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의 기원(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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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사관’이라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의 기원!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사관을 발전하여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살펴보는 『그리스도교의 기원』. 독일의 사회사상가로 마르크스주의 옹호론을 전개하였던 칼 카우츠키가 집필한 이 책은 원시 그리스도교가 형성된 과정을 비롯하여 그리스도교가 원래의 공산주의적 성격을 잃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육신의 부활, 기적이야기 등을 사회주의적인 관점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고대 로마의 몰락 과정에서 대도시 중심 문명의 모순을 포착하며, 대도시 상업가의 성격을 가진 유태인들의 특성이 그리스도교의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한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경제적 조건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로서 실패했지만 프롤레탈리아 계급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은 승리할 것으로 전망하는 1900년대의 사회주의적 지식인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사관을 발전하여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살펴보는 『그리스도교의 기원』. 독일의 사회사상가로 마르크스주의 옹호론을 전개하였던 칼 카우츠키가 집필한 이 책은 원시 그리스도교가 형성된 과정을 비롯하여 그리스도교가 원래의 공산주의적 성격을 잃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육신의 부활, 기적이야기 등을 사회주의적인 관점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고대 로마의 몰락 과정에서 대도시 중심 문명의 모순을 포착하며, 대도시 상업가의 성격을 가진 유태인들의 특성이 그리스도교의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한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경제적 조건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로서 실패했지만 프롤레탈리아 계급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은 승리할 것으로 전망하는 1900년대의 사회주의적 지식인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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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유물사관으로 다룬 원전을 만나다
1. 책 소개
칼 카우츠키. 칼 맑스 이후 맑스주의 최고의 이론가였지만, 사회주의 실천 방법론의 대립으로 볼셰비키 혁명세력으로부터 축출당하고 급기야 히틀러에게 가족을 모두 잃는 불우한 만년을 보낸 사회민주주의자이다. 그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후에 혁명의 진행 상황을 관찰하고 그 혁명이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주의는 인정할 수 없으며 그것은 역사를 퇴보시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그 때문에 레닌에 의해 "변절자"라는 칭호를 받았으나 소비에트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을 끝까지 중단하지 않는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100년이 흐른 지금, 현실 사회주의권은 붕괴됐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유토피아는 나무의 체관처럼, 인체의 동맥처럼 곳곳에서 살아 있는 터. 이 책은 소비에트 독재체제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가했던 사회주의 사상가 카우츠키의 시각으로 사회주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기 위한 기획으로 출간하는 <칼 카우츠키 시리즈> 3부작 첫 권이다.
카우츠키는 이 책에서 유물사관의 관점으로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해 세세히 파헤친다. 지금은 이미 역사학적 연구에 의해 '일반적 반론'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예수의 동정녀 탄생', '육신의 부활', '기적이야기' 등을 교회가 권력과 밀착 되어 있던 19세기-20세기 초 상황에서 역사적 사실 관계로 따지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을 터이다. 카우츠키가 내세우는 유물사관의 관점은 익히 알고 있듯이, 물적 ㆍ 경제적 토대에서 정치조직과 문화적 ㆍ 정신적 경향의 변천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개연성 있는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학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CSI과학수사와 비견해 봄직하다. 저자는 유럽의 역사와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수가 되는 그리스도교의 형성 과정을 위와 같은 작업가설을 바탕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합리적이고 건전한 양식에 의존하여 설명한다. 이 가설은 논리적인 비약이나 주관적인 억설 없이 여러 사료들을 차분하게 인용하고 검토하면서 2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되살려내기에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럽 사회에서 해방적 그리스도교가 수백 년에 걸쳐 변질된, 이른바 변증법적 과정을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나타내 보였다. 이 시대의 한국 사회. 종교와 권력의 밀월관계가 카우츠키가 살던 시대의 거울을 보는 듯한 상황이다. 카우츠키의 이 책은 원시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원래의 공산주의적 성격을 잃게 되었는지를 당시 유럽 가톨릭교회를 염두에 두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현재의 교회 조직이 지나온 궤적과 지금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 책의 의미
이 책은 주로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겠지만 카우츠키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해 갖는 관심과는 다른 측면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 주된 내용은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된 고대 로마의 경제적, 정치적, 정신문화적 흥망성쇠의 변천 과정을 고찰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리엔트 지역에서 생성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고대 로마의 변천 과정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해 주는 문화적인 매개체로 등장한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했다. 고대 유럽 사회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요소로서 동방에서의 유대-그리스도교의 출현과 로마 사회에서 한 역할을 살펴본 것이다.
