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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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사물
김환중 시인의 『귀가 된 그릇』은 우리 주위에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는 사물들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문학평론가 장은영은 시집의 해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환중은 사물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경이로움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시가 그것을 표현하는 말임을 선언한 시인이다." 좀 더 나아가 "자신의 주인이자 세계의 주인이었던 인간을 벗어나기 위해 자연의 리듬과 문법을 상상하고 사물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사물의 편에서 시를" 쓴다고 했는데, 확실히 김환중 시인의 사물을 느끼는 감각은 독특한 점이 있다. 김환중 시인에게 사물과 사물, 사물과 자연은 직접 교유한다. 일단 표제작인 「귀가 된 그릇」이 그렇다. 비록 "냄비며 양푼/ 굴러다니던 빈 깡통"을 내놓은 것은 인간이지만 그 그릇들과 쏟아지는 비는 인간과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내뱉지 못한 것들이
비로 쏟아질 때
심술부리던 바람이
양철 지붕과 합주를 합니다
(…)
비가 그치고
그릇 속에는 소리의 뼈만 남았습니다
작은 파문 하나가 당신 이름처럼 맴돌고
_「귀가 된 그릇」 부분
쏟아지는 비는 "우리가 내뱉지 못하는 것들"이며, 내뱉을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비는 "양철 지붕과 합주"를 한다. 그 합주 소리는 비의 흐름을 타고 와 "그릇 속에는 소리의 뼈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쏟아지는 비'와 "양철 지붕"이 만나 생성된 소리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릇이 귀가 되어 그것을 다 담음으로써 지금껏 없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인간의 언어조차도 사물에 의탁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과 사물의 관계는 오랜 철학의 주제이지만 김환중 시인은 인간의 말이 점점 사라져 가는("자꾸 말을 잃어간다") 현실에서 말들이 "피난처 같은 항아리에" "숨는다"고 말한다. 숨은 말들은 그러나 "울음 같은 진동"으로 퍼질 뿐 새로운 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형국이다. 다만 '잃어버린 말'들의 "그림자는 살아 있다".(이상, 「잃어버린 말의 몸매와 닮아 있어서」) 지금 김환중 시인에게는 '잃어버린 말'을 잠시 숨겨둘 수 있는 사물, "항아리"에 자신의 존재를 의탁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김환중 시인에 사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음 시를 보자.
마당 귀퉁이에 기대 선 빗자루는
관념의 잡초를 쓸어내듯
바닥의 얼룩을 밀어내고
흔들리는 솔잎들이
생각을 흩뿌려
다시 길을 만들었다
어두운 방 안 스탠드 램프는
자신의 그림자를 먼저 밖으로 보내며
어둠의 모서리를 더듬었다
_「동사로 살아가는」 부분
여기서 "빗자루"나 "스탠드 램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인용되지 않은 1연과 2연에서는 "낡은 우산 한 자루"와 "먼지 쌓인 바퀴 하나"가 등장한다. 이 사물들은 스스로 운동을 한다. 그 운동이 인용된 3연과 4연에 와서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다. "다시 길을" 만들고, "어둠의 모서리를 더듬"는다. 4연 마지막 행에 가서는 급기야 "나에게 빛을 뿌리고" 있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렇게 김환중 시인이 사물들에게 자신의 언어를 의탁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존재(sein)를 느끼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김환중 시인의 『귀가 된 그릇』은 우리 주위에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는 사물들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문학평론가 장은영은 시집의 해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환중은 사물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경이로움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시가 그것을 표현하는 말임을 선언한 시인이다." 좀 더 나아가 "자신의 주인이자 세계의 주인이었던 인간을 벗어나기 위해 자연의 리듬과 문법을 상상하고 사물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사물의 편에서 시를" 쓴다고 했는데, 확실히 김환중 시인의 사물을 느끼는 감각은 독특한 점이 있다. 김환중 시인에게 사물과 사물, 사물과 자연은 직접 교유한다. 일단 표제작인 「귀가 된 그릇」이 그렇다. 비록 "냄비며 양푼/ 굴러다니던 빈 깡통"을 내놓은 것은 인간이지만 그 그릇들과 쏟아지는 비는 인간과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내뱉지 못한 것들이
비로 쏟아질 때
심술부리던 바람이
양철 지붕과 합주를 합니다
(…)
비가 그치고
그릇 속에는 소리의 뼈만 남았습니다
작은 파문 하나가 당신 이름처럼 맴돌고
_「귀가 된 그릇」 부분
쏟아지는 비는 "우리가 내뱉지 못하는 것들"이며, 내뱉을 수도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비는 "양철 지붕과 합주"를 한다. 그 합주 소리는 비의 흐름을 타고 와 "그릇 속에는 소리의 뼈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쏟아지는 비'와 "양철 지붕"이 만나 생성된 소리지만 최종적으로는 그릇이 귀가 되어 그것을 다 담음으로써 지금껏 없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인간의 언어조차도 사물에 의탁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과 사물의 관계는 오랜 철학의 주제이지만 김환중 시인은 인간의 말이 점점 사라져 가는("자꾸 말을 잃어간다") 현실에서 말들이 "피난처 같은 항아리에" "숨는다"고 말한다. 숨은 말들은 그러나 "울음 같은 진동"으로 퍼질 뿐 새로운 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형국이다. 다만 '잃어버린 말'들의 "그림자는 살아 있다".(이상, 「잃어버린 말의 몸매와 닮아 있어서」) 지금 김환중 시인에게는 '잃어버린 말'을 잠시 숨겨둘 수 있는 사물, "항아리"에 자신의 존재를 의탁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김환중 시인에 사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음 시를 보자.
