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의 구도자 신채호
Regular price
$20.22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민족주의 역사학자?
우리의 근대 역사학을 완성한 인물. 새로운 역사의식의 초석을 놓았던 선구자. 신채호의 이름에 따라붙곤 하는 말이다. 숱한 그의 작품은 흔히들 ‘민족주의 역사학’의 시작점으로 읽힌다. 널리 알려진 다음 글이 거기에 맞춤한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표현 다음에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민족 정체성 이념이 펼쳐질 만도 하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원대한 민족주의의 이상 세계를 넘겨짚는 세간의 기대와 어긋난다. 그의 논저들 가운데에서 쉽사리 ‘조선 민족’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이름은 좀체 미래의 기대 지평에서 신념과 열정의 공동체 질서와 한 몸을 이루는 형성 동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돌이켜 보건대, 민족주의는 일본어 토양에서 어쩌다가 하나의 번역어로 거듭난 이데올로기 이름이다. 항일 독립에 온몸과 일생을 다했던 신채호의 역사서술을 인종주의 경향성과 더불어 나타난 그 일본 특유의 배타성 개념 현상 속에 가두어 놓아야만 할까.
우리의 근대 역사학을 완성한 인물. 새로운 역사의식의 초석을 놓았던 선구자. 신채호의 이름에 따라붙곤 하는 말이다. 숱한 그의 작품은 흔히들 ‘민족주의 역사학’의 시작점으로 읽힌다. 널리 알려진 다음 글이 거기에 맞춤한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표현 다음에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민족 정체성 이념이 펼쳐질 만도 하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원대한 민족주의의 이상 세계를 넘겨짚는 세간의 기대와 어긋난다. 그의 논저들 가운데에서 쉽사리 ‘조선 민족’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이름은 좀체 미래의 기대 지평에서 신념과 열정의 공동체 질서와 한 몸을 이루는 형성 동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돌이켜 보건대, 민족주의는 일본어 토양에서 어쩌다가 하나의 번역어로 거듭난 이데올로기 이름이다. 항일 독립에 온몸과 일생을 다했던 신채호의 역사서술을 인종주의 경향성과 더불어 나타난 그 일본 특유의 배타성 개념 현상 속에 가두어 놓아야만 할까.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자기주장의 인간학
'아'와 '비아'의 용례는 원래 관념론 철학자 피히테(J. G. Fichte, 1762~1814)의 자아론 텍스트 가운데 들어있는 표현이다. 이를 빌려 신채호는 예사롭지 않은 주관의 지형학을 실험했다고 이를만하다.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이 유별난 물음과 함께 그는 '독립자존'의 역사를 새롭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인간다운 '자기주장'의 성찰 과제를 유추할 수 있다. '자존'과 서로 통하는 그 뜻은 인간에게 어느 현실에서도 견뎌내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설정해주면서 역사의 운명에 매이지 않도록 작용하는 의식 활동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그 가운데 '근대의 정당성', 그러니까 온당한 시대 전환을 뒷받침하는 성찰 규범이 함께한다. 이 땅의 역사 과정에서 설정할 만한 자존의 화신을 무엇이라고 이를 수 있을까? "어찌하여 공자를 높이며, 어찌하여 이단을 배척하라 하는가?" 유례없어 보이는 이 물음 가운데서 새로운 방향설정에 맞닿는 문제의식을 느낄만하다. 신채호가 보기에, 유교와 사대주의 천하에서 핍박의 대상에나 올랐던 원시 상징 자료들, 이를테면 옛적 사람들의 종교 유산이나 단군 설화를 낳았던 우주 광명신(光明神)의 숭배 제례가 새롭게 내세워야만 할 자기주장의 요소에 든다. 극단의 이념 지형에서 파묻히고 말았던 그 '아름다운 이야기'야 말로 그가 되살려내고자 고심했던 글쓰기 과제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셈이다. 그의 사유 실험에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인간 자존의 의식과 생활 방식을 옥죄어 온 역사 속 절대 이념의 반대편이다. 오로지 그 서사 가운데 '독립자존의 주의'가 면면히 생동한다는 점에서, 배척받은 이단의 이야기는 거꾸로 '조선다운 조선'의 역사로 거듭날 수 있다. 신채호의 글쓰기 여정은 그렇듯 '가장 조선답지 않은 것'의 이면에서 자존의 '참조선'을 찾아내려는 구도자의 길이었다.
