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등급 영화
김선향 시집
김선향 시인의 시는 여리되 강하다. 부드럽게 마음을 사용하되 심지가 굳다. 시인은 이 세계의 사회적 약자를 관심에서 배제하지 않고 숭고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받들어 모신다. 이주민, 난민, 철거민, 그리고 감정 노동자에 대해 공동체가 온당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처우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당찬 목소리로 사회적 주제를 발언한다. 여성성의 주체화 문제를 크게 부각시킨 점도 그러하다. 하지만 김선향 시인의 시에는 서정의 ‘쪽화단’이 함께 있다. 이 대목에서 김선향 시인의 시는 보다 새롭고 특별하게 탄생한다.(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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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김선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F등급 영화』는 여성 해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으로, 하지만 역사의 무게까지 감당하면서 천착하고 있다. 첫 시집에서 가부장제라는 '새장'을 박차고 나왔지만,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곤경에 처한다는 진실을 육화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면, 이번 시집은 보다 더 경쾌하게 때로는 비통하게 여성과 여성의 '역사'를 노래한다. 한편으로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 목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진전된 인식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최진석은 "신체와 감각을 관류하는 경험의 순간이 즐거움의 장 속으로 삼투되고" 있다고 했지만, 시인이 여성의 '역사'를 다룰 때는 조금 다른 면모도 아울러 보여준다.
자전거야말로 여성해방의 도구입니다
페달을 밟자, 쌩쌩
페달을 밟자, 더 멀리, 더 빨리
모험을 감행하자, 자유를 얻을 때까지
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하자, 세상 끝까지
-「자전거를 타는 여자」 부분
일본 군인들이 자신의 몸을 짓밟든 말든
자신의 영혼을 갈가리 찢든 말든
말문이 닫힌, 병든 검은 새는 아편만 찾았다지
쓸모가 없어진 그녀를 일본 군인들은
만주 벌판에 내다 버렸다지
낮밤으로 들리던 그녀의 울음은
까마귀 울음과 닮았다지
-「후남 언니」 부분
「자전거를 타는 여자」는 명랑하게 여성해방을 말하고 있지만, 「후남 언니」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성의 '역사'를 비통하게 담고 있다. 물론 「후남 언니」가 일본군 '위안부' 여성을 노래하고 있기에 그 비극성이 더 도드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위안부' 여성의 아픔에 김선향 시인은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남성의 '역사'에 짓밟히고 있는 여성의 '역사'에 그만큼 예민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실 「자전거를 타는 여자」 앞부분에는 19세기에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분노를 억눌러가며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의 뒷부분에서 보여주는 명랑성도 사실은 울음을 머금은 웃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김선향 시인은 "집에나 처박혀 있어,/이 나쁜 년들"이라는 남성의 언어가 일본군 '위안부' 여성이라는 남성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김선향 시인은 현재의 사안을 모두 젠더적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여성의 '살아 있는' 눈으로 현실을 재해석하는데, 그것은 젠더 문제와는 조금 떨어진 것 같지만, 그것은 젠더 문제마저 규정하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건강하게 다른 존재와 연대하기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가게가/ 문을 닫고 개업을 하고/ 다시 망해 나가떨어지는" 현실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끌어들여 자신의 현실과 겹쳐놓는다. 그런다고 해서 이주노동자들을 감상적으로 연민하거나, 그들의 처지를 통해 자신을 위로하지도 않는다. 뜻밖에도 시인이 발견한 것은 그들의 "토란잎 같은 미소"의 '생생함'이다.(「폐업 신고 하던 날」) 만일 김선향 시인에게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면 이 부분이고 또 명랑성이 있다면 다른 존재에게서 발견하는 삶의 건강이다. 사실 명랑은 건강하지 못하면 갖지 못하는 것이다. 「적요」라는 짧은 시에서도 시인이 삶을 얼마나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드러난다.
