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코기토총서-세계사상의 고전 50)(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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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과 신학적 인간학의 실체
서양 고백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傳記)라기보다는 ‘믿음’을 북돋아주는 책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적 삶의 서술을 발견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현대적 의미에서의 심리학적 사례 연구도 물론 아니다. 이 작품은 개인 영혼의 역사를 단순한 사적 문제로 서술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공개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의 이론적 주장을 놀라우리만큼 세세히 설명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납득시켜 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집필할 때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전기적 사실을 새로운 신학적 이론의 틀 안에서 서술했다. 그것은 원죄와 은총론이었다. 그는 전기적 사실을 통해 값없는 은총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는 죄를 짓는 데만 쓸모 있음을 보여 주려 했다. 탐욕, 명예욕, 호기심으로서의 죄는 인간 삶을 결정하며, 우리 의지는 스스로 선(善)을 행할 수 없다. 『고백록』 서두를 보면, 그는 인간을 신적 완전성과 대립하는 존재로 표현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몸에 원죄의 증거로서 사멸성을 지니고 다닌다. 인간은 스스로 신을 인식할 수 없다. 철학적 신 인식도, 자발적으로 신을 믿으려는 결단도 무용지물이다. 결국 믿음의 시작은 신으로부터 온다. 신앙은 신의 은총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생성된다.
원죄의 인간과 완전한 신, 이성적 지식과 은총에 의한 신앙의 대립을 골자로 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은 인간이 실제로 이성적 성찰을 통해 무엇인가를 의지할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인간의 실제 모습과 인간이 자신에 관해 알고 있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고 전제한다. 원죄론은 인간에게 그러한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한다. 인간에 대한 진리뿐만 아니라 그의 구원이 피안에서만 올 수 있다면 그다음 단계는 신이 주는 지식을 모든 인간적 지식과 대립시키는 것이다.
서양 고백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傳記)라기보다는 ‘믿음’을 북돋아주는 책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적 삶의 서술을 발견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현대적 의미에서의 심리학적 사례 연구도 물론 아니다. 이 작품은 개인 영혼의 역사를 단순한 사적 문제로 서술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공개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의 이론적 주장을 놀라우리만큼 세세히 설명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납득시켜 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을 집필할 때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전기적 사실을 새로운 신학적 이론의 틀 안에서 서술했다. 그것은 원죄와 은총론이었다. 그는 전기적 사실을 통해 값없는 은총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는 죄를 짓는 데만 쓸모 있음을 보여 주려 했다. 탐욕, 명예욕, 호기심으로서의 죄는 인간 삶을 결정하며, 우리 의지는 스스로 선(善)을 행할 수 없다. 『고백록』 서두를 보면, 그는 인간을 신적 완전성과 대립하는 존재로 표현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몸에 원죄의 증거로서 사멸성을 지니고 다닌다. 인간은 스스로 신을 인식할 수 없다. 철학적 신 인식도, 자발적으로 신을 믿으려는 결단도 무용지물이다. 결국 믿음의 시작은 신으로부터 온다. 신앙은 신의 은총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생성된다.
원죄의 인간과 완전한 신, 이성적 지식과 은총에 의한 신앙의 대립을 골자로 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은 인간이 실제로 이성적 성찰을 통해 무엇인가를 의지할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인간의 실제 모습과 인간이 자신에 관해 알고 있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고 전제한다. 원죄론은 인간에게 그러한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한다. 인간에 대한 진리뿐만 아니라 그의 구원이 피안에서만 올 수 있다면 그다음 단계는 신이 주는 지식을 모든 인간적 지식과 대립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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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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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진정한 의미는?
그렇다면 책제목에 드러나는 '고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타인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토로한 것은 아니다. 히포의 주교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니, 다리우스(Darius)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표면적 내용에 머물지 말고 기독교인의 사랑으로 글을 읽어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독서를 할 때, 자신에게 관심을 갖되 자신을 과도하게 칭송하지 말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믿지 말고 자신을 믿으라고 부탁한다.
