을 시작할 때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문외한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프로젝트를 본격적인 사업으로 여기지조차 않았다. 저커버그는 그해 여름을 이렇게 회상했다. "101번 국도를 달리면서 그 모든 위대한 회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우와. 저 어마어마한 회사들 좀 봐. 언젠간 나도 회사를 차릴 수 있겠지.' 그때 이미 페이스북을 시작해놓고서 말이죠!" _〈본문 144쪽〉
파커가 저커버그를 포트레로힐에 있는 핑커스의 사무실에 데려간 건 그해 2004년 8월이었다. 핑커스의 눈에 저커버그는 안하무인이었다. 열네 살처럼 보였는데 비치 샌들과 긴 농구 반바지 차림에 완전히 제멋대로였다. 그의 명함에는 "나는 최고경영자다 …… 잡년아I'm CEO … bitch"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핑커스를 혹하게 한 것은 (적어도 파커가 설명한) 더페이스북의 스토리였다. 더페이스북의 이용자 약 80퍼센트가 매일 접속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핑커스 자신의 소셜 소프트웨어 트라이브닷넷의 일일 접속자 수는 가입자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쳤으니 말이다. _〈본문 148쪽〉
숫자는 정확했다. 게다가 콜러가 이용자들과 대화를 했더니 정성적 데이터는 정량적 데이터보다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사진첩인지 뭔지를 이용하고 있느냐고 그가 물으면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어리둥절해했다. 마치 이 수돗물인지 뭔지를 사용해봤느냐고 묻는 식이었으니까. "이용하느냐고요? 더페이스북은 내 삶이에요."
틸은 회사 가치를 500만 달러로 평가해 50만 달러를 투자하고 7퍼센트의 지분을 확보했다. 호프먼과 핑커스는 각자 3만 7500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핑커스가 말한다. "그들이 나와 리드에게 그 라운드의 투자 기회를 제안했을 때 마치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죠."
틸은 면담을 끝내면서 자신의 새 제자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깽판 치지만 말게." _〈본문 151쪽〉
겨울 방학이 가까워지면서 그들 모두 이 프로젝트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임을 알았다. 저커버그가 더페이스북을 론칭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캘러핸이 말한다. "더페이스북이 10억 달러짜리가 되리라는 생각은 첫날부터 하고 있었어요."(그가 말한 건 하버드에 들어간 첫날이 아니라 '자신'이 입사한 첫날이다.) 하지만 몇십 억인지는 아무도 감을 잡지 못했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여전히 버젓한 비즈니스 모델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가 캘러핸에게 떨어졌다. _〈본문 162쪽〉
5장 스타트업의 길
액셀의 수석 투자자 짐 브라이어Jim Breyer가 마침내 제안한 금액은 《워싱턴포스트》의 두 배에 가까웠다. 그는 스무 살짜리가 운영하는 한 살배기 회사의 가치를 자그마치 9800만 달러로 산정해 1270만 달러를 제안했다. 게다가 그는 저커버그가 회사 경영권을 장기 보유하는 것에 동의했다. 브라이어와 틸이 이사회에 참석하겠지만 저커버그에게 2석, 파커에게 1석의 의결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예전에 파커가 당했던 것과 달리 저커버그는 결코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을 터였다. _〈본문 167쪽〉
은행 계좌에 돈이 들어온 뒤 최우선 업무는 Facebook.com 도메인을 사들여 회사 이름에서 꼴사나운 '더'를 떼어버리는 것이었다. 도메인 소유주는 어바웃페이스AboutFace라는 회사였다. 대학과는 아무 관계 없고 법률 사무소와 기업 대상 직원 인명록을 제작하는 곳이었다. 파커는 도메인을 20만 달러에 낚아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더페이스북이 페이스북으로 간결해지는 길을 닦았다.
벤처 자금으로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인력 채용이었다. 하버드 코더들은 사이트를 출범시키는 일은 잘해냈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거대한 인구에 맞게 서비스 규모를 키우려면 실제로 컴퓨터과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저커버그가 수강한 운영체제 과목의 강사 맷 웰시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페이스북의 원래 버전은 기술적으로 볼 때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엔지니어 채용은 스타트업에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학생 이용자만 상대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한 가지 전술은 스탠퍼드대학교 컴퓨터과학과 바깥에 서 있다가 컴퓨터 도사처럼 보이는 학생들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콜러가 애용한 전술은 미끼 수법이었다. 그는 우등생들을 여름 인턴으로 꾀어서는 결국 학교를 중퇴하게 만들었다. _〈본문 170~171쪽〉
페이스북 방식의 특징은 새 코드를 내보내는 속도였다. 이를테면 아가르왈은 오라클에 있을 때 몇 달이 지나고서야 코드베이스code base에 첫 '커밋commit'(최신 변경 사항 추가를 통한 버전 관리)을 허락받았으며 그런 다음 다시 코드 변경이 아무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4명의 검토자에게 네 번 확인받아야 했다. 그런 뒤 실제 변경 사항이 고객에게 선보이기까지는 또 몇 년이 걸렸는데 제품 발표 주기가 2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하루에 네댓 번씩 코드를 내보냈다. 사실상 저커버그와 모스코비츠는 페이스북을 기숙사 방 프로젝트일 때와 같은 규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회사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들의 방식이 얼마나 전복적인지 알지 못했으며, 이 방식이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통용되는 모범 관행을 사실상 능욕했다는 사실 또한 깨닫지 못했다. 구글조차 데이터베이스 인덱스를 재수정할 때 약 2주 간격을 두어 정기 업데이트 때 변경 사항이 반영되도록 했다. 아가르왈이 말한다. "우리는 도그마가 없었기에 벗어날 필요도 없었죠. 확실하다면 기다릴 이유가 없잖아요?" 옛 패러다임에 젖어 이런 방식을 신성 모독으로 여기는 베테랑은 페이스북에 한 사람도 없었다. 페이스북의 태도는 이랬다. "예전 직장에서 코드 작성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상관 안 해. 페이스북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고 싶어 한다고." _〈본문 174~175쪽〉
이제 엔지니어팀은 점점 커져갔고 이용자는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업무는 사이트를 확대하고 새 캠퍼스로 확장하는 데 치중했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힘을 늘리고 중독성을 키우는 새 기능을 도입하는 일이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기능을 통해 야심 찬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빨리 움직이고 나중에 고친다"라는 자신의 방침을 회사가 유지하기를 바랐다. 이것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요리된 프로젝트를 지휘할 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가치를 끌어올릴 가망이 있는 한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 권한을 직원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업무라는 요리에다 뭐든 시도해보라는 양념을 치는 셈이었다. _〈본문 179쪽〉
6장 변화의 장
"세상에서 변화를 보고 싶다면 스스로 그 변화가 되라."
