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한국사
▶ 이 책은 한국사를 다룬 개론서입니다. 한국사의 기초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을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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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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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문화와 국가형성
1절 선사시대의 사회와 문화
1. 구석기 사회와 문화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되는 유원인이 언제 지구상에 나타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대략 B.C.250만 년경인 신생대 제4기인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 홍적세)부터로 여겨지고 있다.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거주하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유적을 통해 한반도 주변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B.C.70만 년경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사에 있어서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구석기인들이 그 후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었건 또는 아니 되었건
간에 최초로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사의 첫 번째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지구의 환경은 신생대 제 3기 말부터 극심하게 변화해 흔히 빙하기라 불리는 혹심한 환경이 혹은 수십만 년 주기로 반복되었으며, 각 빙하기와 간빙기
내에서도 수백 혹은 수천 년 단위의 소빙하기 혹은 간빙기가 갑자기 도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조건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으며, 유적은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환경조건에서 만들어 졌다. 한반도의 기후환경도 이러한 기후 변동에 영향을 받으며 크고 작은
환경변화를 겪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구석기 유적들을 살펴보면 빙하기와 간빙기 때의 크고 작은 동물화석, 현재 멸종된 동물화석 등 다양한 동물 화석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구석기시대 한반도의 자연환경이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체되면서 극심한 변화가 있었던 것을 알려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구석기 유적은 1933년 함경북도 종성의 동관진이다. 이 유적에서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었으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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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학자들에 의해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그 최초의 발굴은 1962~1963년 함경북도 웅기의 굴포리와 부포리에서 긁개·새기개 등이 들어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 포함층이 발견되었고, 1964년에는충남공주군장기면석장리에서전기로부터후기까지의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발견된 구석기 유적은 1000곳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서 중요한 유적을 살펴보면, 북한에서는 평남 상원의
검은모루 동굴, 덕천의 승리산 동굴, 함북 웅기 굴포리 등이 조사되었고, 남한에서는 충북 제천의 점말동굴, 단양 금굴, 충남 공주의 석장리, 제주도의 빌레못
동굴,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충북 청원의 두루봉 동굴과 단양의 수양개 유적 등이 발굴·조사됨으로써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전국적으로 구석기인이 거주하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 대표적 유적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구석기 전기의 유적지로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에서 원숭이, 큰쌍코뿔이 등 29종류의 열대 동물 뼈와 뗀석기들, 구석기인들의 식생활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경기도 연천 전곡리는 아슐리안 계통의 주먹도끼를 출토하여 모비우스 학설이 오류였다는 것을 밝히었다. 충북
단양 금굴은 B.C.70만 년전의 유적으로 추정되어 우리나라 최고의 유적지이며,
전기 구석기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거의 모든 시기의 유물층이 발견되어 각
문화층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중기의 유적지로 함북 웅기 굴포리에서는 박편석기와 맘모스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충북 제천의 점말동굴에서는 털코뿔이·동굴곰·짧은꼬리 원숭이 등의
20종 동물화석과 사람얼굴을 새긴 코뿔소뼈가 출토되었다. 후기의 유적지로 함북 종성 동관진은 한반도 최초의 구석기 발견으로 골각기, 석기, 맘모스화석 등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다. 단양 수양개 유적은 돌날몸돌과 슴베가 갈린 찌르개 등 뗀석기가 다량 발견되어 석기 제작지로 추정되며, 고래와 물고기를 새긴
조각품도 출토되었으며, 동아시아 선사문화의 교류를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충북 청원 두루봉동굴에서는 큰원숭이, 쌍코뿔이 등 열대 동물화석등이 발견되었으며, 뗀석기와 뼈연모 그리고 인골이 발견되어 구석기인의 장례의식을 살펴 볼 수 있다. 충남 공주 석장리는 남한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구석기
존재를 확정하게 하였으며,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문화층과 집터(기둥, 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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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 개모양의 석상 등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 우리나라에서 인골이 발견된 유적으로 평남 덕천군 승리산 동굴 유적의 하층 문화층에서 어금니 2개, 어깨뼈 1개가 발견되면서 한반도 최초의 사람화석으로 '덕천인', 상층 문화층에서 아래턱 뼈가 발견되어 '승리산인'으로 불린다. 평양시 역포구 대현동 유적에서는 7~ 8세로 보이는 소녀의 머리뼈가 발견되어 '역포인'이라 명명되었고, 평양시 만달리 동굴유적에서 25~30세의 남자 머리뼈와 아래턱이 발견되어 '만달인'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충청북도 단양군 상시바위그늘 유적에서는 남한에서 최초의 사람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충청북도 청원군 두루봉동굴 유적에서 5~7세 어린이의 완전한 뼈가 발견되었는데,
발견자의 이름을 따라 '흥수아이'로 명명되었다.
