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이창복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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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의 한 줄 한 줄을 살아낸
두려움 없는 삶…!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이창복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는 그가 고향인 원주에서 지역사회운동을 시작해 이후 노동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전 과정을 돌아보며 기록한 회고록이다. 이 회고록에는 1938년생인 이창복이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로 경험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십 대부터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온 장일순 선생, 함석헌 선생, 이후 지학순 주교과의 인연, 가출청소년들과 다리 밑에서 함께한 5년간의 공동생활기는 물론, 1970년대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몸담았던 가톨릭노동청년회(JOC), 1980년대의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1990년대의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 재야운동단체에서의 생생한 활동사가 담겼다. 또한 그가 2000년 제16대 원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실정치에서 활약하던 시기도 포함되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는 이렇듯 해방 즈음에서부터, 대한민국 역사의 한 줄 한 줄이 쓰이던 격동의 그 시간, 그 공간을 두려움 없이 살아낸 한 인물이 자기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인 동시에, 지난 80여 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역사를 조목조목 풀어내는 연대기이다. 저자 이창복의 인생을 바꾼 크고 작은 만남과 사건들이 나아가 우리 역사에 변화의 물꼬를 튼 감동적인 국면들을 짚어보면서 독자들은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을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가질 것이다. 네 차례의 옥살이 기간을 비롯해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도 돌보지 못했던 평생을 물심양면으로 살펴준 아내와 어머니, ‘옳은 일은 끝까지 주장하라’는 말로 힘을 주었던 아버지, 수많은 어려운 위기를 함께했던 동지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가슴 저리게 떠올리며 펴낸 이 회고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한 사람의 눈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그려보도록 촉구한다.
글로써 늘어놓으니 제법 그럴듯하지만, 이즈음에 자꾸만 드는 생각은 그와 반대되는 것들뿐이다. 그간 도대체 무엇을 해왔나 싶은 아쉬움이다. 바삐 살아왔지만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것만 같은 안타까움이다. 이 나이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회한일까. 어쩔 것인가. 아직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불쏘시개 삼아 더욱 힘을 낼밖에._본문에서
두려움 없는 삶…!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이창복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는 그가 고향인 원주에서 지역사회운동을 시작해 이후 노동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전 과정을 돌아보며 기록한 회고록이다. 이 회고록에는 1938년생인 이창복이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로 경험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십 대부터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온 장일순 선생, 함석헌 선생, 이후 지학순 주교과의 인연, 가출청소년들과 다리 밑에서 함께한 5년간의 공동생활기는 물론, 1970년대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몸담았던 가톨릭노동청년회(JOC), 1980년대의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1990년대의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 재야운동단체에서의 생생한 활동사가 담겼다. 또한 그가 2000년 제16대 원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실정치에서 활약하던 시기도 포함되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는 이렇듯 해방 즈음에서부터, 대한민국 역사의 한 줄 한 줄이 쓰이던 격동의 그 시간, 그 공간을 두려움 없이 살아낸 한 인물이 자기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인 동시에, 지난 80여 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역사를 조목조목 풀어내는 연대기이다. 저자 이창복의 인생을 바꾼 크고 작은 만남과 사건들이 나아가 우리 역사에 변화의 물꼬를 튼 감동적인 국면들을 짚어보면서 독자들은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을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가질 것이다. 네 차례의 옥살이 기간을 비롯해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도 돌보지 못했던 평생을 물심양면으로 살펴준 아내와 어머니, ‘옳은 일은 끝까지 주장하라’는 말로 힘을 주었던 아버지, 수많은 어려운 위기를 함께했던 동지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가슴 저리게 떠올리며 펴낸 이 회고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한 사람의 눈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그려보도록 촉구한다.
글로써 늘어놓으니 제법 그럴듯하지만, 이즈음에 자꾸만 드는 생각은 그와 반대되는 것들뿐이다. 그간 도대체 무엇을 해왔나 싶은 아쉬움이다. 바삐 살아왔지만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것만 같은 안타까움이다. 이 나이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회한일까. 어쩔 것인가. 아직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불쏘시개 삼아 더욱 힘을 낼밖에.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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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지역을 바탕으로 지역민을 위해 지역민과 함께하는 삶
일찍부터 함석헌 선생, 유달영 선생의 '농촌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공감했던 이창복은 스무 살 때 농촌 청년들을 모아 농촌지역개발, 농축산업의 현대화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열었다. 농촌교육에 대해 제대로 배우기 위해, 재학 중이던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원주 쌍다리 밑에서 가출청소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자활을 도왔다. 그들은 대부분 노동자 가정의 자녀들로, 좁은 집에서 습관처럼 구박받다가, 또는 무관심하게 방치되다가,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아이들이었다. 결국 가출청소년을 선도한다는 일은 노동자가 잘살 수 있도록, 노동자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주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나중에 이창복에게, 노동운동에 더 헌신하게 하는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나중에 김대중 대통령의 거듭되는 요청을 받아들여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원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현실정치에서 활약하는 동안에도 원주의 숙원사업이던 중앙선 전철 복선화 사업, 군수지원사령부 이전 사업을 이뤄내는 첫 문을 열었다. 또한 1999년부터 매해 개최되고 있는 원주한지문화제의 초대 위원장으로 지역 축제의 기반을 닦아, 이후 전 세계 전통종이와 관련 산업을 한자리에 모으는 글로벌한 행사로 자리 잡게 했다.