그러므로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로마 제국의 역사 혹은 고대 유럽의 역사, 특히 그 사회사, 문화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에 가장 적합한 책이며, 이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만의 관심사라고 할 수는 없다.
카우츠키는 맑스-엥겔스의 사상을 계승한 사회민주주의 이론가 중에서도 학문적으로는 그들의 역사적 유물론 혹은 유물사관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킨 역사가로서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그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카우츠키가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저술 "윤리학과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이를 이론화하기도 했지만, 주로 그리스도교 공산주의 운동사로 볼 수 있는 『토마스모어와 그의 유토피아』(1888),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1894), 그리고 이 책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에서 전개한 역사 서술 방식이 그러한 역사관의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농업경제이론이나 민주주의론도 그를 특징지어 주는 요소들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대파들이 많은 반면, 카우츠키는 역사 연구자로서의 탁월성을 인정받는 데 논란의 여지가 없다.
카우츠키는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 의해서는 대체로 엄밀한 역사가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예수를 사회민주주의 혁명가로 채색한 정치적 저술가로 간주된다. 이는 카우츠키가 실제로 사회민주주의 기관지 <노이예 차이트>의 편집자로서 치열한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고, 그런 일에 종사하는 틈틈이 고대 역사를 그것도 유물론의 입장에 따라 서술했다는 데서 비롯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학자들이 그 내용에 대한 진지한 이해나 적용했다고 하는 유물사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사회적 제 관계에 따라 종교 현상을 포함한 정치사회적 사실들을 설명한다고 하는 것은 이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역사가들도 충분히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방법론이 되어 있으나 이는 19세기 독일에서 이미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교회 바깥의 브루노 바우어와 같은 좌파 역사가들이 발전시킨 방법론이며, 카우츠키도 교회 바깥의 무신론적인 기독교 역사 연구자들의 영향을 받았고, 이들을 계승한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신앙적인 전제에서의 이질성 때문에 기독교 신학자들이 브루노 바우어, 카우츠키와 같은 교회 밖의 연구자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카우츠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유물론적 역사 인식의 기본 입장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어떠한 역사적 현실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시점의 자연 환경, 생산 양식, 기술 발전의 단계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 내지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어떤 법칙을 상정하고 이에 따라 역사를 끼워 맞추어 단순하게 서술하거나 과거의 일정한 패턴에 대한 유추에 의해 현재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미래의 예측을 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거시적인 물적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조건들을 이해할 때 어떤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민주주의와 현재의 민주주의, 과거의 그리스도교와 현재의 그리스도교 같은 외관상 비슷한 현상이나 사건이라도 같은 변천 양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대적으로 주어진 여러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과거 역사를 연구한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에 대한 이해나 실행 지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계속 변화해 가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비슷한 사실이라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현실의 과제는 현재의 조건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카우츠키가 말하는 유물론적 역사관이다. 이는 객관적인 역사 기술의 입장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과거 역사에 대한 연구를 현실의 당면 문제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현실의 문제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에서 벗어나 긴 흐름의 거시적 안목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 투쟁의 와중에서 일견 한가해 보이는 고대의 역사를 저술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층에게 당면한 운동 방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 교양이 주는 거시적 안목과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임을 카우츠키는 밝히고 있다.
