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정념들
인식론, 신학, 정치학: 에크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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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최고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이자,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수행한 지적 여정의 총결산
● 진리의 역사, 이단점, 현행성이라는 세 꼭짓점으로 구성된 진리의 삼각형을 통한 사실과 가치, 앎과 삶 등 일체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
“현실적인 것에 대한 인식은 현실적인 것의 인식일 뿐이어서 사전(事前)에 현실적인 것에 속하므로, 현실적인 것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조건하에서만 현실적인 것에 무엇인가를 덧붙이며, 일단 산출된 후에는 아주 정당하게 현실적인 것으로 돌아가고 현실적인 것 속에서 사라진다.”
- 루이 알튀세르, 「아미앵의 변론」 중에서
『개념의 정념들』은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출발해 알튀세르 이후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이른 현존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논문 선집 가운데 ‘철학’에 관한 논문 선집이다.
총 여섯 권으로 예정된, 그리고 『개념의 정념들』을 포함해 이미 세 권이 출간된 발리바르의 ‘에크리’ 시리즈는 발리바르의 평생의 작업 전체를 정리하는 기획이다. 특히 『개념의 정념들』은, ‘철학자’ 발리바르의 ‘철학’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인식론, 신학, 정치학’을 정리하는 논문 선집답게, 발리바르의 지적-정념적 여정 전체의 마침표를 찍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개념의 정념들』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가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자 또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철학자 그 자체로서 자신이 어떠한 관점으로 인간, 사회, 세계, 그러니까 존재와 역사를 바라보고 사유하는지를 확언하는 논문 선집, 그의 지적 유언장이다.
1. 현재에서 전개되는 활동과 기획, 곧 현행성의 철학
현대 프랑스 철학의 무대에서 발리바르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의 철학 체계를 세우기를 거부하고 정세 내에서 사유하면서 현행성을 철학의 대상으로 취해 주체의 예속화의 원환을 담론적 역설 속에서 전위시키는 철학적 글쓰기를 하나의 정치적 개입으로서 수행했기 때문이다. 발리바르는 좁게는 포스트-구조주의, 넓게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본령에 충실하게 과학과 혁명, 인식과 비판, 이론과 실천, 임상과 지식, 사실과 가치, 대상과 문제, 앎과 삶의 이분법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한 명의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현행적’이라는 것이 “현재에서 전개되는 활동과 기획에 관련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모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힘을 다해서 이 활동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자신의 삶과 글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현행성이라는 철학적 관념의, 정세라는 정치적 관념의 핵심일 텐데, 알튀세르와 동일하게 발리바르는 정세가 자신의 사유를 인도하는 것을, 더 나아가서는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면서도, 어떠한 ‘정답’이 자신의 사유를 인도하는 것은 끈질기게 거부했다. 진리라는 이름의 이러한 정답을 거부하고 현행성이 이끄는 방향으로 자신의 사유가 나아가도록 내버려둠으로써, 정세와 현행성에 자신의 몸과 생각을 전적으로 맡기면서, 발리바르는 다른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과 함께, 하지만 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리라는 개념 자체를 정념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갱신했다.
2. 왜 완결적인 단행본 작품이 아닌 논문 선집인가?
한국 사회의 이론적 지형에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와 더불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마르크스주의는 물론이고, 철학의 아포리아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바르는 그의 스승인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한 권의 체계적인 저작을 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한 입문서인 『마르크스의 철학』을 제외하면 체계적인 저작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심지어 발리바르는 회고 글에서 지금의 자신이라면 『마르크스의 철학』 같은 체계적 저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실제로, 발리바르는 그간 집필했던 논문들을 모아 논문 선집을 출간하는 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항상 전개해 왔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는 『우리, 유럽의 시민들?』(후마니타스, 2010)와 『정치체에 대한 권리』(후마니타스, 2011) 등이 있다. 이런 선집들은 발리바르가 하나의 저작을 쓸 능력이 없음을, 그러니까 하나의 인식론, 더 나아가 존재론을 구성할 능력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앞의 두 저작에서도 그렇지만, 『개념의 정념들』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더더욱 그렇게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전체로서의 『개념의 정념들』을 통해 발리바르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철학적 글쓰기란 정세의 요청에 의해 현행성 내에서 하나의 정치적 개입으로서 하지만 물론 담론적 역설의 양태 아래 사건과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라는 점, 그래서 철학적 글쓰기는 그 정념으로 인해 체계적일 수 없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개념의 정념들』은 발리바르가 평생 ‘이끌어 온’, 아니 자신조차 누구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몰랐으므로, 평생을 ‘바친’ 이러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텍스트다. 알튀세르에 이끌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지적 이력을 시작했지만, 알튀세르와 함께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였고,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가 진리가 아님을 혹은 마르크스주의가 그가 생각했던 의미의 진리는 아니었음을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깨달은 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사상들의 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병법에서 말하듯 적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사유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파괴하고자 적의 곁에서 사유하기 위해서 말이다.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를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반해 사유했던 은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와 대결하기 위해, 그래서 필요하다면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바깥에서 사유했다. 발리바르에게는 마르크스주의조차, 더 나아가서는 프랑스 철학조차 사유의 준거점일 수 없었다. 발리바르는 또 한 명의 배신자일까? 사실 발리바르는 사유의 준거점이라는 관념 자체를 갱신한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 진리의 역사, 이단점, 현행성이라는 세 꼭짓점으로 구성된 진리의 삼각형을 통한 사실과 가치, 앎과 삶 등 일체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
“현실적인 것에 대한 인식은 현실적인 것의 인식일 뿐이어서 사전(事前)에 현실적인 것에 속하므로, 현실적인 것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조건하에서만 현실적인 것에 무엇인가를 덧붙이며, 일단 산출된 후에는 아주 정당하게 현실적인 것으로 돌아가고 현실적인 것 속에서 사라진다.”
