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자들의 신학
세월호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그 이후
세월호의 진실은 앎의 부족보다는 삶의 방식과 연결된 것으로, 우리 삶을 구성하는 총체성에 대해서 물어야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 우리가 믿고 사고하는 방식, 우리가 희망하는 지점 등이 충분히 밝혀져야만 했다. 그것이 신학자로서 세월호 ‘이후의’ 신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신학적 진술의 어려움을 크게 경험했다. 저자들 역시 우리 시대의 문명이 만들어놓은 질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이기에 나병환자처럼 일그러진 입으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한국교회와 신학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어려움 역시 앎의 부족 탓이라기보다는 이 시대가 소멸시키고 있는 간절함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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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역사의 고통 앞에서 함께 고통 받으며 전진하는 신학의 탄생을
염원하는 신학자들의 부끄러운 고백과 동행의 다짐
1년. 세계를 가로질러 간다는 뜻의 세월을 자신의 이름으로 내걸었던 배가 한 지점에 멈춰선 채 시간을 가로질러 다시 우리 앞에 섰다. 시간을 건너온 배는 생생한 기억 속에서 뒤집혀 있고, 이 기억의 생생함에 몸서리치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소멸된 기억과 왜곡된 기억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신학하기가 작동 불능의 통영함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로 인해 좌절해야 했다. 교회는 기억의 소멸을 내용 없는 '주님의 뜻'으로 대체하기 바빴고 기억의 왜곡을 강요된 '주님의 은혜'로 정당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놀랍게도 교회엔 신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학'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입에 담기 어려운 이런 말들이 난무했다. "하나님이 (세월호를)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닙니다. 나라가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은 그래선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일부 목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평신도들도 싸늘한 냉대와 적대의 언어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데 동참했다. 유가족과 시민에게 교회는 고통을 치유하고 일상을 재건하도록 지지해주는 디딤돌이기보다는 상처를 도지게 하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한국 개신교는 망언과 정죄와 얄팍한 신정론의 주장으로 희생자들과 유가족 더 나아가 유가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국민을 향하여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신학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한 대한민국의 경험 앞에서 오만하게도 무력했던 신학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역사의 고통 앞에서 함께 고통 받으며 전진하는 신학의 탄생을 염원하여 부끄러운 펜을 들었다.
오늘의 '넘사벽'을 넘어서려는 아픈 물음
역사의 고통 앞에서 함께 고통 받으며 전진하는 신학이라면, 역사가 그 속에서 희망을 꿈꾸며 오늘의 '넘사벽'을 넘어설 가능성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며, 세계 속에서 묻기 시작했다―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를 줄곧 괴롭혀오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숱한 대중매체의 현장감 넘치는 끔찍한 보도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더 묻혀가는 진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를 괴롭힌 것은 감춰진 진실만은 아니었다. 통상적으로 진실의 적은 거짓이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의 천연덕스런 가식과 기만은 그들이 흘린 악어의 눈물과 돌변한 냉담 뒤에 숨은 속셈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감추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모든 것을 드러냈다. 감추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를 보다 더 깊은 곳에서 괴롭힌 것은 그들에 의해서 감춰진 진실이 아니었다. 아직도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고, 304명이나 되는 무고한 생명이 왜 수장되어야만 했는지, 그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밝혀서 알아내야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세월호를 침몰시킨 훨씬 더 근본적인 원인과 연관된 것인데, 매우 역설적으로, 그것은 우리의 몸을 물들일 만큼 확연해서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았다. 몰라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지배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표현되지 않은 것뿐이었다. 우리 사회가 구축해온 문명이 실패했다는 위기감. 그 사실로부터 거짓에 굴복하는 사회적 자발성이 짜이고, 진실을 향한 간절한 몸짓을 조롱하고 짓누르는 야만이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만일 우리의 싸움이 의도적으로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들과의 대결이기만 했다면 분노의 칼 몇 자루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진실은 앎의 부족보다는 삶의 방식과 연결된 것으로, 우리 삶을 구성하는 총체성에 대해서 물어야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 우리가 믿고 사고하는 방식, 우리가 희망하는 지점 등이 충분히 밝혀져야만 했다. 그것이 신학자로서 세월호 '이후의' 신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신학적 진술의 어려움을 크게 경험했다. 저자들 역시 우리 시대의 문명이 만들어놓은 질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이기에 나병환자처럼 일그러진 입으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한국교회와 신학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어려움 역시 앎의 부족 탓이라기보다는 이 시대가 소멸시키고 있는 간절함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었다.
