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
이 책은 객관적인 사료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조명하였다. 감추어진 역사적 사실과 알려진 사실을 비교 검토하였고, 일본군 합동참보본부가 1924년 발간한 『일본전사 조선역(日本戰史 朝鮮役)』에서의 임진왜란 기록을 비교하였다. 그리고 일본사에 감춰진 기록은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석하였다. 또한 방대한 한국 자료도 인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근거 및 수치가 확실한 사료만을 인용하였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592년 10월 5일부터 10월 10일까지 6일 동안 10회의 전투에서 3만 명의 일본군은 김시민 목사가 이끄는 3,800명의 조선군에게 완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593년 1월 9일 제4차 평양성전투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은 조·명 연합군에게 패배했다. 이후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끌던 일본군 1번대 뿐만 아니라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모두 한양성으로 퇴각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593년 1월 27일 벽제관에서 일본군은 명군을 패퇴시켰다. 이로써 명군은 개성 이북으로 물러났고, 이여송은 평양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한양성에서 빠져나와 부산성으로 물러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하려고 준비한 일본군은 28만 6,840명이었고, 22만 4,774명의 참전 기록이 확실하다. 1593년 6월 20일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조선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12만 1,578명이다. 임진왜란 1년 2개월 동안 일본군은 최소한 출전자의 45.9%인 10만 3,196명, 최대한 출전자의 57.6%인 16만 5,262명이 사라졌다. 그리고 제2차 진주성전투를 치르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군은 10만이 채 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1593년 6월 21일부터 6월 29일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일본은 약 9만 3천 명의 대군을 동원해 5천 8백 명의 조선 관군과 의병이 지키던 진주성을 공격했다. 9일 동안 25번의 전투에서 조선군이 24번 이겼고, 일본군은 단 한 번 이겼다. 일본군은 진주성을 함락한 후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점령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부산으로 후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목차
목차
1장 임진왜란의 배경
조선의 평화시대와 일본의 전국시대
조선과 일본의 상대방에 대한 이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이유
조선과 일본의 전투체제
조선의 전쟁 준비 및 군 편제
일본군 편제 및 병력 수
조선군과 일본군의 전투력 비교
2장 초기 일본군의 공세- 제1기(1592. 4~1592. 6)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및 명나라 침략 전략
초기 조선 수군의 대응
일본군의 노련함을 보여준 부산성전투
화살받이까지 준비한 일본의 치밀함을 보여준 동래성전투
조선 조정의 대응
훈련부족의 문제점을 드러낸 상주전토
기마병과 조총부대의 격돌, 충주 탄금대전투
탄금대전투 이후 조선 조정
일본군의 한양성 함락과 전술의 오판
최초로 일본군을 물리친 해유령전투와 불편한 진실
공명심과 전투경험 부족에 따른 임진강전투의 패배
오합지졸의 수치스로운 패배, 용인전투
제1차 평양성 전투
일본군 점령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
4,000면의 일본군 사망과 조선 수군 1명 부상으로 시작된 불패의 해전
조선 백서의 자발적 군대 조직
유격전으로 일본구의 보급로를 차단한 경상도 지역 전투
3장 조선군의 반격- 제2기(1592. 7~1592. 10)
일본군 조선 8도 점령 계획의 오판
1차 평양성전투 이후 조선 조정의 적극적인 전쟁 지휘
조·명 연합군의 반격과 정전협상
일본군에 투항한 반란군 준동과 조선군의 협공, 함경도 전투
관군·의병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황해도전투
관군·의병·승병이 펼쳐나선 강원도전투
의병의 우격전이 두드러진 경기도전투
의병장 고경명과 700의사의 충정, 충청도전투
의병·관군이 함세한 전라도전투와 의병 출정의 거점, 전라도전투
각계각층이 다발적으로 반격을 가한 경상도 전투
한산대첩을 비롯한 해전을 통한 제해권 완전 장악
조선군의 반격과 일본군의 위기감
4장 진주대첩과 그 후의 조선군의 공세- 제3기(1592. 10~1593. 6)
준비된 명장, 김시민 목사
보급로 확보를 위한 일본구의 제1차 진주성 공격
진주대첩 참전 일본군 수
조선군의 진주성전투 준비
진주성 밖의 조선군 및 의병과의 연합작전을 펼치다
6일간의 전투
진주대첩의 의의와 성과
진주대첩 이후의 일본군 상황
진주대첩에서 제 4차 평양성전투 이전까지의 전투 상황
평양성을 재탈환한 제 4차 평양성 전투
일본군의 전면적 후퇴
명군의 벽제관전투 패배
남의 나라 전쟁에 참가한 명군의 태도와 강화회담
한양성 탈환의 최후 전투, 행주대첩
일본군의 한양성 퇴각과 조·명 연합군의 입성
대치전 양상으로 변한 해전
임진왜란부터 제2차 진주성전투까지 1년2개월간 일본군 사망자 수
제5장 제2차 진주성전투와 임진왜란의 종료- 제4기(1593. 6~1596)
임진왜란에 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략 수정
명군과 일본군의 강화협상의 내면
제2차 진주성전투의 배경
9만 3천의 일본군의 병력을 동원한 2차 진주성전투
명군의 진주성전투에 대한 태도
진주성 주둔 관군 및 의병 현황
조선군 5천 8백 명과 일본군 9만 3천 면의 9일 간의 전투
운명적 항전, 예정된 함락
제2차 진주성전투 이후 일본군의 움직임
제2차 진주성전투 이후 임진왜란 종료와 정류재란
6장 알려진 역사, 알아야 할 역사
1. 임진왜란 전투를 일본순이 주도하였나?
2. 일본군 사망자는 어느 정도일까?
3. 일본군을 몰아낸 주역은 명군인가, 의병인가, 조선 관군인가?
4. 선조 임은 무능한 군주였나?
5. 갈등의 조선인가? 통합의 조선인가?
6. 임진왜란 극복의 상징과 향후 과제
7. 교과서 기록의 문제점과 개정 방향
후기
임진왜란 전사
저자
저자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는 국가통합을 위한 사회자본의 역사적 상징 모델을 진주성전투에서 찾던 중 발견한 임진왜란 전사의 왜곡과 역사의 진실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논문은 홈페이지(www.socialcapital.re.kr)에 실어 놓았다. 저서로는『사회자본: 불신에서 신뢰로, 갈등에서 협력으로』(2009)와『좋은 정부 나쁜 정부』(2013) 등이 있다.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