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얼리즘과 영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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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얼리즘과 영의 신학』은 故 이신 목사의 '초현실주의와 영'의 신학을 소개한 책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학위 논문 <전위 묵시문학 현상-묵시문학 해석을 위한 현상학적 고찰>과 그의 글 <슐리얼리즘 신학> 2편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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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슐리얼리즘과 영의 신학』은 故 이신 목사의 '초현실주의와 영'의 신학을 소개한 책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학위 논문 <전위 묵시문학 현상-묵시문학 해석을 위한 현상학적 고찰>과 그의 글 <슐리얼리즘 신학> 2편 등이 실려 있다.
고독과 저항의 창조적 삶을 살다 간
기독교 영성가 이신 박사 유고집
이신 박사의 유고집이었던 『李信의 슐리어리즘과 靈의 신학』(1992, 종로서적)을 복간한 책이다. 지은이는 우리 시대를 살다 간 창조적인 기독교 영성가로 평가를 받으며 최근 그의 삶과 신앙이 재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의 일일뿐 그는 한국의 신학계와 사상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창조적인 영성가로, 한국 초유의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목사 화가로 삶을 일구어 간 그가 죽은 지 30년이 넘은 이 시대에도 독창적이고 새로운 글들이다. 하지만 몇몇의 글들은 그가 살던 시대에 조명을 받지 못하고 세인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던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초판이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책이지만 이 책에는 이신 박사의 신학사상 정수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별히 이번 복간에서는 그의 삶을 다시 정리하여 실었으며, 미술 작품도 몇몇 담았다.
그는 한국 신학계에서 몇 되지 않는 '유학파'교수였다. 그러나 주류 종파가 아닌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한 뒤, 그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 스스로 고독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글에서 말하듯 예수의 영혼에 사로잡혔기에 자신의 삶을 십자가의 삶에 맞춰간 것이리라. 1970년대 칼바람 일던 군부독재시절에 주류에 투항하지 않고, 달동네 빈민촌에서 지체장애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문맹의 부녀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민중의 삶을 체화하며 저항의 삶을 살았다. 고독과 저항의 선각자, 창조적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다 간 그의 사상을 이 책을 통해 깊게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편의 부록이 첨가되었다. 제1부는 그의 학위 논문, 「전위 묵시문학 현상 - 묵시문학 해석을 위한 현상학적 고찰」을 이경 박사가 완역한 것이다. 제목이 잘 말하여 주듯 이 논문은 일종의 비전문학적인 신구약 중간기의 '묵시 또는 계시문학'(The Apocalyptic)의 의식 세계를 현상학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묵시문학은 모든 기독교 신학의 모체였다"라고 한 독일 포스트 불트마니언 신약학자 케제만(E. Kasemann)의 말을 인용하면서 후세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거나 단지 '외경'으로 분류되어 비의적인 문서로서 전달된 '묵시문학' 속에 기독교 등장의 열쇠가 담겨져 있으며, 따라서 기독교의 본질적 역동성이 여기에서 근원되었다는 것을 밝혀 주고 있다. 즉 유대 묵시문학이란 바빌론 유수 이후 세계사적인 대변동의 시기였던 BC 2세기경부터 형성된 것인데, 당시 정치적, 문화 ? 종교적으로 더 이상의 희망을 포기한 소수의 히브리인들이 '에세네 공동체'나 '열심당' 등의 모습으로 섹트화되고 '하시드 운동'이나 '마카비 전쟁' 등에서 자신들의 현실 부정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그들의 절망적인 역사관을 표현한 것이고, 또한 그 역사를 뛰어넘어 도래할 '전혀 새로운 것', '초역사적인 것',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초의식적 환상을 그려낸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 소수들의 전위 의식과 저항의식 속에 후일 예수의 '인자'(人子) 의식, '메시아 왕국' 의식 등에서 표현된 기독교 신앙의 원형과 '원초적인 상'(premodial type)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묵시[계시]문학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은 한국 신학계 풍토를 생각할 때 이 논문의 의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특히 종교다원주의의 상황에서 기독교 토착화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는 때에 기독교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유대 묵시문학이 당시 유대의 유일신론, 바빌로니아의 우주론, 인도의 이원론과 헬레니즘, 그리고 특히 영지주의와의 상호 관련성 속에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가르침은 오늘날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배타적인 기독교 이해에 대해 좋은 반증이 된다고 하겠다. 