-마하트마 간디 _〈본문 190쪽〉
"어떻게 하면 실제 안전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안전해 보이도록 할 수 있을까?" _〈본문 195쪽〉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기막힌 기능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도 이용자에게 도달하기까지 1년 넘게 걸렸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몇 시간이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다. _〈본문 200~201쪽〉
저커버그가 입을 열었다.
"음, 우리는 다른 회사들이 구리다고 생각해요."
댄 로즌스와이그Dan Rosensweig 야후 사장이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우스갯소리를 내뱉었다. "그래도 야후는 덜 구리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_〈본문 210쪽〉
저커버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용자들의 반발이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이미 믿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소음을 무시하면 사람들은 적응할 것이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이용자의 아우성은 없던 일이 될 터였다. 캘러핸이 말한다. "마크는 이번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은 정말 처참하게 틀렸죠."
페이스북은 대체로 밤늦게 제품을 출시했으며 사전 공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새 기능은 부활절 달걀처럼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러면 이용자들은 새 기능을 받아들였으며 디자인상의 결함이나 버그는 나중에 수정되었다. 뉴스피드의 경우에는 이런 전환이 유난히 갑작스러웠다. _〈본문 216쪽〉
페이스북은 최초의 홍보 위기에서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잘못된 교훈이었는지 모르지만). 급조한 제품에는 심각한 프라이버시 문제(직원들도 알고 있던 문제)가 있었으나 페이스북은 무시하고 출시했다. 케이티 게민더가 몇 년 뒤 이 사건을 되돌아보며 말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대범했어요. 무감각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대단한 걸 만들려면 눈 딱 감고 밀어붙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위기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빠른 대처와 (진심에서 우러나지는 않은) 사과가 상황을 가라앉혔다. 사람들은 결국 뉴스피드를 사랑하게 되었다. (… )
페이스북은 곧이어 가입제한해제를 도입하면서는 좀 더 신중을 기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오픈레지가 페이스북 정책의 중대 변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를 연결한다는 저커버그의 원대한 야심을 위해 내장형built-in 프라이버시 보호 대책을 버리는 조치였다. _〈본문 222~223쪽〉
7장 개발자 플랫폼 구축하기
저커버그는 모린에게 애플이 혁신 기업이기는 하지만 페이스북은 혁명 기업이라고 말했다. _〈본문 230쪽〉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소셜 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라고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스크톱 세상을 장악했듯 페이스북은 소셜 세상을 장악하리라 생각했다.
소셜 운영체제 구축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작업이다. 사진 앱을 예로 들어보자. 각각의 사진은 잠재적 프라이버시 제한이 걸려 있다. 자신의 정보를 누가 볼 수 있는지를 이용자가 지정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매 단계마다 이 사진을 누구나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친구들만 볼 수 있는지 제약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페이스북은 외부인이 독자적으로 사진 앱을 만들면 페이스북이 자체 앱에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개발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외부인에게 정보를 믿고 맡겨도 될까. _〈본문 234쪽〉
수백, 아니 수천 명의 개발자가 페이스북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자신들의 앱에 대한 콘텐츠를 유포했다. 그러자 뉴스피드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해변처럼 쓰레기 게시물로 가득 찼다. 정상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개발자들이 앱에 대한 '소식'을 유포하는 수단인 알림도 이용자들에게 융단 폭격을 퍼부었다.
그리하여 '플랫폼'의 출범을 자축하던 페이스북은 동시에 부정행위 때문에 시스템이 오염될까봐 우려했다. 데이브 모린이 말한다. "벤처 투자자들이 찾아오고 기업인들이 찾아오고 개발자 이벤트를 비롯한 온갖 행사가 열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이용자 경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죠. 스팸성spammy으로요. '스팸성'이라는 단어가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유행어가 된 건 그해였던 것 같아요." (… )
페이스북은 사태를 바로잡고자 나서 뉴스피드와 알림에 대한 개발자들의 접근을 제한했다. 애덤 댄절로가 말한다. "개발자 수와 처리해야 하는 스팸 양이 우리가 대비한 것보다 훨씬 빨리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단속 조치를 시행해야 했죠."
당연히 개발자들은 새 규정들을 증오했다. 슬라이드의 맥스 레브친은 페이스북이 미끼 수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이 자신들에게 이용자 참여를 이끌어내라고 독려한 것은 그들의 전술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페이스북이 참여를 내부 기준으로 활용했으며 슬라이드가 만들어낸 온갖 활동은 페이스북의 사업을 뒷받침한 셈이라며 이렇게 회상한다. "그들은 '두려워 말고 시도해요'라고 말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스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오락일 수 있다면서요." _〈본문 249쪽〉
뉴스피드 스팸 전쟁 이후에도 페이스북과 개발자들의 실랑이는 계속 이어졌다. 페이스북이 규정을 바꾸면 개발자들은 바뀐 규정을 우회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개발자들은 수법을 서로 공유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기능을 시도할 때면 페이스북 직원으로 되어 있는 사람에게 안 보이도록 하거나 위치 등록을 이용해 샌프란시스코베이에어리어를 제외하는 방법을 썼다. 페이스북의 조시 엘먼이 말한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고양이와 쥐처럼 쫓고 쫓기는 게임을 하고 있었죠. 대개는 쥐에게 뒤처졌던 것 같아요."
