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특공대
박혜지 소설집
박혜지의 소설은 늘 세계의 원본과 낱개의 인간들이 마찰하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심연이 어떻고, 내면의 숨결이 어떻고 하는 관념적 엄살로 직조된 산문들과는 종자가 다르다. 끝없이 좌절하는 일상과 절망을 감내하는 정신의 크기도 범상치 않고, 온갖 마이너리티들의 숨결을 통해 서사와 지성의 결합을 엮고자 하는 지적 근성도 갖춰져 있다. 하층 서사의 긴장을 견뎌내는 문장들, 민중적 장면 묘사의 역동성을 놓치지 않는 질박하고 섬세한 문체는 압권이다. 신나는 일이다. 인간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광활하게 텅 빈 문명의 내부를 우리는 장차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박혜지는 한사코 굼뜬 걸음으로, 초라하고 허술한 약소자의 사생활에서 첨단의 인간관계와 윤리를 발굴해간다. 섣불리 주목 받고 조명 받으려는 시류에 결코 매이지 않는 이 고독한 ‘서사 정신’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김형수,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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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2013년 단편소설 「처형」으로 '제5회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혜지의 첫 소설집 『오합지졸 특공대』는 최근의 소설 경향과는 다르게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갖는 감성을 날것 그대로 그려 내고 있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계에 대한 섣부른 감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최고의 거짓말」은 "필승고시원의 갑, 을, 병, 정" 네 사람의 거짓말 게임으로 시작된다. "그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슬프고 지치고 무엇엔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데 그들이 '고시원'에 기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엇 때문에 "슬프고 지치고" "실망한" 것인지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상적인 푸념을 늘어놓지 않고 도리어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에 대한 거짓말 시합을 한다. 물론 그들의 거짓말에는 리얼리티가 현저히 부족하다. 왜냐하면, 부질없는 '거짓말 왕'이 되기 위한 거짓말이니까.
해설을 쓴 평론가 최진석은 이런 거짓말에는 '삶을 추동하는 긍정성'을 갖는다고 읽는다. 일종의 민중의 카니발 격인데, 그에 꼭맞게 "갑, 을, 병, 정" 네 사람의 거짓말에는 웃음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 대중문화가 맥락 없이 유포하는 포복절도 류의 웃음이 아니다. 잠시나마 "갑,을, 병, 정" 네 사람은 희극적인 거짓말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유머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웃음으로 포장해버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거짓말 시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저는 국민 여러분의 충실한 종으로서, 국민 여러분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이 한 몸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같은 선거 유세 차량의 진짜 거짓말이 그들의 유머러스한 거짓말을 무효로 만드는 장면을 작가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혜지는 이 소설에서 민중의 거짓말과 현실의 거짓말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소설의 모두에 제시됐던 "갑, 을, 병, 정" 네 사람의 얼굴에 드리워진 "슬프고 지치고 무엇엔가 실망한 기색"의 정체는 이 소설의 말미에서 밝혀진 셈이다.
자신들의 왕을 위해 박수를 치려던 필승고시원의 갑, 을, 병, 정은 갑자기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조용히 삼선 슬리퍼에 발을 끼우고 필승고시원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 두 거짓말이 대비되면서 발생하는 효과는 단순한 블랙코미디에 머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민중의 삶의 진실이 현실에 만연한 거짓말로 덮여버렸다는 작가의 문학적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갑, 을, 병, 정" 네 사람은 이렇게 "필승고시원"으로 퇴장하고 마는 것일까?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표제작인 「오합지졸 특공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최고의 거짓말」의 "갑, 을, 병, 정"과는 다른 캐릭터들이다. 동네에서 발생하는 원인 모를 도난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그 진실을 밝혀내고자 특공대를 조직하는데, 참여한 면면이 변변찮기 그지없다. 자기 자신들을 "병신"이라 비하하기도 하며, 상대방이 "여자"라고 무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특공대에는 묘한 긍정의 에너지가 있다. "백수 청년 송"이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그것을 확연히 드러낸다. "맞아요, 맞아. 다들 신체의 일부만을 잃었을 뿐이에요.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죠." 사실 그들 각각은 자신들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일곱 명의 특공대 자체가 무언가를 조직적으로 또 치밀하게 할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일곱 명의 특공대는 절뚝절뚝, 비틀비틀, 우왕좌왕, 오락가락, 시끌벅적 기괴한 모양을 연출하며 여 씨의 뼈다귀해장국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뼈다귀해장국집 여 씨네 집으로 몰려간 특공대가 특대짜리 감자탕으로 배를 불리고도 한참이 지난 후" 그들이 잡으려 했던 "신출귀몰"을 잡긴 했으나 그것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동네를 어지럽힌 "신출귀몰"이 고작 "검은 고양이"였다는 데에 실망도 잠깐 그들은 "밥 먹도 다시" 하기로 하고 잔치를 벌인다.
