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피부
촉각문화론
[생각하는 피부]는 의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예술과 제 과학을 횡단하면서 쓴 책으로, 피부가 신체의 ‘전체’를 이루고 있듯이, 경계를 뛰어넘는 통찰력으로 인간의 신체 표면을 구성하는 피부를 논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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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인간의 신체 표면을 구성하는 피부를 논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촉각의 감각기관인 피부에 대한 의학적 탐구는 거듭되어왔다. 동시에 피부는 눈에 직접 와닿는 표면이자 미학적 대상으로서 다양한 장식이 가미되었는데, 이러한 전통은 현대 미용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의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예술과 제 과학을 횡단하면서 씌어졌다. 이는 피부가 신체의 '전체'를 이루고 있듯이, '전체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부는 지성과 감성을 종합하는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예컨대 이 책에서 로봇 팔(Robot arm)이나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를 다룬 장은, 해당 분야에서 일어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염두에 두고 읽었을 때, 이미 고고학적인 내용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반면 차별이나 이민배척의 문제는 다시 읽어보면, 21세기의 정치가 20세기에 비해 거의 변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가 막힐 지경이다. 피부감각은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발전을 하든 인간성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지배한다고 해도 좋겠다.
이 책은 내 작업 중에서 1980년대의 군중 연구로부터 90년대의 기억의 탐구로 이어지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는 컴퓨터가 생활 전체의 국면을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미래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서든 미래에서든 닥쳐올 사태를 알리는 것은 우리 신체의 표면을 두드리는 희미한 신호다. 그것을 감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갖고 있는 최대의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의 경계란 폐쇄적인 '벽'이 아니라 무수한 신호에 대해 항상 열려있는, 감각적인 '장소'다. 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타자임은 이 책의 핵심에 위치한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책속으로 추가
7장 맹인론Ⅰ
현재 원격현장제어 기술은 의학이나 화학에서 군사 영역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 기술의 새로운 점은 다루는 대상이 반드시 현실 상황일 필요는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우주개발용 원격제어 로봇의 경우 슬레이브를 실제로 화성에 보내기 전에 화성의 토양을 상정한 시뮬레이션 영상을 통해 연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 핸드를 장착한 작업자는 실제로 슬레이브가 화성 표면을 돌아다니듯이 시뮬레이션 영상의 세계를 느끼면서 손을 움직이게 된다. 즉 작업자의 몸은 여기에 있으면서 그 감각은 그쪽에 있는 시뮬레이션 영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현실, 혹은 가상적으로 만들어진 현실 환경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인공현실(Artificial Reality) 혹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등으로 불려 원격현장제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연구로 근년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시뮬레이션이 입체시(立體視) 시스템에 의해 3차원이 된 점, 그 영상이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고 마스터 자신의 움직임과 연동하여 반응하는 쌍방향 영상이라는 점 때문에 우리가 현실 공간을 움직일 때 갖는 것과 비슷한 감각의 연합이 일어난다. 확대된 분자 모델을 보고 게다가 그것들의 움직임을 실제 손으로 느끼면서 새로운 분자 합성을 시도하는 시스템은 물론 가상의 모델하우스 안을 거닐면서 구조나 방의 배치를 체험하고 사용하기 편리한 정도를 알 수 있는 것까지 그 응용범위는 굉장히 넓다. 또한 물체를 만졌을 때의 저항감을 마스터 쪽으로 내보내는 연구에서는 예컨대 엠아이티(MIT)공과대학에서 개발한 가상 줄(?)이 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시된 물체의 표면을 조작봉을 움직이면서 덧그리면 그 표면의 상태에 맞춰 저항감이 봉의 진동을 통해 손으로 전해진다. 또 물체를 쥐었을 때 그 저항감을 공기 펌프로 움직이는 실린더를 매개로 글러브에 전달하는 장치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가상현실이라는 시각문화의 최전선에 출현한 새로운 현실에 걸맞게 손의 복권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8장 맹인론Ⅱ