또한 예수의 의식도 그 독특성과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묵시문학적 환경에서 영근 것이라는 사실은 좀 더 열려진 기독교 이해를 위해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와 더불어 또 다른 중요한 의의는 저자가 이 논문의 목적으로 밝혔듯이 오늘날 세속화와 신의 죽음의 시대에 모두 퇴색해 버린 것 같은 "기독교의 역동성"을 그 모체의 탐색을 통해 재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권위와 가치를 의문시하고 '메시아'와 '메시아 왕국'이라는 인간과 사회의 원형에 대한 초월적 환상으로 표현된 묵시문학의 저항정신에서 기독교 예수의 원초적 메시지를 보고, 그 지적을 통해 오늘날의 상황에서 기독교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슐리얼리즘의 신학"(Theology of Surrealism)이라는 제목 하에 엮은 제2부는 이러한 저자의 기독교 신앙 이해가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또한 확장되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기록의 모음이다. 위에서 소개한 학위 논문의 후반부가 어떻게 현대의 신학과 문화 현상과 관계되는지에 대한 그 직접적인 연관성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다시 묵시문학의 원형적 모습을 읽을 수 있을까를 탐구한 것인데, 「고독과 저항의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 연구는 바로 그들을 현대의 묵시문학자로 보려는 시도였다. 「전위 예술과 신학」은 원래 〈기독교사상〉지에 1972년 10월부터 5회에 걸쳐 「그림이 있는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인데, 현대 전위회화(한국의 이중섭, 서양의 미래파, 초현실주의 등)와 기독교의 전위 의식을 접목시킨 매우 독특한 작업이다. 1장의 「환상의 신학」은 1973년 9월의 〈기독교사상〉 특집 '묵시와 상징'을 위해서 정리한 그의 학위 논문을 발췌한 것이다.
2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글은 그가 「슐리얼리즘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 간 마지막 두 편이다. 첫 번째 것은 저자가 미국에서 귀국하고 2년쯤 지난 1974년에 1월 14일의 날짜 표시와 함께 기록된 것이다. 그의 독특한 필체로 두툼한 백지의 노트에 쓰기 시작한 것을 보면 저자는 이 글을 계속 전개할 의도였음이 분명하나 애석하게도 시작에 불과한 "의식의 둔화"에 관한 몇 장의 글만을 남겼다. 이 당시 그의 상황은 '서울 그리스도의 교회'와의 갈등으로 심한 고통의 시간이었으므로 그 전개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몇 년 후 또 한 번 다른 노트에 같은 제목의 글을 시도했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분량도 많았고 내용도 훨씬 더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전개하고자 한 "슐리얼리즘 신학"(Theology of Surrealism)이란 어떤 것일까? 이신 박사는 그것을 한 마디로 "영의 신학"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의 말"이고, "영(靈)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신학이 이렇게 종전의 신학에서처럼 논리나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언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영의 목소리를 붙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의 합리적 신학방법으로는 안 되고 먼저 회화나 문학에서 그 초현실과 초의식을 표현하려는 '초현실주의'의 방법론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여기서 신학의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초현실주의'를 결코 한 '―주의(主義, 이즘)'나 '방법론'(methode)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끊어 버리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오히려 일찍이 동양의 현자들이 깨달은 "무위불언무위무성"(無爲不言無爲無聲)의 가르침 "불언지교"(不言之敎)의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는, 그것은 동양과 서양, 무(無)와 유(有)의 구별도 초월하자는 것이고, 그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초월적이며 또는 보다 더 본질적인 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라고 할까, 상상력의 영역이라고 할까, 또는 '계시'의 영역인 영(靈)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부의 두 번째 글 "카리스마적 신학"은 1980년 6월부터 그분이 돌아가신 1981년 12월까지 당시 '순복음신학교'를 통해 관계를 맺게 된 순복음교회 청년 선교지 〈카리스마〉지에 연재한 글들이다. 이제까지 신학계에서 유례가 없었던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글이 당시 세인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던 한 이름 없는 잡지에 실릴 수밖에 없었다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오늘날에는 그 글의 의미를 더해 주는 것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들이야말로 이신 박사가 시도했던 '초현실주의 신학'의 통일된 결정체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조직신학이 아닌 '영의 신학'으로서의 '카리스마적 신학'은 그러나 그 안에 4단계의 구별을 보이는데, 즉 전통 신학에서의 인식론에 해당되는 "카리스마적 해석학"의 3편, 그 다음 신론에 해당되는 "하나님은 영이시다"의 3편, 이어서 기독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뢰의 그루터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말론과 교회론을 읽을 수 있는 "삶과 죽음"의 두 편이다. 이 글들은 또한 당시 의도적으로 띄어쓰기 문법을 거부한 형태로 쓰였는데, 이러한 파격에 대한 단순한 몰이해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3부의 세 번째 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 비슷한 시기에 쓴 것으로 그분의 평생 작업인 '영의 신학'을 향한 추구가 잘 드러나는 글이다.