더 심각한 부정행위 사례 중 하나는 개발자들이 페이지 공간을 저질 광고 업체에 판매한 일이다. 이름난 광고주들은 페이스북에서 돌아가는 한심한 앱에 하등 관심이 없었다. 페이스북 광고를 구매하는 회사 대부분은 기만적 수법을 이용해 사람들의 돈이나 데이터를 탈취하는, 이른바 '잠재 고객 발굴lead generation'이라는 위험한 관행으로 이용자를 등쳐먹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어떤 광고는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해 브라우저를 설치한 다음 그 뒤로 이용자의 모든 웹 행동을 몰래 추적한다. 이런 브라우저를 제거하는 것은 컴퓨터과학 학위가 필요할 정도로 까다로운 일이다. _〈본문 252쪽〉
페이스북 커넥트는 마크 저커버그의 회사를 인터넷에서 사실상의 신원 확인 기관으로 만드는 구상에 한 발짝 다가가는 정책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페이스북 로그인 정보를 수천 개의 사이트에서 쓸 수 있으며, 페이스북을 거쳐 로그인하기 때문에 저커버그의 회사는 이용자의 모든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된다.
페이스북은 이미 수천 명의 개발자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 숫자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터였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이용자(자신의 의사로 페이스북 커넥트를 이용해 앱에 가입한 사람)와 그들의 친구(자신의 정보가 가입은커녕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앱에 전달된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이미 개발자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이 개발자들에게 무슨 데이터를 주는가는 규정에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부 개발자의 증언과 훗날 법적 조치로 공개된 이메일들에 따르면 실제로는 규정에 융통성이 있었으며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개발자들에게 도매금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_〈본문 258쪽〉
8장 소셜 광고 시대의 개막
페이스북은 마이스페이스에 비하면 아차상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미친'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만큼 큰 수익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언젠가 페이스북을 인수하겠다는 (어림없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기회를 덥석 물었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두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페이스북 국내 광고 판매 독점권을 가지는 제휴 관계를 맺었다. 이듬해 페이스북 매출의 절반이 이 계약에서 나오게 된다. 제휴 책임자로 페이스북에 신규 채용되어 이 계약을 담당했던 댄 로즈가 말한다. "홧김에 하는 데이트였죠 _〈본문 271쪽〉
"페이스북에서 효과가 있는 건 친구를 통해 아는 것들이었죠. 친구라는 렌즈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확실히 먹히는 방법일 겁니다. 내 친구들에 대한 적절하고 유관한 정보가 광고에 들어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고요."
이것이 페이스북에서 대대적으로 공개한 광고 비즈니스의 주제였다. 코드명 '판다Panda'는 '페이지와 광고Pages and Ads'의 준말이다. 나중에 코드명은 별로 귀엽진 않은 '팬데믹Pandemic'으로 바뀌게 된다.
광고주들에게 내세운 모토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화는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며 이제 펩시나 월마트 같은 대기업이 직접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펩시가 애초에 대화에 끼지 못한 이유는 분명했다. 사람들이 친구와 대화할 때 펩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펩시의 편을 들 리는 만무했다. 자신이 펩시를 샀다는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개념이야말로 소셜 광고의 핵심 차별점이자 페이스북 전략의 주요 요소였다.
또 다른 요소는 더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페이스북은 현행 광고 시스템을 바꾸고자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광고를 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올바른 사람을 타기팅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_〈본문 273쪽〉
팬데믹 출시를 알리는 머리기사들은 마이크로타기팅과 소셜 광고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관심은 이내 비컨으로 옮겨갔다. 켈리를 비롯한 사람들이 경고했듯 지정된 웹사이트에서 이루어진 구매 소식을 자동으로 퍼뜨리는 것은 달갑잖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누군가 제휴 사이트에서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샀는데 상대방이 이 사실을 무릎 꿇은 남자에게서가 아니라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알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구매 내역이 다른 사람들의 뉴스피드에 올라오기 시작하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름난 업계 분석가 샬린 리Charlene Li였다. 그녀는 오버스톡닷컴Overstock.com에서 커피 테이블을 구입했다는 소식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전달된 데 "경악"했다고 블로그에 썼다. _〈본문 281쪽〉
9장 셰릴 월드와 '좋아요'의 탄생
물론 모든 책임은 최종적으로 저커버그에게 귀결되었다. 샌드버그가 말한다. "내게 보고되는 건 모두 저커버그에게 보고돼요. 내가 그에게 보고하니까요. 그러니 역할 분담은 내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결정한 셈이죠."
그럼에도 그 뒤로 10년간 대규모 성장과 이 엄청난 규모 때문에 전례 없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페이스북에는 사실상 2개의 조직이 존재했다. 하나는 저커버그의 영토, 다른 하나는 셰릴 월드였다. 둘은 결코 동등하지 않았다. 저커버그가 제품 부문인 엔지니어링을 이끈 것은 그쪽에 더 유능해서가 아니라 엔지니어링이야말로 회사의 심장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당연해 보였다. 이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저커버그가 깨달은 것은 10년이 지나서였다. _〈본문 293쪽〉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의 비즈니스가 광고업이고 나머지 모든 것이 곁다리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모든 사람이 그 생각을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특히 몇몇 젊은 직원들은 광고는 구리며 페이스북은 뭔가 덜 …… 가식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커버그조차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았다. _〈본문 298쪽〉
구글이 가장 두려워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은밀한 스카우트 방지 협약이 없을 경우 거액의 인재 쟁탈전이 벌어지리라는 우려였다. 그 뒤로 몇 년간 두 회사는 상대 회사의 인력을 유인하고 경쟁사의 유혹으로부터 자사 인력을 지키려고 수억 달러를 쓰게 된다. _〈본문 301쪽〉
세계 최대의 기업들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사람들을 유인해 자사 페이지에 좋아요를 받으려는 주목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때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주는 사람들에게 특전을 제공했다. 어떤 페이지는 좋아요 암시장에 뒷돈을 댔다. 일정액을 내면 좋아요 수천 개를 살 수 있었다. 이따금 중국 같은 나라의 저임금 노동자 군단이 노동력 착취 사업장에 앉아 집게손가락을 마우스 단추에 올린 채 좋아요를 눌러 브랜드를 홍보했다.