유럽 역사를 사례로 보자면, 지나치리만큼 극단으로 치우쳤던 절대 신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다움을 깨달을만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 과정의 사유방식에 그 당당함의 근거가 자리한다. 이러한 신기원의 경계 지점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던 근대 인류는 처음으로 자기주장의 의식세계를 펼쳐나갈 만한 힘을 얻는다. 이처럼 스스로 깨쳐나가는 자존의 요청으로부터 정당한 근대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그 시간의 처음이란 새로운 방향설정이라 이를 수 있다. 인간다운 본성의 신기원을 자각하는 과정이 새로움의 특성이라고 이해하면, 유럽 바깥의 문화권에서도 절대 존재에 맞설 만한 자아 성찰의 계기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신뢰의 논제는 보편성과도 같은 현상들, 곧 여러 언어권에 동반하는 다양한 신화들이나 상징체계들 또는 은유의 용례들을 수용하는 한편, 이 원천 요소를 서구 사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자기 보존의 징후로 삼을 만하다. 그 탐색 원리는 바로 우리의 근대성을 질문하는 방법 논증에서 가능성의 실마리나 마찬가지다. 이로부터, 시대 전환을 이끌 만큼 혁명다운 사건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역사 여건 가운데에서도, 유럽식 진보의 부담을 누그러뜨릴 만한 사유의 통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땅의 역사 과정에서 설정할 만한 자존의 화신을 무엇이라고 이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고유한 문화유산이 깊은 성찰의 대상이다. 그 궤적 가운데 유럽 중세기 절대 권능의 하느님 같은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완강한 전통의 이념 지형에 저항했던 모험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어찌하여 공자를 높이며, 어찌하여 이단을 배척하라 하는가?" 유례없어 보이는 이 물음 가운데서 새로운 방향설정에 맞닿는 문제의식을 느낄만하다. 신채호가 보기에, 유교와 사대주의 천하에서 핍박의 대상에나 올랐던 원시 상징 자료들, 이를테면 고대 선교(仙敎)의 흔적이나 단군(壇君) 설화를 낳았던 우주 광명신(光明神)의 숭배 제례가 새롭게 내세워야만 할 자기 보존의 요소에 든다. 극단의 이념 지형에서 파묻히고 말았던 그 '아름다운 이야기'야 말로 그가 되살려내고자 고심했던 글쓰기 과제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셈이다. 그의 사유 실험에서 아름다움이란 도그마의 반대편이다. 오로지 그 서사 가운데 '독립자존의 주의'가 면면히 생동한다는 점에서, 배척받은 이단의 이야기는 거꾸로 '조선다운 조선'의 역사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 본연(本然)의 면목을 가려서 감춘" 주도이념의 역사란 바로 '이교(異敎)', 곧 유교 정신과 사대주의의 '나쁜 풍습'에서 비롯했다는 주장 가운데 인식의 파괴력이 들어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단의 역설이나 매한가지다. 신채호의 글쓰기 여정이 '가장 조선답지 않은 것'의 이면에서 '참조선'을 찾으려는 고행이었다면, 그 길은 모름지기 주류의 자리바꿈에서 시작했어야 마땅할 터이다.
