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삶창시선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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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를 꿈꾸는 시
변홍철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제3세계/ 어디에도 없는 너를 부른다”고 적었다. 이른바 ‘제3세계’는 예전에 서구 자본주의 사회와 동구 사회주의 사회가 아닌, 남반부 나라들을 가리켰고,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서구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으며 독립 이후로는 서구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지속적인 수탈을 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언어를 변홍철 시인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 심상치가 않지만 시인이 말하는 ‘제3세계’는 시가 “우정의 도구”로 쓰이는 세계이기도 하면서 “세 칸 또는 네 칸짜리 열차가// 오 분이나 육 분 늦게 온다는 안내 방송,//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이는(「서경주역」) 카이로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역사와 현실을 방기하는 시간이 아님은 물론이다. 시인은 슬픔마저 “잘 삼키었다가/ 빛나는 종양/ 열매로나 맺자”(「모과꽃」)고 말하면서 “오 분이나 육 분”까지 딱 맞게 굴러가는 지독하게 효율적이고 공리적인 현실의 틈에서 “출출한 불빛”(「시장통」)을 꿈꾼다. 밝고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출출한 불빛”을!
변홍철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제3세계/ 어디에도 없는 너를 부른다”고 적었다. 이른바 ‘제3세계’는 예전에 서구 자본주의 사회와 동구 사회주의 사회가 아닌, 남반부 나라들을 가리켰고,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서구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으며 독립 이후로는 서구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지속적인 수탈을 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언어를 변홍철 시인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 심상치가 않지만 시인이 말하는 ‘제3세계’는 시가 “우정의 도구”로 쓰이는 세계이기도 하면서 “세 칸 또는 네 칸짜리 열차가// 오 분이나 육 분 늦게 온다는 안내 방송,//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이는(「서경주역」) 카이로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역사와 현실을 방기하는 시간이 아님은 물론이다. 시인은 슬픔마저 “잘 삼키었다가/ 빛나는 종양/ 열매로나 맺자”(「모과꽃」)고 말하면서 “오 분이나 육 분”까지 딱 맞게 굴러가는 지독하게 효율적이고 공리적인 현실의 틈에서 “출출한 불빛”(「시장통」)을 꿈꾼다. 밝고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출출한 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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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허공 같은 우리의 꿈속에는
아침이 되어도
벌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구나
재난경보가 익숙해진
낙원도 이제는
방사능이 있는 낙원
풍요도 이제는
저주받은 풍요
_「너의 말을 받아 적다」 부분
이런 현실에서 "망명지의 시인처럼" "오늘 하루/ 제 할 일을 하자"는 시인의 이런 태도가 결국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 틔우는 것"(「꽃길」)이고 바로 이 순간이 "제3세계"인 것이다. 변홍철 시인은 의지를 말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의외로 겉은 뜨겁지만 속은 차가운 혁명이라는 언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시인은 오로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견디듯 다하면서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를 만들고자 할 뿐이다.
싸움을 품고 시를 향해 나아가기
그렇다고 해서 변홍철 시인의 서정시가 내면으로 퇴행 중인 것은 아니다. 4부에 실린 작품들은 역사적 현장의 복판에서 써진 작품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싸움을 품고 시를 향해 나아갔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 서정시라는 것이 역사적 현실과 무관한 심리 상태로 쓰는 시는 아니다. 서정 자체가 삶의 조건과 제약, 굴곡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그 서정으로 인한 서정시가 다시 구체적인 삶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물에 낯을 씻으며
서둘러 멀어져간다
왜 밤과 낮이 바뀌는 시간에는
상처 입은 자가 제 수의를 개켜야 하는가
홍시 같은 신음, 단내가 퍼진다
_「아침놀」 부분
현실 속에서 서정시를 쓰는 행위는 설령 "신음"을 내더라도 그 "신음"을 단내로 바꾸는 정서적 행동이 된다. 우리에게는 달관과 관조를 특징으로 하는 무수한 인생-서정시들이 있지만 "상처 입은 자가 제 수의를" 개키면서 내는 "신음"을 "단내"로 전화(轉化)하는 서정시들은 흔치 않다. 사실 이런 서정시를 쓰는 일은 상당한 (정신주의가 아니라) 정신적 깊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종의 주지주의적인 함정에 빠지고 마는데, 변홍철 시인이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시에 불러들이는 것은 이런 무의식적인 시적 전략 때문이다.
춥고 배고플 텐데
구름의 궤적을 흉내 내고 있다
사는 것은 서러워도
검불이 날리듯 무구한 것이라고
함께, 가벼이, 붉은 해를 맞고 있다
_「무구」 부분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이 함정을 어떻게 건너는가,가 시에서 "제3세계"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는 결코 미학의 문제가 아니다. 김수영이 '시를 아는 것은 전체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변홍철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서 "제3세계"를 만들었는지 어쨌는지 판단하는 일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시를 통해 천국도 민주주의도 아니고 "제3세계"를 만들겠다고 한 사람은 변홍철 시인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아침이 되어도
벌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구나
재난경보가 익숙해진
낙원도 이제는
방사능이 있는 낙원
풍요도 이제는
저주받은 풍요
_「너의 말을 받아 적다」 부분
이런 현실에서 "망명지의 시인처럼" "오늘 하루/ 제 할 일을 하자"는 시인의 이런 태도가 결국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 틔우는 것"(「꽃길」)이고 바로 이 순간이 "제3세계"인 것이다. 변홍철 시인은 의지를 말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의외로 겉은 뜨겁지만 속은 차가운 혁명이라는 언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시인은 오로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견디듯 다하면서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를 만들고자 할 뿐이다.