『고백록』 제10권 제3장 제3절은 "인간이 모든 내 약함을 치유할 수 있는 듯이, 내 고백을 듣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공개적으로 고백할 때, 전제 조건은 독자도 자기 인식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완전한 자기 인식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악한지 올바른지 내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 오직 신만이 내가 누구인지 안다. 내가 실제로 누구인지 알기 위해 신이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왜 『고백록』을 썼는지 설명하는 텍스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사랑을 사랑함으로써 내가 이것을 행한다." 그는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산상설교로 설명한다. 그가 사랑의 메시지를 들은 이후, 그는 신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여, 내가 누구이든지 간에, 나는 당신에게 드러나 있습니다." 내면적 고백은 침묵 속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침묵 속에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외친다. 그다음에 비로소 사람들 앞에서 고백이 이루어진다. 신의 사랑으로 인해 그들의 귀가 열려야 한다. "주여, 내가 당신께 고백하오니, 그들이 듣고 …… 나를 믿어야 합니다. 사랑에 의해 내게 귀를 여는 자들은 나를 믿을 것입니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탐구한 결과이다. 그런데 자기 탐구는 신이 인간을 자신을 향하도록 창조함으로써 일깨워졌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만드셨으므로 ……." 그리고 자기 탐구는 인간의 자율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 대한 신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신의 말씀을 듣는 것을 뜻한다. 자신을 위한 신의 사랑을 자신의 삶의 방황에서부터 구원을 통해 경험한 이후, 그는 모든 악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과 우리 인간이 신 안에서 발견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한다. 신에 대한 그의 논설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한편으로 그는 신을 인식 자체로 사고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신 자신은 염려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염려한다고 믿는다. 신이 인간을 염려한다는 것은 인간이 거룩하고 행복하기를 바람이다. 신의 염려는 제10권 결론부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론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불멸의 신과 거룩하지 못하고 사멸하는 인간 사이의 중보자(仲保者)로서 신에 이르는 길을 놓았으니, 그러므로 인간은 정결한 마음으로 신을 칭송할 수 있다. 이로써 그의 『고백록』은 이전의 그릇된 삶의 고백(confessio peccati), 진리 탐구의 고백(confessio scientiae et imperitiae), 신앙고백(confessio fidei), 신의 위대함에 대한 칭송고백(confessio laudis)으로 나타난다. 그는 『고백록』을 그로 하여금 신을 칭송하게 만든 신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한다. 오류에서 벗어나 신을 칭송하는 법을 배운 이후, 그는 자신과 독자들로 하여금 신을 칭송하도록 격려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므로 그는 『고백록』이 인간의 마음을 신에게로 이끌고 또한 재촉한다고 말한다. 그런 한에서 『고백록』은 내면으로의 상승을 인도하는 격려이다.
인간은 자비로운 신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야 한다
사실, 이곳의 삶은 밤이고 희망에서만 행복할 뿐이다. 우리의 삶은 고난과 방황, 산일(散逸)의 연속이다. 영혼의 불안은 신에게 기원하는데, 영혼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영혼의 근원으로서의 귀환은 신플라톤주의학파가 가르친바 일자(一者)로의 상승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영혼의 방황은 선택하고 행동하는 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신은 개인 삶의 역사를 결정하므로 흩어진 인간의 삶은 인간적 지혜를 통해 수렴되기를 거부한다. 『고백록』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저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솔한 '고백'이다.
그렇다면 책제목에 드러나는 '고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아우구스티누스는 타인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토로한 것은 아니다. 히포의 주교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니, 다리우스(Darius)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표면적 내용에 머물지 말고 기독교인의 사랑으로 글을 읽어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독서를 할 때, 자신에게 관심을 갖되 자신을 과도하게 칭송하지 말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믿지 말고 자신을 믿으라고 부탁한다.
