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서 사라지다
윤동수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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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는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했나?
한 청년이 사라졌다. 그는 유신독재 정권에 저항하자는 ‘궐기문’을 전국의 대학에 돌리고 좁혀 오는 수사망에 결국 자수를 택했지만, 중앙정보부는 그 청년에게 학생운동 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다. 그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으나 정보기관의 압박은 점점 더 가혹해진다. 도리어 ‘학원민주화’ 투쟁을 기획하며 시대적 상황과 맞선다. 하지만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된 친구와는 다르게 고문당하지 않고 나온 전력을 앞세운 정보기관의 프락치 활동 강요는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결국 다시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지만 탈출해 린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이 소설은 유신독재 정권이 한 인간의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했는지 ‘하진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만들어낸 비굴한 지식인의 자화상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연인인 오인희가 생존 인물들의 기억을 통해 하진무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인터뷰 및 회고담을 중간중간에 삽입한 형식도 유신독재 시절이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하진무를 수사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공포감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이 무너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 청년이 사라졌다. 그는 유신독재 정권에 저항하자는 ‘궐기문’을 전국의 대학에 돌리고 좁혀 오는 수사망에 결국 자수를 택했지만, 중앙정보부는 그 청년에게 학생운동 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다. 그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으나 정보기관의 압박은 점점 더 가혹해진다. 도리어 ‘학원민주화’ 투쟁을 기획하며 시대적 상황과 맞선다. 하지만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된 친구와는 다르게 고문당하지 않고 나온 전력을 앞세운 정보기관의 프락치 활동 강요는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결국 다시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지만 탈출해 린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이 소설은 유신독재 정권이 한 인간의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했는지 ‘하진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만들어낸 비굴한 지식인의 자화상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연인인 오인희가 생존 인물들의 기억을 통해 하진무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인터뷰 및 회고담을 중간중간에 삽입한 형식도 유신독재 시절이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하진무를 수사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공포감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이 무너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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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깍두기머리가 육모방망이로 책상을 내리친다.
"여기서 똥 싸지르고 싶어?"
심장이 멎는 듯 공포가 몰아친다. 나는 두 손을 사타구니에 숨긴다. 다리가 떨린다. 두 손으로 허벅지를 붙들고 싶건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가련한 내 다리를 눈으로나마 위로해준다. 그러나 깍두기머리와 정면으로 마주한 내 얼굴은 돌처럼 굳어버린다. 지하실 걸상에 앉아 똥을 쌀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기죽지 말자. 저 깍두기머리도 인간이다. 나처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다. 겁먹지 말자.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여기서 똥을 싸지른다면 나는 존엄한 인간이 아니다. 깍두기머리에게 지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고 똥을 싸지를까 봐 두렵다. 깍두기머리가 반들반들한 육모방망이로 내가 쓴 자술서를 북북 긁는다. 그리고 내 머리에 손을 얹는다. 오싹하다. 그가 내 머리를 어루만지며 느물거린다.(139~140)
작가는 강인한 인물을 택하지 않고, 정의감은 넘치지만 소심하고 다감한 인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유신독재 체제가 얼마나 반인간적인 시대였는지 그려낸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유신독재 시절에 실제 있었던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종합해 만들어진 존재다. 저항과 비겁함 그리고 소시민적 나약함이 뒤섞인 하진무는, 그러니까 그 시대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다. 하지만 마치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73년에서 1974년 당시의 실존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대구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예를 들면 DNA 이중나선처럼 엮여 있기 때문이다.
폭력 앞에서 나약한 존재들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하진무와 그의 주변 인물에 비해 대학 사회의 교수들은 심하게 일그러진 존재들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현실에 안주하거나 도리어 주어진 현실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그런 그들을 작가는 비꼬듯이 희화화한다.
교무과장이 복창했다. 그는 '유신과업 완수하자' 리본을 손으로 만지며 나섰다.
"지는예, 집에서도 이 리본을 안 뗀다 아입니꺼. 밤낮을 안 가리고 교수로서, 교무과장으로서 유신만이 살길임을 학생들과 대구 시민들에게 알릴라꼬 불철주야 애쓰고 있심니더."