비행 시뮬레이터(Flight simulator)는 지금으로부터 약 반 세기 전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에드윈 링크(Edwin Albert Link, 1904∼1981)가 만들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전투기 조종사의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현재 쓰이고 있는 시뮬레이터의 경우는 고속계산이 가능한 대형 컴퓨터의 등장으로 실현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 말고도 지금의 시뮬레이터에는 세계 곳곳에 있는 공항의 경관을 찍은 영상이 탑재되어 있는데 예를 들자면 홍콩처럼 이착륙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지리적 조건도 미리 모의 체험할 수 있다. 시뮬레이터의 움직임은 거의 완벽하다. 최근 이 경관 영상에 새로운 차원을 연 것으로는 프랑스의 시뮬레이터 전문회사인 AMCI가 개발한 '아비오닉 이미저리(Avionik Imagery)'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투기용 시뮬레이터인데 여기서는 조종실 창에 비치는 2차원 영상 대신에 조종사의 고글(goggles)에 3차원 경관 영상이 비친다. 또 여러 가지 지시나 명령도 이 고글에 표시 된다. 이를테면 조종사의 헬멧 자체가 기기 패널과 스크린이 일체화 된 셈이다. 이러한 두부 장착형 디스플레이를 HMD(Head Mounted Display)라 하는데 '아비오닉 이미저리'에서는 단순한 디스플레이를 뛰어넘어 적기에 대한 조준에서 포격까지 같은 HMD 상에서 실행하게끔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시야에 들어온 적기를 자동 추격하여 조종사의 시선으로 기영(機影)이 지나친 순간을 디스플레이 상에서 포착하여 발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헝가리인 아그네스 헤게뒤스(?gnes Heged?s, 1964∼)의 《핸드사이트(Handsight)》(1992)는 가상현실의 체험을 손목 회전으로 바꾸었다. 여기에 어항만한 투명한 아크릴로 만든 주발이 있다. 속은 비어있고 위쪽에 손목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있다. 그 옆으로 탁구공만한 모형 눈알이 있다. 코드가 부착된 안구를 투명 주발에 넣으면 앞쪽에 있는 원형 스크린에 CG영상이 나타난다. 안구를 움직이면 영상도 변화한다. 잠시 손목을 움직이는 동안 그 영상이 투명 주발 속에 만들어진 어떤 방임을 알게 된다. 안구를 움직임으로써 시선이 원형의 인테리어 속을 이동하는 것이다. 바닥에는 격자모양의 카펫이 깔려있고 가구 같은 것들이 있으며 화분에 심은 식물도 보인다. 사다리 같은 것이 세워져 있어 2층의 다락방처럼도 보인다. 하여간 구형의 공간 속을 손목을 움직임으로써 자유자재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안구와 서양의 점쟁이들이 쓰는 수정체처럼 보이는 투명 주발 그리고 원형스크린이라는 세 가지 구형 공간을 통해 우리는 손목 회전운동이 일으키는 기묘한 공간의 왜곡을 맛보게 된다. 탁구공 눈알의 시계는 우리의 그것과 달라서 어안렌즈에 가깝다. 더욱이 이것은 원형스크린에 투영되는 까닭에 영상 자체가 상당히 왜곡되어 버린다. 이는 광학적 왜곡을 응용한 왜상화법(anamorphosis)에 아주 근접한 것이다.
9장 세계피부의 꿈
"열 손가락으로 무엇 하나 할 수 없다"는 프랑스 고고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앙드레 르로와-그랑(Andre Leroi-Gourhan, 1911∼1986)의 말에 자극을 받아서는 아니지만, 컴퓨터는 '손가락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방향으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멀티 터치'라 불리는 복합기술로 스크린이 복수의 손가락을 검지(檢知)하여 그 움직임에 반응한다. 이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채택되어 쓰이고 있으나, 향후 10년 사이에 손가락 끝은 시간, 압력, 체온, 맥박, 지문 등 다른 정보를 스크린과 주고받으면서 컴퓨터를 본래 의미에서의 '퍼스널'한 것으로 맞추어 나갈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분야의 기술이 마침내 촉각을 인터페이스로 실용화하는 단계에까지 따라붙어왔음을 의미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손가락 끝은 스크린을 통해 다른 스크린과도 정보를 교환한다. 거대 통신회선을 통해 실질적으로 하나의 스크린이 모든 스크린인 듯한 상황에서, 하나의 손가락 끝이 제공하는 정보를 온라인에 있는 모든 스크린에서 공유할 수 있다면 촉각은 새로운 원격 소통이 가능하다. 개개의 손가락 끝의 체온이나 맥박은 기상정보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체의 기상학'을 실천한 무용가들의 단련에는 훨씬 못 미치더라도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불특정 다수의 인간 신체의 기상은 미지의 작품을 낳는 매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시각의 압도적인 우위를 보면 그것이 얼마만한 것이든 촉각이나 피부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이다. '퍼스널'한 미디어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과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댈 기회는 줄어든다. 그러한 경향이 미국사회에서 전해져 온지 이미 오래다. 스크린에는 상영막과 가림막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스크린이 원래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격리하고 고독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퍼스널'한 미디어에 부과된 과제란 그와는 반대로 직접 부대끼고 사태를 감안하여 어떻게 창조의 장을 만들 수 있는가가 될 것이다.