좋아요 단추는 페이스북 자체의 상징이 되었으며 엄지손가락 아이콘은 페이스북 본사 사옥 앞에 전시되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셀카를 찍어 소셜 네트워크에 사진을 올렸다. 물론 친구들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리라 기대하면서.
그리하여 단순하기 그지없는 요소 하나가 페이스북의 비즈니스를 부양하고 이용자들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손쉬운 방법을 선사했다. 동시에 사소하거나 분노를 유발하는 콘텐츠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회사를 내몰았다. 좋아요 단추가 페이스북이 자기네 테두리를 넘어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관문 마약이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좋아요의 창안자 로즌스타인, 펄먼, 모겐스턴(지금은 누구도 페이스북에서 일하지 않는다)은 최근 자신들의 작업이 사회를 타락시키고 옛 고용주가 이용자 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데 일조했다는 깨달음(후회까지는 아니지만)을 진심으로 표명했다. 그들은 모두 당시에는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벌어지지 않도록 페이스북이 노력했어야 한다며 아쉬워한다. 그들은 페이스북의 사업 전반에서 이런 아쉬움을 느꼈으리라.
좋아요 단추의 웹 정복은 페이스북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비컨의 참패를 보기 좋게 설욕한 셈이었다. 비컨은 웹사이트에서 얻은 데이터를 페이스북의 다른 이용자들에게 공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좋아요 단추는 페이스북이 이 데이터를 자기네 목적을 위해, 주로 이용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광고에 활용하는 쪽으로 이용하게 해주었다._〈본문 307~308쪽〉
10장 성장, 또 성장
"저커버그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능은 뭐가 됐든 아무 관심 없다고 말했다. 성장이야말로 유일하게 중요한 관심사였다." _〈본문 319쪽〉
'알 수도 있는 사람'은 페이스북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친구가 될 만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은 회원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그들이 더 많이 공유할 가능성을 높이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떠날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알 수도 있는 사람'은 반가운 기능이다. 페이스북 활동을 유익한 경험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도록 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따금 '알 수도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애매한 관계이거나 때로는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왜 뉴스피드에 카메오 출연을 하는지 의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매춘부는 자신의 고객들을 페이스북 친구로 추천받았다(그녀의 신원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한 정자 공여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생물학적 자녀를 추천받았다. 한 정신과 의사는 페이스북이 자신의 환자들을 서로 친구로 추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녀의 친구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배우자, 기억하고 싶지 않은 10년 전 소개팅 상대와 관계를 맺으라는 페이스북의 권유에 수많은 사람이 역겨움을 느꼈다. _〈본문 328~329쪽〉
하지만 2013년 국제적 성장과 관련한 페이스북의 우려는 그런 결과가 아니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조만간 이용자 수가 정점에 도달할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물론 페이스북이 10억~20억 인구를 자기네 커뮤니티에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 세계는 아니었다. 인터넷이 깔려 있고 데이터 이용료를 낼 돈이 있는 여유로운 인구만 페이스북 이용자가 될 수 있었다. 아직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은 수십억 명 중 상당수는 여유로운 인구에 포함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 보기에 그들은 너무 가난하거나 인터넷에 접속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또는 둘 다이거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페이스북 버전을 만들어야 했다. 그다음에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 발상을 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추진력은 전 세계인을 페이스북에 연결한다는 성장팀의 목표에서 비롯했지만, 저커버그는 이 사업을 수십억 명의 삶을 바꾸는 박애주의적 시도로 볼 것을 주장했다. 그가 이 인터넷 보급 사업에 붙인 이름은 비영리 단체나 재단에서 주로 쓰는 최상위 도메인 접미사를 붙인 '인터넷닷오그Internet.org'였다. _〈본문 341~342쪽〉
저커버그는 전 세계인을 연결한다는 사명을 주창했지만 이를 실현하는 임무는 성장 조직 소관이었다. 그러니 페이스북의 진정한 사명은 연결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페이스북 홍보 책임자 브랜디 바커는 2009년경 저커버그와 면담한 일을 회상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페이스북에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한 이유는 성장과 참여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다. "성장과 참여야말로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라는 거죠!" _〈본문 347쪽〉
11장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
어떤 의미에서 페이스북의 자기규정은 6개의 알파벳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레이엄이 말한다. "우리는 회의실에 소집단으로 모여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입사 지원자나 친구에게, 엄마에게, 형제에게 페이스북을 어떻게 묘사하나요? 최근 3명의 입사 지원자에게는 뭐라고 말했나요? 어떤 표현을 썼나요?'" 그러자 단어 하나가 거듭거듭 등장했다. 'hacker'(해커)였다.
