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백 치고 안녕
박장호 산문집
정신으로 감행한 육체의 모험을 기록하다 『샌드백 치고 안녕』은 생애의 전환기에 막 들어선 한 섬세한 시인이 자신의 나태한 현실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정신으로 감행한 육체의 모험을 기록한 전작 에세이집이다. 저자인 시인 박장호는 마흔 살이었던 2년 전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쇠락한 육체의 비루함을 발견하고 복싱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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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제 멜라닌과 헤어질 일만 남은 것인가.'
내가 살아온 화분 속의 흙은 양분이 고갈된 게 분명했습니다. 화분을 갈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p.16)
새벽의 각성 끝에 시인은 '슈가복싱클럽'에 등록, 7개월간 치열하게 나태한 관습에 젖어 있던 자신의 일상을 흔들어 깨우며 체계적으로 복싱을 수련한다. 이 책에 모인 산문은 그러니까 복싱 체육관 안에서 순간순간 살갗에 따갑게 와닿던 상대방의 주먹(감각)과 턱밑까지 차올랐던 숨소리(의식)로 표상되는 수련과 성찰을 치러낸 특별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시인이건 목수건 혹은 권투선수건 회사원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육체의 쇠락을 경험한다. 그런데, 육체의 쇠락은 점진적이라는 측면에서 경험되어진다기보다는 어느 날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혈기가 방장해서 돌멩이라도 소화시킬 것 같은 젊음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청춘이 봄눈 녹듯 차츰차츰 스러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것도 조금씩 부담스러워진다. 말이나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던 몸이 이제는 명령을 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자기 자신의 육체만큼 구체적인 정보와 감각으로 일깨워주는 게 또 있을까. 실제로 예방의학이나 보건의학의 관점에서 마흔 살을 생애전환기로 간주하고 40세 이후부터는 건강검진의 항목을 더욱 구체화하고 전문화하길 권장한다.
세계를 흔들어서 자신을 깨우기
시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 영혼을 유달리 흠모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예외 없는 나르시시스트이다. 그들은 제 영혼을 거울에, 투명한 대상에 자주 비춰본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육체는 무엇일까. 육체는 영혼의 거푸집이랄 수 있다. 제 영혼의 거처로서 육체는 시인에게 감각적인 관찰과 소구의 대상이 된다. 자신이 흠모하는 영혼을 아름다운 육체에 거주시키려는 욕망은 시인에게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영혼이나 정신 같은 것과는 달리, 육체는 물리적 조건에 매우 취약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육체의 기능은 쇠락하고 젊음의 표상이었던 시각적 기표들도 변화한다. 머리칼이 빠지고, 새치가 늘고, 없던 주름이 생긴다. 노화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젊음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아니 노화를 조금이라도 더디게 하기 위해 다양한 대처를 한다.
육체의 유한성을 깨닫는 것은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의 질서를 비로소 조응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때 박장호 시인이 선택한 것은 그 질서에 항복하듯 순응하기보다는 한번쯤 그 질서를 반역하고 흔들고 깨뜨려보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가 은연중에 강요한 원리에 줄곧 무기력했던 자기 자신을 흔들고 깨뜨리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표제에 쓰인 '샌드백'은, 시인이 깨뜨리고 싶은 이 세계의 폭압적인 구성원리, 그리고 자신을 구속했던 소시민적 관성, 나태하고 게을렀던 현실을 가리키는 물성적 상징일 수밖에 없다.
"관장님의 지도에 따라 거울 속으로 한 방씩 잽을 던졌습니다. 폼은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투지가 솟았습니다. 나를 방치한 게으름과 나를 회피한 비겁과 내가 관리하지 못한 스트레스와 진취적이지 못한 생활 태도를 모두 날려버리고 싶었습니다. 주먹을 뻗으면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주먹에 가려졌습니다. 주먹을 회수하면 잽을 맞고 일그러진 얼굴, 실제로는 지쳐서 일그러진 내 얼굴이 다시 보였습니다.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무기력한 얼굴. 주먹을 회수한 뒤에 나타나는 얼굴에 생기가 돌면 내가 나를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얼굴이 갈수록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오늘은 내게 완패했습니다."(p.37)
위트와 해학이 어우러진 박장호체 산문
박장호 시인은 등단작 「11월의 비」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시문법을 선보이며 문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은 시인이다. 그가 그동안 얼마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시문법을 창조해왔는지에 대해선 시단의 동료들 사이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상재했는데 이 두 권의 시집이 모두 문단 동료와 평자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결국 그는 대산창작기금(2007년)과 박인환문학상(2013년)을 받으면서 시단의 주목과 기대에 값하는 성과를 냈다.
