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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신 한 가지,
동행
Covid-19!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마비시켰다. 국가 간의 이동은커녕 지역 간의 이동도 불가능해졌고, 잦은 락다운(Lock Down)으로 집 밖 외출까지도 제한되는 날이 이어졌다. 카페나 쇼핑몰에 가는 사사로운 일상이 당연한 일이 아닌 특별한 일이 되었고, 학교나 일터에도 갈 수 없어, 그야말로 ‘집콕’만이 살 길이었다. 2019년 11월에 딸이 태어났다. 이때쯤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질랜드에는 그나마 좀 늦게 들어온 편이었다. 덕분에 딸이 신생아였을 때 병원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확진자가 한 명 생기자마자 뉴질랜드 정부는 국경을 바로 폐쇄하여 치명적인 사망자 수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치솟은 실업률과 얼어붙은 경제, 교육, 문화적 혜택은 피해갈 수 없었다. 계속 연장되는 락다운 기간으로 인해 경제적인 피해가 큰 서민과 기업에게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했고, 그 덕에 우리 가족은 그 당시에는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후폭풍으로 폭등한 물가와 세율, 대출 금리는 모두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2022년 현재,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일 수 없으니 공연 문화가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동료 사역자들은 갑작스럽게 실직자가 되었으며, 공연의 장이 다시 열릴 때까지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인터넷 쇼핑몰 동업을 시작하고, 주중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과외와 병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야만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런 시기를 보내면서 평생 음악과 사역밖에 몰랐던 내가 여러 일을 경험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나님, 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아니,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공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는 이 코로나 시국이 지속되는 동안 몇 번이나 주님께 같은 질문을 드렸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바로 ‘동행’이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해이해질 수 있는 가운데, 주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의 노력. 광야의 시간을 통해 주님과의 친밀함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가정의 영적 성장과 영성 회복. 언제 어디서나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셨던 것이다. 이제 코로나가 점차적으로 종식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광야의 삶 가운데, 또 음지에 있을 때 나와 얼마나 동행하는 삶을 살았느냐?”라고 물으시면, 나는 어떤 대답을 드릴 수 있을까? 공연 문화가 다시 열리는 지금, 3년간 묻어 두었던 이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과 해나리를 만나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힘껏 펼쳐 나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와 육아를 통해 나를 새롭게 만나 주신 주님을 더욱 당당하게 증거할 수 있는, 해나리의 제2라운드가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
나에게 원하신 한 가지,
동행
Covid-19!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마비시켰다. 국가 간의 이동은커녕 지역 간의 이동도 불가능해졌고, 잦은 락다운(Lock Down)으로 집 밖 외출까지도 제한되는 날이 이어졌다. 카페나 쇼핑몰에 가는 사사로운 일상이 당연한 일이 아닌 특별한 일이 되었고, 학교나 일터에도 갈 수 없어, 그야말로 ‘집콕’만이 살 길이었다. 2019년 11월에 딸이 태어났다. 이때쯤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질랜드에는 그나마 좀 늦게 들어온 편이었다. 덕분에 딸이 신생아였을 때 병원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확진자가 한 명 생기자마자 뉴질랜드 정부는 국경을 바로 폐쇄하여 치명적인 사망자 수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치솟은 실업률과 얼어붙은 경제, 교육, 문화적 혜택은 피해갈 수 없었다. 계속 연장되는 락다운 기간으로 인해 경제적인 피해가 큰 서민과 기업에게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했고, 그 덕에 우리 가족은 그 당시에는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후폭풍으로 폭등한 물가와 세율, 대출 금리는 모두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2022년 현재,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일 수 없으니 공연 문화가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동료 사역자들은 갑작스럽게 실직자가 되었으며, 공연의 장이 다시 열릴 때까지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인터넷 쇼핑몰 동업을 시작하고, 주중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과외와 병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야만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런 시기를 보내면서 평생 음악과 사역밖에 몰랐던 내가 여러 일을 경험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나님, 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아니,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공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는 이 코로나 시국이 지속되는 동안 몇 번이나 주님께 같은 질문을 드렸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바로 ‘동행’이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해이해질 수 있는 가운데, 주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의 노력. 광야의 시간을 통해 주님과의 친밀함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가정의 영적 성장과 영성 회복. 언제 어디서나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셨던 것이다. 이제 코로나가 점차적으로 종식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광야의 삶 가운데, 또 음지에 있을 때 나와 얼마나 동행하는 삶을 살았느냐?”라고 물으시면, 나는 어떤 대답을 드릴 수 있을까? 공연 문화가 다시 열리는 지금, 3년간 묻어 두었던 이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과 해나리를 만나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힘껏 펼쳐 나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와 육아를 통해 나를 새롭게 만나 주신 주님을 더욱 당당하게 증거할 수 있는, 해나리의 제2라운드가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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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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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신 한 가지,
동행
Covid-19!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마비시켰다. 국가 간의 이동은커녕 지역 간의 이동도 불가능해졌고, 잦은 락다운(Lock Down)으로 집 밖 외출까지도 제한되는 날이 이어졌다. 카페나 쇼핑몰에 가는 사사로운 일상이 당연한 일이 아닌 특별한 일이 되었고, 학교나 일터에도 갈 수 없어, 그야말로 '집콕'만이 살 길이었다.
