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개정판)(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22)
천년의 시간을 이어온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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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대사와 문화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의 보고
《삼국유사》는 고려 왕조의 주도하에 저술된 《삼국사기》와 달리 일연 개인의 저술로서, 정사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서술 방식으로 기록된 역사서이다.
삼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의 행적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단군신화에서부터 한반도의 고대사, 즉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비롯해 부여, 옥저, 대방, 발해, 이서국, 가야, 후백제의 역사까지 조망했다. 또한 민간에 전승되어 온 전설, 신화, 설화, 승려들의 행적을 통해서 고대 사회의 역사, 풍습,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만약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반도의 고대사를 오직 중국의 사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2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대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료이다.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의 보고
《삼국유사》는 고려 왕조의 주도하에 저술된 《삼국사기》와 달리 일연 개인의 저술로서, 정사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서술 방식으로 기록된 역사서이다.
삼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의 행적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단군신화에서부터 한반도의 고대사, 즉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비롯해 부여, 옥저, 대방, 발해, 이서국, 가야, 후백제의 역사까지 조망했다. 또한 민간에 전승되어 온 전설, 신화, 설화, 승려들의 행적을 통해서 고대 사회의 역사, 풍습,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만약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반도의 고대사를 오직 중국의 사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2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대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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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우리의 고대사를 조망한
가장 소중한 역사적 자료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의 고승, 일연이 1281(충렬왕 7)년에 편찬한 삼국 시대의 역사서이다. 삼국시대의 역사서로는 1145년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가 있다. 이것은 본기, 열전, 지, 연표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 역사서이다.
이에 비해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보다 130여 년 후에 일연 스님이 독자적으로 편찬한 것이다. 편차나 서술 면에서 《삼국사기》와는 다른, 정사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서술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의 행적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단군신화에서부터 한반도의 고대사, 즉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비롯해 부여, 옥저, 대방, 발해, 이서국, 가야, 후백제의 역사까지 조망했다. 또한 민간에 전승되어 온 전설, 신화, 설화, 승려들의 행적까지 포함한 역사서이다.
몽고와의 항쟁 시기에 저술된
《삼국유사》의 편찬 배경
일연은 1206년에 태어나 1289년, 84세에 입적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무신정권 (1170~1258년) 시기였으며 또한 몽고와의 항쟁으로 고려의 왕조가 강화도로 천도했던(1232년, 고종 19) 시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외세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기 시작한 내우외환의 시기였다. 따라서 고려의 민중들은 안팎으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런 수난 속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민족의식과 현실적인 고통을 역사의식 고취로 극복해야 하는 시도가 필요했다.
일연의《삼국유사》는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과 대별시킴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삼국사기》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였던 김부식에 의해 서술되었기 때문에 유교적 합리주의를 강조하며, 중화적 세계관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철저한 유교사상에 입각해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단군신화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곰이 사람으로 변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나라를 세워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이한 역사를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연은 비록 그 내용이 신비스럽고 기이하다 해도 그것을 우리 역사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일연은 중국의 《위서》를 참고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때를 기원전 2333년이라 기록했고, 이로써 우리의 건국연대는 중국의 고대 제왕 요(堯)임금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상상의 산물이 아닌 생생한 삶의 이야기
참고자료 면에서 볼 때도 《삼국사기》가 주로 중국의 문헌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일연은 한평생 수행을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은 방대한 양의 기록들을 참고로 했다. 단군의 사적을 기록한 최고(最古)의 문헌인 《고기》는 물론 향가, 비문, 고문서, 전각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집필 시기는 청도의 운문사에 머물고 있던 1281년에서 1283년 사이(충렬왕 7~9)에 시작되었으나 자료의 수집은 그 훨씬 이전인 60세 무렵부터 시작되어 20여 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따라서《삼국유사》는 책 이름을 역사[史]라 하지 않았다. '유사(遺事)'라 하여 정사에는 기록되지 못한 역사 이면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연의 상상 속 산물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을 거치며 민중 개개인의 삶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때에도 중국의 침략을 걱정해야 했으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시와 노래, 문학에 우리 삶이 반영되어 있듯이 일연이 수집한 그 자료들 속에는 당시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1천년 동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고대사 문화 연구의 보고
《삼국유사》는 설화문학의 보고라 불릴 정도로 우리 신화와 전설의 원형을 알게 해주는 유일한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옛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삼국유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서동요> <찬기파랑가> <모죽지랑가> 등 향가 14수는 《균여전》에 실린 11수의 향가와 함께 고대 문학 연구자료로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유교의 가치관이 절대적이던 시기에 민간신앙과 불교신앙의 모습을 담고 있어 불교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헌 자료가 되고 있다. 게다가 통치자가 아닌 무명의 승려나 하층민중의 삶까지도 묘사하고 있어 왕조의 역사 외에 생활사적인 측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시대적 배경과 해설을 통해
《삼국유사》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부록에는 저자 일연의 생애와 《삼국유사》의 체제와 구성에 대해 정리해 놓았다. 제1편 왕력은 싣지 않았으나, 그 대신 삼국 시대와 중국 고대 왕조의 계보와 재위기간을 정리해 수록했다.