- 루이 알튀세르, 「아미앵의 변론」 중에서
『개념의 정념들』은 루이 알튀세르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출발해 알튀세르 이후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이른 현존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논문 선집 가운데 ‘철학’에 관한 논문 선집이다.
총 여섯 권으로 예정된, 그리고 『개념의 정념들』을 포함해 이미 세 권이 출간된 발리바르의 ‘에크리’ 시리즈는 발리바르의 평생의 작업 전체를 정리하는 기획이다. 특히 『개념의 정념들』은, ‘철학자’ 발리바르의 ‘철학’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인식론, 신학, 정치학’을 정리하는 논문 선집답게, 발리바르의 지적-정념적 여정 전체의 마침표를 찍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개념의 정념들』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가 아니라, 포스트-구조주의자 또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철학자 그 자체로서 자신이 어떠한 관점으로 인간, 사회, 세계, 그러니까 존재와 역사를 바라보고 사유하는지를 확언하는 논문 선집, 그의 지적 유언장이다.
1. 현재에서 전개되는 활동과 기획, 곧 현행성의 철학
현대 프랑스 철학의 무대에서 발리바르가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의 철학 체계를 세우기를 거부하고 정세 내에서 사유하면서 현행성을 철학의 대상으로 취해 주체의 예속화의 원환을 담론적 역설 속에서 전위시키는 철학적 글쓰기를 하나의 정치적 개입으로서 수행했기 때문이다. 발리바르는 좁게는 포스트-구조주의, 넓게는 현대 프랑스 철학의 본령에 충실하게 과학과 혁명, 인식과 비판, 이론과 실천, 임상과 지식, 사실과 가치, 대상과 문제, 앎과 삶의 이분법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한 명의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현행적’이라는 것이 “현재에서 전개되는 활동과 기획에 관련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모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힘을 다해서 이 활동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자신의 삶과 글을 통해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현행성이라는 철학적 관념의, 정세라는 정치적 관념의 핵심일 텐데, 알튀세르와 동일하게 발리바르는 정세가 자신의 사유를 인도하는 것을, 더 나아가서는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면서도, 어떠한 ‘정답’이 자신의 사유를 인도하는 것은 끈질기게 거부했다. 진리라는 이름의 이러한 정답을 거부하고 현행성이 이끄는 방향으로 자신의 사유가 나아가도록 내버려둠으로써, 정세와 현행성에 자신의 몸과 생각을 전적으로 맡기면서, 발리바르는 다른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과 함께, 하지만 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리라는 개념 자체를 정념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갱신했다.
2. 왜 완결적인 단행본 작품이 아닌 논문 선집인가?
한국 사회의 이론적 지형에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와 더불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마르크스주의는 물론이고, 철학의 아포리아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자리매김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바르는 그의 스승인 알튀세르와 마찬가지로 한 권의 체계적인 저작을 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한 입문서인 『마르크스의 철학』을 제외하면 체계적인 저작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심지어 발리바르는 회고 글에서 지금의 자신이라면 『마르크스의 철학』 같은 체계적 저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실제로, 발리바르는 그간 집필했던 논문들을 모아 논문 선집을 출간하는 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항상 전개해 왔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는 『우리, 유럽의 시민들?』(후마니타스, 2010)와 『정치체에 대한 권리』(후마니타스, 2011) 등이 있다. 이런 선집들은 발리바르가 하나의 저작을 쓸 능력이 없음을, 그러니까 하나의 인식론, 더 나아가 존재론을 구성할 능력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앞의 두 저작에서도 그렇지만, 『개념의 정념들』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더더욱 그렇게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전체로서의 『개념의 정념들』을 통해 발리바르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철학적 글쓰기란 정세의 요청에 의해 현행성 내에서 하나의 정치적 개입으로서 하지만 물론 담론적 역설의 양태 아래 사건과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라는 점, 그래서 철학적 글쓰기는 그 정념으로 인해 체계적일 수 없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개념의 정념들』은 발리바르가 평생 ‘이끌어 온’, 아니 자신조차 누구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몰랐으므로, 평생을 ‘바친’ 이러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텍스트다. 알튀세르에 이끌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지적 이력을 시작했지만, 알튀세르와 함께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였고,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가 진리가 아님을 혹은 마르크스주의가 그가 생각했던 의미의 진리는 아니었음을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깨달은 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사상들의 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병법에서 말하듯 적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사유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파괴하고자 적의 곁에서 사유하기 위해서 말이다.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를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반해 사유했던 은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와 대결하기 위해, 그래서 필요하다면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바깥에서 사유했다. 발리바르에게는 마르크스주의조차, 더 나아가서는 프랑스 철학조차 사유의 준거점일 수 없었다. 발리바르는 또 한 명의 배신자일까? 사실 발리바르는 사유의 준거점이라는 관념 자체를 갱신한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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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의 정념들』은 발리바르가 평생 '이끌어 온', 아니 자신조차 누구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몰랐으므로, 평생을 '바친' 이러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텍스트다. 알튀세르에 이끌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 지적 이력을 시작했지만, 알튀세르와 함께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였고,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가 진리가 아님을 혹은 마르크스주의가 그가 생각했던 의미의 진리는 아니었음을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깨달은 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하는 사상들의 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병법에서 말하듯 적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사유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파괴하고자 적의 곁에서 사유하기 위해서 말이다.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를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반해 사유했던 은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와 대결하기 위해, 그래서 필요하다면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바깥에서 사유했다. 발리바르에게는 마르크스주의조차, 더 나아가서는 프랑스 철학조차 사유의 준거점일 수 없었다. 발리바르는 또 한 명의 배신자일까? 사실 발리바르는 사유의 준거점이라는 관념 자체를 갱신한 사상가 아니었을까?
