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의 전투일지로 임진왜란을 다시 쓰다
『김시민의 전투일지로 임진왜란을 다시 쓰다』는 사천전투·진해전투·창원전투·지례전투·사랑암전투에 이어 4박 5일 동안 10회의 진주성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서사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김시민 목사가 국난을 맞아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 역사가 얼마나 잘못 기록되어 있는지 함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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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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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의 진주성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역사다큐멘터리 서사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6개월이 지난 1592년 10월, 3만 명의 일본군이 진주성으로 몰려들었다. 대병력을 집결시켜 진주성을 단숨에 함락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군과 소규모 전투를 벌이던 일본군은 일거에 조선군의 요충지를 점령하여 그간의 대치전을 끝내버릴 계획이었다.
그 때까지 소규모 전투에서는 공방전이 이어졌지만, 대규모 전투에서 조선군이 일본군을 물리쳐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김시민 목사가 이끄는 3,800명의 진주 관군은 3만 명의 일본군을 맞아 4박 5일 간의 밤낮을 가리지 않은 10회의 전투를 모두 이겨냈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임진왜란은 국면이 바뀐다. 일본군은 낙동강 서쪽으로 진출할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더 나아가 조선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바뀌고, 일본군 수뇌부는 퇴각을 고민해야 했다.
전쟁터에서의 승리는 이겨야 한다는 정신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정신력뿐만 아니라 병사의 수와 병사의 훈련 상태, 무기, 그리고 전략이 모두 구비되어야 한다. 더욱이 3만 명 대 3천 800명, 8대 1의 열세를 딛고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임진왜란에 대해 알아갈수록 김시민 진주목사의 승리가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피가 끓어올랐고, 김목사에 대한 존경심이 더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김목사를 두려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일본군이 1차 진주성전투에서 완패한 후, 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차 진주성전투에 9만 3천명이라는 대군을 진주성에 파견했는지 알게 되었다.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김시민 목사가 국난을 맞아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 역사가 얼마나 잘못 기록되어 있는지 함께 느끼길 바란다.
* 책속으로 추가 *
"그렇지. 나도 동감이야. 『일본전사』 중간 중간에 조선의 주요도시를 점령한 일본장수의 이름이 나오지 않던가? 이들 중에 1차 출전군 명단에 없는 장수들은 추후에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 땅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면 되겠지. 그럼 결론은 무엇인가?"
"예.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전투를 벌인 일본군은 최소한 22만 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1년 2개월이 지난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이들 중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이지요."
"그래. 22만 명의 45%가 넘는 일본군이 1년 2개월 만에 조선 땅에서 죽었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9일 동안 25차례 치른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을 계산하기 전에 말이지."
"그럼,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이 얼마나 죽었을까요?"
"그것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현재로서는 없네. 그런데 내 추정으로는 전투참여자 1/3 이상이 죽었다고 봐야 할거야."
"당시 진주성을 공격하던 일본군 병력수는 9만 3천명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8박 9일 동안 일본군이 3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임진왜란에 참여한 일본군 22만 명, 사망자는 13만 명이니 1년 2개월 간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60% 이상이 사망했다는 것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한 부대의 사망자가 1/3이 넘으면 그 부대는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60%가 사망했다면 그야말로 전멸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역사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왜곡된 역사는 바뀌어야 한다·11〉
"그런데 왜 역사에 마치 명군이 조선을 구한 것처럼 서술되었을까요?"
"그러니 역사왜곡 아닌가? 일본군이 조선군에 쫓겨 물러났다고 하면 조선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격이니 일본이 일시 물러난 이유를 조선의 힘이 아닌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하다 보니 명군에게 그 공을 돌리는 것이지."
"교수님. 그래도 의병의 공적은 크지 않나요?"
"의병의 공적은 크지. 그런데 문제는 아주 묘해. 의병을 폄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관군의 역할이 더 크다는 것이야. 우선 병력 수만 비교해도 임진왜란 때 동원된 관군의 수는 총 16만 명에 이른 반면, 의병 수는 모두 합쳐봐야 3만 명을 넘지 않아. 또한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치른 당사자는 대부분 조선관군이고, 의병이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전투는 소규모이거든. 전투의 수만을 비교해도 관군 대 일본군의 전투는 총 31회였던 반면, 의병 대 일본군의 전투는 11회에 불과하지. 결론적으로 관군이 지리멸렬했다면 조선은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없었어. 물론 의병이 많은 힘이 되긴 했지만."