『고백록』 제10권 제3장 제3절은 "인간이 모든 내 약함을 치유할 수 있는 듯이, 내 고백을 듣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공개적으로 고백할 때, 전제 조건은 독자도 자기 인식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완전한 자기 인식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악한지 올바른지 내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 오직 신만이 내가 누구인지 안다. 내가 실제로 누구인지 알기 위해 신이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왜 『고백록』을 썼는지 설명하는 텍스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사랑을 사랑함으로써 내가 이것을 행한다." 그는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산상설교로 설명한다. 그가 사랑의 메시지를 들은 이후, 그는 신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여, 내가 누구이든지 간에, 나는 당신에게 드러나 있습니다." 내면적 고백은 침묵 속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침묵 속에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외친다. 그다음에 비로소 사람들 앞에서 고백이 이루어진다. 신의 사랑으로 인해 그들의 귀가 열려야 한다. "주여, 내가 당신께 고백하오니, 그들이 듣고 …… 나를 믿어야 합니다. 사랑에 의해 내게 귀를 여는 자들은 나를 믿을 것입니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탐구한 결과이다. 그런데 자기 탐구는 신이 인간을 자신을 향하도록 창조함으로써 일깨워졌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만드셨으므로 ……." 그리고 자기 탐구는 인간의 자율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 대한 신의 말씀을 듣고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신의 말씀을 듣는 것을 뜻한다. 자신을 위한 신의 사랑을 자신의 삶의 방황에서부터 구원을 통해 경험한 이후, 그는 모든 악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과 우리 인간이 신 안에서 발견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한다. 신에 대한 그의 논설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한편으로 그는 신을 인식 자체로 사고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신 자신은 염려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염려한다고 믿는다. 신이 인간을 염려한다는 것은 인간이 거룩하고 행복하기를 바람이다. 신의 염려는 제10권 결론부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론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불멸의 신과 거룩하지 못하고 사멸하는 인간 사이의 중보자(仲保者)로서 신에 이르는 길을 놓았으니, 그러므로 인간은 정결한 마음으로 신을 칭송할 수 있다. 이로써 그의 『고백록』은 이전의 그릇된 삶의 고백(confessio peccati), 진리 탐구의 고백(confessio scientiae et imperitiae), 신앙고백(confessio fidei), 신의 위대함에 대한 칭송고백(confessio laudis)으로 나타난다. 그는 『고백록』을 그로 하여금 신을 칭송하게 만든 신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한다. 오류에서 벗어나 신을 칭송하는 법을 배운 이후, 그는 자신과 독자들로 하여금 신을 칭송하도록 격려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므로 그는 『고백록』이 인간의 마음을 신에게로 이끌고 또한 재촉한다고 말한다. 그런 한에서 『고백록』은 내면으로의 상승을 인도하는 격려이다.
인간은 자비로운 신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야 한다
사실, 이곳의 삶은 밤이고 희망에서만 행복할 뿐이다. 우리의 삶은 고난과 방황, 산일(散逸)의 연속이다. 영혼의 불안은 신에게 기원하는데, 영혼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영혼의 근원으로서의 귀환은 신플라톤주의학파가 가르친바 일자(一者)로의 상승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영혼의 방황은 선택하고 행동하는 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신은 개인 삶의 역사를 결정하므로 흩어진 인간의 삶은 인간적 지혜를 통해 수렴되기를 거부한다. 『고백록』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저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솔한 '고백'이다.
목차
목차
해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과 신학적 인간학의 실체 9
서문 55
제1권 61
제2권 99
제3권 117
제4권 143
제5권 177
제6권 209
제7권 243
제8권 281
제9권 315
제10권 355
제11권 425
제12권 465
제13권 507
옮긴이의 말 563
아우구스티누스 연보 567
찾아보기 569
서문 55
제1권 61
제2권 99
제3권 117
제4권 143
제5권 177
제6권 209
제7권 243
제8권 281
제9권 315
제10권 355
제11권 425
제12권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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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563
아우구스티누스 연보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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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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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로마제국 누미디아 지방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이교도인 아버지 파트리키우스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Monica) 사이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수사학을 공부하기도 했으나 방탕한 생활과 향락을 즐기는 데 몰두했다. 그런 와중에도 철학적 회의는 품고 있었다. 20세 무렵에 마니교를 수용해 9년간 신봉하기도 했는데, 이성 중심적 접근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386년 신플라톤주의와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 영향을 받았으며, 387년에는 밀라노에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기도 했다. 391년 히포(Hippo)의 사제로 서품되어 히포 레기우스에서 사목을 시작했다. 396년 히포의 주교가 되었으며, 397~400년에 걸쳐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고백록』을 집필했다. 399년에는 또 다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삼위일체론』을 집필하기 시작해 30여 년만에 탈고했다. 410년 고트족의 로마 약탈에 충격을 받고 『신국론』 집필에 돌입, 교회와 국가 그리고 인간의 역사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담아냈다. 430년 8월 28일,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이후 이탈리아 파비아로 이장되어 오늘날까지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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