- 옮긴이 후기 중에서
장별 주요 내용
1부 '진리의 역사'는 1장 「"참 내에 존재하기?": 조르주 캉길렘 철학에서 과학과 진리」, 2장 「프랑스 철학 내의 알랭 바디우」, 3장 「"교회의 역사는 진리의 역사라 고유하게 불려야 한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 프랑스 철학 고유의 인식론인 프랑스 역사인식론(?pist?mologie historique)을 기반으로 진리의 역사라는 표현과 관념을 사유한다.
1장에서는 조르주 캉길렘의 과학철학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이로부터 진리의 역사적 변증법에 대한 등식, 즉 "과학 = (역사성 = (이데올로기화/탈이데올로기화) = 객관성) = 진리"를 도출한다. 캉길렘의 과학철학, 더 나아가 프랑스 역사인식론에서 과학은 곧 진리이고 진리는 곧 과학인데, 그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즉, 과학 = 진리이지만 이는 객관성과 등치되는 역사성 내에서의 과학 = 진리이며, 이 역사란 이데올로기화와 탈이데올로기화라는 끊임없는 변증법적 과정의 역사다. 여기에서 캉길렘의 개념인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는데, 모든 과학은 이데올로기의 과학이며 이전의 과학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이데올로기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리의 지위에 오른 과학 또한 이데올로기, 결국 과학화된 이데올로기이며, 이로부터 다시 이데올로기화하고 탈이데올로기화함으로써 인식의 진전은 이루어진다. 결국 과학 = 진리이지만, 이 과학과 진리는 객관성으로서의 역사성 속에서 이데올로기화와 탈이데올로기화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과정을 겪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이다.
2장은 이러한 등식 또는 프랑스 역사인식론에 기반해 알랭 바디우의 진리철학을 분석한다. 2장의 전반부에서는 1장에서 분석한 캉길렘을 포함해 자크 데리다와 미셸 푸코 모두가 진리의 역사라는 관념을 사유했음을 보여 주고, 2장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프랑스 철학의 계보에 바디우의 진리철학이 포함되며 진리의 역사에 관한 사유를 통해 바디우가 영미 분석철학, 특히 그 명제적 진리관의 대표자로서 알프레트 타르스키의 진리관과 대결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3장에서는 이러한 현대 프랑스 철학 또는 프랑스 역사인식론의 독특한 진리관을 구성하는 진리의 역사라는 관념이 파스칼의 『팡세』의 한 '팡세'인 "교회의 역사는 진리의 역사라 고유하게 불려야 한다"에 그 기원을 둔다는 점을 보여 주면서, 『팡세』에서 진리의 역사는 첫 번째로 교회의 역사, 즉 이러한 진리를 품고 있는 제도의 역사(현대에는 '대학'으로 대표되는) 그 자체이며, 두 번째로 진리는 이 진리를 자신의 내부로 환원하는 이러한 제도 내에서 이 제도화로 인해 망실의 위기에 처하지만 진리의 역사는 제도의 역사와 동일한 것이기에 바로 이 제도와 제도화 바깥에 진리는 없다는 아포리아에 처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1부 '진리의 역사'를 구성하는 세 가지 논의를 통해 발리바르는 1) 캉길렘 과학철학이 주장하듯 과학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진리가 이데올로기화와 탈이데올로기화의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이 진리의 객관성으로서의 역사성을 구성하며, 그래서 진리는 역사적이라는 점을, 2) 진리의 역사라는 이러한 관념은 캉길렘, 데리다, 푸코를 포함한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공통적인 관념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바디우는 자신의 진리철학을 통해 영미 분석철학, 특히 타르스키의 명제적 진리관과 대결한다는 점을, 3) 이러한 진리의 역사는 교회, 더 나아가 대학이라는 제도의 역사와 강한 의미에서 동일한 것이며, 제도 내에서 진리는 망실의 위기에 처하지만 제도 바깥에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항시적 아포리아에 처해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2부 '이단점들'은 4장 「군주가 된다는 것, 인민이 된다는 것: 마키아벨리의 갈등적 인식론」, 5장 「푸코와 '이단점'」, 6장 「하나의 역경점: 미셸 푸코의 반마르크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단점을 형성하는 갈등 또는 정치를 통한 인식을 중심으로 구축된 갈등적 인식론을 탐구한다.