구석기인들이 사용하던 도구는 주로 돌의 한 면 또는 양면을 떼어내어, 사용하는데 편리하게 만든 타제석기(뗀석기)와 동물의 뼈나 뿔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든 골각기가 대부분이었다. 타제석기는 처음에는 찍개 같은 도구를 가지고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으나 점차 석기 제작기술이 발달하면서 용도에 맞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사냥용으로 찍개, 주먹도끼, 찌르개 등, 조리용으로 긁개, 밀개, 자르개 등, 공구용으로 새기개 등이 있다.
구석기인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구석기인은 가족단위 혹은 그 이상의 집단(작은 규모로 30∼40명을 넘지 않음)을 이루어 주로 동굴 또는 바위그늘에서 생활을 하였으며, 후기에는 평지에 막집을 짓고 거주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주거지에서 불을 사용한 자리爐址가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음식의 조리와
난방을 위해 불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식량의 채집단계로서 사냥과 고기잡이 또는 식물의 열매를 채취하는 유치한 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며, 집단으로 이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생존과 관계되는 주술적 의식이나 단순하고 유치한 예술적 행위도 있었을 것이다.
2. 신석기 사회와 문화
한국의 신석기시대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한반도와 만주에는 새로운 주민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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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와 만주일대에 퍼져 있던 고古아시아족 계통으로 B.C.10,000~8,000년 전(제주 고산리 유적)부터 정착하게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보고 있다. 당시의 지구환경은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도래한 이후에도 몇 차례 상대적으로 춥고
더운 기후조건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자연환경은 점차 오늘날과 비슷한 환경을
이루게 되었다.
신석기인들은대체로강가와해안가에서생활하다가점차로내륙지방으로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다양한 입지조건의
장소에서 전국적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현재 1만 개 이상의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그 대표적 유적지는 전기에는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강원도 양양시 오산리, 부산시 동삼동 유적 등을 들 수 있으며, 중기에는 평안남도 청오리,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경기도 양주시 미사리 유적 등을 들 수 있고, 후기로는 평안남도
궁산리, 경기도 부천시 시도,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강원도 춘천시 교동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인들은 돌로 갈아서 만든 마제석기를 사용하였는데, 사냥도구로 석검,
석촉, 석창, 망초석 등이 있으며, 농경도구로 석리(보습), 석겸, 유구석부, 반월형석도, 연석 등이 있다. 또 신석기인들은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전기는
B.C.6,000년 경으로 함북 웅기의 굴포리·강원도 양양의 오산리·부산의 동삼동
등 유적에서 마제석기와 함께 원시무문토기(이른민무늬토기)와 융기문토기(덧무늬토기),인화문토기(눌러찍기문토기) 등이 발굴되었다. 이들의 특징은 동해안을 따라 일부지역에서 분포하였다.
중기는 보통 빗살무늬토기라 불리우는 즐문토기를 주로 사용하던 시대로서
B.C.4,00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즐문토기의 유적지로 대표적인 것은, 함북 웅기의 굴포리·서울의 암사동·경기도 하남의 미사리·부산의 동삼동 유적 등이며 이외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도 100여 개소에 이른다. 이들의 특징은 전국의 강가나 해안가에 분포하며 북방계통의 영향을 받았다.