3부의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그가 진정으로 평생을 거쳐 추구한 작업은 새로운 '영의 신학', '카리스마적 신학'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새롭게 영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그는 이 새 술의 의미를 담기 위해서 새 부대인 '카리스마적 해석학', 즉 그가 "원래 오랜 옛날 동양에서 싹 뜨고 후일에 서양 예술인들에 의해서 재인식되었다."고 파악한 '초현실주의'의 방법론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그의 신학이 추구한 '초현실'과 '영'의 세계가 결코 단순히 이 세상 너머의 저 세상이 아니고, 역사를 부정하고 모든 현실의 갈등과 분리를 없는 것으로 해 버리는 유아적이고 퇴폐적인 의식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유대 묵시문학 등에서 원형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초월의 선재적(先在的) 성취를 확연히 본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초월과 현실, 초월과 역사의 구분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그 신학이란 바로 그 초월의 현재적 실현, 곧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는 언어 사건의 더욱더 지극한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초월이 있기는 있으나 그 전(前) 모양으로 먼데 있는 초월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초월이고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없는 세계에의 초월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면서도 우리가 의식 못하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가 아니라 내 눈 앞에 보고 있는 사물 가운데서 그 절대의 세계를 의식하는 것이고 또 다른 말로는 '너희 안에 천국이 있느니라.' 하는 그런 경지인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실천의 주(主)이신 예수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신다는 것이다.
이신 박사의 '초현실주의적 영의 신학'은 오늘날 전위 작가들의 '이벤트'(event)로서의 예술 활동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평범성, 일상성, 실천성으로의 방향 전환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성령 중심적인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순복음교회 등에서 일어났던 성령 운동의 오해와 위험성을 뚜렷이 지적하였고, 그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려는 신학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3부의 첫 번째 글로 실린 「현대신학과 성령론」은 1979년 5월 '순복음신학교 제27회 개교기념 초청강연회'에서 행한 연설의 기록인데, 여기서 그는 현대 신학의 역사적 탐구를 통해 이제 신학이 과거 서구의 이론적이고 분석적이고 차갑고 정적인 '로고스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성령 중심의 신학'(Spirit-oriented Theolog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오늘의 성령 운동이 마치 성령을 한 방법론으로 이용하려 하고, 자기의 세속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소유물 내지는 얄팍한 감정의 자극쯤으로 생각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3부의 마지막 글 「이단이란 무엇인가」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두 주 전 고통의 상황에서 쓰인 것인데, 여기서야말로 바로 그의 이와 같은 '정론'(orthodoxy)의 이론으로서가 아닌 '정행'(orthopraxis)의 가르침으로서 '영의 신학'의 지향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단의 문제는 바로 '실천의 문제'이며 오늘의 이단이란 예수의 화해 정신과 화해의 사건을 떠나서 분열과 분당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가 전 지구촌의 화합을 얘기하고 기독교회에서의 에큐메니즘을 이야기하는데, 모든 기존의 갈등과 분리, 교리적인 싸움과 구분 등을 지양하고 우리를 진정으로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교회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그 교회를 무엇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단순하게 '그리스도의 교회'(The Church of Christ)가 되지 않겠는가? 단순히 기존의 교단들 중 한 교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원형적 모습으로서의 한국 기독교회, 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그분의 비전이 바로 부록으로 엮은 두 편의 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의 전개」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문」에 표현되어 있다.