고통, 분토, 기억, 동행으로 세월호 '이후' 신학을 말하다
우리 시대는 어떻게 진실을 향한 간절함을 형상화하고 지켜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하는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는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가? 이것은 이 책을 구상하기 위해 모인 첫자리에서 저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던진 신학적 키워드 네 개를 선정했다. 그것은 '고통', '분노', '기억', '동행', 네 단어로 압축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 지닌 문제의식을 신학적 체계에 담기 위해서, 신론, 기독론, 성령론 그리고 교회론의 구도를 빌렸다. 이를 통해서,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조장되는 망각에 맞서 생명의 영이 주는 기억의 내용, 죽음의 세력에 대항하는 거룩한 분노의 원점으로서의 예수사건, 시대를 함께 아파하며 동행해야 할 교회의 과제 등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작년 11월 28일, 20여 명의 신학자가 1박 2일로 모여 함께 구상한 결과물이다. 당시에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한국 신학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감적으로 공유했다. 마치 아우슈비츠 이후의 유대-그리스도교 신학이 그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었듯이, 1960년대 개신교 신학에서 '신 죽음의 신학'이 등장하여 그 이전의 신학적 사유가 불능에 빠졌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듯이, 세월호 이전을 지배했던 신학적 사유는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다. 이러한 신학적 각성은 각자의 학문적 이력으로 본다면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었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고통에 동참하려는 몸짓이 모이면서 구체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저자들의 활동은 일련의 발자국을 갖고 있다. 8월 15일의 광화문 천막농성장에서 드린 예배와 시국성명서 발표, 10월 7일 청운동 기도회와 유가족 방문 간담회, 10월 30일 광화문광장에서 가진 기자회견과 저녁기도회 등을 거치면서 저자들의 활동은 집단적인 의식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 8월 함께 했던 십여 명의 신학자, 그리고 다시 10월 7일 아무런 이름과 명예 없이 자발적으로 SNS 메시지를 보고 모였던 40여 명의 신학자, 그리고 SNS와 메신저로 전해진 서명 소식을 듣고 성명서에 함께해주었던 177명의 신학자, 이들의 자발적인 연대가 저자들의 신학 작업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다시 성탄절 즈음에 발간한 세월호 에세이집 『곁에 머물다』로 이어졌고, 이 책은 그 후속작으로서 좀 더 신학적인 주장을 가급적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서술했다.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
저자들은 로마서 12장 15절의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는 바울의 말에서 이 시대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공감의 신앙'이다.
<공감의 진정한 가치는 "함께"에 지향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일, 접속의 방향을 일러주는 일, 참된 고난의 삶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게 하고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박근혜의 눈물이 아니라 유가족의 눈물을 선택하는 실천을 만들어가는 일, 그리하여 새로운 일상의 부활을 꿈꾸고 자라나게 하는 일 속에서 빛난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가르쳐준 삶, 고난 받는 이들과의 연대[십자가]와 고난 받는 이들의 연대[부활]를 추구함에 다름 아니다.>(신익상의 글 중)
저자들은 세월호 이후의 신학은 믿음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고통의 상황 속에서 기소되고 결국 폐기되고 마는 관념적인 '힘의 신'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고통)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 그분에 관한 믿음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욕망과 탐욕을 보증하는 '힘의 신'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난 '사랑의 신'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의 신'이 욕망하는 종교정신과 어울리는 존재라면, '사랑의 신'은 고통당하는 자들을 향해 깨어 있는 종교정신에게 알려지는 존재이다. 사랑의 신은 피조물의 고통에 민감한 분이다. 그분을 향한 믿음 역시 그분을 닮는 마음, 고통에 공감하는 영성으로 채워진다. 이 '공감의 신앙'은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열린 마음으로 좁은 길을 걷는 신앙이다. 좁은 길을 걷는 삶에는 역경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걷는 길이다(롬 8:39). 이 믿음의 길은 멀리 있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사랑의 길을 걷는 삶이다. 이 공감의 신앙 구조 속에서는, 하나님이 종교적 외교를 통해서 내편이 되어야만 하는 잠재적인 적이 아니라,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동행하시는 동반자이다. 그분과 동행하기 위해 필요한 믿음은 교리적인 맹신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갈 5:16).>(김희헌의 글 중에서)
저자들은 세월호 이후의 교회는 세월호 이전의 믿음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힘의 신앙'을 버리고 '공감의 신앙'을 세우기 위해 영적인 모험을 벌여야 한다고 아프게 다짐한다. 시대의 욕망이 세월호 참사를 불러왔다면, 참사 이후의 삶은 과거를 참회하고 새로운 부르심을 향해 열려야 하기에 다시 성경이 들려주는 말씀 앞에 굳게 서야 한다고 말한다.
목차
목차
이정배 세월호 참사 以後 하느님 영(靈)을 말하는 법
박숭인 세월호 고난의 사건: 망각으로 이끄는 죽음의 권세 vs. 우리의 고난과 함께 살아나는 생명의 영
김혜령 성령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다
신익상 돌리지 않은 얼굴로, 쉬지 않는 눈동자로
이상철 수장당한 세월호의 유령들이 아직 이곳에 있다
이찬석 세월호와 성만찬
동행 - 함께 아파하는 교회
권수영 희생자의 암묵기억, 그리스도의 트라우마에 동참하는 교회
오현선 당신과 함께하기 위해 내가 변하겠습니다
정경일 적대 바이러스와 사랑의 항체
박창현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죽은 예수의 부활을 준비하라
김영철 세월호 이후(post-Sewol)의 교회를 생각한다: 교회는 큰 방주인가, 작은 구조선인가?
홍주민 아우슈비츠 이후와 세월호 이후의 교회 이야기: 디아코니아를 통한 재구성
분노 - 예수의 저항
황홍렬 세월호, 십자가 그리고 일어서는 공동체
전현식 세월호 참사 그리고 예수의 삶, 죽음, 부활
김정숙 골고다의 십자가, 팽목항의 십자가21
박일준 말씀의 저항과 저항의 말씀, 그 이중성, 그 둘(the Two)의 출현에 대하여
권진관 이야기를 통한 세월호 사건 분석
고통 -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
송순재 참사: 인간의 언어와 신의 언어로 말하기
박지은 묻혀진 고통과 그 고통 속에 계신 하나님
최순양 말할 수 없는 하나님과 말할 수 없는 고통
김희헌 고통에 대처하는 기독교 신앙의 두 양상
김은규 저주와 심판과 정의의 하나님, 여기 오소서
김기석 노랑나비와 들꽃으로 다시 오렴, 얘들아!
이은선 세월호, 고통 속의 빛: 영생에 대하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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