목차
목차
1장 현실의 가시
열 손가락으로 무엇 하나 할 수 없다/ 물질 P/ 촉각문화/ 응콘데(Nkonde)-가시를 꽂아 만든 조각상/ 명령이라는 가시/
토미 웅게러의 가시/ 가시는 제거할 수 있는가
2장 통증의 도상학
타투(tattoo)의 계보/ 데모그라피에서 피부학으로/ 데타토아쥬(detatouage)/ 매체로서의 피부/ 유형지의 기계/ 촉각과 비 광학계 코드
3장 색소정치학
주변으로부터 생겨나는 배타주의/ 접촉공포를 낳는 환경/ 증식과 '외부인 혐오(Xenophobia)'/ 인종과학이라는 범죄/
색소정치학/ 아라비안나이트의 피부/ 하렘(Harem) 환상/ 《말콤 X》/ 천사는 무슨 색인가/ 이탈리아의 색채/ 물의를 빚은 색 /
벌거벗은 신생아/ 피부는 메시지다/ 피부색이란 어떤 색인가/ 백피증의 발견/ 달의 아이들
4장 포스트휴먼(Posthuman)
프라고나르(Fragonard)가의 사람들/ 두 명의 프라고나르/ 행복의 정원/ 부드러운 내부로/ 아르포르의 프라고나르 박물관/
박피(ecorche) 조각/ 양손의 만남/ 모피시대/ 따끔따끔한 느낌/ 위생박람회/ 유리로 된 남자/ 살점으로 만든 옷/ 라텍스(latex)의 기관
5장 만지는 것과 말하는 것
팩과 엔벨로프/ 촉각과 언어
6장 꿈의 피부
정글의 옷
정글의 주민/ 열대림의 내부/ 정글과 초원 사이/ 정글의 옷/ 활과 그물/ 감각의 기보법(記譜法)
꿈의 모래알갱이
장님의 꿈/ 꿈을 영상화하다/ 꿈의 화소-빔 벤더스의 경우/ 드리밍-호주원주민의 신화세계/ 꿈의 회로도/ 꿈의 화소-호주원주민의 경우/ 변신의 땅으로
드림머신
죽음의 해협 지브롤터(Gibraltar)/ 탕헤르의 이방인들/ 브리온 기신/ 눈을 감고 보는 최초의 예술작품
7장 맹인론Ⅰ
손가락의 교차/ 촉각의 실험장치/ 몰리누의 문제계/ 광학십자군의 세기/ 눈을 감는다/ 시각에서 촉각으로의 전환/ 손의 기능/
파악, 이동, 교환/ 숨겨진 수열/ 미소외과의 손/ 손을 만든다/ 마스터-슬레이브 시스템/ TE에서 VR로
8장 맹인론Ⅱ
아비오닉 이미저리(Avionik Imagery)/ 눈으로 쏘는 사람들/ 분자 간 비행/ 환영의 집/ 환영건축물/ 격자와 감옥/ 암흑의 시대, 맹목의 수련/ 몸짓의 세계/ 도시의 미시분석/ 렉싱턴 감각가/ 보행의 기보법/ 보행의 선형이론/ 무용보(舞踊譜, Labanotation)/
신체의 상대성이론/ 촉각도시로
9장 세계피부의 꿈
하나의 스크린은 모든 스크린/ 처형기계와 새로운 벽/ 손의 전략
관련지도/ 신판후기/ 역자후기
저자
저자
사진집으로는 『파도와 귀 장식(波と耳飾り)』, 『내일, 광장에서-유럽 1989∼1994(明日?場で-ヨ-ロッパ 1989∼1994)』, 『순간의 산-형태창출의 신성성(瞬間の山-形態創出と聖性)』, 『Inbetween No.2 France Greece』, 『문자의 어머니들(文字の母た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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