거기까지 말한 교무과장이 갑자기 두 팔을 번쩍 들고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만세!"
그가 외치기 무섭게, 총장, 도경 국장, 도지사, 의대 학장도 재빨리 두 팔을 들고 만세 삼창을 해댔다.
"만세!"
"박정희 대통령 각하 만세!"
"만세!"(198~199)
이 또한 유신독재가 인간성을 말살해놓은 현장임에 틀림없다. 결국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성 말살을 유신독재의 폭압이 어떻게 획책했나 하는 것이다. 고문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서인석의 경우처럼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서인석의 경우) 가하고, 기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질환을 심어놓은 것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질환의 가운데에 하진무가 있는 폭인데, 하진무는 그 상황 자체에 저항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지점이 소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소설에서 어느 쪽으로든 쉽게 기울지 않게 함으로써 하진무의 고통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윤동수의 장편소설 『길 끝에서 사라지다』는 단순하게 유신독재에 대한 고발소설이 아니게 된다. 폭압적 상황에서 살아 꿈틀대는 인간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잊기 쉬운 '인간의 길'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사라진 연인 하진무를 찾아나서는 오인희의 행보는 바로 이 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랑 없이는 자유도 없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사라진 하진무는 결국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락치 활동을 거부한 명목으로 경찰에 붙들려 가는 상황을 빌렸지만 말이다.
깍두기머리가 외치는 순간 하진무는 허리춤을 붙든 사내 손목을 온힘을 다해 주먹으로 내리쳤고, 달렸다. 철길을 달렸다. 기차 쇠바퀴 구르는 소리가 어느새 등짝에 달라붙었다. 하진무는 기차를 등지고 달렸다. 기차와 반대편인 철교를 향해서 달렸다. 나는 개가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 하진무는 철길을 달리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외쳤다. 오인희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달려간다, 오인희 기다려라!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한다! 쇠바퀴를 울리며 기차는 하진무를 덮칠 듯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하진무는 멈추지 않았다. 나를 구속하지 마! 나는 안 잡힌다! 하진무는 자유다! 하진무는 기차에 먹히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달렸다.(371)
소설의 마지막에서 어떤 독자들은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에 분노를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진무의 '자유에 대한 의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렁찬 인간 정신의 외침이기도 하다.
소설 전편에 등장하는 오인희는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애매하다고 볼 수 있는데,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하진무의 연인 이상의 존재임을 눈치챌 수 있다. 중간중간에 하진무는 오인희와의 사랑을 통해서 좌절하지 않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유에 대한 의지'가 결국 사랑 때문임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그것을 소설의 마지막에서 폭발시키고 있다. 즉 자유는 사랑을 위한 최대한의 헌사임을! 다시 말해 자유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사랑에 지극히 충실한 바탕 위에서 구현되는 것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인희의 긴 행보는 그것을 밝혀주는 역할로 일종의 등대 같은 것이다.
"여기서 똥 싸지르고 싶어?"
심장이 멎는 듯 공포가 몰아친다. 나는 두 손을 사타구니에 숨긴다. 다리가 떨린다. 두 손으로 허벅지를 붙들고 싶건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가련한 내 다리를 눈으로나마 위로해준다. 그러나 깍두기머리와 정면으로 마주한 내 얼굴은 돌처럼 굳어버린다. 지하실 걸상에 앉아 똥을 쌀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기죽지 말자. 저 깍두기머리도 인간이다. 나처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다. 겁먹지 말자.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여기서 똥을 싸지른다면 나는 존엄한 인간이 아니다. 깍두기머리에게 지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고 똥을 싸지를까 봐 두렵다. 깍두기머리가 반들반들한 육모방망이로 내가 쓴 자술서를 북북 긁는다. 그리고 내 머리에 손을 얹는다. 오싹하다. 그가 내 머리를 어루만지며 느물거린다.(139~140)
작가는 강인한 인물을 택하지 않고, 정의감은 넘치지만 소심하고 다감한 인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유신독재 체제가 얼마나 반인간적인 시대였는지 그려낸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유신독재 시절에 실제 있었던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종합해 만들어진 존재다. 저항과 비겁함 그리고 소시민적 나약함이 뒤섞인 하진무는, 그러니까 그 시대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다. 하지만 마치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73년에서 1974년 당시의 실존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대구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예를 들면 DNA 이중나선처럼 엮여 있기 때문이다.