마당 귀퉁이에 기대 선 빗자루는
관념의 잡초를 쓸어내듯
바닥의 얼룩을 밀어내고
흔들리는 솔잎들이
생각을 흩뿌려
다시 길을 만들었다
어두운 방 안 스탠드 램프는
자신의 그림자를 먼저 밖으로 보내며
어둠의 모서리를 더듬었다
_「동사로 살아가는」 부분
여기서 "빗자루"나 "스탠드 램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인용되지 않은 1연과 2연에서는 "낡은 우산 한 자루"와 "먼지 쌓인 바퀴 하나"가 등장한다. 이 사물들은 스스로 운동을 한다. 그 운동이 인용된 3연과 4연에 와서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다. "다시 길을" 만들고, "어둠의 모서리를 더듬"는다. 4연 마지막 행에 가서는 급기야 "나에게 빛을 뿌리고" 있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렇게 김환중 시인이 사물들에게 자신의 언어를 의탁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존재(sein)를 느끼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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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존재의 공허와 사물
구체적 연관 관계를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몇몇 시편에서 약간의 유추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잉여인간」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현존재에 대한 회의.
지루한 삶에 지친 냉장고가 코 고는 소리
당신도 들리나요
우리가 저 여백을 채우는 부속품 아닐까요
메인 요리를 먹어치운 접시 위에 남은 장식용 파슬리 같은
먹히지는 않아도 그 자리에 없으면 어쩐지 허전한
_「잉여인간」 부분
이 작품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이렇게 읊조린다. "내일은 창틀에 쌓인 먼지의 이름을 지어줄까 해요". 사실 이런 진술은 시인의 내면이 심각한 회의 내지는 공허를 체험 중이라는 것을 가리켜 준다. 그런데 인간이 사물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인가 하는 근원적인 회의 혹은 물음("우리가 저 여백을 채우는 부속품 아닐까요")은 어느 순간 사물은 살아 있다,라는 인식으로 전환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시집의 특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가시 왕관」이란 작품에서 김환중 시인은 재차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리가 자라나/ 세상을 향해 벼린 가시는/ 타자를 거부하는 방패이자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인 것을". 「공갈빵」에서도 존재의 허(虛)를 느끼게 해준다. 즉 이 작품에서도 시인은 존재의 흔적만을 확인한다. "공갈빵의 심장은 부풀어 오르며 뜨거운 숨을 가두었을 그 흔적만 남기었다".
시라는 선물
사물에 대한 인식의 균열이 이번 시집의 특징으로 보이는 것은, 시집 전체에서 시인의 자아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에서도 엿보인다. 사실 독자는 '구체적인' 시인의 초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토르소 씨」 같은 작품은 시인의 내면이 무엇인지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두려움의 올가미인 귀를//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팔다리조차 없는 토르소 씨 당신은// 나의 요새입니다". 팔다리가 없는 '토르소'에 대한 감정이입은 시인 자신의 내면이 어떤 모습인지 독자들에게 힘겹게 하는 고백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평론가 장은영의 말대로 '시라는 선물'을 통해 사물에게 숨을 불어넣고 동무를 삼는 김환중 시인의 시는 자기 분열/해체적인 현대시의 유행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 놓인다.
구체적 연관 관계를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몇몇 시편에서 약간의 유추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잉여인간」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현존재에 대한 회의.
지루한 삶에 지친 냉장고가 코 고는 소리
당신도 들리나요
우리가 저 여백을 채우는 부속품 아닐까요
메인 요리를 먹어치운 접시 위에 남은 장식용 파슬리 같은
먹히지는 않아도 그 자리에 없으면 어쩐지 허전한
_「잉여인간」 부분
이 작품의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이렇게 읊조린다. "내일은 창틀에 쌓인 먼지의 이름을 지어줄까 해요". 사실 이런 진술은 시인의 내면이 심각한 회의 내지는 공허를 체험 중이라는 것을 가리켜 준다. 그런데 인간이 사물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인가 하는 근원적인 회의 혹은 물음("우리가 저 여백을 채우는 부속품 아닐까요")은 어느 순간 사물은 살아 있다,라는 인식으로 전환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시집의 특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가시 왕관」이란 작품에서 김환중 시인은 재차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리가 자라나/ 세상을 향해 벼린 가시는/ 타자를 거부하는 방패이자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인 것을". 「공갈빵」에서도 존재의 허(虛)를 느끼게 해준다. 즉 이 작품에서도 시인은 존재의 흔적만을 확인한다. "공갈빵의 심장은 부풀어 오르며 뜨거운 숨을 가두었을 그 흔적만 남기었다".
