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이순신(범우희곡선)
[구리 이순신]은 시인 김지하의 극작가와 문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희곡집이다. 책에는 《나뽈레옹 꼬냑》, 《구리 이순신》, 《금관의 예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추할대로 추한 상태로 전락한 당대 한국사회의 지배계층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도전과 응전의 산물이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나뽈레옹 꼬냑》, 《구리 이순신》, 《금관의 예수》
범우희곡선의 하나로 1970년대 초 김지하가 쓴 《나뽈레옹 꼬냑》, 《구리 이순신》, 《금관의 예수》를 묶었다. 여기에 실린 3편의 희곡은 '오적' 등 담시들과 더불어 추할대로 추한 상태로 전락한 당대 한국사회의 지배계층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도전과 응전의 산물이다.
이 희곡들은 시인 김지하의 극작가와 문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1970년대 초반 민족민중문화운동과 연행예술의 역사와 자취를 살펴보는 자료적 성격도 띠고 있다. 이 희곡집에는 또한 시인이 1972년 《다리》지 9월호에 《나뽈레옹 꼬냑》을 발표하면서 직접 그린 삽화들이 실려 있다.
|출판사 서평|
추할대로 추했던 지난 한국사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풍자와 해학
하지만 그 바탕에는 어떤 강렬한 정동情動, '살아 있음'이 있다
여기에 실린 희곡이란 것들은 1970년에서 1974년까지 시도되고 좌절되고 또 혹간은 연행되었던 나의 그 무렵 깃발인 '민족민중문화운동'의 살아 있는 자취들이다. '살아 있는'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대번에 '그것 참 몹시 험하고 거칠구먼' 소리가 나올 법한데 바로 그 점에 '살아 있음'의 바탕이 숨어 있다.
사실 마치 똥처럼 험하고 거칠어서 다시 들여다보기도 싫었다. 허나 열일곱 열여덟쯤의 그 심각하고 중요한 나이에 돋기 시작하는 빨긋빨긋한 여드름이나 듬성듬성한 수염모냥 유치하고 우스꽝스런 이 물건들의 진짜 의미나 숨은 목적은 이 물건들 안에 드러나 있는 너무나 명백한 그 메시지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 물건들에 의해 촉발되고 이 물건들을 휩싸고 있는 이름붙이기 힘든 어떤 강렬한 정동情動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오늘 구태여 이름붙여 '살아 있음'이라고 한다.
- 김지하, 《똥딱기 똥딱 이 장단 사이사이로!》 (김지하 전집3 희곡 《똥딱기 똥딱》) 중에서
1970년대 초 시인 김지하는 '오적'을 비롯한 '앵적가', '비어', '오행', '분씨물어' 등의 담시를 잇따라 발표하는 한편, 《나뽈레옹 꼬냑》(1970), 《구리 이순신》(1971), 《금관의 예수》(1972), 《진오귀》(1973), 《소리굿 아구》(1974) 등 해마다 새로운 희곡을 쓰며 새로운 연극운동을 적극 주도하였다. 여기에 실린 《구리 이순신》, 《금관의 예수》 등의 희곡들은 '오적' 등 담시와 함께 추할대로 추한 상태로 전락한 당대 한국사회의 지배체제와 지배계층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도전과 응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 희곡들은 시인 김지하의 극작가와 문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1970년대 초반 민족민중문화운동과 연행예술의 역사와 자취를 살펴보는 자료적 성격도 띠고 있다. 이 희곡집에는 또한 시인이 1972년 《다리》지 9월호에 《나뽈레옹 꼬냑》을 발표하면서 직접 그린 삽화들이 실려 있다.
나뽈레옹 꼬냑
"《나뽈레옹 꼬냑》은 한마디로 '오줌' 이름이다. 최고급 술 이름을 빙자한 최하급의 더러운 물!
시절이 나에게 그것을 방가放歌하고 있었다."
- 서문 중에서
《나뽈레옹 코냑》은 김지하의 첫 희곡으로 《오적》보다 먼저 쓴 작품이다. 1970년 이화여자대학교 연극반 학생들에 의해 처음 공연되었는데, 김지하가 이 공연의 연출을 맡았으나 공연을 앞두고 《사상계》에 발표한 《오적》으로 구속되어 연출자 없이 공연되었다. 그 후 《다리》지 1972년 9월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통치권자와 관련된 정치 스캔들로 떠들썩했던 '정인숙 살해사건'을 소재로 삼아서 지도층의 사치 방탕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친목계를 붓기 위해 주부가 된 대학 동창생 다섯이 모인다. 동창들은 집주인 모 고관의 부인인 마마의 눈치를 살펴 가며 남편에 관한 이권을 부탁한다. 이들은 당시 최고급 양주로 알려진 나폴레옹 코냑을 마시며 서로의 허영과 사치를 자랑한다. 그러나 마마의 남편 수염 씨가 강변숙(강변에서 죽은 정인숙을 가리킨다) 여인의 스캔들과 관련된 사실이 신문 보도를 통해 밝혀지자 마마의 권위는 몰락하고 이들의 관계는 깨어지고 만다.
