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성곽(간도의 용두레 우물에 묻힌)
연변 고구려 유적 답사기
연변 고구려 성곽 답사 프로젝트 『간도의 용두레 우물에 묻힌 고구려 성곽』. 50여 개에 달하는 연변지역 고구려 성곽 답사를 통해 그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고구려 역사를 온전히 살려냈다. 천지와 고구려장성을 시작으로, 화룡시, 안도현, 용정시, 연길시, 왕청현, 도문시, 훈춘시를 두루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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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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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그곳에는 고구려가 있었다!
"50여 개에 달하는 연변지역 고구려 성곽 답사를 통해
그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고구려 역사를 온전히 살려냈다."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50여 개에 달하는 연변지역 고구려 유적지를 일일이 찾아내
연변의 고구려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다.
연변지역 고구려 성곽은 50여개 달한다
길림성 고대유적의 자료내원은 이미 주요하게 공개 발표된 일부 조사보고를 제외하고 대부분 길림성의 각 현과 시 문물지文物志에 의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연변지역에 알려진 크고 작은 고대 성곽은 약 120개에 달한다. 현재 돈화시는 연변지역에 포함되어 있으나 그 전에는 다른 고장이었다. 유적의 분포를 보아도 안도현 동쪽과는 갈래가 전혀 다르다. 따라서 연변지역의 유적 가운데 돈화에 소속된 15개의 성곽을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고대 성곽은 100여 개나 된다. 그러나 이중에 고구려 성곽이 확실하게 몇 개나 되는가에 대해서는 한국, 북한, 일본 등의 주변국은 물론 소재국인 중국에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일례로 각 현과 시 문물지를 기초로 편찬한 「중국문물지도집ㆍ길림분책中國文物地圖集ㆍ吉林分冊」이 확정한 연변지역의 고구려 성곽은 연길 북쪽의 흥안고성과 동쪽의 성자산산성 두 개 뿐이다.
연변지역의 고구려 성곽에 대해서 이렇게 혼선을 빚는 까닭은 많은 성곽에서 딱 부러지게 고구려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유물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성들을 전부 발해 시기나 그 후의 시기로 보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고구려 유적에도 고구려 기와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성과 보루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헌기재에 따르면 고구려 세력은 책성柵城을 설치하여 북옥저지역을 통제할 정도로 오래 전에 지금의 연변지역에 이르렀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인 698년부터 이곳은 또 새로 설립된 발해국의 통치 지역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두 조대의 시간적인 차이는 너무 짧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 두 시기의 문화특점은 구분하기 힘들다. 그래서 연변지역의 각 현과 시 문물지에서 많은 성곽이 발해성곽과 요ㆍ금 시기의 성곽으로 판정되고 있다.
「연변문물간편延邊文物簡編」에서는 "무릇 돗자리무늬와 그물무늬, 노끈무늬가 함께 출토된 유적은 고구려 유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서 서술한 그물무늬는 네모무늬라고도 한다. 상기 무늬 중 그물무늬와 노끈무늬의 기와는 통상 고구려 유적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성곽의 위치와 특이한 지세, 축성구조, 부근의 유적과 유물 역시 고구려 유적을 판정하는데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요소를 감안하면 연변지역의 고구려 성곽은 기존의 수량을 훨씬 벗어난 약 50개에 달한다. 연변이 일찍 동명왕 10년(B.C.28년)에 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어간 지역이라면 가히 수용할 수 있는 숫자라고 생각한다.
연변지역 고구려 고대유적의 현주소를 확인하다
연변지역의 고구려 유적 답사는 자료수집 뿐만 아니라 답사 자체가 아주 어렵다. 저자가 살고 있는 북경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까지는 약 1,500킬로미터 길이다. 3년 반 남짓한 시간동안 땅으로 하늘로 저자가 이 길을 다녀온 게 거의 스무 차례, 그러니 연길까지만 무려 7만 킬로미터를 왕복한 셈이다. 일부 성곽은 국경지역 혹은 유적 발굴 현장이어서 중앙언론사의 기자 신분으로도 접근 자체가 어려워 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다. 또 고구려가 민감한 문제로 비화되면서 연변 현지에서 '고구려'라는 이름을 거론할 때면 상대방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현지의 일부 학자는 고구려 성곽을 답사한다고 하자 아예 만나는 것조차 기피했다고 한다. 여태껏 연변지역 전부의 고구려 유적과 관련한 전문적인 글이 나오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답사를 하며 고대유적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문헌기록에 없는 일부 성곽을 찾아 처음으로 문자화 할 수 있었고 성곽에 숨은 옛 기억을 찾을 수 있었으며 또 일부 특이한 유적이나 유물을 발견하여 처음으로 기록할 수 있었던 점이 이 책이 거둔 주요한 성과이다.
고구려장성, 삼백리를 이은 천년의 미스터리
문물지文物志를 비롯한 문헌기록에 따르면 연길 지역의 옛 장성은 서북쪽 팔도八道향의 쌍봉산雙鳳山과 태암台巖촌 부근의 평봉산平峰山, 동북쪽의 청차관淸茶館을 거쳐 바로 도문시 장안長安진의 광흥촌 북산을 지난다. 이 옛 장성은 만리장성과 천리 너머 떨어진 것은 물론이요, 형태도 전혀 달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잔존한 성벽의 상당부분은 길게 뻗은 흙무지나 돌무지 정도로 오인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마을사람들은 봉화대면 몰라도 장성이 있다는 말은 난생 처음 듣는다는 것이다.