싸움을 품고 시를 향해 나아가기
그렇다고 해서 변홍철 시인의 서정시가 내면으로 퇴행 중인 것은 아니다. 4부에 실린 작품들은 역사적 현장의 복판에서 써진 작품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싸움을 품고 시를 향해 나아갔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 서정시라는 것이 역사적 현실과 무관한 심리 상태로 쓰는 시는 아니다. 서정 자체가 삶의 조건과 제약, 굴곡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그 서정으로 인한 서정시가 다시 구체적인 삶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강물에 낯을 씻으며
서둘러 멀어져간다
왜 밤과 낮이 바뀌는 시간에는
상처 입은 자가 제 수의를 개켜야 하는가
홍시 같은 신음, 단내가 퍼진다
_「아침놀」 부분
현실 속에서 서정시를 쓰는 행위는 설령 "신음"을 내더라도 그 "신음"을 단내로 바꾸는 정서적 행동이 된다. 우리에게는 달관과 관조를 특징으로 하는 무수한 인생-서정시들이 있지만 "상처 입은 자가 제 수의를" 개키면서 내는 "신음"을 "단내"로 전화(轉化)하는 서정시들은 흔치 않다. 사실 이런 서정시를 쓰는 일은 상당한 (정신주의가 아니라) 정신적 깊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종의 주지주의적인 함정에 빠지고 마는데, 변홍철 시인이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시에 불러들이는 것은 이런 무의식적인 시적 전략 때문이다.
춥고 배고플 텐데
구름의 궤적을 흉내 내고 있다
사는 것은 서러워도
검불이 날리듯 무구한 것이라고
함께, 가벼이, 붉은 해를 맞고 있다
_「무구」 부분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이 함정을 어떻게 건너는가,가 시에서 "제3세계"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는 결코 미학의 문제가 아니다. 김수영이 '시를 아는 것은 전체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변홍철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서 "제3세계"를 만들었는지 어쨌는지 판단하는 일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시를 통해 천국도 민주주의도 아니고 "제3세계"를 만들겠다고 한 사람은 변홍철 시인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 5
1부
꽃길·12
달리아·13
이런 질문·14
서경주역·16
붉은 꽃이 피는 나무·18
모과꽃·20
시장통·21
너의 말을 받아 적다·22
감꽃·24
다른 바람이·26
간이역에서의 비유·28
저녁 비·30
연가·31
나무와 함께 비를 맞다·32
꽃은 활짝 피었구나·34
2부
한식 무렵·38
야행·39
아침 예배·40
숲길·42
유월의 바람·44
아직은 푸른 잎사귀·46
가을 협주곡·48
하지 않은 말·50
첫눈을 기다리며·51
편지·52
겨울나무를 위하여·54
섣달·56
겨울 등반·58
3부
법원 앞에서의 산책·62
다리가 새로 놓인 마을·64
길·66
비 오는 날·67
식탁을 위하여·68
저물녘의 운산·70
멀리서 온 병·72
북소리·74
무구·76
개강·77
남파랑길·78
구룡종합석물·80
점두록·81
바람개비·82
달리 씨네 쌀 배달하기·83
4부
아침놀·88
리오그란데·90
열병의 역사·92
섬·93
성모당에서·94
가만히 있으라·96
새벽종이 울리지 않아도·100
솥·103
그래도 우리는·106
일몰의 노래·109
제정신이라면 오늘·111
시인과 전쟁·113
발문
걷는 자와 머무는 자 사이에 트인 말 하나(한지혜)·117
1부
꽃길·12
달리아·13
이런 질문·14
서경주역·16
붉은 꽃이 피는 나무·18
모과꽃·20
시장통·21
너의 말을 받아 적다·22
감꽃·24
다른 바람이·26
간이역에서의 비유·28
저녁 비·30
연가·31
나무와 함께 비를 맞다·32
꽃은 활짝 피었구나·34
2부
한식 무렵·38
야행·39
아침 예배·40
숲길·42
유월의 바람·44
아직은 푸른 잎사귀·46
가을 협주곡·48
하지 않은 말·50
첫눈을 기다리며·51
편지·52
겨울나무를 위하여·54
섣달·56
겨울 등반·58
3부
법원 앞에서의 산책·62
다리가 새로 놓인 마을·64
길·66
비 오는 날·67
식탁을 위하여·68
저물녘의 운산·70
멀리서 온 병·72
북소리·74
무구·76
개강·77
남파랑길·78
구룡종합석물·80
점두록·81
바람개비·82
달리 씨네 쌀 배달하기·83
4부
아침놀·88
리오그란데·90
열병의 역사·92
섬·93
성모당에서·94
가만히 있으라·96
새벽종이 울리지 않아도·100
솥·103
그래도 우리는·106
일몰의 노래·109
제정신이라면 오늘·111
시인과 전쟁·113
발문
걷는 자와 머무는 자 사이에 트인 말 하나(한지혜)·117
저자
저자
변홍철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아왔다. 시집으로 『어린왕자, 후쿠시마 이후』, 『사계』가 있고, 산문집 『詩와 공화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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