이러한 역사 기술의 입장이 카우츠키가 말하는 유물사관이며, 이는 우리가 학생시절 제도권의 반공교육에서 접한 역사에 대한 도식적인 단계적 이해로서의 유물사관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옮긴이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줄곧 지녔던 관심이 그리스도교가 정말 어떻게 생겨난 종교인지가 궁금했다기보다는 교회 바깥에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회주의적 지식인이 그리스도교라는 현상과 그 역사를 어떻게 보았는지가 궁금했다. 단순히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식의 공산주의 종교 이해나 슐라이헤르마허 식의 철학적 환원론을 넘어서 신구약성서와 교회의 탄생 이야기와 같은 소재에 대해서 나름대로 학문적 시각과 논리를 갖춘 사회주의 사상가는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간접적으로는 최근의 생태주의적 전환을 위한 사상적인 배경을 발굴하는 어느 책[Bellamy Foster, Marx's Ecology]에서 맑스, 엥겔스부터 그 후 카우츠키를 포함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여러 사회주의 진영의 이론가들의 변증법과 유물론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하고 있는 것을 흥미 있게 본 일이 있어서 이들의 변증법적 우주관, 세계관이 옮긴이에게 관심사가 되었다. 생태적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그러한 변증법적 세계관이 유물사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적인 변화과정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이 더욱더 카우츠키의 역사 기술에 대해 흥미를 갖게 했다.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지리적 환경 변화에 의한 민족대이동, 지력의 고갈 등을 중대한 설명 변수로 보는 점 등에서 생태적 관심에서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3. 책의 내용
이 책은 서론과 기존 역사문헌 고찰을 한 후 주로 로마 제국을 대상으로 하여, 바로 로마 시대의 경제구조와 경제사를 서술한다.
역사문헌에 대한 고찰에서는 특히 기독교 교회 내에서 쓰인 성서나 그 밖의 종교서적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으며, 그 신뢰성에 한계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현대 신학자들이 더 잘 알고 있고, 또 카우츠키가 새로이 밝혀낸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종교적 목적에서 쓰인 사료라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경제사에서는 로마가 어떻게 강성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로마 제국이 노예경제로 되면서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걸었는지를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러한 경제적 제 관계를 먼저 설명한 다음 로마의 국가 정치제도와 정신생활과 문화의 변천을 설명하는 순서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경제적 관계가 역사 변동의 배경이 된다는 유물사관에 의한 것이다.
로마가 여러 세기에 걸쳐 사회적인 쇠퇴와 함께 정신적으로도 쇠퇴해 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동방에서 유태인들과 함께 들어온 그리스도교가 그 시대의 정신적 필요를 충족해 주는 측면도 있고, 또 그리스도교 자체도 그런 문화적 토양에서 쇠퇴해 가는 사회의 특성이 그 종교의 모습에 각인되는 행태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동방에서 유태인들과 함께 들어온 그리스도교가 팔레스티나 지역을 배경으로 어떻게 생겨났으며, 당시의 교역 루트의 생성과 변화 과정에 따라 어떻게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 가서 그곳의 사회와 결합되어 갔는지를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카우츠키가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유태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유태인들이 유전적으로 어떤 특별한 자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라 수천 년 전부터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있었던 사회경제적인 상황 변화에 의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인으로서의 특성을 띠게 된 것으로 본다. 유태교와 그리스도교 역시 대도시에서 상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반영하는 모습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분석을 할 경우에도 참고할 만한 힌트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음서들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는 수난 이야기는 사실상 그 이야기 그대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으로서 어떤 실제적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나중에 교회공동체에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처형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태인들에게 부여된 악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은 사실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통용시킨 유럽의 역사에서 유태인들이 받은 멸시와 고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의 제일 마지막 장은 그리스도교와 사회민주주의라는 카우츠키 당시의 현실인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 카우츠키 이전에 엥겔스가 그리스도교의 초기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엥겔스가 어떤 책에 붙인 서문에서 이 주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노선 변경, 즉 혁명노선의 포기에 대한 엥겔스의 찬성을 말해 준다는 당시의 일부 사회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해 카우츠키는 그것은 엥겔스를 오해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적 형태로서의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 시대의 경제적 조건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로서 실패하고 지배적 제도조직으로 변질한 반면, 카우츠키 당시의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은 사회경제적 토대가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것으로 바라보는 낙관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물론 카우츠키의 예상은 틀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지나치게 낙관하는 쪽으로 서술한 것은 사실이며, 이 대목이 그 당시의 카우츠키의 분석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물론 그가 그 후에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한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사회주의의 혁명으로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낙관적인 생각은 수정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후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가 필수적인 요소로서 포함된 사회주의 운동을 목표로 하는 노선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카우츠키의 입장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카우츠키의 생각도 현실의 운동 과정에서 계속 달라져 갔으며, 그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다음에야 기독교의 기원이 나온 1908년의 생각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4. 