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화용 교육
『한국어 화용 교육』은 화용론의 주요 연구 주제이자 한국어교육학에서 활발하게 연구되어 온 화행, 담화, 공손, 은유의 기본 이론을 소개하고 교수학습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 기존에 저자가 발표한 논문들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전반적인 이론과 연구의 흐름을 논의하면서 스스로의 연구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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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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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발췌]
제1부 화용교육
1. 화용론의 연구 대상과 범위
화용론의 개념과 연구 주제는 언어학의 다른 영역과의 구분을 통해서 설명되어 왔다. 대표적인 논의로 Morris(1938)을 들 수 있는데 통사론은 기호와 기호의 관계, 의미론은 기호와 그것이 전달하는 것의 관계, 화용론은 기호와 기호 사용자 및 기호 해석자의 관계를 다루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박영순 2007: 14에서 재인용). 통사론에서는 언어 기호가 다른 언어 기호와 결합하여 단어, 구, 절, 문장 등을 만들어 내는 규칙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한다. 의미론에서는 특정한 언어 기호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두고 개별 단어의 의미, 단어와 단어의 의미적 관계, 문장의 중의성 또는 문장과 문장 간의 의미적 관계를 연구한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통사론과 의미론 분야에서는 언어 사용자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화용론에서는 기본적으로 언어 사용자가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 즉, 언어 사용자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표현하며 이것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화용론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 언어 기호 중에서 왜 특정한 것을 선택하여 말하는지, 그리고 화자가 말하는 것이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는데도 왜 특정한 의미로 해석되는지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는 맥락(context)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즉,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말하는지가 언어 기호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용론에서는 언어 사용자들과 그들의 관계 및 사회적 상황과 같은 맥락에 주된 관심을 둔다.
언어학의 다른 영역과의 관계 속에서 화용론을 정의하고자 할 때에는 화용론을 '언어학의 쓰레기통(waste-basket of linguistic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기존의 통사론에서 논의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본 것을 의미론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미론을 '통사론의 쓰레기통'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통사론에서는 언어 보편적인 문법 규칙에 집중하여 의미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였고 이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의미론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통사론 연구에서는 문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문장이 왜 논리적으로 모순되며 아무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지, 문장을 구성하는 문법 규칙이 다른데도 왜 같은 내용을 의미하게 되는지의 문제를 쓰레기로 치부하였지만 이는 곧 의미론의 주요 연구 대상 중 하나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미론에서는 논리적이고 형식적인 의미 관계에 치우쳐 맥락적인 의미를 제쳐두었고 이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화용론이다. '언어학의 쓰레기통'이라는 용어에서 부정적인 어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는 화용론이 언어학의 연구 대상과 범위를 넓혔다는 것을 잘 설명하는 용어라고도 볼 수 있다.
화용론의 주요 연구 영역과 범위를 Mey(2001)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미시 화용론
1. 맥락, 함축, 지시(reference)
2. 화용적 원리
3. 화행
4. 대화분석
거시 화용론
5. 메타 화용론
6. 화용적 행위(pragmatic acts)
7. 문학 화용론
8. 문화 간 화용론
9. 화용론의 사회적 측면들
맥락은 함축이나 지시를 이해하는 전제로 작용한다. 화자가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지만 맥락을 통해 문자적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추론하는 것을 함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에게 "지금 몇 시야?"라고 묻는 것은 약속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났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약속에 늦은 것을 질책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지시는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것인데, 화용론에서는 지시 표현을 화자의 의도,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고 있는 배경 지식에 따라 달리 선택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화용적 원리는 언어 사용을 규제하는 암묵적 규칙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협력원리와 공손원리, 관련성의 이론(Relevance Theory)이 있다. 협력원리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대화 규칙을 말한다(Grice 1975).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고 관련 있는 정보를 알맞게 제공하려고 노력하며 대화 상대방 역시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정보가 표현되더라도 이를 협력원리에 맞춰 이해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다음의 대화에서 '나'의 말은 '가'의 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는 '나'의 말을 다음 주에 빌린 돈을 갚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는 대화 참여자가 서로에게 관련 있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는 암묵적 규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 가: 빌려 간 돈 언제 갚을 거야?
나: 다음 주에 월급 들어 와.