폭력 앞에서 나약한 존재들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하진무와 그의 주변 인물에 비해 대학 사회의 교수들은 심하게 일그러진 존재들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현실에 안주하거나 도리어 주어진 현실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그런 그들을 작가는 비꼬듯이 희화화한다.
교무과장이 복창했다. 그는 '유신과업 완수하자' 리본을 손으로 만지며 나섰다.
"지는예, 집에서도 이 리본을 안 뗀다 아입니꺼. 밤낮을 안 가리고 교수로서, 교무과장으로서 유신만이 살길임을 학생들과 대구 시민들에게 알릴라꼬 불철주야 애쓰고 있심니더."
거기까지 말한 교무과장이 갑자기 두 팔을 번쩍 들고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 만세!"
그가 외치기 무섭게, 총장, 도경 국장, 도지사, 의대 학장도 재빨리 두 팔을 들고 만세 삼창을 해댔다.
"만세!"
"박정희 대통령 각하 만세!"
"만세!"(198~199)
이 또한 유신독재가 인간성을 말살해놓은 현장임에 틀림없다. 결국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성 말살을 유신독재의 폭압이 어떻게 획책했나 하는 것이다. 고문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서인석의 경우처럼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서인석의 경우) 가하고, 기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질환을 심어놓은 것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질환의 가운데에 하진무가 있는 폭인데, 하진무는 그 상황 자체에 저항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지점이 소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소설에서 어느 쪽으로든 쉽게 기울지 않게 함으로써 하진무의 고통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윤동수의 장편소설 『길 끝에서 사라지다』는 단순하게 유신독재에 대한 고발소설이 아니게 된다. 폭압적 상황에서 살아 꿈틀대는 인간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잊기 쉬운 '인간의 길'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사라진 연인 하진무를 찾아나서는 오인희의 행보는 바로 이 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랑 없이는 자유도 없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사라진 하진무는 결국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락치 활동을 거부한 명목으로 경찰에 붙들려 가는 상황을 빌렸지만 말이다.
깍두기머리가 외치는 순간 하진무는 허리춤을 붙든 사내 손목을 온힘을 다해 주먹으로 내리쳤고, 달렸다. 철길을 달렸다. 기차 쇠바퀴 구르는 소리가 어느새 등짝에 달라붙었다. 하진무는 기차를 등지고 달렸다. 기차와 반대편인 철교를 향해서 달렸다. 나는 개가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 하진무는 철길을 달리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외쳤다. 오인희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달려간다, 오인희 기다려라!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한다! 쇠바퀴를 울리며 기차는 하진무를 덮칠 듯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하진무는 멈추지 않았다. 나를 구속하지 마! 나는 안 잡힌다! 하진무는 자유다! 하진무는 기차에 먹히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달렸다.(371)
소설의 마지막에서 어떤 독자들은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에 분노를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진무의 '자유에 대한 의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렁찬 인간 정신의 외침이기도 하다.
소설 전편에 등장하는 오인희는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애매하다고 볼 수 있는데,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하진무의 연인 이상의 존재임을 눈치챌 수 있다. 중간중간에 하진무는 오인희와의 사랑을 통해서 좌절하지 않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유에 대한 의지'가 결국 사랑 때문임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그것을 소설의 마지막에서 폭발시키고 있다. 즉 자유는 사랑을 위한 최대한의 헌사임을! 다시 말해 자유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사랑에 지극히 충실한 바탕 위에서 구현되는 것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인희의 긴 행보는 그것을 밝혀주는 역할로 일종의 등대 같은 것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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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윤동수
1990년 『사상문예운동』 겨울호에 중편 「새벽길」을 발표하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광주 5월항쟁 주역인 윤상원의 이야기 『윤상원 평전』(오월의 입맞춤)과 자동차하청공장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록한 『당신은 나의 영혼』을 썼고, 소설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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