4장에서 발리바르는 20세기 인문사회과학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인 실증주의적 인식론과 대립하는 인식론을 갈등적 인식론으로 설정하고 그 기원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발견한다. 실증주의적 인식론의 핵심은 개념성을 과학성에 접붙임으로써 '과학적 개념'이라는 개념을 생산하는 것인 반면, 갈등적 인식론의 핵심은 개념성을 갈등성에 접붙임으로써 '정치적 개념'이라는 개념 또는 '개념의 정념'이라는 관념을 생산하는 것이다. 갈등적 인식론은 마키아벨리가 당대 이탈리아의 정세 내에서 이론가로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듯 입장을 취하지 않고 인식하는 것의 불가능성, 정치는 또는 입장 취하기는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 가능 조건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적 인식론에서 인식주체가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군주이든 인민이든(또는 자본가이든 프롤레타리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식민자이든 피식민자이든,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어떠한 하나의 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진동하며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그 개입 속에서 담론적 효과를 생산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해 갈등적 인식론에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기존 선택 체계(1항과 2항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깥의 제3의 항을 취해 '이단점'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푸코의 『말과 사물』을 중심으로 5장이 분석하는 바이다.
5장의 결론은 푸코에게서 '에피스테메'와 '이단점'이라는 관념은 하나의 변증법적 개념 쌍이며 이단점은 에피스테메, 즉 기존 선택 체계의 가능 조건이라는 것으로, 에피스테메의 바깥이란 기존 선택 체계의 바깥으로서 이단점, 결국 에피스테메의 '안의 바깥' 또는 '바깥의 안'에서의 이단적 선택이다. 그래서 탈근대 에피스테메의 도래, 또는 조금 더 넓은 외연의 표현으로는 정치 또는 저항이란 기존 선택 체계 내부의 두 항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기존 선택체계의 '외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존 선택 체계의 내부에 존재하지만 증상적으로 읽어 내야만 하는 그러한 '바깥'을 이단점으로 취하는 것이다. 푸코의 『말과 사물』에 의거해 발리바르는 갈등적 인식론의 핵심이 단순히 실증주의적 장의 외부를 보거나 외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세 내에서, 그러니까 오늘날 지금 여기의 선택 체계 또는 이항 대립 내에서 그 바깥을, 간극이나 틈새 또는 흠집을 증상적으로 읽어 내고 이를 이단점으로 취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6장에서 발리바르는 이러한 이단점의 사례로 푸코와 마르크스 간 쟁론을 취하는데, 서로 철저히 대립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해되어 온 19세기의 사상가 마르크스와 20세기의 사상가 푸코가 기존 선택 체계의 이항 대립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탈현대사상을 구성하기 위한 즉 탈근대 에피스테메로 나아가기 위한 근대 에피스테메의 이단점을 현대사상 내에서 형성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2부 '이단점들'에서 발리바르는 1)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 재구성한 갈등적 인식론의 핵심은 정치 또는 입장 취하기가 인식의 가능 조건이라는 점, 하지만 여기에서 정치 또는 입장 취하기란 기존의 대립적 당파에서 하나의 당파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정세 내에서의 이론가로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개입 속에서 담론적 효과를 생산하며 사라지는 것이라는 점을, 2) 푸코의 『말과 사물』이 보여 주듯 에피스테메 즉 기존 선택 체계의 가능 조건은 이단점이며 이 에피스테메의 바깥으로서 이단점을 증상적으로 읽어 냄으로써 취해야지만 새로운 에피스테메로 이행 가능하다는, 그러니까 정치 또는 저항이 가능하다는 점을, 3) 19세기와 20세기 즉 근대 에피스테메 또는 현대사상에서 이러한 이단점의 대표적인 예시는 마르크스와 푸코 간 쟁론이며, 그에 대한 사유로부터 우리가 21세기의 탈근대 에피스테메 또는 탈현대사상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3부 '현행성'은 7장 「철학과 현행성: 사건을 넘어서?」, 8장 「구조주의: 사회과학의 방법인가 전복인가?」, 9장 「이론은 무엇이 되는가? 논쟁적 상승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로서의 현행성에 도달하는 논쟁적 상승이란 무엇인지 탐구한다.
7장은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의 사건의 철학과는 준별되는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의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의 핵심을 설명한다. 7장에 따르면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의 핵심은 후기 칸트의 계몽론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철학의 대상을 현행성, 즉 철학자가 놓여 있는 오늘날 지금 여기로 설정하고, 정세 내에서 구조로서 실존하는 현행성의 비판과 지양을 사라지는 매개자로서의 철학자의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한 개입과 그 담론적 효과의 생산을 통한 예속화의 원환의 전위로 설정한다. 더 나아가 철학의 대상이 현행성이기에 철학의 목표는 어떠한 객관적 대상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현행성을 문제화하고 현행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된다. 8장은 정세 내에서 구조로서 실존하는 현행성에 관한 사유를 위해, 구조주의에 대한 탐구를 수단으로 구조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확립한다.
8장에 따르면 구조주의가 사유하는 구조는 예속적 주체를 생산하는 관계들의 앙상블이며, 구조주의는 불변의 구조에 의한 수동적 행위자의 생산에 천착함으로써 저항을 사유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구조 개념을 수단으로 주체 개념을 갱신함으로써 오히려 구조에 대한 주체의 저항을 사유 가능하게 만든다.