시사점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실질적으로 유럽의 고대사인 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의 서술로서 유럽 무대의 중대한 세력이고 설명 변수가 되는 그리스도교라는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과 세계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실체에 대해서도 카우츠키와 같은 방법으로 파악을 하려면, 현재의 경제적 체제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이러한 물질적인 변화 과정에 부합하여 정치와 문화, 그리고 그중에서 종교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지, 어떤 역할을 담당해 가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수 세기에 걸친 유럽의 고대사의 변화 과정을 추적 설명하는 데서 오는 거시적인 안목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지구촌과 한반도에 생태적, 경제 ㆍ 지리적으로 어떠한 장기적인 흐름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수십 년 아니 수 세기의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문명사적 시야가 카우츠키의 관점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지나친 비관이나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현재의 제반 상황에 대한 차분한 관찰, 그리고 당면한 바쁜 현실 속에서도 먼 과거의 역사의 흐름에 관심을 갖는 사고의 폭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는 당연히 그리스도교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책임 있게 살아가려는 모두에게 필요한 관점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지나온 역사와 현재의 변화 과정을 너무 가까이서 애증을 가지고 바라본 나머지 현실에 매몰되어 나무만 보고 큰 숲을 보지 못하기보다는 자연과 사회의 장기적인 변동과정을 이해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한 존재 내지 집단으로 그리스도교 교회를 파악하여 그 변화의 방향과 달라진 형태를 기대해 보는 것도 어떤 점에서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1. 책 소개
칼 카우츠키. 칼 맑스 이후 맑스주의 최고의 이론가였지만, 사회주의 실천 방법론의 대립으로 볼셰비키 혁명세력으로부터 축출당하고 급기야 히틀러에게 가족을 모두 잃는 불우한 만년을 보낸 사회민주주의자이다. 그는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후에 혁명의 진행 상황을 관찰하고 그 혁명이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주의는 인정할 수 없으며 그것은 역사를 퇴보시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그 때문에 레닌에 의해 "변절자"라는 칭호를 받았으나 소비에트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을 끝까지 중단하지 않는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100년이 흐른 지금, 현실 사회주의권은 붕괴됐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유토피아는 나무의 체관처럼, 인체의 동맥처럼 곳곳에서 살아 있는 터. 이 책은 소비에트 독재체제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가했던 사회주의 사상가 카우츠키의 시각으로 사회주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기 위한 기획으로 출간하는 <칼 카우츠키 시리즈> 3부작 첫 권이다.
카우츠키는 이 책에서 유물사관의 관점으로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해 세세히 파헤친다. 지금은 이미 역사학적 연구에 의해 '일반적 반론'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예수의 동정녀 탄생', '육신의 부활', '기적이야기' 등을 교회가 권력과 밀착 되어 있던 19세기-20세기 초 상황에서 역사적 사실 관계로 따지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을 터이다. 카우츠키가 내세우는 유물사관의 관점은 익히 알고 있듯이, 물적 ㆍ 경제적 토대에서 정치조직과 문화적 ㆍ 정신적 경향의 변천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이 개연성 있는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학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CSI과학수사와 비견해 봄직하다. 저자는 유럽의 역사와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수가 되는 그리스도교의 형성 과정을 위와 같은 작업가설을 바탕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합리적이고 건전한 양식에 의존하여 설명한다. 이 가설은 논리적인 비약이나 주관적인 억설 없이 여러 사료들을 차분하게 인용하고 검토하면서 2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되살려내기에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럽 사회에서 해방적 그리스도교가 수백 년에 걸쳐 변질된, 이른바 변증법적 과정을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나타내 보였다. 이 시대의 한국 사회. 종교와 권력의 밀월관계가 카우츠키가 살던 시대의 거울을 보는 듯한 상황이다. 카우츠키의 이 책은 원시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원래의 공산주의적 성격을 잃게 되었는지를 당시 유럽 가톨릭교회를 염두에 두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현재의 교회 조직이 지나온 궤적과 지금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 책의 의미
이 책은 주로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겠지만 카우츠키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해 갖는 관심과는 다른 측면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 주된 내용은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된 고대 로마의 경제적, 정치적, 정신문화적 흥망성쇠의 변천 과정을 고찰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리엔트 지역에서 생성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고대 로마의 변천 과정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해 주는 문화적인 매개체로 등장한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했다. 고대 유럽 사회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요소로서 동방에서의 유대-그리스도교의 출현과 로마 사회에서 한 역할을 살펴본 것이다.