신채호의 역사서술 글귀마다 그렇듯, '망설(妄說)'과도 같은 '노예' 교리에 맞서 '진정한 조선사'를 찾아내려는 굳은 뜻이 선연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때때로 억측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고증의 경계를 넘나든다. 옛적 조선의 '정치체제'가 워낙 빼어난 나머지 "진실로 동양 문명사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땅을 독점하였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과장이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그의 자존 의식은 너무 지나친 나머지 마침내 복고주의 편향에 빠져들고 말았을까? 내친김에 청년 신채호의 신문글 한 조각을 더 읽으면서 맛보기로 문제점을 헤아릴 만하다. "국수(國粹)란 무엇인가? 곧 그 나라의 역사답게 전래하는 풍속, 습관, 법률, 제도 등의 정신이 그것이다." 옛것을 다 버리면, 무엇에 기대어 '국민의 정신을 유지하며,' 무엇으로 '국민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국수를 보전하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로부터 누구든 그야말로 국수주의 애착에 딱 들어맞는 사유의 경향성을 읽어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국수'라는 용례 그 자체에 반전의 의미론이 숨어 있다. 문제의 글을 세심히 읽으면, 그 시절 첨단의 서양 지식에 얽혀 있는 '보전'의 논제가 드러난다. 국가란 '생기(生氣)' 조직체로서 '정신과 형체의 연합'이라는 원리를 낯선 토양에 이식해 준 국가유기체설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담긴 말뜻을 제대로 알려면, 유기체 사유의 원조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텍스트를 먼저 살펴야 옳다. "눈동자와 시력이 눈을 구성하듯, 영혼과 신체가 생명 존재를 구성한다." 이와 같은 생물의 구성원리처럼 '혼이 깃든 신체'를 하나의 전체 구성으로 볼 때, 몸과 정신 또는 지체들과 전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추할만한 사유의 연장이 이루어진다. 이로부터 '생동하는 유기체' 이론이 생성하면서, '국가 정신'과 '국가 신체'의 연합을 뜻하는 '국가 인격성' 개념이 나타난다. 이를 본받은 것으로 보이는 신채호의 '국수'란 말하자면 국가 기관들이나 지체 조직들의 내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국가의 '혼'이나 그 정신을 간결하게 다듬은 표현일 따름이다.
이제 우리는 신채호의 인식 지평에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국수' 논제에서 사례로 나타난 '조종 전래'의 정신 자산이란, 오늘날의 해석학 방법으로 풀이해 보자면, 역사가에게 말을 걸어오면서 그 의미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전통 요소라고 이해할 만하다. 아울러서, 전승 텍스트와 마주하는 탐구자의 관점은 항상 그때그때 상황의 제약을 받는다. 이처럼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란 역사 사실의 설명이 어느 때라도 완결지어질 수 없다는 사정과 함께한다. 역사가는 어쩔 수 없이 역사 존재라는 본성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 연구자의 자기 인식은 아무래도 그 종결 지점에 다다를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탐구자의 넓은 시야를 함축하는 지평 인식의 필요성이 생성한다. 지평이란 역사 존재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탐구자와 더불어 움직이는 역동성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전통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자각할 때 비로소, 역사다운 지평이 그의 인식 가운데 자리한다. 전통의 이해는 그러므로 역사 지평의 이해와 마찬가지다. 이 줄기에서 신채호의 시대 상황과 역사 전승의 이해 조건을 말해주는 표현에 깊이 주목할 수 있다. "정신상 국가만 망하지 않으면, 형식상 국가는 망하였을지라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은 나라이니라." 신채호가 망명의 결심을 다 굳혔을 즈음 나온 글 가운데 한 토막이다. 이제 어쩌다가 홀로 남는 국가의 혼이란 언제라도 지체와 기관들을 되살려낼 수 있는 '불굴(不屈)할 정신' 그 자체라는 설명에서, 마지막 숨결에 다다른 '국가 신체'의 미련 따위는 다 버린 듯한 비장함을 감지할 만하다. 이러한 생기 작용과 꼭 같은 뜻의 '국수'는 신채호의 표현대로 '20세기 신세계 유신주의(惟新主義)'에 알맞은 '정치 풍속'과 '국가 본성'의 미래 희망과 맞닿는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앞으로 나아갈 지평이며, '인민의 공화', '국가의 공권(公權)', '진정한 국가'와 같은 기대의 표현들이 그 공간을 꾸민다.
이렇듯 역사 연구자는 언어를 매개로 전통과 현재 상황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자신의 역동성을 자각하면서 표현한다. 경험 세계를 지칭하는 말과 그 속에 담기는 의미, 그리고 언어 표현과 역사 사실이라는 대칭 관계가 복잡한 다층 성격을 생성하면서 난해한 방법론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해석학의 인식론을 물려받은 개념의 역사학이 거기에 알맞다. 개념이란 지칭 언어와 그 대상 사이의 상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시대 상황에 얽힌 논쟁점, 다툼 가운데 들어있는 미래의 기대,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사회 구성의 내용이 그 안에 섞인다. 이러한 언어 작용을 다루는 개념사 연구는 복합 층위의 언어들이 역사 현장에 남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제를 맡는다. 그것은 곧 과거의 단어 의미를 현재의 이해로 옮겨오는 작업이다. 그 주요 관찰 대상은 개념들의 지속과 변화이다. 말하자면 특정 시대 상황 가운데 지나간 경험을 담았거나 다가올 시간을 내다보는 공포와 희망, 염려와 호기심, 예측과 기대 등등을 품고 있는 자료가 그 해석의 대상이다. 오늘날 개념사 방법의 이정표를 세운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2006)의 설명에 따르면, '진보', '혁명', '문명', '공화주의'와 같은 용례처럼 시간 지평을 표현하는 전망개념들이 변화를 알려주는 요소와 그 변화를 이끄는 추진력을 내재한다. 이러한 의미론의 성격 가운데 언어와 사실 사이의 복합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들의 역사성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개념 해석이란 역사의 이해 과정과 함께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오로지 개개 개념을 통해 올바른 해석에 이를 수 있다. 코젤렉의 말대로, '개념과 역사의 수렴'이 곧 개념사의 주제다.
