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참성단 A to Z(역사의 길 8)
이 글에서는 단군의 제천단이라는 상징적인 장소로만 알려진 참성단의 여러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참성단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800여 년을 지속하면서 여러 모습으로 변화한 양상을 살피려고 한다. 복잡다단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했다. 기본적인 관점은 역사학의 방법론에 두었다. 독자에게 유용한 참성단 가이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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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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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서는 싣지 않았다. 그 까닭은 두 책이 저술된 13세기 후반에 참성단은 단군신화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특히 ≪삼국유사≫에서 그 지역 범위가 태백산(묘향산)·평양·구월산이고 황해도 배주의 백악산, 개성의 백악궁이 포함될 수 있지만, 여기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참성단은 단군신화에서 등장하는 신화적인 공간과 다른 성격의 장소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군신화는 평양부에서 신령스럽고 기이한 일을 소개하는 영이靈異라는 항목에서 ≪단군고기≫라는 책을 인용해서 실려 있다. 그것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단군신화를 절충한 또 다른 신화였다. 상제 환인의 아들인 단웅천왕檀雄天王의 손녀와 박달나무신檀樹神의 결혼으로 태어난 단군의 고조선 건국, 단군과 하백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부루의 동부여 건국, 해모수와 하백의 딸 사이에 태어난 주몽의 고구려 건국이 그 내용이다. 단군은 모계로 환인과 단웅천왕으로 연결되며, 부루는 부계로 단군과, 주몽은 모계로 하백의 딸과 연결된다. 부루와 주몽은 하백의 딸을 모계로 하고, 부계로 단군과 해모수가 설정되어 있다. 고조선·동부여·고구려가 부계와 모계로 연결된 국가였다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했다.
여기에서 신화의 공간은 압록강부터 구월산까지 한반도 서북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평양에 실은 것은 이곳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이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조선왕조의 국사제사에서 역대국가의 시조사당 중에 하나인 단군사당에 고구려의 동명왕을 함께 모신 사실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도 참성단은 내용이나 지역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참성단은 강화의 진산鎭山인 마리산을 소개하면서 싣고 있는데, 참성단 모습에 대한 설명 다음에 "세상에 이렇게 전한다"는 세전世傳이라는 단서를 달고 "조선단군朝鮮檀君이 제천하던 석단石壇이라고 한다"고 했다. "조선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는 삼랑성도 마찬가지다. 황해도 문화현에서 소개하고 있는 "조선단군이 도읍한 곳"이라는 장장평庄庄坪도 같은 형식이다. 반면에 단인(환인)·단웅(환웅)·단군의 사당인 삼성사三聖祠는 위치정보만을 싣고 있다. 이곳은 신화의 공간이지만, 삼성을 모신 곳이라는 것은 사실事實이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서술 방향은 ≪고려사≫ 지리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참성단이 어떤 이유에서 신화의 공간에 포함되지 못했는지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의 전승이 비교적 후대에 형성된 것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세전'이라는 말은 그런 뜻을 담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참성단 전승은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에도, ≪제왕운기≫에 인용된 ≪단군본기≫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곳에서의 전승이 오래된 것이라면, 그것은 서북지역을 전승의 공간 범위로 하는 ≪고기≫에 당연히 포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참성단은 언제 쌓았고,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리되었을까? 우리가 보고 있는 참성단이 원래의 모습일까? 매년 개천절 새벽에 지내고 있는 개천대제開天大祭는 언제부터였을까? 원래의 제사와는 어떻게 다를까? 정말 단군은 이곳에서 제천을 했고, 우리가 그것을 잇고 있을까? 고려와 조선시대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명승고적으로 참성단 답사를 했을까? 그들은 참성단에 올라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우리처럼 단군 할아버지를 이야기했을까?
참성단이 역사기록에서 처음 확인되는 것은 1264년, 고려 원종 5년의 마리산참성摩利山塹城이다. 그간 거의 800년을 지내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불교사회인 고려왕조에서 유교사회인 조선왕조로, 그리고 다종교사회인 현대로의 전환이 있었다. 그런데 기록상에 처음 참성단 제사로 알려진 1264년의 제사는 도교의례인 초제醮祭였다. 제사의 모습에 여러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참성단이 우리의 관심 대상인 것은 한국사의 출발인 단군과 고조선에서 비롯했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 후기부터 지금까지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은 높낮이가 있었다. 우리 역사의 연원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때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단군이 왕조의 국조國祖로 자리해서 국가에서 제사되는 때가 있었다. 선진문물의 아이콘으로 작용했던 기자와의 관계에서 그 위상이 약화된 때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단군을 신神으로 모신 대종교의 독립운동에서 조선민족을 결집하는 중심이 되기도 했고, 일제식민통치자들에게 역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남북의 정치·사회·이념 등의 문제는 물론, 다원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현재에는 그 인식의 정도가 다소 혼란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13세기 중반 이후 참성단도 그런 상황들과 연동되고 있다.