시라는 선물
사물에 대한 인식의 균열이 이번 시집의 특징으로 보이는 것은, 시집 전체에서 시인의 자아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에서도 엿보인다. 사실 독자는 '구체적인' 시인의 초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토르소 씨」 같은 작품은 시인의 내면이 무엇인지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두려움의 올가미인 귀를//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팔다리조차 없는 토르소 씨 당신은// 나의 요새입니다". 팔다리가 없는 '토르소'에 대한 감정이입은 시인 자신의 내면이 어떤 모습인지 독자들에게 힘겹게 하는 고백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평론가 장은영의 말대로 '시라는 선물'을 통해 사물에게 숨을 불어넣고 동무를 삼는 김환중 시인의 시는 자기 분열/해체적인 현대시의 유행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 놓인다.
목차
목차
시인의 말ㆍ5
1부
어금니 경전 / 12
와락 / 14
못 / 17
책무덤 / 18
높은음자리표 / 20
귀가 된 그릇 / 22
잃어버린 말의 몸매와 닮아 있어서 / 24
드라이아이스 / 26
숨바꼭질 / 28
오래된 오후가 골짜기에 고여 있다 / 30
번식하는 귀들이 자라나요 / 32
사막 도서관 / 34
동사로 살아가는 / 36
2부
손바닥 악장 / 40
복화술사 / 42
소리의 화형식 / 45
전능을 피고로 부르다 / 46
구름의 상열지사 / 48
빗금으로 쓴 악보 / 50
바다 오르간 / 52
자동인형 / 54
몽당연필에게 / 56
잉여인간 / 58
유리 감옥 / 60
상상임신 / 62
포물선 / 64
건반 위의 장례식 / 66
3부
식물의 심전도 / 70
보호색 / 72
슬안(膝眼) / 74
공갈빵 / 76
리트머스 사탕 / 77
무늬 없는 무릎 / 78
피그미족 / 80
깨금발 / 82
뱀풀 / 83
가시 왕관 / 85
감정박물관 / 87
당의정 / 89
혀 / 91
괄약근 / 93
4부
구름 도둑 / 96
화살표가 그리는 궤적 / 98
삼각형 공식에 갇힌 슬픔 / 100
B에게 / 102
어린 왕자의 일기를 훔쳐보았다 / 105
밑변의 안부를 묻는 저녁 / 107
산타클로스가 보낸 편지 / 109
막무가내 씨 / 111
토르소 씨에게 / 114
소문 실명제 / 116
코끼리 그림자가 지나갈 때 / 119
불쑥 / 121
수사학의 요새 / 123
사다리 / 125
점묘화 / 127
해설
사물의 숨과 온기를 전하는 말(장은영) / 130
1부
어금니 경전 / 12
와락 / 14
못 / 17
책무덤 / 18
높은음자리표 / 20
귀가 된 그릇 / 22
잃어버린 말의 몸매와 닮아 있어서 / 24
드라이아이스 / 26
숨바꼭질 / 28
오래된 오후가 골짜기에 고여 있다 / 30
번식하는 귀들이 자라나요 / 32
사막 도서관 / 34
동사로 살아가는 / 36
2부
손바닥 악장 / 40
복화술사 / 42
소리의 화형식 / 45
전능을 피고로 부르다 / 46
구름의 상열지사 / 48
빗금으로 쓴 악보 / 50
바다 오르간 / 52
자동인형 / 54
몽당연필에게 / 56
잉여인간 / 58
유리 감옥 / 60
상상임신 / 62
포물선 / 64
건반 위의 장례식 / 66
3부
식물의 심전도 / 70
보호색 / 72
슬안(膝眼) / 74
공갈빵 / 76
리트머스 사탕 / 77
무늬 없는 무릎 / 78
피그미족 / 80
깨금발 / 82
뱀풀 / 83
가시 왕관 / 85
감정박물관 / 87
당의정 / 89
혀 / 91
괄약근 / 93
4부
구름 도둑 / 96
화살표가 그리는 궤적 / 98
삼각형 공식에 갇힌 슬픔 / 100
B에게 / 102
어린 왕자의 일기를 훔쳐보았다 / 105
밑변의 안부를 묻는 저녁 / 107
산타클로스가 보낸 편지 / 109
막무가내 씨 / 111
토르소 씨에게 / 114
소문 실명제 / 116
코끼리 그림자가 지나갈 때 / 119
불쑥 / 121
수사학의 요새 / 123
사다리 / 125
점묘화 / 127
해설
사물의 숨과 온기를 전하는 말(장은영) / 130
저자
저자
김환중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6년 『문예연구』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걱정발 구르다 생각코만 하염없이 늘입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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