그러므로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로마 제국의 역사 혹은 고대 유럽의 역사, 특히 그 사회사, 문화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에 가장 적합한 책이며, 이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만의 관심사라고 할 수는 없다.
카우츠키는 맑스-엥겔스의 사상을 계승한 사회민주주의 이론가 중에서도 학문적으로는 그들의 역사적 유물론 혹은 유물사관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킨 역사가로서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그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카우츠키가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저술 "윤리학과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이를 이론화하기도 했지만, 주로 그리스도교 공산주의 운동사로 볼 수 있는 『토마스모어와 그의 유토피아』(1888),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1894), 그리고 이 책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에서 전개한 역사 서술 방식이 그러한 역사관의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농업경제이론이나 민주주의론도 그를 특징지어 주는 요소들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대파들이 많은 반면, 카우츠키는 역사 연구자로서의 탁월성을 인정받는 데 논란의 여지가 없다.
카우츠키는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 의해서는 대체로 엄밀한 역사가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예수를 사회민주주의 혁명가로 채색한 정치적 저술가로 간주된다. 이는 카우츠키가 실제로 사회민주주의 기관지 <노이예 차이트>의 편집자로서 치열한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고, 그런 일에 종사하는 틈틈이 고대 역사를 그것도 유물론의 입장에 따라 서술했다는 데서 비롯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학자들이 그 내용에 대한 진지한 이해나 적용했다고 하는 유물사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사회적 제 관계에 따라 종교 현상을 포함한 정치사회적 사실들을 설명한다고 하는 것은 이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역사가들도 충분히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방법론이 되어 있으나 이는 19세기 독일에서 이미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교회 바깥의 브루노 바우어와 같은 좌파 역사가들이 발전시킨 방법론이며, 카우츠키도 교회 바깥의 무신론적인 기독교 역사 연구자들의 영향을 받았고, 이들을 계승한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신앙적인 전제에서의 이질성 때문에 기독교 신학자들이 브루노 바우어, 카우츠키와 같은 교회 밖의 연구자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카우츠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유물론적 역사 인식의 기본 입장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어떠한 역사적 현실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시점의 자연 환경, 생산 양식, 기술 발전의 단계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 내지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어떤 법칙을 상정하고 이에 따라 역사를 끼워 맞추어 단순하게 서술하거나 과거의 일정한 패턴에 대한 유추에 의해 현재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미래의 예측을 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거시적인 물적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조건들을 이해할 때 어떤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민주주의와 현재의 민주주의, 과거의 그리스도교와 현재의 그리스도교 같은 외관상 비슷한 현상이나 사건이라도 같은 변천 양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대적으로 주어진 여러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을 띠기 때문에 과거 역사를 연구한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에 대한 이해나 실행 지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계속 변화해 가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비슷한 사실이라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현실의 과제는 현재의 조건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카우츠키가 말하는 유물론적 역사관이다. 이는 객관적인 역사 기술의 입장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과거 역사에 대한 연구를 현실의 당면 문제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현실의 문제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에서 벗어나 긴 흐름의 거시적 안목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 투쟁의 와중에서 일견 한가해 보이는 고대의 역사를 저술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층에게 당면한 운동 방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 교양이 주는 거시적 안목과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임을 카우츠키는 밝히고 있다.