후기는 B.C.2,000년경으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리,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강원도 춘천시 교동 유적 등에서 평저즐문토기(평저빗살무늬토기)·파상문토기(물결무늬토기)·뇌문토기(번개무늬토기), 타래문토기 등의 거친무늬를 많이 사용한 토기와 대형토기, 그리고 구연부가 이중으로 되는 형태도 등장한다. 이들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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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중국 채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밑이 평평한(U) 모양을 한 것도 있다.
신석기시대 토기의 전체적 특징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곧은 입술直立口緣에 밑이 뾰족한 V자형이거나 둥근 모양으로서 표면에 빗살과 같은 무늬가 있다. 그 빛깔은 고르지 못하지만 제일 많은 것이 적갈색이며 흑갈색도 꽤 보이고 있다. 이 즐문토기는 러시아의 북부 카렐리아 지방에서 발생하여 시베리아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두만강·압록강
유역 및 전국의 강가나 해안가 일대에 널리 퍼졌던 것이다.
신석기인들은전기에는채집경제생활에의존하고있었음을알수있었으나,
B.C.2,000년경부터는 신석기인들은 농경이라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농경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후기 신석기 유적에서 토기와 함께 돌로 만든 갈판.石·낫石鎌·괭이石.·반달모양칼半月形石刀등 농사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도구들이 기장이나 피라고 생각되는 잡곡류의 낱알과 함께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를 알 수 있다. 그 유적으로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평양시 남경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인의 농경은 집근처의 조그만 텃밭을 이용하거나 강가의 퇴적지를 소규모로 경작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농기구로는 주로 간석기를 이용했으나 중국, 일본과 같이 나무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신석기인들의 주거 형태는 주로 움집竪穴住居이었지만, 자연 또는 인공의 동굴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움집은 땅 밑을 60cm 내지 1m 정도
파고, 벽 가까이에 기둥을 돌려 세운 다음 지붕을 이엉으로 씌우는 반 움집을
말한다. 그 형태는 원형과 장방형의 두 가지가 있는데,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으로 출입문을 내었으며, 바닥의 중심부에는 불을 피우던 자리爐址가 있고, 한쪽
구석에는 물건을 저장하던 장소도 있었다. 신석기인들은 처음에는 짐승의 가죽을 주로 사용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으나, 뒤에는 점차 가락바퀴나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감을 만들어 입게 되었으며, 장신구로 구슬이나 조개껍질을 사용할
줄도 알았다.
신석기인들의 사회생활은 그 유적과 유물 그리고 후대의 여러 문헌에 전하고
있는 신화·전설·유습 등을 통해서 짐작할 수밖에 없다. 기록이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미 취락을 이루어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들의 집터가 한 군데 여럿이 몰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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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본적인 사회구조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부족사회로 20∼30명 단위의
씨족을 기본 구성단위로 하였다. 그러나 아직 씨족단위의 부족사회에는 아직
지배·피지배의 계급이나 개인 재산에 대한 관념 같은 것은 없었고, 농사·사냥·
고기잡이 등의 생산 활동이나 그것의 분배와 소비는 모두 공동으로 하던 평등사회이었다.
각 씨족마다에는 그 사회를 대표하는 씨족장이 있었는데, 이는 씨족원의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자로서 씨족 내부나 다른 씨족과 관계되는 중요한 일들, 즉
전쟁·생산·분배 등에 대하여는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고, 반드시 씨족 전체회의의 일치된 결의를 집행할 뿐이었다. 이러한 것은 신라의 화백제도에서 그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씨족 공동사회는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서로 생활영역을 정하여 다른 씨족의 영역 내에서는 사냥이나 고기잡이와 같은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아 패쇄적 독립사회였다. 만약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에는 배상을 하였는데, 그것은 동예의 책화라는 습속이 있던 것으로 보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신석기인들은 혈연을 중심으로 생활하였기 때문에 외부와의 관계가 매우 폐쇄적이었는데 반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다른 씨족과의 족외혼이 행해져서
부족사회를 이루게 되었다. 신석기 사회는 전쟁이나 계급의 발생, 가족분화가
본격화하기 이전단계이므로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모계사회의 가족체계였다.