"예. 알겠습니다. 일본군을 맞아 싸운 당사자는 관군이고 의병이 보조적인 역할을 한 것인데, 상대적으로 의병의 공적만을 역사에 표현한 이유 역시 조선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려는 일제의 술책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왜적을 물리친 주인공은 조선관군이다·29〉
"일제강점 후 총독부가 조선에서 처음 시행한 일 중의 하나가 조선의 역사왜곡입니다. 총독부는 조선의 관습과 제도를 조사한다는 명목 하에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전 공무원과 경찰, 헌병대를 동원하여 조선의 서점, 향교, 가정에 있는 조선의 역사책 20여 만 권을 압수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조선사 왜곡에 필요한 사료만을 남기고 모두 불태웠다고 합니다."
"음… 그렇지. 우리가 일본인이 저지른 역사왜곡의 흔적을 찾아야 해. 임진왜란은 공식적으로 조선과 일본이 처음으로 긴 기간 동안 대면한 사건이지.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임진왜란에 대해 자기들 좋을 대로 역사왜곡을 해야 했던 것이지. 따라서 임진왜란 전 과정을 살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들이 발견되거든."
"예. 어떤 점에서 인가요?"
"임진왜란 전 과정에서 일본의 조선 역사관은 분명하지. 첫째, 임금이 무능하여 백성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만이 살겠다고 도망갔다는 점. 둘째, 조정이 무능하여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는 점. 셋째, 관군이 무력하여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는 점. 위의 세 가지는 공통점이 있어. 조선은 백성을 지켜주는 국가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조선 정부가 무능하여 백성이 고생했다는 것. 한 마디로 역사적으로 조선정부는 무능하여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니 오히려 일본이 조선을 통치해야 조선백성에게 유익하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게다가 일본군이 조선을 점령하지 못한 이유를 명군과 의병에 돌리고 있지 않은가? 이것 역시 조선이라는 국가와 정부를 부정하려는 의도인 것이야. 이러한 일본역사가의 저술이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고착시키고 있지 않은가."
〈역사 왜곡의 증거가 명백하다·23〉
목차
목차
01. 8:1 전설적 승리
02. 내 신원을 밝혀라
03. 전투를 준비하라
04. 거짓 역사를 벗겨 버리자
05. 왜적이 올 것이다
06. 준비된 자가 승리를 쟁취한다
07. 왜적은 강했다
08. 싸우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어 주기는 어렵다
09. 우리는 사실과 다른 역사를 알고 있다
10. 백성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11. 왜곡된 역사는 바뀌어야 한다
12. 훈련 안 된 병사는 군인이 아니다
13. 왜적의 선봉을 일거에 격퇴하라
14. 새로운 증거로 역사를 새로 쓰자
15. 가자, 왜적을 물리치러
16. 조선은 왜란에 대비해 전쟁준비를 하였다
17. 김시민을 진주 목사에 임명한다
18. 1년 6개월 동안 일본군 22만 명 중에서 10만 이상이 죽었다
19. 나를 따르라
20. 모두 내 백성이다
21. 일본군은 왜 이유 없이 후퇴했을까?
22. 명령만 내리십시오 목숨을 걸고 따르겠습니다
23. 역사 왜곡의 증거가 명백하다
24. 승리를 기획하라
25. 왜적에게도 약점이 있다
26. 선조 임금은 결코 무능하지 않았다
27. 왜적의 힘이 약해졌다
28. 진해성을 수복하라
29. 왜적을 물리친 주인공은 조선관군이다
30. 훈련한 대로 전투에 임하라
31. 왜적의 목을 쳐라
32. 조선군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다
33. 창원성을 넘어라
34. 기필코 왜적을 몰아내겠습니다
35. 연합에 의해 전라도를 지켜내다
36. 기병과 보병의 연합작전을 펼치다
37. 이기는 맛을 알다
38. 황강 나루를 공격하다
39.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다
40. 진해성에서 또 승리하다
41. 전투는 우리가 맡는다
42. 꼭 승리해 주시오
43. 우리가 이긴다
44. 함께 싸우겠습니다
45. 어서 오라. 적들이여
46. 한 놈도 남기지 마라
47. 170문의 대포가 발사됐다
48. 곧 저들이 물러갈 것이다
49. 일본 가부키에서 조선의 목 없는 귀신이 김시민 목사이다?
50. 님이시여, 이대로 가지 마소서
51.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맺음말
저자
저자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Temple University 정치학과에서 행정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에서 조직론과 리더십론을 강의하고 있고, 주요 연구분야는 사회자본이다. 2015년 신동아 4월호에 행정학 분야 논문인용지수(Korea Citation Index) 1위의 학자로 소개된 바 있다.
주요 논문은 홈페이지(www.socialcapital.re.kr)에 실어 놓았다. 대표저서로는 『사회자본: 불신에서 신뢰로, 갈등에서 협력으로』(2009), 『좋은 정부 나쁜 정부』(2013),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2014) 등이다.
이 책은 2014년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를 저술하면서 역사 속에 묻혀있던 김시민 장군의 공적을 기리고,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우리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쓰게 되었다. 앞으로 2차 진주성전투에서 산화한 5,800명의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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