9장은 이성과 합리성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과학성의 증진을 통해 과학적 개념을 획득하는 실천을 표현하는 영미 분석철학의 의미론적 상승이라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논쟁적 상승이라는 관념을 제출한다. 9장에 따르면 이론은 의미론적 상승의 견지에서 과학성과 개념성을 상호 접근시킴으로써 과학적 개념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적 상승의 견지에서 갈등성과 개념성을 상호 접근시킴으로써 정치적 개념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론은 이성과 합리성을 수단으로 대문자 과학의 진리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의 과학적 분파 간 논쟁을 수단으로 현행성으로 상승한다. 결론적으로 3부 '현행성'에서 발리바르는 1) 사건의 철학과 준별되는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은 정통 철학과 달리 철학의 대상과 목표를 이러저러한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현행성으로 설정하고 현행성에 대한 지양과 비판을 철학자의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한 개입과 그 담론적 효과를 통한 예속화의 원환의 전위로 설정하고, 2) 이 현행성이 구조로서 실존한다는 점에서 이 구조에 대해 사유했던 구조주의의 핵심을 탐구해 이를 구조에 의한 예속화된 주체의 생산과 그 저항에 대한 사유로 설정하고, 3) 이론의 목표는 영미 분석철학에서와 달리 의미론적 상승을 통해 대문자 과학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의 과학적 분파 간 논쟁을 수단으로 현행성을 향해 상승함으로써 과학적 개념이 아닌 정치적 개념을 생산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결론인 「다시 여는 글: 개념의 개념」은 1부, 2부, 3부가 종합적으로 생산하는 결과로서 정치적 개념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개념의 정념들』의 「서문」에 의거해 그 체계적 구조와 그것이 생산하는 논리를 정리해 보자면 이는 다음과 같다. 1) 1부의 세 가지 논의를 통해 확인했듯 진리에는 역사가 존재한다. 2) 2부의 세 가지 논의를 통해 확인했듯 이 진리의 역사는 (교회와 대학으로 대표되는) 제도 안팎에서의 주류와 비주류 간 논쟁의 역사, 다르게 말해 이단점 형성의 역사이며, 그렇기에 진리를 사유하고자 하는 철학자는 정치를 인식의 가능 조건으로 취하는 갈등적 인식론을 견지해야 한다. 3) 3부의 세 가지 논의를 통해 확인했듯 이단점을 형성함으로써 수행되는 주류와 비주류의 과학적 분파 간 진리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성이 아니라 현행성을 향해 논쟁적으로 상승하는데, 구조로서 실존하는 현행성은 이러한 이유에서 사유의 존재론적 규정이다. 결론적으로, 진리의 역사, 이단점, 현행성이라는 세 가지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인식의 삼각형에서, 개념성은 과학성과 상호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성과 상호 접근하며, 이러한 상호 접근을 통해 생산되는 것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개념이다. 이러한 정치적 개념을 취하는 과학은 객관적 대상의 과학이 아니라 문제, 문제화, 질문의 과학으로, 이러한 과학의 과학자는 철학자와 구분되지 않는 이론가로서 사라지는 매개자의 자격으로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수단으로 현행성에 개입해 그 담론적 효과로써 예속화의 원환을 전위시키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개념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념적인 것인데, 그로부터 도출되는 개념의 정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존재한다. 첫 번째, 개념 자신이 취하는 정념. 두 번째, 개념을 활용하는 과학자 또는 철학자가 취하는 정념. 세 번째, 개념과 이 개념을 활용하는 과학자 또는 철학자가 마주침으로써 이 둘 모두가 겪는 정념적 변용. 정치적 개념 또는 개념의 정념, 그리고 갈등적 인식론. 이것이 서론과 결론, 그리고 그 사이의 세 가지 항으로 이루어진 체계적 구조로서의 『개념의 정념들』이 생산하는 논리이다.
- 옮긴이 후기 중에서
장별 주요 내용
1부 '진리의 역사'는 1장 「"참 내에 존재하기?": 조르주 캉길렘 철학에서 과학과 진리」, 2장 「프랑스 철학 내의 알랭 바디우」, 3장 「"교회의 역사는 진리의 역사라 고유하게 불려야 한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 프랑스 철학 고유의 인식론인 프랑스 역사인식론(?pist?mologie historique)을 기반으로 진리의 역사라는 표현과 관념을 사유한다.
1장에서는 조르주 캉길렘의 과학철학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이로부터 진리의 역사적 변증법에 대한 등식, 즉 "과학 = (역사성 = (이데올로기화/탈이데올로기화) = 객관성) = 진리"를 도출한다. 캉길렘의 과학철학, 더 나아가 프랑스 역사인식론에서 과학은 곧 진리이고 진리는 곧 과학인데, 그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즉, 과학 = 진리이지만 이는 객관성과 등치되는 역사성 내에서의 과학 = 진리이며, 이 역사란 이데올로기화와 탈이데올로기화라는 끊임없는 변증법적 과정의 역사다. 여기에서 캉길렘의 개념인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는데, 모든 과학은 이데올로기의 과학이며 이전의 과학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이데올로기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리의 지위에 오른 과학 또한 이데올로기, 결국 과학화된 이데올로기이며, 이로부터 다시 이데올로기화하고 탈이데올로기화함으로써 인식의 진전은 이루어진다. 결국 과학 = 진리이지만, 이 과학과 진리는 객관성으로서의 역사성 속에서 이데올로기화와 탈이데올로기화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과정을 겪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이다.