참성단 제사의 유래는 단군의 제천祭天에 있다. 실제 이 제사는 하늘의 뭇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에서는 이를 폐기하려는 논의를 초기부터 시작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제후의 나라인 조선에서 황제만 할 수 있는 제천을 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도교의례로 지내는 제사를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지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천을 지속하려는 국왕과 이를 막으려는 신료의 대립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치열한 논쟁을 했을까?
매년 한두 번씩 참성단을 중심에 둔 마니산 기행을 십수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 고려 후기에 초제를 지내려고 마니산을 찾았던 이색(1328~1396)의 여정을 따르기도 하고, 조선 후기 어느 문인의 참성단 등반을 따르기도 한다. 봄철에는 진달래 꽃잎을 따보기도, 가을엔 도토리를 줍기도 한다. 천재암에서의 취사를 대신해서 도시락을 까먹어보기도 한다. 그들이 이곳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을 느껴보려고 했다. 개천절 답사에 어떤 의미를 담은 것도 아니지만, 이것도 가능한 한 놓치지 않으려고도 한다.
마니산 여행은 사계절이 다 좋다. 봄에는 재궁(천재암) 주변에 듬성듬성한 진달래와 철쭉이 좋고, 여름날에는 918계단 좌우 가까이에 있는 청록의 푸름이 좋다. 가을에는 정상 아래로 울긋불긋한 단풍과 간척지에 펼쳐진 황금 들녘이 제맛이고, 겨울날에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 후의 맑고 상쾌한 하늘을 빼놓을 수 없다. 그때가 새벽이고 저녁이면 먼동과 낙조가 더욱 좋다.
이 글에서는 단군의 제천단이라는 상징적인 장소로만 알려진 참성단의 여러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참성단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중심으로 800여년을 지속하면서 여러 모습으로 변화한 양상을 살피려고 한다. 복잡다단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했다. 기본적인 관점은 역사학의 방법론에 두었다. 독자에게 유용한 참성단 가이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목차
목차
1장 참성단, 언제 쌓았고 어떻게 수리되었나?
1. 마리산참성에서 참성단으로
2. 참성단의 수리
3. 참성단의 부속시설, 재실
2장 참성단 제사는 어디에서 유래했나?
1. 고려 궁궐에서 지낸 초제(醮祭)
2. 제천단에서 개최된 초제(醮祭)
3장 강도(江都)에서 연기업(延基業)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1. 강화 천도와 태조 재궁(梓宮)의 이전
2. 강화 천도 전후의 연기업(延基業) 전개
4장 고려 국왕이 지낸 참성초(塹城醮)는?
1. 원종의 친초(親醮)와 단군
2. 신니동(神泥洞)을 찾아서
5장 강도(江都)에서 일연과 이승휴는 무엇을 했나?
1. 연기업을 둘러싼 공방
2.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서 참성단을 싣지 않은 까닭
6장 고려 후기에 지낸 참성초는?
1. 이색의 마니산기행
2. 참성초의 구성
7장 조선 전기에 변화된 참성초는?
1. 조선 전기 참성초제의 운영
2. 참성초제의 중단과 복구
8장 참성초에서 마니산산천제로
1. 소격서의 존폐 논쟁과 참성초제
2. 오례의(五禮儀)에 따른 마니산제사의 정비
9장 고적과 역사 사이에서
1. 명승고적으로 참성단 답사
2. 강화는 고조선의 남쪽 경계일까
에필로그
참고문헌
저자
저자
저서: 「마니산 제사의 변천과 단군전승-참성초에서 마니산산천제로-」(민속원, 2021), 「경기, 천년의 문화사」(고려전기/고려후기~조선전기/조선후기~근현대)(공저, 경인문화사, 2018), 「조선시대 단군묘 인식」(경인문화사, 2009), 「일제강점기 단군릉수축운동」(경인문화사, 2009), 「고려시대의 단군전승과 인식」(경인문화사, 2002) 등 다수.
논문: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古記論」(「선사와 고대」 69, 2022), 「단군, 신화에서 역사로」(「동북아역사논총」 76, 2022), 「태백산산신 옥도검(玉刀鈐)과 삼척 오금잠제(烏金簪祭)」(「한국전통문화연구」 27, 2021), 「20세기 초 단군영정의 보급과 화본(?本{) 검토」(「동북아역사논총」 65, 2019)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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