신석기인들은 농경과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연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의 생활이 전적으로 자연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경외와 공포가 신앙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생활을 지배하는 자연에대한숭배사상과인간의영혼과관계되는영혼불멸사상그리고토테미즘(Totemism)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자연숭배는 대체로 자연현상의 경외에서 비롯되어 주로 하늘·강·산 등을 숭배하였다. 그중에서도 태양숭배사상은 가장 광범하게 행해져서 후의 박혁거세나 주몽의 설화도 모두 이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또 이 시대의 사람들은
우주 만물이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 때문에 죽은 자가 사용하던 물건을 같이 묻어주는 부장의 풍습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죽은 뒤의 세계를 인정하는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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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불멸사상은 고대 세계의 일반적인 공통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씨족에 따라서는 어떤 특정의 동물을 자기 씨족의 조상으로 생각하여
숭배하는 신앙으로 토테미즘(Totemism)이 있었는데, 단군신화의 곰·호랑이, 박혁거세의 말, 동명왕의 개구리, 석탈해의 까치 등이 그러한 것이다. 또 어떤 씨족은 금기(Taboo)를 갖고 있기도 하였다.
신석기인들은 샤머니즘(Shamanism)도 믿었는데, 동북아시아의 여러 종족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원시적인 종교의식이지만, 반드시 동북아시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과 신과의 사이에 주술사(무당)가 있어서 그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상이다. 이 주술사는 제사장·의사·예언자의 역할을 하던 존재이며, 또한 구복과 제액을 위한 종교의식, 즉 굿을 하던 무당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보통 무격신앙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주술사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로서, 원시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였으며,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집단의 수장으로서 또 제정이 분리된 뒤에는 삼한의 천군과 같은 존재로서 그
기능이 유지되었고, 뒤에는 토착신앙의 전수자로서 그 소임을 다 하였다.
3. 청동기 사회와 문화
한반도에서신석기문화를지니고오랫동안정착생활을해오던씨족공동체사회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생겼다. 그것은 B.C.1,500~1,200년경에 청동기와 무문토기를 사용하는 집단이 한반도 내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선주민인 신석기인들을 흡수 내지 동화하면서 한반도의 거의 전 지역에 퍼져 정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중국의 요령성, 길림성을 포함하는 만주지방과 한반도에 걸쳐 야산과 구릉지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 대표적으로 북한지역에는
함경북도 회령시 오동리, 함경북도 나진시 초도, 평안북도 강계군 공귀리, 평안북도 의주시 미송리, 평양시 사동구역 금탄리 유적 등이 있으며, 남한지역에는
경기도 파주시 덕은리, 서울시 가락동, 경기도 여주시 흔암리, 충청북도 제천시
황석리, 충청남도 부여시 송국리, 전라남도 순천시 대곡리 유적 등이 있다.
이 청동기인들은 청동기와 무문토기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청동기는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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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지방,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연해주지역에서 들어온 것으로 그 성분에 있어서 아연이 포함되어 중국의 그것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걸쳐 형성된 독자적인 청동기문화였던 것이다. 이 청동기는 주로 비파형동검·세형동검·청동촉 등의 무기, 청동단추·동물모양의 띠고리 장식 등과 같은
장신구, 다뉴조문경(동경)·팔주령·쌍두령과 같은 여러 종류의 의기가 있었다.