2장은 이러한 등식 또는 프랑스 역사인식론에 기반해 알랭 바디우의 진리철학을 분석한다. 2장의 전반부에서는 1장에서 분석한 캉길렘을 포함해 자크 데리다와 미셸 푸코 모두가 진리의 역사라는 관념을 사유했음을 보여 주고, 2장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프랑스 철학의 계보에 바디우의 진리철학이 포함되며 진리의 역사에 관한 사유를 통해 바디우가 영미 분석철학, 특히 그 명제적 진리관의 대표자로서 알프레트 타르스키의 진리관과 대결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3장에서는 이러한 현대 프랑스 철학 또는 프랑스 역사인식론의 독특한 진리관을 구성하는 진리의 역사라는 관념이 파스칼의 『팡세』의 한 '팡세'인 "교회의 역사는 진리의 역사라 고유하게 불려야 한다"에 그 기원을 둔다는 점을 보여 주면서, 『팡세』에서 진리의 역사는 첫 번째로 교회의 역사, 즉 이러한 진리를 품고 있는 제도의 역사(현대에는 '대학'으로 대표되는) 그 자체이며, 두 번째로 진리는 이 진리를 자신의 내부로 환원하는 이러한 제도 내에서 이 제도화로 인해 망실의 위기에 처하지만 진리의 역사는 제도의 역사와 동일한 것이기에 바로 이 제도와 제도화 바깥에 진리는 없다는 아포리아에 처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1부 '진리의 역사'를 구성하는 세 가지 논의를 통해 발리바르는 1) 캉길렘 과학철학이 주장하듯 과학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진리가 이데올로기화와 탈이데올로기화의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이 진리의 객관성으로서의 역사성을 구성하며, 그래서 진리는 역사적이라는 점을, 2) 진리의 역사라는 이러한 관념은 캉길렘, 데리다, 푸코를 포함한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공통적인 관념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바디우는 자신의 진리철학을 통해 영미 분석철학, 특히 타르스키의 명제적 진리관과 대결한다는 점을, 3) 이러한 진리의 역사는 교회, 더 나아가 대학이라는 제도의 역사와 강한 의미에서 동일한 것이며, 제도 내에서 진리는 망실의 위기에 처하지만 제도 바깥에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항시적 아포리아에 처해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2부 '이단점들'은 4장 「군주가 된다는 것, 인민이 된다는 것: 마키아벨리의 갈등적 인식론」, 5장 「푸코와 '이단점'」, 6장 「하나의 역경점: 미셸 푸코의 반마르크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단점을 형성하는 갈등 또는 정치를 통한 인식을 중심으로 구축된 갈등적 인식론을 탐구한다.
4장에서 발리바르는 20세기 인문사회과학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인 실증주의적 인식론과 대립하는 인식론을 갈등적 인식론으로 설정하고 그 기원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발견한다. 실증주의적 인식론의 핵심은 개념성을 과학성에 접붙임으로써 '과학적 개념'이라는 개념을 생산하는 것인 반면, 갈등적 인식론의 핵심은 개념성을 갈등성에 접붙임으로써 '정치적 개념'이라는 개념 또는 '개념의 정념'이라는 관념을 생산하는 것이다. 갈등적 인식론은 마키아벨리가 당대 이탈리아의 정세 내에서 이론가로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듯 입장을 취하지 않고 인식하는 것의 불가능성, 정치는 또는 입장 취하기는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 가능 조건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적 인식론에서 인식주체가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군주이든 인민이든(또는 자본가이든 프롤레타리아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식민자이든 피식민자이든,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어떠한 하나의 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진동하며 '사라지는 매개자'로서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그 개입 속에서 담론적 효과를 생산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해 갈등적 인식론에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기존 선택 체계(1항과 2항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깥의 제3의 항을 취해 '이단점'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푸코의 『말과 사물』을 중심으로 5장이 분석하는 바이다.