또한 각 장의 말미에 '한번 더 들여다보기'를 덧붙였다. 시대적 배경과 해설을 통해 우리의 고대사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일연이 전하고자 했던 상징과 의미들을 찾아봄으로써 재미있고 유익한《삼국유사》 읽기가 되도록 구성했다.
가장 소중한 역사적 자료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의 고승, 일연이 1281(충렬왕 7)년에 편찬한 삼국 시대의 역사서이다. 삼국시대의 역사서로는 1145년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가 있다. 이것은 본기, 열전, 지, 연표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 역사서이다.
이에 비해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보다 130여 년 후에 일연 스님이 독자적으로 편찬한 것이다. 편차나 서술 면에서 《삼국사기》와는 다른, 정사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서술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의 행적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단군신화에서부터 한반도의 고대사, 즉 고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비롯해 부여, 옥저, 대방, 발해, 이서국, 가야, 후백제의 역사까지 조망했다. 또한 민간에 전승되어 온 전설, 신화, 설화, 승려들의 행적까지 포함한 역사서이다.
몽고와의 항쟁 시기에 저술된
《삼국유사》의 편찬 배경
일연은 1206년에 태어나 1289년, 84세에 입적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무신정권 (1170~1258년) 시기였으며 또한 몽고와의 항쟁으로 고려의 왕조가 강화도로 천도했던(1232년, 고종 19) 시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외세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기 시작한 내우외환의 시기였다. 따라서 고려의 민중들은 안팎으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런 수난 속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민족의식과 현실적인 고통을 역사의식 고취로 극복해야 하는 시도가 필요했다.
일연의《삼국유사》는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과 대별시킴으로써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삼국사기》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였던 김부식에 의해 서술되었기 때문에 유교적 합리주의를 강조하며, 중화적 세계관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철저한 유교사상에 입각해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단군신화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곰이 사람으로 변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나라를 세워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이한 역사를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연은 비록 그 내용이 신비스럽고 기이하다 해도 그것을 우리 역사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일연은 중국의 《위서》를 참고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때를 기원전 2333년이라 기록했고, 이로써 우리의 건국연대는 중국의 고대 제왕 요(堯)임금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상상의 산물이 아닌 생생한 삶의 이야기
참고자료 면에서 볼 때도 《삼국사기》가 주로 중국의 문헌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일연은 한평생 수행을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은 방대한 양의 기록들을 참고로 했다. 단군의 사적을 기록한 최고(最古)의 문헌인 《고기》는 물론 향가, 비문, 고문서, 전각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집필 시기는 청도의 운문사에 머물고 있던 1281년에서 1283년 사이(충렬왕 7~9)에 시작되었으나 자료의 수집은 그 훨씬 이전인 60세 무렵부터 시작되어 20여 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따라서《삼국유사》는 책 이름을 역사[史]라 하지 않았다. '유사(遺事)'라 하여 정사에는 기록되지 못한 역사 이면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연의 상상 속 산물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을 거치며 민중 개개인의 삶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때에도 중국의 침략을 걱정해야 했으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시와 노래, 문학에 우리 삶이 반영되어 있듯이 일연이 수집한 그 자료들 속에는 당시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1천년 동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고대사 문화 연구의 보고
《삼국유사》는 설화문학의 보고라 불릴 정도로 우리 신화와 전설의 원형을 알게 해주는 유일한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옛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삼국유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서동요> <찬기파랑가> <모죽지랑가> 등 향가 14수는 《균여전》에 실린 11수의 향가와 함께 고대 문학 연구자료로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유교의 가치관이 절대적이던 시기에 민간신앙과 불교신앙의 모습을 담고 있어 불교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헌 자료가 되고 있다. 게다가 통치자가 아닌 무명의 승려나 하층민중의 삶까지도 묘사하고 있어 왕조의 역사 외에 생활사적인 측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시대적 배경과 해설을 통해
《삼국유사》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부록에는 저자 일연의 생애와 《삼국유사》의 체제와 구성에 대해 정리해 놓았다. 제1편 왕력은 싣지 않았으나, 그 대신 삼국 시대와 중국 고대 왕조의 계보와 재위기간을 정리해 수록했다.