격동의 시간을 관통해 미래로
1970년대가 태동할 즈음, 30대에 들어선 이창복은 지학순 주교의 천거로 가톨릭노동청년회의 전국회장이 되어 신앙을 바탕으로 한 청년노동운동을 이끌어갔고 1976년부터는 사회선교협의회 소속으로 8년간 활동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민통련 사무국장, 전민련 상임의장, 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역사적 현장들을, 네 차례 수감된 총 5년의 기간을 제외하고, 최전선에서 살아냈다. 2004년 1월 국회의원 임기 말에 불출마선언을 하고 현실정치에서 물러난 뒤에는, 줄곧 통일운동에 헌신해 2013년부터 6.15 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의장으로, 2022년부터 평화통일 강원포럼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우리말로 옮기고 쉽게 설명을 곁들인 노동자수첩 2만 부를 만들어 배포한 일, 재야인사와 교회가 힘을 합쳐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라는 이름으로 발족한 일, YWCA 위장결혼식, 1980년 광주의 일을 기록한 『찢어진 깃폭』을 출간한 일, 전태일기념관을 만들고 『전태일 평전』을 출간한 일, 지학순 주교와의 각별한 인연,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한 통일운동, 1987년 대선 후의 비판을 감당하고 고독하게 자리를 지킨 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를 북쪽에 제안하고 추진했으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 일 등이 이 책에 회고된다. 대한민국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의 목소리로 이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다.
일찍부터 함석헌 선생, 유달영 선생의 '농촌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공감했던 이창복은 스무 살 때 농촌 청년들을 모아 농촌지역개발, 농축산업의 현대화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열었다. 농촌교육에 대해 제대로 배우기 위해, 재학 중이던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원주 쌍다리 밑에서 가출청소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자활을 도왔다. 그들은 대부분 노동자 가정의 자녀들로, 좁은 집에서 습관처럼 구박받다가, 또는 무관심하게 방치되다가,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아이들이었다. 결국 가출청소년을 선도한다는 일은 노동자가 잘살 수 있도록, 노동자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주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나중에 이창복에게, 노동운동에 더 헌신하게 하는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나중에 김대중 대통령의 거듭되는 요청을 받아들여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원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현실정치에서 활약하는 동안에도 원주의 숙원사업이던 중앙선 전철 복선화 사업, 군수지원사령부 이전 사업을 이뤄내는 첫 문을 열었다. 또한 1999년부터 매해 개최되고 있는 원주한지문화제의 초대 위원장으로 지역 축제의 기반을 닦아, 이후 전 세계 전통종이와 관련 산업을 한자리에 모으는 글로벌한 행사로 자리 잡게 했다.
격동의 시간을 관통해 미래로
1970년대가 태동할 즈음, 30대에 들어선 이창복은 지학순 주교의 천거로 가톨릭노동청년회의 전국회장이 되어 신앙을 바탕으로 한 청년노동운동을 이끌어갔고 1976년부터는 사회선교협의회 소속으로 8년간 활동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민통련 사무국장, 전민련 상임의장, 전국연합 상임의장으로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역사적 현장들을, 네 차례 수감된 총 5년의 기간을 제외하고, 최전선에서 살아냈다. 2004년 1월 국회의원 임기 말에 불출마선언을 하고 현실정치에서 물러난 뒤에는, 줄곧 통일운동에 헌신해 2013년부터 6.15 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의장으로, 2022년부터 평화통일 강원포럼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우리말로 옮기고 쉽게 설명을 곁들인 노동자수첩 2만 부를 만들어 배포한 일, 재야인사와 교회가 힘을 합쳐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라는 이름으로 발족한 일, YWCA 위장결혼식, 1980년 광주의 일을 기록한 『찢어진 깃폭』을 출간한 일, 전태일기념관을 만들고 『전태일 평전』을 출간한 일, 지학순 주교와의 각별한 인연,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한 통일운동, 1987년 대선 후의 비판을 감당하고 고독하게 자리를 지킨 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를 북쪽에 제안하고 추진했으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 일 등이 이 책에 회고된다. 대한민국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의 목소리로 이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다.