청동기인들이 사용하던 무문토기는 진흙에 작은 돌가루를 섞어 만든 다갈색의 것으로, 그 모양은 밑바닥이 평평한 타원형의 화분형과 밑바닥이 좁은 팽이형이 있다. 간혹 쇠뿔과 같은 손잡이가 달려 있기도 하며 겉에 아무런 무늬도
없는 것이 보통이어서 무문토기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인데, 지역에 따라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그 대표적 토기로는 출처에 따라 미송리식토기, 공귀리식토기, 가락리식토기, 송국리식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인들은 농사에는 아직도 석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의 한반도로 이주는 이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이룩하였다. 그것은 이 청동기인들이 농경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 시대에 비로소 벼농사가 시작되어 식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거주지는 신석기인들과는 반대로 야산이나 언덕지대에 분포되어 있었고, 여기에서 출토되는 유물도 토기·청동기와 함께 이삭을 자르는데 사용하던 반월형석도(반달돌칼)와 밭을 가는데 사용되던 유구석부(홈자귀)등 여러 가지 농기구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사냥과
고기잡이의 생활에서 점차 농사짓는 생활로 바뀌어 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청동기인들의 경제생활을 살펴보면, 주거지는 배산임수의 취락구조로 대체로 앞쪽은 시냇물이 흐르고 뒤쪽에는 북서풍을 막아주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는
곳에 우물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목책·환호 등의 방어에 필요한 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 부족 간의 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집은 움집이었는데, 형태는 방형(정사각형), 장방형(직사각형), 원형, 타원형 등 매우 다양하나 그
움의 깊이가 40cm 정도밖에 안되었던 것으로 보아 차츰 지상가옥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덕자리는 한쪽 벽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저장구덩이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 밖으로 돌출시켜 만들었다. 또 창고나 작업장 같은 독립 시설은 집밖에 따로 만들기도 하였으며, 움집을 세우는데 주초돌(초석)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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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청동기시대에 들어와서 농경은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벼농사(여주시 흔암리, 부여시 송국리 유적에서 탄화된 볍씨 출토)와 보리, 콩이
새로 재배되는 밭농사가 주가 되었다. 또 사냥과 고기잡이도 병행하였을 것이나, 농경의 발달로 점차 그 비중은 줄어들었고 돼지, 소, 말 등 가축을 사육하였다. 청동기인들은 무문토기와 벼농사를 일본에 전하여 줌으로써 일본 고대 야요이문화(미생문화)의 기층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청동기인들은 청동제의 무기로 무장하고 활발한 정복사업을 통해 폐쇄적인
이 사회의 조직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맺으면서 점차 부족사회로의 발돋움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부족사회란 서로 인접해 있는
두 개 이상의 씨족 집단이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공동체(지연중심)를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족사회의 기본 구조인 씨족의 혈연관계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부족사회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인구의 증가·농업의 발달·새로운 무기의 등장 등으로 커다란 사회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청동기 시대에는 여성은 주로 집안일을 담당하고 남성은 농경, 전쟁과 같은 바깥일에 종사하면서 역할의 분화가 나타났다. 농기구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증가로 잉여생산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잉여생산물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강한 자가 이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되고, 계급분화가 촉진되어 계급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계급분화는 죽은 뒤에까지도 영향을 끼쳐 무덤의 크기와 부장품의 내용에 반영되었다. 