또한 각 장의 말미에 '한번 더 들여다보기'를 덧붙였다. 시대적 배경과 해설을 통해 우리의 고대사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일연이 전하고자 했던 상징과 의미들을 찾아봄으로써 재미있고 유익한《삼국유사》 읽기가 되도록 구성했다.
목차
목차
들어가기 전에 ··· 7
제1권 기이(상) ··· 18
제2권 기이(하) ··· 142
제3권 흥법, 탑상 ··· 276
제4권 의해 ··· 378
제5권 신주, 감통, 피은, 효선 ··· 432
부록 1: 저자 일연에 대하여 ··· 484
부록 2: 삼국유사의 체제와 구성에 대하여 ··· 490
부록 3: 각국의 왕 계보와 재위기간 ··· 495
제1권 기이(상) ··· 18
제2권 기이(하) ··· 142
제3권 흥법, 탑상 ··· 276
제4권 의해 ··· 378
제5권 신주, 감통, 피은, 효선 ··· 432
부록 1: 저자 일연에 대하여 ··· 484
부록 2: 삼국유사의 체제와 구성에 대하여 ··· 490
부록 3: 각국의 왕 계보와 재위기간 ··· 495
저자
저자
일연
(1206~1289)
고려 후기의 승려. 보각국사(普覺國師)라고도 한다. 경북 경산(당시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출가하여 9세에 무량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의 길로 들어섰다.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정식으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227년 22세에 승과에 뽑히고 그 후부터 여러 사찰을 돌며 선관(禪觀)을 탐구했다. 41세에 선사, 54세에 대선사가 되었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의 포산, 남해 등지에서 수행에 전념하다 56세에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가서 선월사 주지로 있으면서 설법하며 지눌(知訥)의 법통을 이었다.
63세에 왕명으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모아 개경에서 대장경 낙성회향법회를 강론하여 선교의 맹주가 되었다. 72세에는 충렬왕의 명을 받아 청도 운문사의 주지가 되어 왕에게 법설을 강론했다.
1283년 국존으로 추대되어 원경충조(圓經沖照)라는 호를 받았다. 말년에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경북 군위의 인각사를 중축하여 그곳에 머무르며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84세인 1289년에 인각사에서 입적했다.
저서로는 《삼국유사》 외에 《어록》《게송잡저》 《조정사원》 등 불교 관련 서적 80여 권이 있다.
고려 후기의 승려. 보각국사(普覺國師)라고도 한다. 경북 경산(당시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출가하여 9세에 무량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의 길로 들어섰다.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정식으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227년 22세에 승과에 뽑히고 그 후부터 여러 사찰을 돌며 선관(禪觀)을 탐구했다. 41세에 선사, 54세에 대선사가 되었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의 포산, 남해 등지에서 수행에 전념하다 56세에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가서 선월사 주지로 있으면서 설법하며 지눌(知訥)의 법통을 이었다.
63세에 왕명으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모아 개경에서 대장경 낙성회향법회를 강론하여 선교의 맹주가 되었다. 72세에는 충렬왕의 명을 받아 청도 운문사의 주지가 되어 왕에게 법설을 강론했다.
1283년 국존으로 추대되어 원경충조(圓經沖照)라는 호를 받았다. 말년에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경북 군위의 인각사를 중축하여 그곳에 머무르며 《삼국유사》를 집필했다. 84세인 1289년에 인각사에서 입적했다.
저서로는 《삼국유사》 외에 《어록》《게송잡저》 《조정사원》 등 불교 관련 서적 8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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