화룡시 서성西城의 이도구二道溝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진 옛 장성은 이처럼 연길 동쪽의 하룡河龍촌 부근에서 끝나며 전 구간을 걸쳐 무려 3백리150km에 달한다. 현지 일부 산악인들은 계림 북산부터 도문시 월청진月晴鎭 삼동三洞부근에 이르는 산등성이에서 10여 개의 봉화대와 토성 등 고대유적을 발견하고, 이를 장성의 동쪽 연속이라 주장하고 있다. 우연한 일치일까, 이전에 밀수꾼들은 북한과 중국을 왕래할 때 바로 이 산등성이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먼 옛날에도 이곳에서 두만강 기슭까지 통하는 오랜 교통로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혹여 산악인들의 이 발견은 연변장성의 전모를 밝히는데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고구려 3백리의 장성은 명나라 만리장성의 거창한 규모에 전혀 비길 바가 아니다. 또 장기적인 수비를 위한 견고한 방어선이라기보다 변방의 성곽들을 연결하는 보조시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변에 현존하는 최대의 유적으로서 사상 전대미문의 방대한 군사시설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어마어마한 이런 시설은 약 2백년 후 만주 땅에 또 하나 나타난다. 고구려가 영류왕榮留王 14년A.D. 631년부터 당나라의 진공에 대비하여 무려 16년간 부여성지금의 농안부근에서 시작하여 서남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리장성을 쌓았던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때 남자들은 모두 장성축조공사에 나가고 여성들이 밭갈이를 했다고 한다. 천리장성은 규모나 형태가 모두 연변 3백리의 옛 장성과 유사한 걸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3백리의 옛 장성 토목공사에도 천리장성을 축조할 때의 상황이 엇비슷하게 벌어졌으리라고 볼 수 있겠다.
3백리 옛 장성은 한 마리의 신비한 용처럼 머리와 꼬리는 물론 몸통의 일부까지 숨기고 있었다. 한 조각 두 조각씩의 일부나마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옛 기억의 편린들…… 어쩌면 연변의 산과 들에 그려진 이 미스터리한 거대 유적은 선인들이 후세에 남겨놓은 천년의 타임캡슐 일지도 모른다.
목차
목차
백두산 천지에 있는 천년의 '괴물'_13
고구려장성, 삼백리를 이은 천년의 미스터리_21
화룡시
백두산 입구의 요새, 고성리 고성_31
토성리, 천년 늪골의 전설_39
용연龍淵, 잣대굽이마을의 기담_47
열여덟 고개 저쪽의 산성, 삼층령三層嶺산성_55
수묵화로 떠오른 송월松月의 산성_63
팔가자八家子산성, 옛날 옛적의 이야기_73
산중에 숨은 비밀의 "아지트", 양목정자楊木頂子산성_81
잠두성蠶頭城의 누에는 어디로 갔나_89
안도현
보마성寶馬城에 명마는 없었다_101
'빨치산'의 격전지, 앙검산성仰瞼山城_109
머리가 잘린 '거북이' 산성_117
한오백년의 춘몽을 품은 오봉산五峰山산성_125
성문산城門山,두루미가 춤추는 옛 고장_133
'금강산'의 군사요새, 오호산五虎山산성_141
용정시
'무명산성', 현암동眩岩洞의 미스터리_151
야래자夜來者 설화와 한왕汗王산성_159
청산녹수에 녹아있는 청수淸水산성_169
간도 섬의 '파수꾼' 선구船口산성_179
팔도하八道河의 사라진 비석_187
쇠골과 산성 그리고 당수나무_195
양삼평養參坪,황제가 살던 궁전 옛터_203
일송정 푸른 숲에는 봉화대가 있었다_211
용두레 우물에 묻힌 옛성, 동흥東興고성_221
장군산, 신라의 명장 김유신은 어디에_229
동불?佛, 패랭이를 쓰고 있었던 그 사람_237
도원桃源에 있는 고성, 백석라자산성_245
성자구城子溝산성, 용과 호랑이가 막아선 고려성_255
연길시
황성 옛터, 성자산城子山_265
하룡고성, 노송에 묻힌 천년고성_275
천년의 무덤이 있는 마을, 소영자小營子_283
흥안興安고성, 천년고성의 슬픈 이야기_291
'로마'에 있는 고려인동네_299
왕청현
설인귀의 자국이 찍혀있는 동사방대東四方臺_309
하북고성, 왕청하汪淸河에 흘러간 천년의 이야기_319
도문시
비문 없는 천년의 '비석', 만대성滿臺城_329
주몽의 화살에 뚫린 구렁이산_337
'아리랑 고개'의 정암亭岩산성_345
훈춘시
책성柵城, 천년의 된장이 있는 고성_355
'금단의 정원' 수류봉水流峰_365
통긍산通肯山산성, 바위벼랑에 울린 천년의 종소리_373
성장라자城墻砬子산성, 철조망에 둘린 옛 산성_381
영성자營城子의 이름 뒤에 숨은 갑옷의 무사들_389
도원동桃源洞의 잉어 왕은 정말 있었나_397
간구자, 메마른 골짜기의 기록_405
'살기殺氣'가 서린 살기성薩其城_413
돌이 없는 석축성, 석두하자石頭河子고성_421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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