이러한 역사 기술의 입장이 카우츠키가 말하는 유물사관이며, 이는 우리가 학생시절 제도권의 반공교육에서 접한 역사에 대한 도식적인 단계적 이해로서의 유물사관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옮긴이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줄곧 지녔던 관심이 그리스도교가 정말 어떻게 생겨난 종교인지가 궁금했다기보다는 교회 바깥에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회주의적 지식인이 그리스도교라는 현상과 그 역사를 어떻게 보았는지가 궁금했다. 단순히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식의 공산주의 종교 이해나 슐라이헤르마허 식의 철학적 환원론을 넘어서 신구약성서와 교회의 탄생 이야기와 같은 소재에 대해서 나름대로 학문적 시각과 논리를 갖춘 사회주의 사상가는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간접적으로는 최근의 생태주의적 전환을 위한 사상적인 배경을 발굴하는 어느 책[Bellamy Foster, Marx's Ecology]에서 맑스, 엥겔스부터 그 후 카우츠키를 포함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여러 사회주의 진영의 이론가들의 변증법과 유물론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하고 있는 것을 흥미 있게 본 일이 있어서 이들의 변증법적 우주관, 세계관이 옮긴이에게 관심사가 되었다. 생태적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그러한 변증법적 세계관이 유물사관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적인 변화과정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이 더욱더 카우츠키의 역사 기술에 대해 흥미를 갖게 했다.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친 지리적 환경 변화에 의한 민족대이동, 지력의 고갈 등을 중대한 설명 변수로 보는 점 등에서 생태적 관심에서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3. 책의 내용
이 책은 서론과 기존 역사문헌 고찰을 한 후 주로 로마 제국을 대상으로 하여, 바로 로마 시대의 경제구조와 경제사를 서술한다.
역사문헌에 대한 고찰에서는 특히 기독교 교회 내에서 쓰인 성서나 그 밖의 종교서적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으며, 그 신뢰성에 한계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현대 신학자들이 더 잘 알고 있고, 또 카우츠키가 새로이 밝혀낸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종교적 목적에서 쓰인 사료라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경제사에서는 로마가 어떻게 강성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로마 제국이 노예경제로 되면서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걸었는지를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러한 경제적 제 관계를 먼저 설명한 다음 로마의 국가 정치제도와 정신생활과 문화의 변천을 설명하는 순서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경제적 관계가 역사 변동의 배경이 된다는 유물사관에 의한 것이다.
로마가 여러 세기에 걸쳐 사회적인 쇠퇴와 함께 정신적으로도 쇠퇴해 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동방에서 유태인들과 함께 들어온 그리스도교가 그 시대의 정신적 필요를 충족해 주는 측면도 있고, 또 그리스도교 자체도 그런 문화적 토양에서 쇠퇴해 가는 사회의 특성이 그 종교의 모습에 각인되는 행태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동방에서 유태인들과 함께 들어온 그리스도교가 팔레스티나 지역을 배경으로 어떻게 생겨났으며, 당시의 교역 루트의 생성과 변화 과정에 따라 어떻게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 가서 그곳의 사회와 결합되어 갔는지를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카우츠키가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유태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유태인들이 유전적으로 어떤 특별한 자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라 수천 년 전부터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있었던 사회경제적인 상황 변화에 의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인으로서의 특성을 띠게 된 것으로 본다. 유태교와 그리스도교 역시 대도시에서 상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반영하는 모습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분석을 할 경우에도 참고할 만한 힌트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음서들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는 수난 이야기는 사실상 그 이야기 그대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으로서 어떤 실제적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나중에 교회공동체에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처형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태인들에게 부여된 악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은 사실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통용시킨 유럽의 역사에서 유태인들이 받은 멸시와 고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의 제일 마지막 장은 그리스도교와 사회민주주의라는 카우츠키 당시의 현실인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 카우츠키 이전에 엥겔스가 그리스도교의 