2019년 11월에 딸이 태어났다. 이때쯤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질랜드에는 그나마 좀 늦게 들어온 편이었다. 덕분에 딸이 신생아였을 때 병원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확진자가 한 명 생기자마자 뉴질랜드 정부는 국경을 바로 폐쇄하여 치명적인 사망자 수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치솟은 실업률과 얼어붙은 경제, 교육, 문화적 혜택은 피해갈 수 없었다. 계속 연장되는 락다운 기간으로 인해 경제적인 피해가 큰 서민과 기업에게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했고, 그 덕에 우리 가족은 그 당시에는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후폭풍으로 폭등한 물가와 세율, 대출 금리는 모두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2022년 현재,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일 수 없으니 공연 문화가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동료 사역자들은 갑작스럽게 실직자가 되었으며, 공연의 장이 다시 열릴 때까지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인터넷 쇼핑몰 동업을 시작하고, 주중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과외와 병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야만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런 시기를 보내면서 평생 음악과 사역밖에 몰랐던 내가 여러 일을 경험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나님, 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아니,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공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는 이 코로나 시국이 지속되는 동안 몇 번이나 주님께 같은 질문을 드렸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바로 '동행'이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해이해질 수 있는 가운데, 주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의 노력. 광야의 시간을 통해 주님과의 친밀함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가정의 영적 성장과 영성 회복. 언제 어디서나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셨던 것이다.
이제 코로나가 점차적으로 종식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광야의 삶 가운데, 또 음지에 있을 때 나와 얼마나 동행하는 삶을 살았느냐?"라고 물으시면, 나는 어떤 대답을 드릴 수 있을까?
공연 문화가 다시 열리는 지금, 3년간 묻어 두었던 이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과 해나리를 만나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힘껏 펼쳐 나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와 육아를 통해 나를 새롭게 만나 주신 주님을 더욱 당당하게 증거할 수 있는, 해나리의 제2라운드가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
나에게 원하신 한 가지,
동행
Covid-19!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마비시켰다. 국가 간의 이동은커녕 지역 간의 이동도 불가능해졌고, 잦은 락다운(Lock Down)으로 집 밖 외출까지도 제한되는 날이 이어졌다. 카페나 쇼핑몰에 가는 사사로운 일상이 당연한 일이 아닌 특별한 일이 되었고, 학교나 일터에도 갈 수 없어, 그야말로 '집콕'만이 살 길이었다.
2019년 11월에 딸이 태어났다. 이때쯤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질랜드에는 그나마 좀 늦게 들어온 편이었다. 덕분에 딸이 신생아였을 때 병원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확진자가 한 명 생기자마자 뉴질랜드 정부는 국경을 바로 폐쇄하여 치명적인 사망자 수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치솟은 실업률과 얼어붙은 경제, 교육, 문화적 혜택은 피해갈 수 없었다. 계속 연장되는 락다운 기간으로 인해 경제적인 피해가 큰 서민과 기업에게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했고, 그 덕에 우리 가족은 그 당시에는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후폭풍으로 폭등한 물가와 세율, 대출 금리는 모두 서민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2022년 현재,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일 수 없으니 공연 문화가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동료 사역자들은 갑작스럽게 실직자가 되었으며, 공연의 장이 다시 열릴 때까지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또한 인터넷 쇼핑몰 동업을 시작하고, 주중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과외와 병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야만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런 시기를 보내면서 평생 음악과 사역밖에 몰랐던 내가 여러 일을 경험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나님, 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아니,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공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는 이 코로나 시국이 지속되는 동안 몇 번이나 주님께 같은 질문을 드렸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바로 '동행'이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해이해질 수 있는 가운데, 주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의 노력. 광야의 시간을 통해 주님과의 친밀함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가정의 영적 성장과 영성 회복. 언제 어디서나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셨던 것이다.