특공대는 뼈다귀해장국집 여 씨네 가게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특대짜리 감자탕에 소주를 마셨다. 어느새 거나하게 취한 특공대는 여전히 각자의 손에 든 가지각색의 공구들로 박자를 맞추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목에 힘줄이 잔뜩 돋은 그들은 마치 출정 전야의 전사들 같았다.
역으로 박혜지의 현실 인식이 아직 불명확하다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것과 상관없이 민중의 낙관성과 연대 의식인 듯하다. 왜냐면 이 소설은 매사에 의심 많고 불만투성이인 "철물점 이 씨"가 처음으로 욕을 하지 않으면서 "검은 고양이"에게 "식어 가는 냄비에서 제일 커다란 뼈를 골라" 던져주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동네를 어지럽히는 "신출귀몰"인 "검은 고양이"도 사실 "꼬리가 짧고, 듬성듬성 털이 빠진 데다 금방이라도 병을 옮길 것처럼 더러운 몰골로 처량하게 울고 있는" "애꾸눈"일 뿐인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까닭
박혜지의 소설에서 적의 정체는 「오합지졸 특공대」에서 나타나듯 불가지적이다. 「동백」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현실의 질서는 무너졌지만 아무런 길도 보이지 않는 미증유의 혼란을 그리고 있고 「거대한 무덤」에서는 임금이 바뀌자마다 연이어 나라가 다시 뒤집힌다.
임금이 바뀌었소. 하루아침에 임금이 바뀌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또 임금이 바뀌었소. 이게 장난인 것 같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지 않고, 어제 내가 누웠던 땅과 오늘 내가 누운 땅이 같은데 나는 이미 어제의 백성이 아니란 말이오. 어차피 세상은 모두가 거짓말이오.
어차피 세상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약간은 허무적인 이 깨달음은 「최고의 거짓말」의 결말 부분과 겹친다.
「동백」에서 "판근"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시를 가르쳐 준 "재혁"이 동네 청년들에게 죽임을 당하자 재혁의 처는 동네 청년들의 성적인 노리개로 전락하는데, 그녀는 그러고 나서도 삶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집안이 그 지경으로 풍비박산이 났는디도 뽀얗게 분 처바르고" 있다는 풍문도 돈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의 비극적인 현실 인식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그 동네 청년들은 "있는 놈 없는 놈 구분 없는 세상"을 바라는 이들이라고 작가가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박혜지가 이 소설집을 통해서 바라고 있는 세계는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다음 두 대목에서 얼핏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먼저 「거대한 무덤」의 다음 장면.
나는 청년이 했던 것처럼 미소 지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사막의 한복판을 가리켰다. 청년이 돌아서서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저곳에 가지 않을 겁니다."
다음으로 「동백」에서 판근이 떠올리는 재혁의 말.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모든 글 중에서 최고여서가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야."
혹 작가는 기존의 현실을 폐기하고 시를 쓰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차
목차
오합지졸 특공대 * 31
성스러운 피 : 해커 * 69
나라에서 * 91
공격적 용서 * 109
처형 * 133
거대한 무덤 * 159
동백 * 183
덕수 씨 화났다 * 207
해설 | 거짓말의 매혹과 이야기의 미래 * 최진석(문학평론가) * 231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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