구리 이순신
'이순신'이 누구던가?
'장군'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수호자'다. 그러나 그 '이순신'이 구리라면 어찌되는가? 바로 여기서 코미디는 발생한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슬픔이, 민족의 한없는 공포와 슬픔이 태어난다.
- 서문 중에서
《구리 이순신》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연극회의 봄 학기 정기공연 작품으로 채택되어 김지하 연출로 1971년 5월에 공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교련반대시위로 대학에 휴강 조치가 내려져 공연이 무산되었다. 그 후 같은 해 《다리》지 11월호에 발표되었다.
맹장猛將이며 용장勇將이긴 하나, 덕장德將이며 인장仁將이기도 한 이순신 장군, 게다가 고문 뒤 백의종군도 마다하지 않던 이런 온화한 장군에게 왜 무서운 투구와 갑옷을 입히고 무서운 칼을 차게 했느냐고 《구리 이순신》은 묻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만든 이순신 장군의 등에 업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자들을 호되게 질타하고 있다.
가위 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면 초겨울 밤 광화문 네거리에 큰 칼, 큰 눈, 큰 가슴의 이순신 장군이 투구와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서 있다. 술 취한 엿장수는 장군 동상 아래서 독재자의 비호 아래 부자가 된 대도들을 질타하고, 경제 발전의 미명 아래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민중의 한을 노래하며 장군을 원망하게 된다. 엿장수의 원망 소리에 깨어난 이순신 장군은 자신에게 씌워진 답답한 투구와 갑옷을 벗겨달라고 엿장수에게 하소연한다. 장군의 설득으로 엿장수는 이순신 장군 대신 투구와 갑옷을 입고 서 있기 위해 장군의 투구를 제 머리에 쓰는 순간 순경에게 들키고 만다. 엿장수는 순경에게 잡혀 가고 이순신은 다시 동상의 모습으로 굳는다.
금관의 예수
"《구리 이순신》과 비슷한 주제가 기독교 주제로 옮겨갔다."
- 서문 중에서
《금관의 예수》는 최종률 연출로 1972년 1월에서 3월까지 한국 팍스로마나의 크리스천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전국 가톨릭 교구의 지역 본부가 있는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되었다. 이 순회 공연에 참여한 김민기는 이 작품 도입부에 나오는 노랫말에 곡을 붙여 '금관의 예수'라는 동명의 명곡을 완성하였다.
1971년 겨울 한국의 어느 소도시 한 구석, 막이 오르면 지금은 김민기의 곡으로 더 유명해진 노래가 들린다. 피에타의 예수상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곳에서 신부와 수녀가 대화를 한다. 수녀는 신부에게 빈민촌 사창가 철거 반대 데모에 앞장서 달라고 요청하지만 신부는 변명하며 회피한다. 한편 시멘트로 만든 예수상이 보이는 길 한가운데 문둥이와 거지가 등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한다. 예수쟁이가 예수를 팔아먹고 사는 요즘 같은 세상에 진짜 예수는 저기 서 있는 시멘트 예수상이라고 한다. 모두 퇴장한 후 다시 등장한 문둥이는 술 취해 노래를 부르며, 시멘트 예수상을 쳐다보면서 자기 신세 타령을 늘어놓고 말 못 하는 예수상을 나무라다가 그 아래에 쓰러진다. 시멘트 예수상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문둥이의 이마에 떨어져 문둥이는 예수상에 씌워진 금으로 만든 관을 발견하고 그것을 벗겨 내 들고 좋아한다. 그러자 예수상이 입을 열어 답답하고 어둡고 적적한 이 시멘트를 벗겨 내고 금관은 가져가 네 벗들과 함께 나누라고 한다. 이러한 예수의 말을 듣고 예수상에 가까이 가려 할 때 신부와 배때기(사장)와 순경이 나타나서 순경이 금관을 문둥이에게서 빼앗고, 배때기가 순경에게서 빼앗고, 신부가 배때기에게서 빼앗아 예수의 머리 위에 다시 씌워 예수상은 다시 굳어져 버린다.
목차
목차
나뽈레옹 꼬냑
구리 이순신
금관의 예수
해설-천지굿을 여는 마당극 태동의 기록_김석만
작품 연보
저자
저자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