이제 코로나가 점차적으로 종식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광야의 삶 가운데, 또 음지에 있을 때 나와 얼마나 동행하는 삶을 살았느냐?"라고 물으시면, 나는 어떤 대답을 드릴 수 있을까?
공연 문화가 다시 열리는 지금, 3년간 묻어 두었던 이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과 해나리를 만나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힘껏 펼쳐 나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와 육아를 통해 나를 새롭게 만나 주신 주님을 더욱 당당하게 증거할 수 있는, 해나리의 제2라운드가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
목차
목차
Prologue
PART 1
복음을 전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습니다
_길고 흰 구름의 나라에서 시작된 꿈
"나 뉴질랜드로 이민가!"
대한민국을 알리는 사람이 될 거야!
왕따가 아니라, 왕딸
광야 끝에서 마주한 축복의 땅
KOSTA와 YFC
세상 음악을 해도 될까요?
내 첫 '사역'의 날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1_Amazing Grace
PART 2
주님, 기뻐 받으셨나요?
_찬양 사역자 해나리
매니저 한 명만 붙여 주세요
맨토 크루와의 만남
해나리 음반 내다
아가씨~ 이리 좀 와 봐~
미션 스쿨 사역
내가 바로 군통령!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2_단 한 사람
PART 3
연합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
_아트 코리아 멤버와 함께한 사역
아트 코리아(ART KOREA)
태국인도 정오엔 밖에 안 나가는데!
발길 닿는 대로 전국투어 노방 공연
무조건 가 보자, 캄보디아로!
제주도 땅 밟다가 응급실행
아~ 내 아이패드가 베트남 사람에게~!
G-Wave
캠프 때 하나님을 만났어요
Blessing Thailand의 레알 치유의 축복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3_주 없이 살 수 없네
PART 4
해나리 씨, 비행은 어땠나요?
_다양한 무대에서 복음을 전한 해외 사역
미국 투어 with 레위 합창단
하지메마시데
북경오리? 북경허리?
태국 파타야 HIV 재활 센터
내가 여기선 이효리야!
척박한 아프리카 땅, 에스와티니 왕국
뉴질랜드 교민 사회의 자랑
교통사고-몽골리아
지진
Bon Wave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4_그 사랑 때문에
PART 5
내 삶의 플러스
_기획자와 강연자로서의 삶
방송을 통한 복음 전파
자살 예방 강연
dsm엔터테인먼트
나는 ○○○ 해나리입니다.
Go Back (고백)
내가 있는 자리에서!
Epilogue
PART 1
복음을 전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습니다
_길고 흰 구름의 나라에서 시작된 꿈
"나 뉴질랜드로 이민가!"
대한민국을 알리는 사람이 될 거야!
왕따가 아니라, 왕딸
광야 끝에서 마주한 축복의 땅
KOSTA와 YFC
세상 음악을 해도 될까요?
내 첫 '사역'의 날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1_Amazing Grace
PART 2
주님, 기뻐 받으셨나요?
_찬양 사역자 해나리
매니저 한 명만 붙여 주세요
맨토 크루와의 만남
해나리 음반 내다
아가씨~ 이리 좀 와 봐~
미션 스쿨 사역
내가 바로 군통령!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2_단 한 사람
PART 3
연합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
_아트 코리아 멤버와 함께한 사역
아트 코리아(ART KOREA)
태국인도 정오엔 밖에 안 나가는데!
발길 닿는 대로 전국투어 노방 공연
무조건 가 보자, 캄보디아로!
제주도 땅 밟다가 응급실행
아~ 내 아이패드가 베트남 사람에게~!
G-Wave
캠프 때 하나님을 만났어요
Blessing Thailand의 레알 치유의 축복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3_주 없이 살 수 없네
PART 4
해나리 씨, 비행은 어땠나요?