일반인에게 '해커'라는 단어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대단히 위험한 허무주의자 또는 원격 시스템을 파괴하거나 신용카드 정보를 훔치는 악당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스타트업 문화에서는 단어가 원래 의미대로 쓰였다. 바로 '자신의 노력이 망가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꾼다고 믿는 뛰어난 실력의 정의로운 코더'다. _〈본문 353쪽〉
이 가치들 중 하나가 페이스북 특유의 것, 저커버그 특유의 것으로 부각되었다.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페이스북과 동의어였다. 정확한 문구가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아마 팰러앨토 해밀턴스트리트 사무실에서 열린 전 직원 회의에서였을 것이다. 회사 규모가 너무 커져 모든 아르바이트생이 댄절로나 다른 임원에게 일일이 보고할 수 없게 되자 처음으로 관리자들을 채용했을 때였다. 먹이 사슬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 '노'라고 말할 권한을 가지는 것이 저커버그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래서 그는 모두에게 두려워할 여유가 없으니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고 강조했다. _〈본문 354쪽〉
페이스북의 초창기(종종 현재까지) 성격을 묘사할 때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숙사 방"을 관형어로 쓴다. 이에 반해 경쟁사 구글은 대학원생 이미지였다. _〈본문 357~358쪽〉
ㆍ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가 페이스북 대뇌 피질에서 나온 것 같다면(빠른 속도는 다른 회사와 격차를 벌리는 전술적 강점이었다) 이 도발적 질문은 페이스북의 심장에서 꺼낸 것 같았다. 이 슬로건을 비공식 사훈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페이스북은 비즈니스를 대하는 자세뿐 아니라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을 표현한 셈이었다. _〈본문 356쪽〉
저커버그가 트위터에 쓴 수법은 이후 그가 경쟁자를 상대하는 친숙한 전략이 되었다. 첫째, 현재나 미래에 위협이 되는 회사를 찾아낸다. 둘째, 인수를 시도한다. 셋째, 팔지 않으면 베낀다. _〈본문 377쪽〉
이제 페이스북 역시 공개의 길을 걸을 터였다. 무엇보다 저커버그는 이용약관을 개정하고 싶어 했다. 핵심 변화는 기본 설정을 '친구만'에서 '전체 공개'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용자가 공개를 제한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들의 게시물, 좋아요, 친구 명단, 일부 프로필 정보는 페이스북 내에서 공개될 뿐 아니라 구글 같은 검색 엔진에도 표시되었다(이전에는 이용자의 이름과 어느 네트워크를 이용하는지만 공개했다).
크리스 콕스는 기자들과 전화 통화에서 트위터가 이 변화의 계기였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추동력은 성장팀에서 왔다. 페이스북의 정보를 구글에서 더 잘 보이게 하면 사람들이 구글에서 더 많은 친구를 찾고 어쩌면 가입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의 가입까지 유도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과 이용자가 애초에 맺은 계약을 완전히 파기하는 셈이었다. _〈본문 386쪽〉
12장 모바일 전환 위기에 대처하기
2012년이 다가오면서 페이스북은 그해가 가기 전에 10억 이용자를 돌파할 기세였다. 광고주들이 페이스북에 합류하면서 매출은 40억 달러에 육박했다. 그중 10억 달러가 이익이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세운 모든 것이 위험에 처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업계에 닥친 거대한 변화를 준비하지 못했다. 이 변화는 페이스북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다.
세상은 스마트폰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페이스북은 전환에 서툴렀다. _〈본문 401쪽〉
그는 페이스북이 모바일과 씨름하는 과정을 쭉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의 근심거리는 훌륭한 앱이 없다는 점이 아니었다. 그는 진화하는 모바일 생태계 자체가 페이스북의 존재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디지털 업계에서 앞서가려면 자신의 모바일 운영체제를 운영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런 업체의 졸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버젓한 운영체제가 있는 곳은 애플과 구글뿐이었다.
팔리하피티야는 해결책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페이스북이 독자적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_〈본문 414쪽〉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주식 구조 운용에 대해 확고한 견해가 있었다. 핵심은 저커버그 자신이 계속, 아마 영원히, 통제권을 쥐는 것이었다. 방법은 주주를 두 등급으로 나누어 상위 등급(자신이 절대다수의 지분을 가진 등급)에 모든 표결에서의 지배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멘토 돈 그레이엄의 《워싱턴포스트》 같은 가족 소유 신문 기업들이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수법과 비슷했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역시 같은 방법을 썼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계획은 창업자 1인이 가진 통제권 면에서 그들을 뛰어넘었다. 저커버그는 의결권주의 56퍼센트를 보유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주주들이나 이사들의 명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
또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운영 방식을 "해커 방식"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단어에 "(부당한) 부정적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만난 해커 대부분은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해커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커 방식은 끊임없는 개선과 반복을 통해 만들어가는 접근법입니다. 해커들은 무언가가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으며 무엇도 결코 완벽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해커의 할 일은 바로잡는 것뿐입니다. 때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면전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_〈본문 420~421쪽〉