고독과 저항의 창조적 삶을 살다 간
기독교 영성가 이신 박사 유고집
이신 박사의 유고집이었던 『李信의 슐리어리즘과 靈의 신학』(1992, 종로서적)을 복간한 책이다. 지은이는 우리 시대를 살다 간 창조적인 기독교 영성가로 평가를 받으며 최근 그의 삶과 신앙이 재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의 일일뿐 그는 한국의 신학계와 사상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창조적인 영성가로, 한국 초유의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목사 화가로 삶을 일구어 간 그가 죽은 지 30년이 넘은 이 시대에도 독창적이고 새로운 글들이다. 하지만 몇몇의 글들은 그가 살던 시대에 조명을 받지 못하고 세인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던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초판이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책이지만 이 책에는 이신 박사의 신학사상 정수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별히 이번 복간에서는 그의 삶을 다시 정리하여 실었으며, 미술 작품도 몇몇 담았다.
그는 한국 신학계에서 몇 되지 않는 '유학파'교수였다. 그러나 주류 종파가 아닌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한 뒤, 그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 스스로 고독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글에서 말하듯 예수의 영혼에 사로잡혔기에 자신의 삶을 십자가의 삶에 맞춰간 것이리라. 1970년대 칼바람 일던 군부독재시절에 주류에 투항하지 않고, 달동네 빈민촌에서 지체장애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문맹의 부녀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민중의 삶을 체화하며 저항의 삶을 살았다. 고독과 저항의 선각자, 창조적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다 간 그의 사상을 이 책을 통해 깊게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편의 부록이 첨가되었다. 제1부는 그의 학위 논문, 「전위 묵시문학 현상 - 묵시문학 해석을 위한 현상학적 고찰」을 이경 박사가 완역한 것이다. 제목이 잘 말하여 주듯 이 논문은 일종의 비전문학적인 신구약 중간기의 '묵시 또는 계시문학'(The Apocalyptic)의 의식 세계를 현상학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묵시문학은 모든 기독교 신학의 모체였다"라고 한 독일 포스트 불트마니언 신약학자 케제만(E. Kasemann)의 말을 인용하면서 후세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거나 단지 '외경'으로 분류되어 비의적인 문서로서 전달된 '묵시문학' 속에 기독교 등장의 열쇠가 담겨져 있으며, 따라서 기독교의 본질적 역동성이 여기에서 근원되었다는 것을 밝혀 주고 있다. 즉 유대 묵시문학이란 바빌론 유수 이후 세계사적인 대변동의 시기였던 BC 2세기경부터 형성된 것인데, 당시 정치적, 문화 ? 종교적으로 더 이상의 희망을 포기한 소수의 히브리인들이 '에세네 공동체'나 '열심당' 등의 모습으로 섹트화되고 '하시드 운동'이나 '마카비 전쟁' 등에서 자신들의 현실 부정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그들의 절망적인 역사관을 표현한 것이고, 또한 그 역사를 뛰어넘어 도래할 '전혀 새로운 것', '초역사적인 것',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초의식적 환상을 그려낸 것이다. 이러한 창조적 소수들의 전위 의식과 저항의식 속에 후일 예수의 '인자'(人子) 의식, '메시아 왕국' 의식 등에서 표현된 기독교 신앙의 원형과 '원초적인 상'(premodial type)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묵시[계시]문학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은 한국 신학계 풍토를 생각할 때 이 논문의 의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특히 종교다원주의의 상황에서 기독교 토착화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는 때에 기독교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유대 묵시문학이 당시 유대의 유일신론, 바빌로니아의 우주론, 인도의 이원론과 헬레니즘, 그리고 특히 영지주의와의 상호 관련성 속에서 배태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가르침은 오늘날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배타적인 기독교 이해에 대해 좋은 반증이 된다고 하겠다. 또한 예수의 의식도 그 독특성과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묵시문학적 환경에서 영근 것이라는 사실은 좀 더 열려진 기독교 이해를 위해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와 더불어 또 다른 중요한 의의는 저자가 이 논문의 목적으로 밝혔듯이 오늘날 세속화와 신의 죽음의 시대에 모두 퇴색해 버린 것 같은 "기독교의 역동성"을 그 모체의 탐색을 통해 재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대의 권위와 가치를 의문시하고 '메시아'와 '메시아 왕국'이라는 인간과 사회의 원형에 대한 초월적 환상으로 표현된 묵시문학의 저항정신에서 기독교 예수의 원초적 메시지를 보고, 그 지적을 통해 오늘날의 상황에서 기독교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슐리얼리즘의 신학"(Theology of Surrealism)이라는 제목 하에 엮은 제2부는 이러한 저자의 기독교 신앙 이해가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또한 확장되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기록의 모음이다. 위에서 소개한 학위 논문의 후반부가 어떻게 현대의 신학과 문화 현상과 관계되는지에 대한 그 직접적인 연관성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다시 묵시문학의 원형적 모습을 읽을 수 있을까를 탐구한 것인데, 「고독과 저항의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 연구는 바로 그들을 현대의 묵시문학자로 보려는 시도였다. 「전위 예술과 신학」은 원래 〈기독교사상〉지에 1972년 10월부터 5회에 걸쳐 「그림이 있는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인데, 현대 전위회화(한국의 이중섭, 서양의 미래파, 초현실주의 등)와 기독교의 전위 의식을 접목시킨 매우 독특한 작업이다. 1장의 「환상의 신학」은 1973년 9월의 〈기독교사상〉 특집 '묵시와 상징'을 위해서 정리한 그의 학위 논문을 발췌한 것이다.