청동제의 무기를 이용하여 활발한 정복활동을 함으로써 정치적 지배자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지배자(부족장)는 씨족장과 같이 그들의 대표자가 아니라 그들을 지배하는 권력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족장의 지배력은 청동기문화의 전파가 빨랐던 북쪽의 부여나 고구려에서는 일찍이 형성될 수 있었으나 새로운 문화의 전파가 늦었던 남쪽의 삼한사회와 동쪽의 옥저·예의 지역은 늦게까지도 부족장의 세력이 강하게 형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청동제의 무기로 무장한 이들이 벌인 활발한 정복사업은 폐쇄적인 이 사회의 조직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형성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사회와 경제의 발달에 따라 예술과 의례활동도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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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활동으로는 암각화를 들 수 있는데 모두 15개소 정도가 알려져 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기원을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이다. 암각화는 신석기 후기에 처음 등장하였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발견되는 대부분의 암각화는 청동기시대의 것이다. 그 대표적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경상북도 고령군 양전동 알터 암각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 등이 있다. 의례활동과 관련된 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 경상남도 산청군 묵곡리에서는 하천에 토기와 석기를 깨뜨려 뿌린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모종의 제사를 치른 결과로 판단된다.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리 어은지구의 주거지에서는 땅에 묻은 도구 등 생활의례 흔적이 발견되었다. 각지의 매장유적에서는 토기를 깨뜨려 뿌린 장송의례의
흔적이 발견되며, 강원도 춘천시 천전리나 경상북도 포항시 인덕산 유적 등에서는 동물이나 곡물 등을 일정하게 배치한 농경의례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부족장의 지배력은 그들의 분묘 형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묘제로는 지석묘(고인돌·Dolmen)·석관묘(돌널무덤)·적석총(돌무지무덤)등이 있었다. 지석묘는 큰 돌로 만든 지배자의 무덤으로서 부족사회의 강대한 지배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석묘와 입석(선돌·Menhir)은 거석문화라고도
표현되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동반구에서는 인도와 중국의
산동반도 그리고 동북지역을 제외한 한국의 거의 전역과 일본에까지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거석문화가 어떤 경로를 밟아서 이 땅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의 지석묘는 지석의 형태와 구조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 그리고 개석식으로 나뉘어 진다. 북방식의 구조는 네 개의 넓은 돌을 지석으로 세우고 그 위에 넓고 큰 돌을 개석으로 올려놓아 개석과 석실의 대부분이 땅 위로 노출되고
있는데, 이를 흔히 탁자식이라고도 한다. 남방식은 석실을 땅 밑에 만들고 땅 위에 몇 개의 괴석(지석)을 놓고 그 위에 개석을 올려놓은 것으로서 흔히 기반식(바둑판식)이라고 하는데, 이외에 지석이 없이 개석(개석식)만 있는 것도 있다. 또한 입석도 한국의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지석묘는 한 개만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몇 개씩 혹은 100개가 넘는 무리를 이루어 남북에 산재해 있다. 북방식과 남방식의 선후 관계는 대체로 전자가
20 교양 한국사
먼저 된 것이고 후자는 이것의 퇴화 내지는 변형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크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큰 것은 길이가 9m, 무게가 수십 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 이 지석묘의 부장품으로는 흔히 마제석검이 발견되지만, 청동기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거대한 지석묘는 부족사회의 개인 묘였다. 이 개인 묘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지석묘는 그곳에 묻힌 자의 세력과 그 세력을 이어 받은 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제 일부 부족장들은 다른 씨족이나 다른 부족의 위에 서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 사회에 처음으로 정치적 지배자가 탄생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부족국가로의 첫 걸음이기도 하였다.
석관묘는 직사각형의 판석을 땅속에 묻고 그 안에 시신을 매장한 뒤 판석을
덮은 것으로 남방식 지석묘의 하부구조나 부속시설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적석총은 시신 위에 돌로 쌓은 무덤이다. 하부구조로 석관이 들어가기도 하고, 형태에 따라 계단식을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2절 고조선의 성립과 문화
1. 고조선
고조선은 그 여러 개의 부족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부족국가로 성장·발전하였다. 이러한 고조선과 관련된 중국측 문헌으로 『관자管子』는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람인 '관중管仲'이 쓴 것으로 B.C.7세기 전국시대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조선은 8,000리 밖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고조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며, 조선이란 명칭이 처음으로 나온다.