초기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엥겔스가 어떤 책에 붙인 서문에서 이 주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노선 변경, 즉 혁명노선의 포기에 대한 엥겔스의 찬성을 말해 준다는 당시의 일부 사회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해 카우츠키는 그것은 엥겔스를 오해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적 형태로서의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 시대의 경제적 조건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로서 실패하고 지배적 제도조직으로 변질한 반면, 카우츠키 당시의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은 사회경제적 토대가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것으로 바라보는 낙관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물론 카우츠키의 예상은 틀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지나치게 낙관하는 쪽으로 서술한 것은 사실이며, 이 대목이 그 당시의 카우츠키의 분석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물론 그가 그 후에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한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사회주의의 혁명으로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낙관적인 생각은 수정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후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가 필수적인 요소로서 포함된 사회주의 운동을 목표로 하는 노선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카우츠키의 입장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카우츠키의 생각도 현실의 운동 과정에서 계속 달라져 갔으며, 그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다음에야 기독교의 기원이 나온 1908년의 생각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4. 시사점
『칼 카우츠키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실질적으로 유럽의 고대사인 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의 서술로서 유럽 무대의 중대한 세력이고 설명 변수가 되는 그리스도교라는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과 세계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실체에 대해서도 카우츠키와 같은 방법으로 파악을 하려면, 현재의 경제적 체제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이러한 물질적인 변화 과정에 부합하여 정치와 문화, 그리고 그중에서 종교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지, 어떤 역할을 담당해 가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수 세기에 걸친 유럽의 고대사의 변화 과정을 추적 설명하는 데서 오는 거시적인 안목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지구촌과 한반도에 생태적, 경제 ㆍ 지리적으로 어떠한 장기적인 흐름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수십 년 아니 수 세기의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문명사적 시야가 카우츠키의 관점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지나친 비관이나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현재의 제반 상황에 대한 차분한 관찰, 그리고 당면한 바쁜 현실 속에서도 먼 과거의 역사의 흐름에 관심을 갖는 사고의 폭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는 당연히 그리스도교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책임 있게 살아가려는 모두에게 필요한 관점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지나온 역사와 현재의 변화 과정을 너무 가까이서 애증을 가지고 바라본 나머지 현실에 매몰되어 나무만 보고 큰 숲을 보지 못하기보다는 자연과 사회의 장기적인 변동과정을 이해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한 존재 내지 집단으로 그리스도교 교회를 파악하여 그 변화의 방향과 달라진 형태를 기대해 보는 것도 어떤 점에서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목차
목차
저자 서문
제I부 예수의 인성
제1장_ 이교도 측의 사료
제2장_ 그리스도교의 문헌
제3장_ 예수의 모습에 대한 논란
제II부 로마 제국의 사회
제1장_ 노예 경제
토지 소유권 / 가정 노예제 / 상품 생산에서의 노예제 / 노예 경제의 기술적 열등성 / 경제적 쇠퇴
제2장_ 국가 제도
국가와 상업 / 원로원 의원과 평민들 / 로마의 국가 / 대금업 / 절대주의
제3장_ 로마 제국 시대의 사상과 정서
불안정 / 경신 / 허위 / 인간미 / 국제성 / 종교성 / 유일신 신앙
제III부 유태인들
제1장_ 이스라엘
셈족의 이동 / 팔레스티나 / 고대 이스라엘의 신 관념 / 상업과 철학 / 상업과 민족성 / 여러 민족들의 도로, 가나안 / 이스라엘에서의 계급투쟁 / 이스라엘의 쇠망 / 예루살렘의 첫 번째 파괴
제2장_ 포로기 이후의 유태인들
포로기 / 유태인들의 디아스포라 / 유태교의 포교 / 유태인 증오 / 예루살렘 / 사두가이파 사람들 / 바리사이파 사람들 / 젤롯당원들 / 에세네인들
제IV부 그리스도교의 출범
제1장_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
공동체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 / 계급 증오 / 공산주의 / 공산주의의 존재에 대한 반론들 / 노동에 대한 멸시 / 가족의 파괴
제2장_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관념