2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글은 그가 「슐리얼리즘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 간 마지막 두 편이다. 첫 번째 것은 저자가 미국에서 귀국하고 2년쯤 지난 1974년에 1월 14일의 날짜 표시와 함께 기록된 것이다. 그의 독특한 필체로 두툼한 백지의 노트에 쓰기 시작한 것을 보면 저자는 이 글을 계속 전개할 의도였음이 분명하나 애석하게도 시작에 불과한 "의식의 둔화"에 관한 몇 장의 글만을 남겼다. 이 당시 그의 상황은 '서울 그리스도의 교회'와의 갈등으로 심한 고통의 시간이었으므로 그 전개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몇 년 후 또 한 번 다른 노트에 같은 제목의 글을 시도했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분량도 많았고 내용도 훨씬 더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전개하고자 한 "슐리얼리즘 신학"(Theology of Surrealism)이란 어떤 것일까? 이신 박사는 그것을 한 마디로 "영의 신학"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의 말"이고, "영(靈)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신학이 이렇게 종전의 신학에서처럼 논리나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언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영의 목소리를 붙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의 합리적 신학방법으로는 안 되고 먼저 회화나 문학에서 그 초현실과 초의식을 표현하려는 '초현실주의'의 방법론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여기서 신학의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초현실주의'를 결코 한 '―주의(主義, 이즘)'나 '방법론'(methode)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끊어 버리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오히려 일찍이 동양의 현자들이 깨달은 "무위불언무위무성"(無爲不言無爲無聲)의 가르침 "불언지교"(不言之敎)의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는, 그것은 동양과 서양, 무(無)와 유(有)의 구별도 초월하자는 것이고, 그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초월적이며 또는 보다 더 본질적인 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라고 할까, 상상력의 영역이라고 할까, 또는 '계시'의 영역인 영(靈)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3부의 두 번째 글 "카리스마적 신학"은 1980년 6월부터 그분이 돌아가신 1981년 12월까지 당시 '순복음신학교'를 통해 관계를 맺게 된 순복음교회 청년 선교지 〈카리스마〉지에 연재한 글들이다. 이제까지 신학계에서 유례가 없었던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글이 당시 세인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던 한 이름 없는 잡지에 실릴 수밖에 없었다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오늘날에는 그 글의 의미를 더해 주는 것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들이야말로 이신 박사가 시도했던 '초현실주의 신학'의 통일된 결정체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조직신학이 아닌 '영의 신학'으로서의 '카리스마적 신학'은 그러나 그 안에 4단계의 구별을 보이는데, 즉 전통 신학에서의 인식론에 해당되는 "카리스마적 해석학"의 3편, 그 다음 신론에 해당되는 "하나님은 영이시다"의 3편, 이어서 기독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뢰의 그루터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말론과 교회론을 읽을 수 있는 "삶과 죽음"의 두 편이다. 이 글들은 또한 당시 의도적으로 띄어쓰기 문법을 거부한 형태로 쓰였는데, 이러한 파격에 대한 단순한 몰이해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3부의 세 번째 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 비슷한 시기에 쓴 것으로 그분의 평생 작업인 '영의 신학'을 향한 추구가 잘 드러나는 글이다.