『위략魏略』은중국삼국시대위나라의역사를기록한사서인데, 여기에는
B.C.4세기 이전부터 조선에서 왕을 칭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후가 스스로 왕이라고 일컬었으며, 군사를 동원하여 중국의 연燕을 공격하려다가 조선의 대부大夫
인 예禮의 만류로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산해경山海經』은 중국 최고의 지
1장 선사시대의 문화와 국가형성 21
목차
목차
1장 선사시대의 문화와 국가형성………………………………………………11
1절 선사시대의 사회와 문화…………………………………………………………11
1. 구석기 사회와 문화……………………………………………………………13
2. 신석기 사회와 문화……………………………………………………………17
3. 청동기 사회와 문화
2절 고조선의 성립과 문화………………………………………………………………21
1. 고조선 ………………………………………………………………………………21
2.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23
3. 위만조선……………………………………………………………………………24
4. 고조선의 사회와 문화…………………………………………………………26
5. 한군현(한사군)의 설치………………………………………………………28
2장 고대국가의 성립과 문화…………………………………………………… 31
1절 삼국의 성립과 발전…………………………………………………………………31
1. 고구려의 성장과 융성 …………………………………………………………31
2. 백제의 흥기와 중흥……………………………………………………………34
3. 신라의 성립과 발전……………………………………………………………36
4. 가야의 성쇠………………………………………………………………………39
2절 고구려의 수, 당과의 투쟁…………………………………………………………40
1. 삼국의 대외관계…………………………………………………………………40
2. 고구려와 수와의 전쟁…………………………………………………………41
차 례 5
3.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42
3절 삼국의 사회와 문화…………………………………………………………………43
1. 삼국의 통치체제…………………………………………………………………43
2. 삼국의 경제와 사회……………………………………………………………47
3. 삼국의 문화………………………………………………………………………52
3장 고대 남북국시대의 사회와 문화……………………………………………60
1절 통일신라의 정치와 사회…………………………………………………………60
1. 통일신라의 정치…………………………………………………………………60
2. 통일신라의 사회…………………………………………………………………64
2절 발해의 건국과 문화…………………………………………………………………67
1. 발해의 건국과 멸망……………………………………………………………67
2. 발해의 통치체제…………………………………………………………………70
3. 발해의 경제생활…………………………………………………………………71
4. 발해의 문화………………………………………………………………………71
3절 통일신라의 문화……………………………………………………………………72
1. 통일신라 문화의 성격…………………………………………………………72
2. 불교의 발전………………………………………………………………………73
3. 유학과 한문학……………………………………………………………………76
4. 과학과 기술………………………………………………………………………78
5. 통일신라의 예술…………………………………………………………………80
4절 통일신라의 분열과 후삼국의 성립……………………………………………82
1. 통일신라의 분열…………………………………………………………………82
2. 호족의 대두………………………………………………………………………84
3. 후삼국의 성립……………………………………………………………………85
4장 고려의 건국과 발달………………………………………………………… 88
1절 고려 사회의 성립……………………………………………………………………88
1.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88
6
교양 한국사
2. 태조의 호족연합정책…………………………………………………………90
3. 광종의 왕권강화정책…………………………………………………………92
4. 귀족사회의 성립…………………………………………………………………93
2절 고려 정치와 사회……………………………………………………………………95
1. 정치기구의 정비…………………………………………………………………95
2. 과거제도와 음서제도…………………………………………………………98
3. 군사조직……………………………………………………………………………99
4. 교육제도…………………………………………………………………………101
5. 토지제도…………………………………………………………………………102
6. 민중생활…………………………………………………………………………106
3절 고려 전기의 대외정책……………………………………………………………108
1. 거란(요)과의 항쟁…………………………………………………………… 108
2. 여진정벌과 금과의 관계……………………………………………………109
3. 송과의 관계…………………………………………………………………… 111
5장 귀족사회의 동요와 무신정권의 대두……………………………………112
1절 귀족사회의 동요와 무신집권…………………………………………………112
1. 이자겸과 묘청의 난………………………………………………………… 112
2. 무신집권과 정권 쟁탈……………………………………………………… 114
3. 최충헌의 정권 수립………………………………………………………… 117
4. 최씨정권의 통치기구……………………………………………………… 1182절 몽고와의 항쟁과 삼별초………………………………………………………120
1. 무신정권의 대몽항쟁……………………………………………………… 120
2. 무신정권의 몰락과 대몽강화…………………………………………… 122
3. 삼별초의 항전………………………………………………………………… 123
3절 고려후기의 정치변동……………………………………………………………124
1. 원의 내정간섭과 폐해……………………………………………………… 124
2. 원간섭기의 개혁정치……………………………………………………… 129
3. 농장의 확대와 재정의 파탄……………………………………………… 131
차 례 7