신채호가 한국 역사학의 역사에서 신기원의 상징과도 같다면, 그의 작품 세계를 빛나게 장식하는 전망개념들이 그러한 평가에 맞춤한 듯 보인다. 그가 스스로 호명했던 '신사씨(新史氏)'는 역사 이해의 지평을 넓히려는 그의 자부심이자 자의식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개념사 방법이 전해주는 발견의 원리대로 한 역사가의 내면 의식을 얼마만큼 엿볼 수 있을지를 헤아려보는 물음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서둘러 미리 밝히자면, 신채호의 글에 자주 나타나는 신생 용어들은 거의 다 번역 과정을 거친 말들이다. 그가 스스로 그 다양한 용례의 유래를 밝히거나 새로운 번역 사례를 만들어 낸 흔적은 감감하다. 그렇더라도 그는 나름대로 시대 상황과 역사가 다운 인식 관심을 조율하기 위해 그 새로운 개념들을 글쓰기에 배치하는 일에서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다. 다음에 보듯,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 가운데서도 미래 기대와 희망을 표현하는 수사법이 그러한 사례에 잘 들어맞는다.
'아'와 '비아'의 용례는 원래 관념론 철학자 피히테(J. G. Fichte, 1762~1814)의 자아론 텍스트 가운데 들어있는 표현이다. 이를 빌려 신채호는 예사롭지 않은 주관의 지형학을 실험했다고 이를만하다.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이 유별난 물음과 함께 그는 '독립자존'의 역사를 새롭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인간다운 '자기주장'의 성찰 과제를 유추할 수 있다. '자존'과 서로 통하는 그 뜻은 인간에게 어느 현실에서도 견뎌내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설정해주면서 역사의 운명에 매이지 않도록 작용하는 의식 활동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그 가운데 '근대의 정당성', 그러니까 온당한 시대 전환을 뒷받침하는 성찰 규범이 함께한다. 이 땅의 역사 과정에서 설정할 만한 자존의 화신을 무엇이라고 이를 수 있을까? "어찌하여 공자를 높이며, 어찌하여 이단을 배척하라 하는가?" 유례없어 보이는 이 물음 가운데서 새로운 방향설정에 맞닿는 문제의식을 느낄만하다. 신채호가 보기에, 유교와 사대주의 천하에서 핍박의 대상에나 올랐던 원시 상징 자료들, 이를테면 옛적 사람들의 종교 유산이나 단군 설화를 낳았던 우주 광명신(光明神)의 숭배 제례가 새롭게 내세워야만 할 자기주장의 요소에 든다. 극단의 이념 지형에서 파묻히고 말았던 그 '아름다운 이야기'야 말로 그가 되살려내고자 고심했던 글쓰기 과제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셈이다. 그의 사유 실험에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인간 자존의 의식과 생활 방식을 옥죄어 온 역사 속 절대 이념의 반대편이다. 오로지 그 서사 가운데 '독립자존의 주의'가 면면히 생동한다는 점에서, 배척받은 이단의 이야기는 거꾸로 '조선다운 조선'의 역사로 거듭날 수 있다. 신채호의 글쓰기 여정은 그렇듯 '가장 조선답지 않은 것'의 이면에서 자존의 '참조선'을 찾아내려는 구도자의 길이었다.
