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바보몽땅(삶창시선 53)
강병철 시집
새로 발간하는 『사랑해요 바보몽땅』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트럭에서 쏟아지는 무 다발처럼 다양한 표정들이다. 영뵉이 성님, 종갑이 성님, 정자 누나, 옥이 이모, 순임이, 최윤희, 재련이, 이세진, 상원이, 대밭집 연실이 등등. 이들은 그의 바닥과 현장에서 인연을 맺은 존재 혹은 이름자들이다. 그는 태생적으로 낯가림이 심하지만 맺은 인연마다 ‘강박증’으로 사랑한다. 강병철의 ‘강박증’ 사랑은 등장인물과 가족만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열정도 ‘강박증’에 앞서 내달리는 중이다. 불가촉천민을 향한 작가의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바보 페르소나를 확장하면서 오늘까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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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강병철의 이번 시집은 '기억의 힘'으로 씌어졌다. 기억은 한 존재의 필연성을 보증한다. 누군가와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대체적인 기억의 내용인 바, 기억이라면 곧 한 존재가 통과해온 사건의 해석 층인 것이다. 따라서 기억이라는 밝지 않은 창고에는 명료한 사건 그 자체가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명료하지 않은 해석이 더미를 이루고 있다. 시는 다시 한 번 그 불명료한 해석의 더미를 꺼내어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강병철의 이 시집은 그것에 매우 충실하다.
'문자 고모다'
신작로 아리랑사진관에 얼굴 걸린 딸 부잣집 여덟째 김문자 소녀는 엄앵란 짙은 눈썹 김지미 앵두 입술 빼박아서 옥玉 같고 눈雪 같았다 바늘 코 안 보고 벙어리장갑 거뜬하게 떴지만 웬일일까, 방앗간 라이방 삼촌한테 바람맞더니 밤만 되면 열여덟 가는 어깨 훌쩍훌쩍 들먹였다
_「김문자 전傳」 부분
강병철은 기억 속의 여러 인물들을 호출해 내 여러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런 다양한 기억은 시인의 내면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드러낸다. 그것은 지금은 사라진 민중의 이미지들이다. 이 이미지들이 비록 '옛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분명히 우리의 역사를 지탱해준 '거대한 뿌리'임은 사실이다. 물론 명시적으로 시인이 민중과 역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능청과 유머를 통해 진실을 보여주기
하지만 시인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는 민중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들은 처처에 존재하며 묵묵히 세상을 지탱시키는 아랫돌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대전 복합터미널 남자 화장실"에서 "소변기 닦던 여자"는 분명히 옛날 "대밭집"에 살던 "연실이"다. 그 친구가 "바닥 건사하는 건강한 노동자"가 되었다고 시적 화자는 반가워하지만, 문제는 그 "건강한 노동자"가 사회적으로는 "투명 인간"이라는 점이다.(이상 「투명 인간의 입술」) 시인은 작품의 내용에서는 그 점을 부각시키지 않으며 능청을 떨지만, 그 존재가 "투명 인간"이란 점을 (강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택한다.
강병철은 이렇듯 이 시집 도처에서 능청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야 할 말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우성관 앞에서 봉고차 기다리는
식물성 표정들 이열 종대 흡연 중이다
나 혼자 낯익었을까 파키스탄이나 네팔인 표정
중국인 닮은 토종 황인종 하나는
창살 앞자리 붙박이 꼭 거기다
밥 먹으러 가는 중일까 아니면 용역 대기
4년째 풍경으로 갸웃갸웃 지나친다
이역만리 기름밥 인생
밀항선 불법체류였을지도 모른다
밀입국 거부로 몇 나라에서 퇴짜 맞은
그 열대야 사막의 난민이었을까
_「코리안 드림」 부분
어떤 사물과 사건 앞에서도 '무거워지지 않기'는 강병철의 특징이면서 미덕이다. 우리 사회에서 하층 노동자로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서도 인식의 출발은 무거우나 마지막에는 예의 낙천이 드러나는데,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낙천일 것이다. "유목의 호프집 번뜩이는 입술들로 나타나/ 먹태 안주 한 접시로 아홉 명이 나눠 먹던/ 코리안 드림 두근두근 심장들/ 봉고차 대기하며 햇살 받는 중이다".
사랑은 끌어안는 것
이런 낙천의 본질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 그 중핵일 것이다. 기억 속의 인물들이든 아니면 가족이든 시인의 시선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삽을 잃어버리고 "경비 아저씨"가 도둑을 색출하겠다며 분기탱천하지만 시적 화자는 도리어 이렇게 말한다.