비슷한 수법으로 주가를 떠받칠 수 없게 되자 페이스북 주가는 하향세를 걸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주가는 32달러까지 떨어졌다. 2012년 9월에 접어들었을 때는 20달러 지폐로 페이스북 주식 1주를 사면 2달러와 잔돈까지 돌려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3만 7500달러의 투자로 수억 달러를 벌어들인 초기 투자자 리드 호프먼조차 페이스북 기업공개를 "얼토당토않은 얼간이짓egregious fuck-up"으로 평했다. 그 뒤로 몇 달간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페이스북, 나스닥, 주간사 회사에 소송을 제기하느라 여러 관할지의 법원을 계단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이후 몇 년에 걸쳐 페이스북, 은행가들, 나스닥은 합의금으로 수백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_〈본문 425쪽〉
뉴스피드 속 모바일 광고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페이스북의 연 매출을 수백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물론 뉴스피드 광고의 창의적 작동 방식이 언젠가 국가적 선전 공작에 악용되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란, 위기, 긴장의 해였던 2006년과 마찬가지로 2012년에 페이스북은 새로운 차원의 성공을 거둘 토대를 놓았다. 페이스북을 집어삼킬 듯하던 스마트폰 물결은 뉴스피드 이후 최대의 호재로 드러났다. 페이스북 홈이 참담하게 실패하긴 했지만 iOS용과 안드로이드용 네이티브 앱은 각 플랫폼에서 단연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북 자체의 '플랫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천 명의 개발자가 자신들이 만든 앱의 로그인 수단으로 페이스북 커넥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_〈본문 431쪽〉
13장 미래를 사다
저커버그는 자신에게 지평선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으며, 자신의 계획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회사이든 기술 변화이든) 주시했다. 2011년 구글이 자체 소셜 네트워크 상품 '구글 플러스Google Plus'를 출시하자 저커버그는 몇 주 동안 회사 문을 걸어 잠근 채 아무도 퇴근하지 못하게 했으며 주말에도 구내식당을 운영했다. 전 직원 대상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고대 로마 영웅 카토를 소환해 "카르타고 델렌다 에스트Carthago delenda est"(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합니다)라는 외침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아날로그연구소는 인쇄기를 켜서 이 라틴어 명구가 적힌 포스터를 찍어냈다. 사실 저커버그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구글 플러스는 실패작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누군가 소셜 사진 공유의 미래를 낚아채면 페이스북이 곤란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좋은 방안은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_〈본문 440쪽〉
어떤 의미에서 스피걸의 거절은 2006년 저커버그가 야후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것과 비슷했다. 두 경우 다 창업자들은 큰 회사가 일을 망칠 것이라 생각했다. 10년 전 저커버그는 인터넷에서 성장한 십 대였으며, 이런 이점 덕에 당시 기술 업계를 지배하던 늙은 용의 목을 벨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신세대의 기술 DNA에는 모바일 사고방식이 속속들이 배어 있었다.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을 낳은 웹사이트 세상이 한물갔음을 알고 있었다. _〈본문 451쪽〉
마크 저커버그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오나보 수치에 따르면 왓츠앱은 세계적 강자가 될 터였으며 전 세계에서 페이스북 자체 메시징 사업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왓츠앱 이용자는 4억 5000만 명이었는데
목차
목차
추천의 글_김상균 | 신현규
머리말
프롤로그
1부 SNS 왕국의 탄생
1장 어린 컴퓨터광의 재능과 야망
식스디그리스,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연결된다 | 게이머보다 제작자가 좋았던 어린 프로그래머 |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사랑한 컴퓨터 너드 | 고교 졸업 작품 시냅스 | 다른 학생이 만든 원조 페이스북
2장 하버드의 말썽꾼 프로그래머
불경한, 또는 불량한 하버드 신입생 | 소셜 미디어의 급성장: 프렌드스터와 버디동물원 | 코스 매치 프로젝트가 가르쳐준 교훈 | 외모 평가 프로젝트 페이스매시로 파문을 일으키다 | 스터디 그룹을 빙자한 공짜 과외 프로그램 개발
3장 더페이스북의 출현
저커버그보다 앞선 소셜 프로그램 개발자들 | 더페이스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저커버그, 전국 캠퍼스 정복에 나서다 | 법적 분쟁: 창작인가 표절인가 | 실리콘밸리를 향하여
4장 실리콘밸리 입성
냅스터 창업자의 합류 | 엔젤 투자를 받다 | 연결에서 공유로: 와이어호그 실험 | 더페이스북팀의 역할 분담
5장 스타트업의 길
A 라운드 벤처 캐피털 투자를 받다 | 페이스북 도메인과 인력 확보하기 | 페이스북의 규칙, 빛의 속도로 움직여라 | 담벼락, 그룹, 블루, 사진: 확장의 발판 마련하기 | 경영진 개편
6장 변화의 장
변화를 원하면 스스로 변화가 되라 | 오픈레지 프로젝트: 대학을 넘어 일반으로 확장하기 | 페이스북 최고의 상품, 뉴스피드 개발 | 야후의 인수 유혹을 뿌리치다 | 뉴스피드와 오픈레지가 불러온 눈덩이 효과
2부 플랫폼 제국 건설하기
7장 개발자 플랫폼 구축하기
애플이 혁신 기업이라면 페이스북은 혁명 기업 | 소셜 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를 꿈구며 | '플랫폼' 출시 F8 콘퍼런스를 개최하다 | 스팸 앱과 게임 앱으로 도배된 '플랫폼' | 제한 조치로 개발자들과 충돌하다 | 페이스북과 개발자 간 완전한 상호주의를 천명하다