유럽 역사를 사례로 보자면, 지나치리만큼 극단으로 치우쳤던 절대 신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다움을 깨달을만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었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역사 과정의 사유방식에 그 당당함의 근거가 자리한다. 이러한 신기원의 경계 지점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던 근대 인류는 처음으로 자기주장의 의식세계를 펼쳐나갈 만한 힘을 얻는다. 이처럼 스스로 깨쳐나가는 자존의 요청으로부터 정당한 근대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그 시간의 처음이란 새로운 방향설정이라 이를 수 있다. 인간다운 본성의 신기원을 자각하는 과정이 새로움의 특성이라고 이해하면, 유럽 바깥의 문화권에서도 절대 존재에 맞설 만한 자아 성찰의 계기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신뢰의 논제는 보편성과도 같은 현상들, 곧 여러 언어권에 동반하는 다양한 신화들이나 상징체계들 또는 은유의 용례들을 수용하는 한편, 이 원천 요소를 서구 사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자기 보존의 징후로 삼을 만하다. 그 탐색 원리는 바로 우리의 근대성을 질문하는 방법 논증에서 가능성의 실마리나 마찬가지다. 이로부터, 시대 전환을 이끌 만큼 혁명다운 사건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역사 여건 가운데에서도, 유럽식 진보의 부담을 누그러뜨릴 만한 사유의 통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땅의 역사 과정에서 설정할 만한 자존의 화신을 무엇이라고 이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고유한 문화유산이 깊은 성찰의 대상이다. 그 궤적 가운데 유럽 중세기 절대 권능의 하느님 같은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완강한 전통의 이념 지형에 저항했던 모험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어찌하여 공자를 높이며, 어찌하여 이단을 배척하라 하는가?" 유례없어 보이는 이 물음 가운데서 새로운 방향설정에 맞닿는 문제의식을 느낄만하다. 신채호가 보기에, 유교와 사대주의 천하에서 핍박의 대상에나 올랐던 원시 상징 자료들, 이를테면 고대 선교(仙敎)의 흔적이나 단군(壇君) 설화를 낳았던 우주 광명신(光明神)의 숭배 제례가 새롭게 내세워야만 할 자기 보존의 요소에 든다. 극단의 이념 지형에서 파묻히고 말았던 그 '아름다운 이야기'야 말로 그가 되살려내고자 고심했던 글쓰기 과제의 처음이자 끝이었던 셈이다. 그의 사유 실험에서 아름다움이란 도그마의 반대편이다. 오로지 그 서사 가운데 '독립자존의 주의'가 면면히 생동한다는 점에서, 배척받은 이단의 이야기는 거꾸로 '조선다운 조선'의 역사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 본연(本然)의 면목을 가려서 감춘" 주도이념의 역사란 바로 '이교(異敎)', 곧 유교 정신과 사대주의의 '나쁜 풍습'에서 비롯했다는 주장 가운데 인식의 파괴력이 들어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단의 역설이나 매한가지다. 신채호의 글쓰기 여정이 '가장 조선답지 않은 것'의 이면에서 '참조선'을 찾으려는 고행이었다면, 그 길은 모름지기 주류의 자리바꿈에서 시작했어야 마땅할 터이다.
신채호의 역사서술 글귀마다 그렇듯, '망설(妄說)'과도 같은 '노예' 교리에 맞서 '진정한 조선사'를 찾아내려는 굳은 뜻이 선연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때때로 억측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고증의 경계를 넘나든다. 옛적 조선의 '정치체제'가 워낙 빼어난 나머지 "진실로 동양 문명사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땅을 독점하였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과장이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그의 자존 의식은 너무 지나친 나머지 마침내 복고주의 편향에 빠져들고 말았을까? 내친김에 청년 신채호의 신문글 한 조각을 더 읽으면서 맛보기로 문제점을 헤아릴 만하다. "국수(國粹)란 무엇인가? 곧 그 나라의 역사답게 전래하는 풍속, 습관, 법률, 제도 등의 정신이 그것이다." 옛것을 다 버리면, 무엇에 기대어 '국민의 정신을 유지하며,' 무엇으로 '국민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국수를 보전하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로부터 누구든 그야말로 국수주의 애착에 딱 들어맞는 사유의 경향성을 읽어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국수'라는 용례 그 자체에 반전의 의미론이 숨어 있다. 문제의 글을 세심히 읽으면, 그 시절 첨단의 서양 지식에 얽혀 있는 '보전'의 논제가 드러난다. 국가란 '생기(生氣)' 조직체로서 '정신과 형체의 연합'이라는 원리를 낯선 토양에 이식해 준 국가유기체설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담긴 말뜻을 제대로 알려면, 유기체 사유의 원조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텍스트를 먼저 살펴야 옳다. "눈동자와 시력이 눈을 구성하듯, 영혼과 신체가 생명 존재를 구성한다." 이와 같은 생물의 구성원리처럼 '혼이 깃든 신체'를 하나의 전체 구성으로 볼 때, 몸과 정신 또는 지체들과 전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추할만한 사유의 연장이 이루어진다. 이로부터 '생동하는 유기체' 이론이 생성하면서, '국가 정신'과 '국가 신체'의 연합을 뜻하는 '국가 인격성' 개념이 나타난다. 이를 본받은 것으로 보이는 신채호의 '국수'란 말하자면 국가 기관들이나 지체 조직들의 내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국가의 '혼'이나 그 정신을 간결하게 다듬은 표현일 따름이다.