3부의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그가 진정으로 평생을 거쳐 추구한 작업은 새로운 '영의 신학', '카리스마적 신학'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새롭게 영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그는 이 새 술의 의미를 담기 위해서 새 부대인 '카리스마적 해석학', 즉 그가 "원래 오랜 옛날 동양에서 싹 뜨고 후일에 서양 예술인들에 의해서 재인식되었다."고 파악한 '초현실주의'의 방법론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그의 신학이 추구한 '초현실'과 '영'의 세계가 결코 단순히 이 세상 너머의 저 세상이 아니고, 역사를 부정하고 모든 현실의 갈등과 분리를 없는 것으로 해 버리는 유아적이고 퇴폐적인 의식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유대 묵시문학 등에서 원형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초월의 선재적(先在的) 성취를 확연히 본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초월과 현실, 초월과 역사의 구분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그 신학이란 바로 그 초월의 현재적 실현, 곧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는 언어 사건의 더욱더 지극한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초월이 있기는 있으나 그 전(前) 모양으로 먼데 있는 초월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초월이고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없는 세계에의 초월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면서도 우리가 의식 못하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가 아니라 내 눈 앞에 보고 있는 사물 가운데서 그 절대의 세계를 의식하는 것이고 또 다른 말로는 '너희 안에 천국이 있느니라.' 하는 그런 경지인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실천의 주(主)이신 예수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신다는 것이다.
이신 박사의 '초현실주의적 영의 신학'은 오늘날 전위 작가들의 '이벤트'(event)로서의 예술 활동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평범성, 일상성, 실천성으로의 방향 전환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성령 중심적인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순복음교회 등에서 일어났던 성령 운동의 오해와 위험성을 뚜렷이 지적하였고, 그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려는 신학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3부의 첫 번째 글로 실린 「현대신학과 성령론」은 1979년 5월 '순복음신학교 제27회 개교기념 초청강연회'에서 행한 연설의 기록인데, 여기서 그는 현대 신학의 역사적 탐구를 통해 이제 신학이 과거 서구의 이론적이고 분석적이고 차갑고 정적인 '로고스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성령 중심의 신학'(Spirit-oriented Theolog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오늘의 성령 운동이 마치 성령을 한 방법론으로 이용하려 하고, 자기의 세속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소유물 내지는 얄팍한 감정의 자극쯤으로 생각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3부의 마지막 글 「이단이란 무엇인가」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두 주 전 고통의 상황에서 쓰인 것인데, 여기서야말로 바로 그의 이와 같은 '정론'(orthodoxy)의 이론으로서가 아닌 '정행'(orthopraxis)의 가르침으로서 '영의 신학'의 지향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단의 문제는 바로 '실천의 문제'이며 오늘의 이단이란 예수의 화해 정신과 화해의 사건을 떠나서 분열과 분당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가 전 지구촌의 화합을 얘기하고 기독교회에서의 에큐메니즘을 이야기하는데, 모든 기존의 갈등과 분리, 교리적인 싸움과 구분 등을 지양하고 우리를 진정으로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교회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그 교회를 무엇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단순하게 '그리스도의 교회'(The Church of Christ)가 되지 않겠는가? 단순히 기존의 교단들 중 한 교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원형적 모습으로서의 한국 기독교회, 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그분의 비전이 바로 부록으로 엮은 두 편의 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의 전개」와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문」에 표현되어 있다.
목차
목차
책을 펴내며
머리말
제l부 전위 묵시문학의 신학
서문
서론
제1장 묵시문학의 모호성
제2장 역사상의 묵시문학
제3장 묵시문학적 의식
제4장 전위 묵시문학
제5장 미래를 향한 묵시문학적 환상
제ll부 슐리얼리즘의 신학
제1장 환상의 신학-계시문학을 중심으로
제2장 고독과 저항의 신학-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 신학의 비교 연구
제3장 전위 예술과 신학
제4장 슐리얼리즘의 신학 (1)
제5장 슐리얼리즘의 신학 (2)
제lll부 성령의 신학
제1장 현대신학과 성령론
제2장 카리스마적 신학
제3장 하나님의 영(靈)과 적그리스도의 영
제4장 이단이란 무엇인가
부록
제1장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의 전개
제2장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회
주註
참고문헌
머리말
제l부 전위 묵시문학의 신학
서문
서론
제1장 묵시문학의 모호성
제2장 역사상의 묵시문학
제3장 묵시문학적 의식
제4장 전위 묵시문학
제5장 미래를 향한 묵시문학적 환상