8장 소셜 광고 시대의 개막
수익 창출의 길 | 코드명 '팬데믹' 소셜 광고 프로젝트 |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하다 | 비컨 사태가 불러온 위기
9장 셰릴 월드와 '좋아요'의 탄생
2인자 셰릴 샌드버그의 입사와 역할 분담 | 비즈니스 모델 확립과 인재 쟁탈전 | '좋아요'가 바꾼 세상
10장 성장, 또 성장
직장은 가정이 아니다 | 성장 시스템 만들기 | 성장서클의 탄생 | 최대 걸작 '알 수도 있는 사람' | 해외로 뻗어 나가다 | 인터넷닷오그: 전 세계 인터넷 보급 프로젝트 | 진정한 사명은 연결이 아닌 성장과 참여
11장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
두려움과 느림은 페이스북의 적 | 창업 공신들의 퇴장과 저커버그의 경고 | 사이트의 위해성 논란과 콘텐츠관리 강화 | 저커버그의 새해 결심 습관 | 페이스북의 경쟁자 대응 전략: 트위터 사례 | 프라이버시 정책 변경: '친구만'에서 '전체 공개'로 | 이용자 아이디 유출을 묵인하고 조장하다 |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 기능 '즉각적 개인 설정' 사태 |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고 사과는 나중에 하라
12장 모바일 전환 위기에 대처하기
아이폰용 페이스북 앱을 개발하다 | 모든 휴대폰에서 작동하는 한 가지 프로그램의 꿈 | 네이티브 앱 개발로 위기를 극복하다 | 페이스북폰 개발 시도: 구글과 애플의 대항마 찾기 | 기업공개를 단행하다 | 모바일용 광고 상품 개발에 사활을 걸다
13장 미래를 사다
인스타그램의 탄생 | 최대 위협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다 | 스냅챗 인수 실패와 베끼기 전략 | 페이스북 메신저의 진화: 대화 도구에서 비즈니스 도구로 | 싸고 건강한 메시징 서비스 왓츠앱의 출현 | 구글을 따돌리고 왓츠앱을 인수하다 | 오큘러스 인수로 차세대 플랫폼 가상현실을 선점하다
3부 메타버스를 향하여
14장 대통령 선거가 몰고 온 파란
러시아정보총국 산하 공작 부대들의 수상한 움직임 | 페이스북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는 의혹 |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페이스북 | 트럼트 당선의 일등공신 플랫폼이 되다 |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낙관주의 또는 늑장 대응이 초래한 결과 |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한 사안, 외국의 선거 개입
15장 프로파간다의 도구와 올바른 길
전 지구적 공동체 만들기라는 구상 | 러시아의 정보전에 악용된 페이스북 광고 | 저커버그의 전국 일주 투어 | 고삐 풀린 인공지능, 뉴스피드 | 논란은 피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언론 정책 | 챈저커버그이니셔티브 설립으로 자선 사업에 나서다 | 기술 기업 의회 청문회와 실추된 명성을 되찾기
16장 사상 최악의 정보 유출 사건
'좋아요'만으로 개인의 온갖 비밀을 알 수 있다 | 10억 명이 보고 있는 것을 조작한 논란의 실험 | 너무나 손쉬운 페이스북에서 정보 수집하기 | 정치 데이터 판매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등장 | 내부 고발과 폭로 기사로 정보 유출 실태가 드러나다 | 정보 유출과 악용을 방조하다 | 페이스북의 흔들리는 총체적 신뢰 | 저커버그,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가다
17장 표현의 자유 대 검열
독재와 학살에 악용되는 페이스북 플랫폼: 필리핀과 미얀마 사례 | 페이스북 라이브, 자살과 살인을 생중계하다 | 중요하지만 천대받는 업무, 콘텐츠관리 | 인공지능 경찰이 답이다? | 책임을 아웃소싱할 수는 없다
18장 진실성 회복하기
삐걱거리는 신뢰와 명성 되찾기 | 모두를 속상하게 만드는 문제 | 위신은 추락하는데 사업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 페이스북과 연방거래위원회의 치킨 게임 | 애플과 전쟁을 치르다 | 사상 최고의 한 해에도 여전한 추문
19장 넥스트 페이스북
프라이버시 중심 플랫폼으로 전환을 꾀하다 | 인수 기업 흡수와 창업자 축출하기 1: 인스타그램 | 인수 기업 흡수와 창업자 축출하기 2: 오큘러스 | 뉴스피드의 유해함이 없는 강력한 기능, 인스타그램 스토리 출시 | 인수 기업 흡수와 창업자 축출하기 3: 왓츠앱 | 인스타그램은 별이 아니라 페이스북의 위성이어야 한다 | 페이스북의 이름 아래 모든 프랜차이즈 통합하기 | 반독점 위반의 주범으로 몰리다 | 암호화폐 개발에 나서다
에필로그
감사의 글
주
찾아보기
머리말
프롤로그
1부 SNS 왕국의 탄생
1장 어린 컴퓨터광의 재능과 야망
식스디그리스,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연결된다 | 게이머보다 제작자가 좋았던 어린 프로그래머 |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사랑한 컴퓨터 너드 | 고교 졸업 작품 시냅스 | 다른 학생이 만든 원조 페이스북
2장 하버드의 말썽꾼 프로그래머
불경한, 또는 불량한 하버드 신입생 | 소셜 미디어의 급성장: 프렌드스터와 버디동물원 | 코스 매치 프로젝트가 가르쳐준 교훈 | 외모 평가 프로젝트 페이스매시로 파문을 일으키다 | 스터디 그룹을 빙자한 공짜 과외 프로그램 개발
3장 더페이스북의 출현
저커버그보다 앞선 소셜 프로그램 개발자들 | 더페이스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저커버그, 전국 캠퍼스 정복에 나서다 | 법적 분쟁: 창작인가 표절인가 | 실리콘밸리를 향하여
4장 실리콘밸리 입성
냅스터 창업자의 합류 | 엔젤 투자를 받다 | 연결에서 공유로: 와이어호그 실험 | 더페이스북팀의 역할 분담
5장 스타트업의 길
A 라운드 벤처 캐피털 투자를 받다 | 페이스북 도메인과 인력 확보하기 | 페이스북의 규칙, 빛의 속도로 움직여라 | 담벼락, 그룹, 블루, 사진: 확장의 발판 마련하기 | 경영진 개편
6장 변화의 장
변화를 원하면 스스로 변화가 되라 | 오픈레지 프로젝트: 대학을 넘어 일반으로 확장하기 | 페이스북 최고의 상품, 뉴스피드 개발 | 야후의 인수 유혹을 뿌리치다 | 뉴스피드와 오픈레지가 불러온 눈덩이 효과
2부 플랫폼 제국 건설하기
7장 개발자 플랫폼 구축하기
애플이 혁신 기업이라면 페이스북은 혁명 기업 | 소셜 업계의 마이크로소프트를 꿈구며 | '플랫폼' 출시 F8 콘퍼런스를 개최하다 | 스팸 앱과 게임 앱으로 도배된 '플랫폼' | 제한 조치로 개발자들과 충돌하다 | 페이스북과 개발자 간 완전한 상호주의를 천명하다
8장 소셜 광고 시대의 개막
수익 창출의 길 | 코드명 '팬데믹' 소셜 광고 프로젝트 |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하다 | 비컨 사태가 불러온 위기
9장 셰릴 월드와 '좋아요'의 탄생
2인자 셰릴 샌드버그의 입사와 역할 분담 | 비즈니스 모델 확립과 인재 쟁탈전 | '좋아요'가 바꾼 세상
10장 성장, 또 성장
직장은 가정이 아니다 | 성장 시스템 만들기 | 성장서클의 탄생 | 최대 걸작 '알 수도 있는 사람' | 해외로 뻗어 나가다 | 인터넷닷오그: 전 세계 인터넷 보급 프로젝트 | 진정한 사명은 연결이 아닌 성장과 참여