이제 우리는 신채호의 인식 지평에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국수' 논제에서 사례로 나타난 '조종 전래'의 정신 자산이란, 오늘날의 해석학 방법으로 풀이해 보자면, 역사가에게 말을 걸어오면서 그 의미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전통 요소라고 이해할 만하다. 아울러서, 전승 텍스트와 마주하는 탐구자의 관점은 항상 그때그때 상황의 제약을 받는다. 이처럼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란 역사 사실의 설명이 어느 때라도 완결지어질 수 없다는 사정과 함께한다. 역사가는 어쩔 수 없이 역사 존재라는 본성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 연구자의 자기 인식은 아무래도 그 종결 지점에 다다를 수 없다. 바로 여기에서 탐구자의 넓은 시야를 함축하는 지평 인식의 필요성이 생성한다. 지평이란 역사 존재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탐구자와 더불어 움직이는 역동성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전통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자각할 때 비로소, 역사다운 지평이 그의 인식 가운데 자리한다. 전통의 이해는 그러므로 역사 지평의 이해와 마찬가지다. 이 줄기에서 신채호의 시대 상황과 역사 전승의 이해 조건을 말해주는 표현에 깊이 주목할 수 있다. "정신상 국가만 망하지 않으면, 형식상 국가는 망하였을지라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은 나라이니라." 신채호가 망명의 결심을 다 굳혔을 즈음 나온 글 가운데 한 토막이다. 이제 어쩌다가 홀로 남는 국가의 혼이란 언제라도 지체와 기관들을 되살려낼 수 있는 '불굴(不屈)할 정신' 그 자체라는 설명에서, 마지막 숨결에 다다른 '국가 신체'의 미련 따위는 다 버린 듯한 비장함을 감지할 만하다. 이러한 생기 작용과 꼭 같은 뜻의 '국수'는 신채호의 표현대로 '20세기 신세계 유신주의(惟新主義)'에 알맞은 '정치 풍속'과 '국가 본성'의 미래 희망과 맞닿는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앞으로 나아갈 지평이며, '인민의 공화', '국가의 공권(公權)', '진정한 국가'와 같은 기대의 표현들이 그 공간을 꾸민다.
이렇듯 역사 연구자는 언어를 매개로 전통과 현재 상황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자신의 역동성을 자각하면서 표현한다. 경험 세계를 지칭하는 말과 그 속에 담기는 의미, 그리고 언어 표현과 역사 사실이라는 대칭 관계가 복잡한 다층 성격을 생성하면서 난해한 방법론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해석학의 인식론을 물려받은 개념의 역사학이 거기에 알맞다. 개념이란 지칭 언어와 그 대상 사이의 상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시대 상황에 얽힌 논쟁점, 다툼 가운데 들어있는 미래의 기대,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사회 구성의 내용이 그 안에 섞인다. 이러한 언어 작용을 다루는 개념사 연구는 복합 층위의 언어들이 역사 현장에 남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제를 맡는다. 그것은 곧 과거의 단어 의미를 현재의 이해로 옮겨오는 작업이다. 그 주요 관찰 대상은 개념들의 지속과 변화이다. 말하자면 특정 시대 상황 가운데 지나간 경험을 담았거나 다가올 시간을 내다보는 공포와 희망, 염려와 호기심, 예측과 기대 등등을 품고 있는 자료가 그 해석의 대상이다. 오늘날 개념사 방법의 이정표를 세운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2006)의 설명에 따르면, '진보', '혁명', '문명', '공화주의'와 같은 용례처럼 시간 지평을 표현하는 전망개념들이 변화를 알려주는 요소와 그 변화를 이끄는 추진력을 내재한다. 이러한 의미론의 성격 가운데 언어와 사실 사이의 복합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들의 역사성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개념 해석이란 역사의 이해 과정과 함께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오로지 개개 개념을 통해 올바른 해석에 이를 수 있다. 코젤렉의 말대로, '개념과 역사의 수렴'이 곧 개념사의 주제다.
