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건너 요단강 넘어
서용문 목사 순교 60주년 추모문집
서용문 목사 순교 60주년 추모문집『대동강 건너 요단강 넘어』. 이 책은 반공 목사인 아버지의 죽음을 다음세대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담아낸 책이다. 순교자 자식들로 겪은 고생을 고백하고 살아온 인생과 많은 이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감사하는 글이다. 이러한 고난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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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올해는 6 25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순교 당한 기독교인들의 순교 60주년이기도 하다. 고 서용문 목사는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탄압을 견디다 못해 만주로 건너갔고, 그후 해방을 맞아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 북한공산당에 맞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다가 남한과 UN군의 평양 수복 때 후퇴하는 북한군에 의해 총살로 순교당한 장로교 목사이다.
아버님의 순교 60주년을 맞아 슬하의 5남매 중 남한에 피난 온 4남매가 추모문집을 엮었다. 유족을 대표한 맏아들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아버지의 순교 60주년을 추모하면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기도합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 되고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는 날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전쟁을 치룬 세대는 평화통일의 날을 맞이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동강을 넘어 한강에 와서 60년의 세월을 살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평화통일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세가 건너지 못한 요단강 강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 책 제목을 [대동강 건너, 요단강을 바라보며]라고 붙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즉, 이 책은 반공 목사인 아버지의 죽음을 다음세대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펴 낸 것이다. 그래서 서광선 박사는 머리말에 "이 책을 요단강 넘어 가나안 복지, 통일 한국을 바라보며 이를 위해서 노심초사 통일 운동과 평화 운동에 헌신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붙였다.
순교자 서용문 목사는
1905년 함흥에서 출생했다. 서용문 목사의 아버지는 구한말에 과거 무과에 합격한 무장이었지만 조선조의 군대가 일본에 의해서 해산된 이후 의병대장으로 항일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경 체포되어 함흥 감옥에 수감되고 즉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아이들 다섯에게 독약을 주어 죽게 하였으나, 말도 못하는 두 살 백이 용문(用文)이를 도저히 독살할 수가 없어 살려 두고 스스로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웃 분들이 모여서 장례를 치러주고, 용문이는 평안복도 두메산골에 사는 친척을 찾아 맡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당시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아주머니를 만나 선교사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선교사의 눈에 띄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1926년에 강계 영실학교 졸업하고, 1927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1928년 경 부터 평북 위원, 초산 등지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1930년에 김경숙(1907-1943)과 결혼, 슬하에 서광선, 웅선(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인민군으로 강제징집 당해 행방불명됨), 인선, 철선, 만선의 4남 1녀를 두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정면으로 거부하다가 불가피하게 교회를 사임하고 1938년 평북 만포진에서 식료품 잡화상 경영하였다. 그렇지만 목회에 대한 뜻을 버리지 못해 1939년 만주로 건너가 통화성 쾌대모자 교회의 전도사로 조선족 선교의 길을 가게 되었다. 1941년 만주의 본계호시 전도사에 취임하고, 심양시에 소재한 봉천신학교에 편입학하였다. 그 와중에 1943년, 가난한 살림과 힘든 일에 지쳐 영양실조에 걸린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당하기도 했다.
1944년 한진모(1910-1995) 전도사와 재혼하고 봉천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5년에 평북 강계로 귀국하여 예수교장로회 강서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해부터 평북 후창교회, 평양 보령교회, 장포동교회 등지에서 시무하였는데 북한공산당의 무신론에 맞서 담대히 기독교 복음을 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서용문 목사는 초지일관 강경하게 북한공산당을 비판하여 신변의 위협을 느꼈으나 피난을 종용하는 주변의 권고를 뿌리치고 평양에 남아 기독교 복음을 전하다가 같은 해 10월 평양 대동강 하류에서 인민군에 의해 총살형으로 순교 당하였다.
이 책은 모두 네 개의 에세이와 논문 한편,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개의 에세이는 고 서용문 목사의 맏아들부터 막내아들까지 각자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피난 내려오면서 겪은 고초,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갔다. 마지막으로 유일한 사위인 홍경만 박사의 "박해와 순교"에 관한 추모 논문을 게재하였다.
그리고 부록으로 소위 "88선언"으로 불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1988년)"을 담았다. 이 선언은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 총회에서 기립박수로 채택한 것으로 오재식, 강문규, 이삼열, 김용복, 박종화, 노정선, 민영진, 홍근수, 서광선 등이 공동 집필한 것이다. 서광선이 대표집필을 맡아 9인 위원들의 제안과 초안들을 종합한 이 선언은 "6·25 한국전쟁을 평양에서 겪고 아버지의 순교를 목도하면서 전쟁이 아니라 원수에 대한 용서, 화해와 평화 구축을 통하여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순교자 아버지의 유지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독교 정신으로 문서 작성에 임하였음을 밝히고 싶다."는 취지문대로 그 의미가 이 책의 출간과 맞닿아 게재하게 되었다.
목차
목차
순교 60주년 회고록을 내면서 _서광선
순교자 서용문 목사 - "오직예수"의 신앙과 열정의 삶 _서광선
순교자의 딸 -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_서인선
아버지 없이 신앙으로 살아온 아들의 편지 _서철선
순교자의 아내, 어머니를 기리며 _서만선
박해와 순교 - 교회사학자 사위의 특별기고 _홍경만
부록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1988년)_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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