4.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등장………………………………………… 132
6장 고려의 사상과 문화……………………………………………………… 135
1절 고려의 사상…………………………………………………………………………135
1. 유학의 발달…………………………………………………………………… 135
2. 사서의 편찬…………………………………………………………………… 137
3. 불교의 발달…………………………………………………………………… 138
4. 풍수지리설……………………………………………………………………… 143
2절 고려의 문화…………………………………………………………………………144
1. 과학 기술의 발달…………………………………………………………… 144
2. 인쇄술의 발달………………………………………………………………… 145
3. 화약의 제조와 이용………………………………………………………… 146
4. 귀족사회의 예술………………………………………………………………147
7장 조선 사회의 성립………………………………………………………… 153
1절 조선의 개국과 왕권확립………………………………………………………153
1. 조선의 건국과정………………………………………………………………153
2. 왕권의 확립…………………………………………………………………… 156
2절 조선 사회의 구조…………………………………………………………………162
1. 통치체제…………………………………………………………………………162
2. 경제구조와 사회생활……………………………………………………… 169
8장 사림세력의 등장과 민족의 시련…………………………………………176
1절 사림의 진출과 붕당정치………………………………………………………176
1. 사림의 진출과 사화………………………………………………………… 176
2. 붕당정치와 탕평정치……………………………………………………… 179
2절 민족의 시련-왜란과 호란………………………………………………………188
1. 임진왜란…………………………………………………………………………188
2. 호란의 발발과 전개………………………………………………………… 194
8
교양 한국사
9장 조선 사회의 문화………………………………………………………… 197
1절 한글 창제와 서적의 편찬………………………………………………………197
1. 한글창제…………………………………………………………………………197
2. 조선왕조실록………………………………………………………………… 198
3. 서적의 편찬…………………………………………………………………… 200
2절 과학 기술의 발달과 예술………………………………………………………208
1. 과학 기술의 발달…………………………………………………………… 208
2. 문학과 예술의 발달………………………………………………………… 209
3. 문학과 예술의 새경향……………………………………………………… 214
10장 조선후기 사회의 변화상……………………………………………… 219
1절 조선후기 서민 경제의 변화……………………………………………………219
1. 수취체제의 변화………………………………………………………………219
2. 서민 경제의 성장…………………………………………………………… 223
2절 실학과 대원군의 개혁정치……………………………………………………229
1. 실학의 발달…………………………………………………………………… 229
2. 대원군의 개혁과 문호개방 거부정책………………………………… 235
11장 개화세력의 성장…………………………………………………………241
1절 문호개방과 개화운동……………………………………………………………241
1. 개항과 개화정책………………………………………………………………241
2.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247
2절 동학농민운동과 근대적 개혁…………………………………………………253
1. 동학농민운동………………………………………………………………… 253
2. 갑오경장…………………………………………………………………………259
12장 대한제국과 민족의 수난……………………………………………… 264
1절 독립협회의 활동과 대한제국…………………………………………………264
차 례 9
1. 독립협회…………………………………………………………………………264
2. 대한제국…………………………………………………………………………267
3. 간도와 독도…………………………………………………………………… 270
2절 민족의 수난…………………………………………………………………………273
1. 국권의 피탈…………………………………………………………………… 273
2. 일제의 식민정책………………………………………………………………277
13장 독립운동과 민족문화의 수호………………………………………… 288
1절 임시정부와 독립운동……………………………………………………………288
1. 3·1운동………………………………………………………………………… 288
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291
3. 3·1운동이후의 항일운동…………………………………………………… 295
2절 민족운동과 문화의 수호………………………………………………………297
1. 민족운동의 새 양상………………………………………………………… 297
2. 민족문화의 수호………………………………………………………………303
14장 대한민국의 수립과 민주주의 성장…………………………………… 308
1절 민족의 광복과 대한민국의 수립……………………………………………308
1. 8·15 광복과 분단…………………………………………………………… 308
2.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314
2절 민주주의의 성장…………………………………………………………………316
1. 4·19혁명…………………………………………………………………………316
2. 5·18민주화운동……………………………………………………………… 318
3. 6월 민주항쟁………………………………………………………………… 321
역대왕조 왕계표(歷代王朝 王系表)………………………………………… 324
참고문헌…………………………………………………………………………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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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한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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