하느님 나라의 도래 / 예수의 족보 / 예수의 반체제 성향 / 십자가에 달린 자의 부활 / 국제적 구원자
제3장_ 유태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
이교도들 사이의 선동 / 유태인들과 그리스도인들 간의 대립
제4장_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
제5장_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발달
프롤레타리아들과 노예들 / 공산주의의 쇠퇴 / 사도들, 예언자들, 교사들 / 주교 / 수도원 제도
제6장_ 그리스도교와 사회민주주의
옮긴이의 글
연표
인명 사전
색인
성경색인
제I부 예수의 인성
제1장_ 이교도 측의 사료
제2장_ 그리스도교의 문헌
제3장_ 예수의 모습에 대한 논란
제II부 로마 제국의 사회
제1장_ 노예 경제
토지 소유권 / 가정 노예제 / 상품 생산에서의 노예제 / 노예 경제의 기술적 열등성 / 경제적 쇠퇴
제2장_ 국가 제도
국가와 상업 / 원로원 의원과 평민들 / 로마의 국가 / 대금업 / 절대주의
제3장_ 로마 제국 시대의 사상과 정서
불안정 / 경신 / 허위 / 인간미 / 국제성 / 종교성 / 유일신 신앙
제III부 유태인들
제1장_ 이스라엘
셈족의 이동 / 팔레스티나 / 고대 이스라엘의 신 관념 / 상업과 철학 / 상업과 민족성 / 여러 민족들의 도로, 가나안 / 이스라엘에서의 계급투쟁 / 이스라엘의 쇠망 / 예루살렘의 첫 번째 파괴
제2장_ 포로기 이후의 유태인들
포로기 / 유태인들의 디아스포라 / 유태교의 포교 / 유태인 증오 / 예루살렘 / 사두가이파 사람들 / 바리사이파 사람들 / 젤롯당원들 / 에세네인들
제IV부 그리스도교의 출범
제1장_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
공동체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 / 계급 증오 / 공산주의 / 공산주의의 존재에 대한 반론들 / 노동에 대한 멸시 / 가족의 파괴
제2장_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관념
하느님 나라의 도래 / 예수의 족보 / 예수의 반체제 성향 / 십자가에 달린 자의 부활 / 국제적 구원자
제3장_ 유태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
이교도들 사이의 선동 / 유태인들과 그리스도인들 간의 대립
제4장_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
제5장_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발달
프롤레타리아들과 노예들 / 공산주의의 쇠퇴 / 사도들, 예언자들, 교사들 / 주교 / 수도원 제도
제6장_ 그리스도교와 사회민주주의
옮긴이의 글
연표
인명 사전
색인
성경색인
저자
저자
칼 카우츠키
저자 칼 카우츠키(1854년 10월 16일~1938년 10월 17일) 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화가인 부친과 소설가인 모친 사이에 태어나 7세에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주하여, 명문 빈 김나지움을 거쳐 빈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 시절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했고 1880년에 스위스 취리히의 독일 사회주의자 그룹에 합류했으며, 이때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영향을 받아 맑스주의자가 되었고 1881년에 영국을 방문하여 맑스와 엥겔스를 만난다. 1883년에 <노이예 차이트>지를 창간하여 1917년까지 35년간을 편집자로 지내면서 맑스주의 사상을 보급 전파했다. 1891년에는 베벨, 베른슈타인과 함께 독일 사회민주당의 에르푸르트 강령을 기초했다. 1890년대 후반에 베른슈타인이 혁명노선을 포기하고 개량주의를 주창하자 그를 비판하고 결별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그는 그 전쟁이 제정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방어 전쟁임을 인정했으며, 전쟁에 말려든 모든 나라들이 조국의 방어권이 있음을 주장했다. 사회민주당이 전쟁 공채 발행에 찬성했을 때 그는 독일 정부가 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방어의 목적으로 참전할 때만 그 공채 발행을 찬성해야 한다고 다분히 이론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을 폈다고 한다. 1917년에는 전쟁의 지속을 반대하여 사회민주당을 탈당하고 반전주의 사회주의 세력을 규합한 독립사회민주당을 결성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후에 그는 곧 혁명의 진행 상황을 관찰하고 그 혁명이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주의는 인정할 수 없으며 그것은 역사를 퇴보시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 때문에 카우츠키는 레닌에 의해 "변절자"라는 칭호를 받았으나 소비에트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을 끝까지 중단하지 않았다. 1920년대부터는 독일 사회민주주의 진영에서 영향력을 잃고 가족과 함께 빈으로 돌아가 저술 활동을 계속하면서 민주주의와 평화에 토대를 둔 온건한 입장의 사회주의를 강조했다. 1938년 나치에게 아내와 자식을 잃고 빈을 탈출하여 쫓겨 다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 카우츠키의 업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맑스와 특히 엥겔스의 유물사관을 발전시켜 유럽의 사회경제 및 혁명적 종교사상의 역사를 개관한 역사서들인 『토마스모어의 그의 유토피아』(1888)를 비롯하여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1894),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등이 유물사관의 전형을 제시한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민주당의 에르푸르트 강령을 비롯하여 맑스의 경제학을 해설하고 농업문제를 진단한 것, 그리고 맑스의 경제학설사 연구를 편집한 것, 그의 제국주의론 등이 경제학설에 관련된 업적으로서 남아 있다. 끝으로 그의 생애 마지막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사회주의의 정치적 기초에 대하여 논한 그의 민주주의 이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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