5장의 결론은 푸코에게서 '에피스테메'와 '이단점'이라는 관념은 하나의 변증법적 개념 쌍이며 이단점은 에피스테메, 즉 기존 선택 체계의 가능 조건이라는 것으로, 에피스테메의 바깥이란 기존 선택 체계의 바깥으로서 이단점, 결국 에피스테메의 '안의 바깥' 또는 '바깥의 안'에서의 이단적 선택이다. 그래서 탈근대 에피스테메의 도래, 또는 조금 더 넓은 외연의 표현으로는 정치 또는 저항이란 기존 선택 체계 내부의 두 항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기존 선택체계의 '외부'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존 선택 체계의 내부에 존재하지만 증상적으로 읽어 내야만 하는 그러한 '바깥'을 이단점으로 취하는 것이다. 푸코의 『말과 사물』에 의거해 발리바르는 갈등적 인식론의 핵심이 단순히 실증주의적 장의 외부를 보거나 외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세 내에서, 그러니까 오늘날 지금 여기의 선택 체계 또는 이항 대립 내에서 그 바깥을, 간극이나 틈새 또는 흠집을 증상적으로 읽어 내고 이를 이단점으로 취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6장에서 발리바르는 이러한 이단점의 사례로 푸코와 마르크스 간 쟁론을 취하는데, 서로 철저히 대립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해되어 온 19세기의 사상가 마르크스와 20세기의 사상가 푸코가 기존 선택 체계의 이항 대립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탈현대사상을 구성하기 위한 즉 탈근대 에피스테메로 나아가기 위한 근대 에피스테메의 이단점을 현대사상 내에서 형성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2부 '이단점들'에서 발리바르는 1)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 재구성한 갈등적 인식론의 핵심은 정치 또는 입장 취하기가 인식의 가능 조건이라는 점, 하지만 여기에서 정치 또는 입장 취하기란 기존의 대립적 당파에서 하나의 당파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정세 내에서의 이론가로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개입 속에서 담론적 효과를 생산하며 사라지는 것이라는 점을, 2) 푸코의 『말과 사물』이 보여 주듯 에피스테메 즉 기존 선택 체계의 가능 조건은 이단점이며 이 에피스테메의 바깥으로서 이단점을 증상적으로 읽어 냄으로써 취해야지만 새로운 에피스테메로 이행 가능하다는, 그러니까 정치 또는 저항이 가능하다는 점을, 3) 19세기와 20세기 즉 근대 에피스테메 또는 현대사상에서 이러한 이단점의 대표적인 예시는 마르크스와 푸코 간 쟁론이며, 그에 대한 사유로부터 우리가 21세기의 탈근대 에피스테메 또는 탈현대사상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3부 '현행성'은 7장 「철학과 현행성: 사건을 넘어서?」, 8장 「구조주의: 사회과학의 방법인가 전복인가?」, 9장 「이론은 무엇이 되는가? 논쟁적 상승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조로서의 현행성에 도달하는 논쟁적 상승이란 무엇인지 탐구한다.
7장은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의 사건의 철학과는 준별되는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의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의 핵심을 설명한다. 7장에 따르면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의 핵심은 후기 칸트의 계몽론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철학의 대상을 현행성, 즉 철학자가 놓여 있는 오늘날 지금 여기로 설정하고, 정세 내에서 구조로서 실존하는 현행성의 비판과 지양을 사라지는 매개자로서의 철학자의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한 개입과 그 담론적 효과의 생산을 통한 예속화의 원환의 전위로 설정한다. 더 나아가 철학의 대상이 현행성이기에 철학의 목표는 어떠한 객관적 대상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현행성을 문제화하고 현행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된다. 8장은 정세 내에서 구조로서 실존하는 현행성에 관한 사유를 위해, 구조주의에 대한 탐구를 수단으로 구조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확립한다.
8장에 따르면 구조주의가 사유하는 구조는 예속적 주체를 생산하는 관계들의 앙상블이며, 구조주의는 불변의 구조에 의한 수동적 행위자의 생산에 천착함으로써 저항을 사유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구조 개념을 수단으로 주체 개념을 갱신함으로써 오히려 구조에 대한 주체의 저항을 사유 가능하게 만든다.
9장은 이성과 합리성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과학성의 증진을 통해 과학적 개념을 획득하는 실천을 표현하는 영미 분석철학의 의미론적 상승이라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논쟁적 상승이라는 관념을 제출한다. 9장에 따르면 이론은 의미론적 상승의 견지에서 과학성과 개념성을 상호 접근시킴으로써 과학적 개념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적 상승의 견지에서 갈등성과 개념성을 상호 접근시킴으로써 정치적 개념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론은 이성과 합리성을 수단으로 대문자 과학의 진리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의 과학적 분파 간 논쟁을 수단으로 현행성으로 상승한다. 결론적으로 3부 '현행성'에서 발리바르는 1) 사건의 철학과 준별되는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은 정통 철학과 달리 철학의 대상과 목표를 이러저러한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현행성으로 설정하고 현행성에 대한 지양과 비판을 철학자의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한 개입과 그 담론적 효과를 통한 예속화의 원환의 전위로 설정하고, 2) 이 현행성이 구조로서 실존한다는 점에서 이 구조에 대해 사유했던 구조주의의 핵심을 탐구해 이를 구조에 의한 예속화된 주체의 생산과 그 저항에 대한 사유로 설정하고, 3) 이론의 목표는 영미 분석철학에서와 달리 의미론적 상승을 통해 대문자 과학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의 과학적 분파 간 논쟁을 수단으로 현행성을 향해 상승함으로써 과학적 개념이 아닌 정치적 개념을 생산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결론인 「다시 여는 글: 개념의 개념」은 1부, 2부, 3부가 종합적으로 생산하는 결과로서 정치적 개념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개념의 정념들』의 「서문」에 의거해 그 체계적 구조와 그것이 생산하는 논리를 정리해 보자면 이는 다음과 같다. 1) 1부의 세 가지 논의를 통해 확인했듯 진리에는 역사가 존재한다. 2) 2부의 세 가지 논의를 통해 확인했듯 이 진리의 역사는 (교회와 대학으로 대표되는) 제도 안팎에서의 주류와 비주류 간 논쟁의 역사, 다르게 말해 이단점 형성의 역사이며, 그렇기에 진리를 사유하고자 하는 철학자는 정치를 인식의 가능 조건으로 취하는 갈등적 인식론을 견지해야 한다. 3) 3부의 세 가지 논의를 통해 확인했듯 이단점을 형성함으로써 수행되는 주류와 비주류의 과학적 분파 간 진리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성이 아니라 현행성을 향해 논쟁적으로 상승하는데, 구조로서 실존하는 현행성은 이러한 이유에서 사유의 존재론적 규정이다. 결론적으로, 진리의 역사, 이단점, 현행성이라는 세 가지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인식의 삼각형에서, 개념성은 과학성과 상호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성과 상호 접근하며, 이러한 상호 접근을 통해 생산되는 것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개념이다. 이러한 정치적 개념을 취하는 과학은 객관적 대상의 과학이 아니라 문제, 문제화, 질문의 과학으로, 이러한 과학의 과학자는 철학자와 구분되지 않는 이론가로서 사라지는 매개자의 자격으로 정세 내에서의 철학적 글쓰기를 수단으로 현행성에 개입해 그 담론적 효과로써 예속화의 원환을 전위시키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개념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념적인 것인데, 그로부터 도출되는 개념의 정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존재한다. 첫 번째, 개념 자신이 취하는 정념. 두 번째, 개념을 활용하는 과학자 또는 철학자가 취하는 정념. 세 번째, 개념과 이 개념을 활용하는 과학자 또는 철학자가 마주침으로써 이 둘 모두가 겪는 정념적 변용. 정치적 개념 또는 개념의 정념, 그리고 갈등적 인식론. 이것이 서론과 결론, 그리고 그 사이의 세 가지 항으로 이루어진 체계적 구조로서의 『개념의 정념들』이 생산하는 논리이다.