독산동 우시장 28호
소 머리통을 매만지는 여인의
골똘한 눈동자
능수능란한 손놀림
-「적요」 전문
정육점에서 "소 머리통을 매만지는 여인"에게서 '골똘함'과 '능수능란함'을 발견하는 대목은 시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하며, 그만큼 시인의 눈이 건강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 김선향 시인의 건강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도발적인 작품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너는 비단옷을 버리고 탐스러운 머릴 자른다
여왕이 아닌 여자가 되어
홀연히 순례를 떠난 너는
그해 겨울 영원히 세상을 버린다
너는 그제서야 본래의 너로 돌아간다
-「진성여왕을 위한 변명」 부분
난 세상의 금기와 위선에
꿋꿋이 맞설 거예요
언덕 위의 굽은 나무처럼
난 나의 색정증色情症마저 사랑해요
-「조(JOE)-F등급 영화 2」 부분
하지만 남성에게는 여성의 쾌락에 참여할 역량이 없다. 단지 그 쾌락을 한편으로 멸시하면서 한편으로 폭력을 통해 빼앗으려 한다. 이에 대해 김선향 시인은 "엿 먹어라"(「구멍들」)고 맞받아치지만, 아직 여성에게는 사회적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그에 대한 실존적인 자각이 이 시집 전체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힘을 회복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김선향 시인은 남성들에 대한 맞장 보다는 여성들과 같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존재들과 연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게 김선향의 시를 다른 페미니스트 시인들과 달리 읽히게 한다. 이것은 시적 전략이면서도 시인 자신의 실천적 전략 같기도 하다.
그것을 찾아내고 느끼는 것은 독자의 몫인 것 같다.
목차
목차
제1부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ㆍ12
싱글 맘ㆍ14
공평무사ㆍ16
국경을 넘는 여자들ㆍ18
누에ㆍ22
더 컨덕터ㆍ23
조(JOE)ㆍ26
굴다리 여자ㆍ30
후남 언니ㆍ32
머리를 감는 동안ㆍ34
구멍들ㆍ36
바캉스 베이비ㆍ38
어미 거미ㆍ42
구체관절인형ㆍ44
증언의 시작ㆍ46
제2부
자몽ㆍ52
회전목마ㆍ53
수족관ㆍ56
트렁크의 노래ㆍ58
계수나무 남자ㆍ60
그녀가 사는 법ㆍ62
벽 장미ㆍ64
짧은 머리의 자화상ㆍ66
자전거를 타는 여자ㆍ68
여신 쿠마리ㆍ71
모피를 입은 남자ㆍ74
이토록 추운 2월의 밤에
그토록 추웠던 2월의 밤을 기억한다ㆍ76
동행ㆍ78
진성여왕을 위한 변명ㆍ80
떨어진 곳에서도 들리는 말ㆍ82
제3부
폐업 신고 하던 날ㆍ88
적요ㆍ91
복면을 만드는 밤ㆍ92
어떤 밤길ㆍ94
백남기 우리밀ㆍ96
반도체 소녀ㆍ98
공정거래ㆍ100
건강원 앞 쪽화단ㆍ101
터진목 해안에 와서ㆍ102
겨울 아침ㆍ104
허공에 매달린 사내ㆍ106
나는 다 봤습니다ㆍ109
솔롱고스ㆍ112
블랙 슈트ㆍ114
제4부
반려ㆍ120
선인장ㆍ121
곰보 삼촌ㆍ122
서둔동인지 탑동인지ㆍ124
나와 조랑말과 마부는ㆍ126
마호바 역에서ㆍ128
사라진 연못ㆍ130
귀ㆍ132
여름 숲ㆍ134
목걸이ㆍ136
로드무비ㆍ138
첫눈ㆍ140
세족 릴레이ㆍ141
바위무화과나무ㆍ142
해설 'F'라는 고유한 시의 성좌 | 최 진석ㆍ145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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