_다양한 무대에서 복음을 전한 해외 사역
미국 투어 with 레위 합창단
하지메마시데
북경오리? 북경허리?
태국 파타야 HIV 재활 센터
내가 여기선 이효리야!
척박한 아프리카 땅, 에스와티니 왕국
뉴질랜드 교민 사회의 자랑
교통사고-몽골리아
지진
Bon Wave
해나리의 찬양 이야기 4_그 사랑 때문에
PART 5
내 삶의 플러스
_기획자와 강연자로서의 삶
방송을 통한 복음 전파
자살 예방 강연
dsm엔터테인먼트
나는 ○○○ 해나리입니다.
Go Back (고백)
내가 있는 자리에서!
Epilogue
저자
저자
해나리
5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해나리는 서울에서 초등학교 시절까지 보내다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그녀는 전형적인 모태 신앙인의 특성대로 머리로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3 과정을 건너뛰고 '오클랜드 음대' 바이올린 과로 진학한 해나리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교육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가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함께 공연을 하며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자연스럽게 데뷔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세상 곡을 연주하는 뮤지션이 아닌, 주님을 찬양하는 '찬양 사역자'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대학생 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왼팔의 마비 증상 때문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된 기적과도 같은 간증거리를 들고 찬양 집회를 인도하는 찬양 사역이 시
작되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해나리의 공연과 집회를 보면 모두 흥이 나고, 젊어지며, 또 은혜에 젖어 든다. 26개 나라를 투어하며 때로는 K-pop 스타로 수천 명의 관객 앞에 서기도 했지만, 때론 진흙 바닥을 무대로 소와 닭이 오가는 시골 외지에서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연주해 왔다. 2011년 월드비전 친선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기아로 허덕이는 제3 세계 아동을 살리는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CBS와 미군 부대 등에서 자살 예방 강연자로 희망 전도사 역할을 감당하며 사역의 지경을 넓혀 갔다.
3장의 정규 음반을 발행하며 아티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함과 동시에 공연 기획자, 엔터테인먼트 기획 실장 등의 역할을 감당하여 기독교 문화 확장과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2003 오클랜드 대학교 음대 바이올린과 학사 학위
2005 오클랜드 대학교 교대 석사 학위
2008 해나리 1집 〈J.C maniac〉 발매
2011 한국 월드비전 친선 홍보대사 위촉
2012 해나리 2집 〈The Promise〉 발매
2013 (재) 남북 평화재단 (부천지부) 홍보대사 위촉
2015 dsm 엔터테이먼트 발촉
2017 해나리 3집 〈Go Back〉 발매
사역문의
페이스북_ www.facebook.com/hannahleeviolin
인스타그램_ www.instagram.com/hannahleeviolin
웹사이트_ www.hannahlee.co.kr
대학생 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왼팔의 마비 증상 때문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된 기적과도 같은 간증거리를 들고 찬양 집회를 인도하는 찬양 사역이 시
작되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해나리의 공연과 집회를 보면 모두 흥이 나고, 젊어지며, 또 은혜에 젖어 든다. 26개 나라를 투어하며 때로는 K-pop 스타로 수천 명의 관객 앞에 서기도 했지만, 때론 진흙 바닥을 무대로 소와 닭이 오가는 시골 외지에서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연주해 왔다. 2011년 월드비전 친선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기아로 허덕이는 제3 세계 아동을 살리는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CBS와 미군 부대 등에서 자살 예방 강연자로 희망 전도사 역할을 감당하며 사역의 지경을 넓혀 갔다.
3장의 정규 음반을 발행하며 아티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함과 동시에 공연 기획자, 엔터테인먼트 기획 실장 등의 역할을 감당하여 기독교 문화 확장과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2003 오클랜드 대학교 음대 바이올린과 학사 학위
2005 오클랜드 대학교 교대 석사 학위
2008 해나리 1집 〈J.C maniac〉 발매
2011 한국 월드비전 친선 홍보대사 위촉
2012 해나리 2집 〈The Promise〉 발매
2013 (재) 남북 평화재단 (부천지부) 홍보대사 위촉
2015 dsm 엔터테이먼트 발촉
2017 해나리 3집 〈Go Back〉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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