그로서는 첫 번째 산문집이 되는 이 책에서 박장호 시인은 특유의 따뜻하고 진솔한 위트와 해학이 어우러진 산문을 선보인다. 그의 산문은 타인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기 안으로만 끝없이 침잠하지도 않는다. 이 세계를 단호한 말로 단정 짓고 비판하거나 섣불리 전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산문은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머뭇거리는 자의 언어가 그러하듯,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건네고 싶은 대화를 충분히 예열하는 온기의 겸손을 지닌다. 그동안 그가 써온 시가 신동옥 시인의 해석처럼 "신체의 자기 증명"을 통해 자신만의 독백적 세계를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라면 그는 산문을 통해서는 타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먼저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그것을 전거 삼아 타자적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그는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산문의 형식을 빌어 세계를 대상화하고 자신만의 관계 접속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예순다섯 꼭지의 산문은 대화-자신과 나누는 대화와 타인과 나누는 대화-가 끊임없이 변주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산문집이 복싱의 수련 과정을 중요한 제재로 다루고 있다고 해서 마치 교범처럼 그 기술적 공정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해다. 복싱이라는 가장 격렬한 감각적 충격을 받아들이는 운동을 통해 시인은 삶의 본질을 환유적으로 대비시켜 현실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 감각으로 이 세계의 작동 원리를 받아들이면서 이를 삶을 성찰하는 사유의 질료로까지 끌어올리는 새로운 산문의 감수성을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육체가 매우 견고하게 단련되면 육체엔 심리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반사 감각만 남을지도 모릅니다. 반사적으로 피하고 반사적으로 공격하고. 그런 사람을 전문가라 부르겠지요. 지식을 다루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지식이 감각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까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상식과 합리성을 벗어난 길을 가게 되면 반사적으로 법을 피하고 반사적으로 약자를 공격하고 결국엔 나쁜 권력과 결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폭력입니다.
나는 육체와 심리가 결탁한 주먹으로 힘없는 샌드백에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가요. 나는 샌드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눈코입이 생기기 전의 내 얼굴? 나는 내 최초의 얼굴에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 이후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나 나는 전문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얼굴은 다치지 않습니다."(p.132)
목차
목차
라운드 1 땀은 진취 눈물은 도취
01 마흔 / 02 체육관을 찾아서 / 03 17번 올빼미, 붕대를 감다 / 04 거울 속에 날린 최초의 펀치
05 샌드백의 웃음소리 / 06 처음 보는 스파링, 베개 싸움 / 07 전진하는 몸과 마음
08 원 펀치와 투 펀치 사이에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 09 흔들리는 샌드백, 샌드백 시학
10 땀은 진취 눈물은 도취 / 11 구성되는 몸 / 12 기상천외한 체중 감량
라운드 2 두려움과 벌이는 난타전
01 마닐라의 전율과 첫 번째 위기 / 02 지식인의 스파링, 토론 / 03 복서의 담배, 시인의 담배, 체 게바라 라이터
04 멕시칸, 멕시칸, 멕시칸 / 05 뼈를 향한 소리 없는 전진 / 06 핸디캡을 요리하는 주방장 / 07 두려움과 벌이는 난타전
08 사라지는 통증들 / 09 관장본색 / 10 첫 번째 스파링, 사슴 청년과의 만남
라운드 3 우울한 감정의 프로
01 체육관은 좁지만 고수는 널렸다/ 02 원 스윙 투 펀치 팔랑이 스트레이트 / 03 나에게 넘어온 공
04 육체적인 심리, 심리적인 육체, 비전문적 펀치 / 05 우울한 녀석의 등장, 링 위엔 친구가 없다
06 전염된 우울이 일깨운 폭력성 / 07 모종의 합의, 탐색전을 펼쳐라 / 08 친구라는 이름의 구속
09 우울한 감정의 프로 / 10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운드 4 미용사 S와 MR. G의 페이스오프
01 해보지 않은 것을 하려면 해보지 않은 것을 하라/ 02 번뇌에 빠진 40대 훈련생 / 03 샌드백은 너의 얼굴
04 악전고투, 너나 나나 / 05 미용사 S와 Mr. G의 페이스오프 / 06 복면 좀 씁시다 / 07 꿈에 그리던 로프 반동
08 입술에 핀 붉은 장미 / 09 혼자 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은 혼자 있어야 한다 / 10 아듀 2015, 아듀 미용사 S
라운드 5 내 얼굴에 소속된 당신의 펀치
01 젖은 노을 속으로 날리는 펀치, 펀치 드렁크 / 02 오답 전문 인생 / 03 내 얼굴에 소속된 당신의 펀치
04 사라진 만화의 시대 / 05 사슴을 살리는 건 공포심이다 / 06 몸에 맞는 옷, 옷에 맞는 몸
07 맞아주는 타깃은 없다 / 08 펀치엔 나이가 없다 1 / 09 펀치엔 나이가 없다 2
라운드 6 라커에 남은 이름
01 두뇌는 장식용이 아니지만 / 02 슬럼프의 시작 / 03 허무한 자학의 힘 / 04 지속되는 슬럼프
05 나의 애드리안 / 06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07 사슴 청년의 퇴장, 내 이름이 뭐라고?
08 활기찬 소망 / 09 출발하는 사람들 / 10 공, 공, 공 / 11 이별 이브 / 12 라커에 남은 이름
라운드 7 에필로그_ 사라진 라운드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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