제ll부 슐리얼리즘의 신학
제1장 환상의 신학-계시문학을 중심으로
제2장 고독과 저항의 신학-키에르케고르와 본회퍼 신학의 비교 연구
제3장 전위 예술과 신학
제4장 슐리얼리즘의 신학 (1)
제5장 슐리얼리즘의 신학 (2)
제lll부 성령의 신학
제1장 현대신학과 성령론
제2장 카리스마적 신학
제3장 하나님의 영(靈)과 적그리스도의 영
제4장 이단이란 무엇인가
부록
제1장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의 전개
제2장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언-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회
주註
참고문헌
저자
저자
이신
저자 이신 李信(1927-1981) 박사는 1927년 7월 7일(음력) 전라남도 돌산에서 아버지 이봉선 씨와 어머니 유금옥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건너가 부산 '초량상업학교'(부산상고 전신)를 다녔다(1944년 졸업). 이신 박사는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당시 일본 사람들이 세운 부산 시립도서관의 미술 서적을 거의 다 읽었을 정도로 미술에 관심을 두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은행에 취직했고 해방을 맞던 해에 혼인을 했으며, 1946년에부터는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좋은 직장으로 손꼽히던 은행원 자리를 그만두고 고생길이 훤한 신학을 공부하겠다니 부모님이 거세게 만류한 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예술을 탐구하며 얻은 '근원적인 것'에 대한 갈구로 그는 미술 도구를 모두 팔아서 서울행을 결행,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한다(1946년 봄). 1950년 5월, 6·25가 발발하기 직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충청도 전의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6·25가 터지자 고향 전라도로 돌아가 활동한다. 당시 전라도 일대엔 초대교회로의 환원을 통한 교회 일치를 주장하는 자생적 기독교운동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환원운동'이 일어났다. 이신 박사는 1951년 광주에서 개최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연합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서적이며 근본적인 교회임을 깨닫고 당시 이 운동의 중심인물인 김은석 목사 등과 교류하여 환원해 목사 안수를 받고 충남 부여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여기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이만수(李萬修)에서 이신(李信)으로 고친 것도 이때였다. 성령의 당해설을 주장하는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사들과 달리, 성령의 현재적 역사를 체험하고 강조하여 선교사들과 대립한 끝에 부여교회를 사임, 전남 영암 상월리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목회하다 다시 상경해 힐(Hill) 선교사를 만나 신학교 일을 도왔다. 그 후 충북 괴산 수리교회로 옮겨 목회하면서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부산에서 방송 선교에 전념하다가 서울 돈암동 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하였다. 이 교회를 사임한 후 마흔 살 늦깎이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림을 그려 학비를 조달하고, 고국에 있는 가족(아내와 네 자녀)의 생계까지 짊어지는 고학 끝에 1967년 5월 네브라스카(Nebraska) 크리스천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8월 드레이크(Drake) 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였다. 드레이크 대학교를 한 해 다니다 1968년 9월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전학하여 신학석사 학위(1969. 12)와 신학박사 학위(1971. 5)를 받고 귀국한다. 귀국한 직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강사(문화신학)로 일했으며 중앙신학교(윤리학), 그리스도신학대학(히브리어 및 신학), 대한기독교신학교(서울기독대학 전신, 조직신학) 등에서 가르쳤다. 미국 출신 박사가 귀했던 시절 그는 출셋길이 보장되었지만 주요 교단 소속이 아니었기에 교수직을 얻기가 어려웠다. 소속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내 사정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국내 어느 신학자도 따르기 어려울 만큼 영어와 일어는 물론 히브리어, 헬라어까지 능통한 지성이었지만, 그는 주요 대학에 진출하지 못한 채 산동네 목회를 계속 하였다. 그는 산동네에서 정신박약아 등을 모아 돌보면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글을 모르는 부녀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부귀영화와 신앙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신념을 택하며 산 것이다. 또한 오직 '밥'만이 추구됐던 1960년대, 미국 유학도로서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물질화하고 경직화해 창조적 상상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기독교 신앙의 한국적 자주성을 역설하였다. 허기진 물질적 곤궁 속에서도 그는 결코 창조성을 잃지 않았다. 그랬기에 비록 주요 교단으로부터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도외시당했지만 그가 외친 광야의 소리는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다시금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들이었다. 『산다는 것 믿는다는 것』(교문사, 1980), 『李信의 슐리어리즘과 靈의 신학』(종로서적, 1992) 등의 책을 지었고, 『노예냐 자유냐』(N. Berdyaev, 인간사, 1979), 『인간의 운명』(N. Berdyaev, 현대사상사, 1984) 등을 번역하여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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