목차
목차
여는 글. 비극적 마키아벨리 7
서문 21
1부. 진리의 역사
1장. "참 내에 존재하기?": 조르주 캉길렘 철학에서 과학과 진리 51
2장. 프랑스 철학 내의 알랭 바디우 79
3장. "교회의 역사는 진리의 역사라 고유하게 불려야 한다" 115
2부. 이단점들
4장. 군주가 된다는 것, 인민이 된다는 것: 마키아벨리의 갈등적 인식론 141
5장. 푸코와 '이단점' 171
6장. 하나의 역경점: 미셸 푸코의 반마르크스 227
3부. 현행성들
7장. 철학과 현행성: 사건을 넘어서? 261
8장. 구조주의: 사회과학의 방법인가 전복인가? 297
9장. 이론은 무엇이 되는가? 논쟁적 상승들 313
다시 여는 글. 개념의 개념 333
부록 1. 구조주의: 주체의 파면? 363
부록 2. 지식인들의 폭력: 반역과 지성 393
부록 3. 바깥의 사유? 블랑쇼와 함께 푸코를 415
옮긴이 후기. 부서진 개념에, 하나의 정념을 445
찾아보기 455
서문 21
1부. 진리의 역사
1장. "참 내에 존재하기?": 조르주 캉길렘 철학에서 과학과 진리 51
2장. 프랑스 철학 내의 알랭 바디우 79
3장. "교회의 역사는 진리의 역사라 고유하게 불려야 한다" 115
2부. 이단점들
4장. 군주가 된다는 것, 인민이 된다는 것: 마키아벨리의 갈등적 인식론 141
5장. 푸코와 '이단점' 171
6장. 하나의 역경점: 미셸 푸코의 반마르크스 227
3부. 현행성들
7장. 철학과 현행성: 사건을 넘어서? 261
8장. 구조주의: 사회과학의 방법인가 전복인가? 297
9장. 이론은 무엇이 되는가? 논쟁적 상승들 313
다시 여는 글. 개념의 개념 333
부록 1. 구조주의: 주체의 파면? 363
부록 2. 지식인들의 폭력: 반역과 지성 393
부록 3. 바깥의 사유? 블랑쇼와 함께 푸코를 415
옮긴이 후기. 부서진 개념에, 하나의 정념을 445
찾아보기 455
저자
저자
에티엔 발리바르
프랑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조르주 캉길렘에게 철학을 배웠고, 동료이자 선생인 자크 데리다와 미셸 푸코에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알튀세르의 충실한 제자로서 그의 마르크스주의 개조 작업을 추수하며 1965년에는 알튀세르, 자크 랑시에르, 피에르 마슈레, 로제 에스타블레와 함께 『"자본"을 읽자』를 공동 저술했다. 이후에도 알튀세르의 영향하에 마르크스주의 개조 작업을 이어 나가 1974년 『역사유물론 5연구』와 1976년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관하여』를 저술했다. 하지만 1980년 알튀세르가 아내 엘렌 리트만을 교살하고 정신병원에 유폐된 뒤에는 독자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체 작업에 착수해 그 결과물을 1997년 『대중들의 공포』 등으로 출간했으며, 1990년대 이후 세계화 및 유럽 건설이라는 이중의 정세 속에서 대중운동의 확장 및 시민권 헌정의 민주주의적 전화를 모색하려는 이론적 작업을 수행해 그 결과물을 2001년 『우리, 유럽의 시민들』 등으로 출간했다. 파리 낭테르 10대학 철학과 교수와 명예교수를 지낸 뒤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어바인) 특훈교수를 지냈으며, 코로나19 감염증 사태를 전후로 파리로 돌아와 자신의 지적 여정 전체를 여섯 권의 '에크리'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본서인 『개념의 정념들』(에크리 2권)을 포함해 『끝날 수 없는 역사』(에크리 1권)와 『세계정치』(에크리 3권)가 현재 출간되었으며, '공산주의', '인종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관한 나머지 에크리의 출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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