사소한 도둑질은 눈감아야 합니다
흘린 물건 주워 간 거예요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을 겁니다
더 폭폭한 임자 만나라며 가슴 다독이며
_「삽을 잃다」 부분
이것은 그냥 너그러움이 아니라 삶이 맞닥뜨리는 상황에 대한 사랑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 "사소한 도둑질"을 해야 했던 상황을 이해하고 그 행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마음 씀씀이인데, 마지막 행이 그것을 증명한다. "폭폭함"으로 "사소한 도둑"과 시적 화자가 연결된 것이다. 즉 "사소한 도둑"과 시적 화자가 실제로는 별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나 나나 비슷한 시간과 상황을 살고 견뎌왔다는 것. 이런 내면이 없다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동정하는 것이지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구제역으로 죽어간, 정확하게는 인간들에게 "생매장된 같잖은 생명들"을 "꽃"으로 부를 수 있다. 죽임을 "꽃"으로 치환시키는 것은 언뜻 보면 한가한 인간의 목소리 같지만, "죽음으로 끌안던 모자母子 버크셔"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죽음마저 끌어안는 행위 자체가 사랑이다. 물론 그것을 시인은 도드라지게 발언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사랑들을 "함부로 덮을 수 없다"고 외친다.(이상 「구제역 꽃」) 사랑은 끌어안는 것이지 함부로 덮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목차
목차
제1부
사내라곤 딱 나 하난데ㆍ12
쇳밭둑 할아버지ㆍ13
정자 누나ㆍ14
할미꽃ㆍ16
보고 싶은 옥이 이모ㆍ18
통지표 고치기ㆍ19
우등상ㆍ20
바다라는 이름ㆍ22
치타ㆍ23
대통령 후보들ㆍ24
쇠갈퀴 손목ㆍ26
구렁이ㆍ28
장래 희망 ㆍ29
스물셋 노처녀였다가ㆍ30
종잣돈 누에ㆍ31
개구리 잡기ㆍ32
술래잡기ㆍ34
돌멩이가 최고여ㆍ35
국민교육헌장ㆍ36
장수말벌ㆍ38
사랑해요 바보몽땅ㆍ40
꽃씨 이야기ㆍ44
맨드라미ㆍ46
스릴ㆍ48
봄이ㆍ50
투명 인간의 입술ㆍ51
초록빛 바다ㆍ52
김문자 전傳ㆍ54
해와 달과 수수깡 ㆍ57
제2부
아버지는 오래된 기억에만 생생하시다ㆍ60
사부곡思父曲ㆍ62
최후의 잡곡밥ㆍ63
금식 표찰ㆍ64
변화ㆍ65
아버지 빤쓰ㆍ66
노인병동 538호ㆍ68
모시 나무ㆍ70
어머니의 노래방ㆍ72
컵라면ㆍ74
딸바보·하나ㆍ이삿짐ㆍ75
딸바보·둘ㆍ방 청소ㆍ76
딸바보·넷ㆍ딸의 생일 4개월 전ㆍ78
금연 구역ㆍ80
달포만에 비가 오다니ㆍ82
이삿짐ㆍ83
제3부
아직도 그대로 있나요ㆍ 최연진 선생님 10주기 추도식에
부쳐ㆍ86
병신년 회갑의 벗들에게ㆍ88
노무현 추모식을 보며ㆍ91
소리·셋ㆍ92
그리고 노을 앞에서ㆍ 2009년 9월 23일, 서대전시민공원 김대중 추모제에서ㆍ93
세월호 승선 사진ㆍ95
블랙리스트의 봄ㆍ96
일반 잡부 방 씨의 촛불집회ㆍ98
배추껍데기ㆍ99
동창회와 이데올로기ㆍ100
코리안 드림ㆍ102
말라붙은 지네ㆍ104
지네 가족 보내다ㆍ마라도 창작촌에서ㆍ105
제4부
당뇨 관리 수첩ㆍ108
당뇨 관리 수첩·둘ㆍ109
금주령ㆍ110
엘리베이터의 봄ㆍ111
매독ㆍ112
손등을 찍는다ㆍ114
루핀들ㆍ115
다른 소설가들을ㆍ116
로드킬 고양이ㆍ117
도서관ㆍ118
통 큰 언어의 벗에게ㆍ120
삽을 잃다ㆍ122
어느 날 늙은 시인이 되었다ㆍ124
구제역 꽃ㆍ126
밥 먹기에 대하여ㆍ127
집 나간 너를 위하여ㆍ128
중년의 김우직ㆍ129
수근이 사고 치기 직전ㆍ130
퇴직 3개월 전ㆍ132
이제는 나도ㆍ133
해설_사랑과 바보, 그리고 기억의 힘
| 박명순ㆍ135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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