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모래바람
최경주 연작소설
작가 최경주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겪은 ‘모멸을 감수하는 노동’을 말하면서도 적잖은 분량을 그들의 구체적 일상을 묘사하는 데 바친다. 중동의 노동자들은 혹독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 방법이 없으니 화투라든가 밀주를 담가 마신다든가 하는 소소한 일탈을 감행한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 연작소설집의 리얼리티를 현저하게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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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최경주는 연작소설 형식으로 1970년대 중동에서 일한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그 첫 작품이 베트남전쟁 이야기이다. 긴박한 전투 장면이나 전쟁의 비극을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전쟁이 인간의 운명과 내면을 어떻게 바꿔 놓는가 하는 점에서는 구체적이다. 아마도 연작소설 전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인 "김 대위"의 성격을 부여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중동 건설의 전사(前史)인 베트남전 역시 평범한 민초들에게는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암시라도 하는 것 같다.
현장 일이라는 게 관 뚜껑 열고 발 담근 채 하는 거죠. 엿같은 거고, 배알 꼴리는 거고, 인간이 인간 대접을 못 받는 거지요. 옆에서 죽어 자빠지는 게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죠. 더구나 전쟁터니, 그 모멸감은 끝이 없습니다.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죠. 왜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사람보다 400달러씩 덜 주느냐고 따지면 회사 직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계약서가 그렇다고 합니다.(41)
"장 씨"와 "김 대위"의 이런 대화는 모멸감을 감수하며 노동해야 했던 197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한국인 건설 노동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인간 대접을 못 받는" '모멸을 감수하는 노동'에 있다. 이 노동은 이 연작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사막의 모래바람」에서 묘사된 '주바일 폭동'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실제 이 주바일 폭동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1976년에 벌어진 사건으로 불합리한 근로 계약과 비인간적 처우에 대한 노동자들의 응축된 분노가 터진 사건이다.
구전을 통해 전승된 노동자들의 이야기
"오늘 덤프 기사 한 사람이 일이 더디다고 주먹으로 맞았답니다. 다 아시다시피 덤프 기사들의 행동에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계약서가 문제 있다는 건 우리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아는 사실입니다. 수당과 퇴직금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게다가 다치고도 공상(公傷) 처리도 못 받은 사람이 한둘입니까? 열사의 사막에서 가족과 떨어져 개고생하는 건 우립니다. 그런 우리에게 임금 착취는 물론 인격 모독에 폭력까지 자행하고 있습니다. 박 과장이라고 알 겁니다. 어디 그놈에게 수모 안 당해본 사람 있습니까?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박 과장에게 가서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말해야 합니다."(297)
덤프 기사 "황 씨"가 덤프트럭을 규정 속도로 운전했다고 관리자인 "박 과장"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은 식당에서 빠르게 퍼진다. 그동안 쌓였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터진 것이다. 위 연설은 "김 대위"가 노동자들에게 비인간적인 처우를 행동으로 개선하자고 역설하는 대목이다. 소설 속에서 나타난 '주바일 폭동'의 시작인 셈이다. 이 폭동은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의 애국심 호소로 끝나며 언제나 그랬듯 주동자는 조기 귀국당해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현지 군대가 출동하고 중앙정보부가 개입해야 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국내에서는 검열 때문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것을 작가인 최경주는 소설을 통해 얼마간 복원해낸 셈인데,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까지 한다. "주바일 소요 사태는 당대의 정주영 회장과 이명박 사장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중동 신화의 절정이었던 주바일 항만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는 전쟁 후 돈이 되면 뭐든 해야 했던 민중들을 대상으로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으로 돈을 챙긴 기업 때문에 일어난 충돌이다."
작가는 중동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건설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선배들 이야기"라고 말한다. 즉 자료를 통해 재구성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전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담아서인지 등장하는 각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주바일 폭동' 이야기가 가장 다이나믹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중동 건설 노동자들의 캐릭터와 에피소드 또한 '구전'을 통하지 않고는 재현해내기 힘들다.
인간적인 수모와 배신
특히 「어느 전기공 이야기」에 등장하는 "강 집사"가 겪은 수모와 배신, 그리고 인간적인 순정은 눈여겨볼 만하다. "강 집사"는 젊은 노동자인데 유독 살결이 희어서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현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성적 대상화된다. 어쩌면 "강 집사"가 성소수자일 가능성도 있다. 그가 유독 신뢰하는 "민호"에게 보이는 행동은 "강 집사"가 성소수자일 가능성을 높이지만 "강 집사"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데다가 '성소수자'라는 젠더적 인식과 감성이 억압되어 있었던 당대의 문화를 감안해서 그런지 작가는 끝내 그것을 밝히지 않는다. 관리자인 "김 과장"은 노동자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강 집사"를 이용하고 그것을 눈치 챈 "민호"는 그 나름대로 "강 집사"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게 된 "강 집사"는 "민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이 말을 하려고 온 건 아닌데. 난 형을 이해해.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누구나 날 이용하니까. 난 괜찮아. 다 괜찮은데 말이지…, 내가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곳에 왔던 그 모습으로 집에 갈 수 있을까? 그렇게 될까?"(244)
체불 임금 때문에 기획했던 노동자들의 스트라이크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만, 관리자들에게도 그리고 동료인 노동자들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한 "강 집사"는 심한 상처를 입고 만다. 아픈 "강 집사"를 두고 계약이 만료된 "민호"는 귀국을 해야 했지만, 자신의 병을 기도로 치유하려던 "강 집사"는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귀국해서 그 소식을 들은 "민호"는 울부짖지만, "고층건물 사이 좁은 골목의 어둠이 그의 울음을 먹고 깊어갔"을 뿐이다.
살아 있는 리얼리티
작가 최경주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겪은 '모멸을 감수하는 노동'을 말하면서도 적잖은 분량을 그들의 구체적 일상을 묘사하는 데 바친다. 예컨대, 무료를 견디기 위해 치는 화투 이야기도 그 당시 중동 건설 노동자의 일상과 정서를 엿보는 데 훌륭한 입구이다. 여우의 생식기를 도려낸 가죽을 갖고 있으면 돈을 딴다는 속설을 따라하다 "충근"은 "매독의 일종"이라 불리는 병에 걸리고 만다. 여우 가죽을 팬티 안에 넣고 화투를 치다가 결국 성기가 감염된 것인데, 작가는 어떤 개입 없이 들은 이야기를 옮겨 적음으로써 당시 노동자들의 중동 생활을 핍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동의 노동자들은 혹독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 방법이 없으니 화투라든가 밀주를 담가 마신다든가 하는 소소한 일탈을 감행한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이 연작소설집의 리얼리티를 현저하게 높인다. 실린 작품들이 중편에 가까운 분량인 것도 아마 이런 리얼리티를 담아내느라 길어진 탓으로 보인다. 기존 소설의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기술하는 방식은, 분명 독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겠으나 그것은 반대로 우리가 소설은 본디 이야기라는 점을 망각한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작가 최경주는 자신이 노동 현장에서 전해들은 중동 건설 현장의 이야기들을 옮겨놓음으로써 이야기의 본래 구실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작품에서 등장하는 늙은 노동자의 이야기는 첫 작품에서 "김 대위"가 미용사에게서 듣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음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목차
목차
조선소 소요 ㆍ 65
거간꾼들 ㆍ 119
여우 가죽 ㆍ 165
어느 전기공 이야기 ㆍ 205
사막의 모래바람 ㆍ 251
떠나는 자와 남는 자 ㆍ 357
해설 | 영광의 신화 속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서사 ㆍ 박일환(시인) ㆍ 383
작가의 말 ㆍ 397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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