신채호가 한국 역사학의 역사에서 신기원의 상징과도 같다면, 그의 작품 세계를 빛나게 장식하는 전망개념들이 그러한 평가에 맞춤한 듯 보인다. 그가 스스로 호명했던 '신사씨(新史氏)'는 역사 이해의 지평을 넓히려는 그의 자부심이자 자의식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개념사 방법이 전해주는 발견의 원리대로 한 역사가의 내면 의식을 얼마만큼 엿볼 수 있을지를 헤아려보는 물음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서둘러 미리 밝히자면, 신채호의 글에 자주 나타나는 신생 용어들은 거의 다 번역 과정을 거친 말들이다. 그가 스스로 그 다양한 용례의 유래를 밝히거나 새로운 번역 사례를 만들어 낸 흔적은 감감하다. 그렇더라도 그는 나름대로 시대 상황과 역사가 다운 인식 관심을 조율하기 위해 그 새로운 개념들을 글쓰기에 배치하는 일에서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다. 다음에 보듯,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 가운데서도 미래 기대와 희망을 표현하는 수사법이 그러한 사례에 잘 들어맞는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ㆍ5
서설 13
제1장 서양 지식 25
1. 진화설ㆍ25
낯선 언어 세계 25/ 량치차오 33/ 스펜서 41/ 강권론 49
2. 인민의 공화ㆍ53
진화와 퇴화 53/ 유기체 국가론 61/ 국수 74
제2장 민족의 뿌리 87
1. 정신상 국가ㆍ87
망명길 87/ 고토 답사 91/ 민족정신 98
2. 박래품 민족ㆍ109
일본어 번역 109/ 민족성 원리 120
3. 신성한 부여족ㆍ131
동국 주족 131/ 종족 정체성 142
제3장 새로운 시간 161
1. 희미한 근대ㆍ161
역사 시간의 동학 161/ 문명의 진보? 171
2. 정당한 근대성ㆍ184
경계선 184/ 인간다운 자기주장 191
3. 새로운 방향 설정ㆍ200
'아'와 '비아'의 투쟁 200/ 고유의 독립사상 215/ 아름다운 이야기 227
제4장 이단의 역설 235
1. 사대주의ㆍ235
기자 전설 235/ 김부식 242/ 토착하는 소중화 255
2. 광명신ㆍ272
정복 군주? 272/ 수림 신단의 단군들 277/ 창세신화 285/ 가공품 전설 293/ 자존의 신화 해석 304
참고문헌ㆍ310
찾아보기ㆍ321
서설 13
제1장 서양 지식 25
1. 진화설ㆍ25
낯선 언어 세계 25/ 량치차오 33/ 스펜서 41/ 강권론 49
2. 인민의 공화ㆍ53
진화와 퇴화 53/ 유기체 국가론 61/ 국수 74
제2장 민족의 뿌리 87
1. 정신상 국가ㆍ87
망명길 87/ 고토 답사 91/ 민족정신 98
2. 박래품 민족ㆍ109
일본어 번역 109/ 민족성 원리 120
3. 신성한 부여족ㆍ131
동국 주족 131/ 종족 정체성 142
제3장 새로운 시간 161
1. 희미한 근대ㆍ161
역사 시간의 동학 161/ 문명의 진보? 171
2. 정당한 근대성ㆍ184
경계선 184/ 인간다운 자기주장 191
3. 새로운 방향 설정ㆍ200
'아'와 '비아'의 투쟁 200/ 고유의 독립사상 215/ 아름다운 이야기 227
제4장 이단의 역설 235
1. 사대주의ㆍ235
기자 전설 235/ 김부식 242/ 토착하는 소중화 255
2. 광명신ㆍ272
정복 군주? 272/ 수림 신단의 단군들 277/ 창세신화 285/ 가공품 전설 293/ 자존의 신화 해석 304
참고문헌ㆍ310
찾아보기ㆍ321
저자
저자
박근갑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