11장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라
두려움과 느림은 페이스북의 적 | 창업 공신들의 퇴장과 저커버그의 경고 | 사이트의 위해성 논란과 콘텐츠관리 강화 | 저커버그의 새해 결심 습관 | 페이스북의 경쟁자 대응 전략: 트위터 사례 | 프라이버시 정책 변경: '친구만'에서 '전체 공개'로 | 이용자 아이디 유출을 묵인하고 조장하다 |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 기능 '즉각적 개인 설정' 사태 | 빨리 움직여서 파괴하고 사과는 나중에 하라
12장 모바일 전환 위기에 대처하기
아이폰용 페이스북 앱을 개발하다 | 모든 휴대폰에서 작동하는 한 가지 프로그램의 꿈 | 네이티브 앱 개발로 위기를 극복하다 | 페이스북폰 개발 시도: 구글과 애플의 대항마 찾기 | 기업공개를 단행하다 | 모바일용 광고 상품 개발에 사활을 걸다
13장 미래를 사다
인스타그램의 탄생 | 최대 위협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다 | 스냅챗 인수 실패와 베끼기 전략 | 페이스북 메신저의 진화: 대화 도구에서 비즈니스 도구로 | 싸고 건강한 메시징 서비스 왓츠앱의 출현 | 구글을 따돌리고 왓츠앱을 인수하다 | 오큘러스 인수로 차세대 플랫폼 가상현실을 선점하다
3부 메타버스를 향하여
14장 대통령 선거가 몰고 온 파란
러시아정보총국 산하 공작 부대들의 수상한 움직임 | 페이스북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는 의혹 |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페이스북 | 트럼트 당선의 일등공신 플랫폼이 되다 |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낙관주의 또는 늑장 대응이 초래한 결과 |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한 사안, 외국의 선거 개입
15장 프로파간다의 도구와 올바른 길
전 지구적 공동체 만들기라는 구상 | 러시아의 정보전에 악용된 페이스북 광고 | 저커버그의 전국 일주 투어 | 고삐 풀린 인공지능, 뉴스피드 | 논란은 피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페이스북의 언론 정책 | 챈저커버그이니셔티브 설립으로 자선 사업에 나서다 | 기술 기업 의회 청문회와 실추된 명성을 되찾기
16장 사상 최악의 정보 유출 사건
'좋아요'만으로 개인의 온갖 비밀을 알 수 있다 | 10억 명이 보고 있는 것을 조작한 논란의 실험 | 너무나 손쉬운 페이스북에서 정보 수집하기 | 정치 데이터 판매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등장 | 내부 고발과 폭로 기사로 정보 유출 실태가 드러나다 | 정보 유출과 악용을 방조하다 | 페이스북의 흔들리는 총체적 신뢰 | 저커버그,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가다
17장 표현의 자유 대 검열
독재와 학살에 악용되는 페이스북 플랫폼: 필리핀과 미얀마 사례 | 페이스북 라이브, 자살과 살인을 생중계하다 | 중요하지만 천대받는 업무, 콘텐츠관리 | 인공지능 경찰이 답이다? | 책임을 아웃소싱할 수는 없다
18장 진실성 회복하기
삐걱거리는 신뢰와 명성 되찾기 | 모두를 속상하게 만드는 문제 | 위신은 추락하는데 사업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 페이스북과 연방거래위원회의 치킨 게임 | 애플과 전쟁을 치르다 | 사상 최고의 한 해에도 여전한 추문
19장 넥스트 페이스북
프라이버시 중심 플랫폼으로 전환을 꾀하다 | 인수 기업 흡수와 창업자 축출하기 1: 인스타그램 | 인수 기업 흡수와 창업자 축출하기 2: 오큘러스 | 뉴스피드의 유해함이 없는 강력한 기능, 인스타그램 스토리 출시 | 인수 기업 흡수와 창업자 축출하기 3: 왓츠앱 | 인스타그램은 별이 아니라 페이스북의 위성이어야 한다 | 페이스북의 이름 아래 모든 프랜차이즈 통합하기 | 반독점 위반의 주범으로 몰리다 | 암호화폐 개발에 나서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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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
Steven Levy
《와이어드》 선임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널리스트다. "미국 최고의 테크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다. 애플 전문 평론가로도 명성이 높다. 템플대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온라인 매거진 〈백채널〉을 창간하고 《뉴스위크》 수석 테크 작가와 수석 기자를 지냈다. 30년 넘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컴퓨터, 테크놀로지, 암호학, 인터넷, 사이버 보안, 개인 정보 보호를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롤링스톤》 《하퍼스매거진》 《뉴욕타임스매거진》 《에스콰이어》 《뉴요커》 《프리미어》 〈맥월드〉 등에 다양한 글을 발표해 왔다.
저서로 《메타 페이스북》 외에 《해커, 광기의 랩소디: 세상을 바꾼 컴퓨터 혁명의 영웅들》 《유니콘의 비밀: 물병자리 시대의 살인》 《인공 생명: 새로운 창조를 위한 탐구》 《미친 듯이 위대한: 모든 것을 바꾼 컴퓨터, 매킨토시의 삶과 시대》 《암호화: 디지털 시대 코드 반군은 프라이버시 보호에서 어떻게 정부를 물리치는가》 《완벽한 것: 아이팟은 어떻게 상거래, 문화, 쿨함을 하나로 섞는가》 《In The Plex: 0과 1로 세상을 바꾸는 구글, 그 모든 이야기》가 있다.
《와이어드》 선임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널리스트다. "미국 최고의 테크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다. 애플 전문 평론가로도 명성이 높다. 템플대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온라인 매거진 〈백채널〉을 창간하고 《뉴스위크》 수석 테크 작가와 수석 기자를 지냈다. 30년 넘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컴퓨터, 테크놀로지, 암호학, 인터넷, 사이버 보안, 개인 정보 보호를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롤링스톤》 《하퍼스매거진》 《뉴욕타임스매거진》 《에스콰이어》 《뉴요커》 《프리미어》 〈맥월드〉 등에 다양한 글을 발표해 왔다.
저서로 《메타 페이스북》 외에 《해커, 광기의 랩소디: 세상을 바꾼 컴퓨터 혁명의 영웅들》 《유니콘의 비밀: 물병자리 시대의 살인》 《인공 생명: 새로운 창조를 위한 탐구》 《미친 듯이 위대한: 모든 것을 바꾼 컴퓨터, 매킨토시의 삶과 시대》 《암호화: 디지털 시대 코드 반군은 프라이버시 보호에서 어떻게 정부를 물리치는가》 《완벽한 것: 아이팟은 어떻게 상거래, 문화, 쿨함을 하나로 섞는가》 《In The Plex: 0과 1로 세상을 바꾸는 구글, 그 모든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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