목차
목차
들어가는 말
나의 살던 고향 원주
고향과 유년의 기억
이창복 학생의 말이 맞습니다
인생의 이정표, 마음의 스승
농촌에 대한 믿음이 삶을 움직이다
일본 유학으로 배운 것
쌍다리 밑 아이들과 함께하는 길
깡통 안에 든 밥
가장 낮은 곳의 일상적 삶
아편중독자들을 몰아내다
자활의 험난한 여정, 그리고 인연
두려움 없는 믿음으로 시대를 껴안다
성당과 함께 청년노동자들과 함께
1970년대의 바람에 휩쓸리다
어둠의 시대의 사람들
민주주의 열망의 마음을 집대성하다
비상계엄과 위장결혼식
1980년의 그때 그곳 그 기록
독립운동 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청계천의 노동자들
재야를 함께 산 사람들
1987의 파도와 이후의 고독
네 차례의 옥중생활
뿌리 깊은 나무로 세상에 우뚝 서다
최악의 사법 범죄, 유서대필 조작 사건
남·북·해외의 민간을 한자리에 모으자
재야단체와 통일운동의 역사
국민승리21의 실패와 교훈
현실정치판에 뛰어들다
나의 아내 배윤경
국회의원의 지역사업이라는 것
우리 정치에 희망은 있는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며
고민 끝의 불출마선언과 다음 과제
준비하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
대북정책의 우여곡절
장면 1, 한 화면 안에 담긴 남북 정상
장면 2, 평양에서 만난 민간 대표들
장면 3,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힘들
평창올림픽에 대한 기억
진정한 동맹은 누구인가
통일운동의 어제, 오늘, 내일
원주 한지와 인연을 맺다
유럽으로 진출한 한지문화제
한지의 생명력과 향기
대결의 시대의 막을 내리자
이 시대의 마지막 재야
나의 살던 고향 원주
고향과 유년의 기억
이창복 학생의 말이 맞습니다
인생의 이정표, 마음의 스승
농촌에 대한 믿음이 삶을 움직이다
일본 유학으로 배운 것
쌍다리 밑 아이들과 함께하는 길
깡통 안에 든 밥
가장 낮은 곳의 일상적 삶
아편중독자들을 몰아내다
자활의 험난한 여정, 그리고 인연
두려움 없는 믿음으로 시대를 껴안다
성당과 함께 청년노동자들과 함께
1970년대의 바람에 휩쓸리다
어둠의 시대의 사람들
민주주의 열망의 마음을 집대성하다
비상계엄과 위장결혼식
1980년의 그때 그곳 그 기록
독립운동 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청계천의 노동자들
재야를 함께 산 사람들
1987의 파도와 이후의 고독
네 차례의 옥중생활
뿌리 깊은 나무로 세상에 우뚝 서다
최악의 사법 범죄, 유서대필 조작 사건
남·북·해외의 민간을 한자리에 모으자
재야단체와 통일운동의 역사
국민승리21의 실패와 교훈
현실정치판에 뛰어들다
나의 아내 배윤경
국회의원의 지역사업이라는 것
우리 정치에 희망은 있는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며
고민 끝의 불출마선언과 다음 과제
준비하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
대북정책의 우여곡절
장면 1, 한 화면 안에 담긴 남북 정상
장면 2, 평양에서 만난 민간 대표들
장면 3,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힘들
평창올림픽에 대한 기억
진정한 동맹은 누구인가
통일운동의 어제, 오늘, 내일
원주 한지와 인연을 맺다
유럽으로 진출한 한지문화제
한지의 생명력과 향기
대결의 시대의 막을 내리자
이 시대의 마지막 재야
저자
저자
이창복
1938년 강원도 원주군 지정면 간현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맞이했고 초등학교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 원주중학교,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일본에 가서 농촌교육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학하고 난 뒤 원주대학교(지금의 상지대학교)에서 지역사회개발, 농촌사회학 등을 강의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원주 쌍다리 밑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숙식하며 그들의 자활을 지원했다.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의 천거로 1971년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전국회장을 맡아 신앙에 기반한 청년노동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국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상임의장 등을 맡아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역사적 현장들을, 네 차례 수감된 총 5년의 기간을 제외하고, 최전선에서 살아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제16대 국회의원(원주 지역구)으로 당선되어 현실정치에서 활약했고 임기 말 불출마 선언 뒤 물러났다. 2013년부터 6.15 남북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의장으로, 2022년부터 평화통일 강원포럼 상임대표로 통일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신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펴낸 책으로 『쌍다리 밑의 신화』(1981)와 『세기의 길목에서』(199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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