또한 우리는 일부러 협력원리를 위반하는 발화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공손원리가 협력원리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설명된다(Lakoff 1973, Leech 1983). (2)에서 '나'는 한잔하자는 '가'의 제안을 듣고 이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이야기한다. 이는 대화 상대방의 제안에 대한 직접적인 거절이 청자의 체면(face)을 손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즉, 협력원리를 우선시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관련성이 떨어지는 내용을 발화하여 체면에 대한 위협을 줄임으로써 우호적인 대화 분위기와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2) 가: 일도 잘 끝났는데 한잔할까?
나: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협력원리가 양의 격률, 질의 격률, 관련성의 격률, 태도의 격률의 세부 유형으로 구성되는 것에 반하여 관련성 이론에서는 관련성이 의사소통 행위의 핵심이라고 본다(Sperber & Willson 1986). 즉, 서로의 발화에 관련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나머지 하위 격률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화행 이론은 언어 사용 자체가 특정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보는 관점을 기본으로 한다. 화행 이론에서는 요청이나 거절과 같이 우리가 언어를 통해 수행하는 행위에 관심을 두고 이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나 이러한 행위가 언어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주로 연구해 왔다. 화행 이론 덕분에 우리는 화자가 언어를 통해 실제로 의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표현되고 이해되는지를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분석(Conversation Analysis)에서는 실제 대화를 분석하여 언어적 상호작용의 특징과 구성 원리를 밝히고자 한다. 대화분석을 통해 우리는 대화가 말차례(turn)로 구성되며, 말차례가 어떻게 교환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대화가 시작되고, 대화의 주제가 전개되거나 전환되며 마무리되는 대화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다. 대화분석에서는 응집성(coherence)과 응결성(cohesion), 인접쌍(adjacency pairs)을 주요 개념으로 다루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문장 단위 이상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응집성은 담화가 내용적인 일관성을 갖추는 것, 응결성은 담화표지와 같은 언어 형식을 사용하여 짜임새 있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인접쌍은 요청의 발화에 이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발화가 이어지는 것과 같은 대화의 구조를 말한다.
거시 화용론에서는 언어 사용의 사회적 측면을 보다 중요하게 다룬다. 메타 화용론은 화용론의 개념 정의, 언어학의 다른 영역과의 관계 등 화용론 자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말한다. 화용적 행위는 '맥락화된 적응 행위(contextualized adaptive behavior)'로 규정되는데 언어 사용자가 자신을 맥락에 맞추는 것, 그리고 언어 사용자가 맥락을 자신에게 맞게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Mey 2001: 227). 따라서 화용적 행위 이론에서는 요청이나 거절과 같은 개별적인 화행보다 언어 사용자와 맥락 간의 상호작용에 더 집중하게 된다. 문학 화용론에서는 문학 작품에 쓰인 지시, 시제, 담화 구성 등의 문제를 화용론적 관점에서 다룬다. 문화권마다 서로 달리 나타나는 협력원리나 공손원리의 문제는 문화 간 화용론의 주요 관심사이다. 화용론의 사회적 측면들에 대한 논의에서는 교육 현장이나 미디어에서의 언어 사용 문제를 주로 다루며 기본적으로 언어 사용을 사회적 힘(social power)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고 보는 관점을 취한다.
이상의 논의를 살펴볼 때 화용론은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 및 사회적 맥락에 기본적인 관심을 두고, 특정 맥락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언어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화용 교육의 필요성
외국어 교육에서 화용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 것은 의사소통적 접근법(communicative approach)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의사소통적 접근법에서는 실제적인 언어 사용 능력의 개발을 기본 목적으로 한다. 즉, 어휘나 문법 그 자체를 아는 것보다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분명하고 적절하게 전달하며 상대방의 의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Savignon(1972)에서는 의사소통 능력을 언어 학습자들이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본다(Savignon 2001: 16에서 재인용). 의사소통 능력은 [그림 1.1]의 4가지의 하위 요소로 구성된다.
맥락
의사소통 능력
사회문화적
전략적
담화적
문법적
[그림 1.1] 의사소통 능력의 구성요소 (Savignon 2001: 17)
문법적 능력은 문장 단위의 문법 형태와 관련된 것으로 어휘적, 형태적, 통사적, 음운적 언어 요소를 이해하고 산출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담화적 능력은 단어, 구, 문장이 상호 관련성을 가지고 의미 있는 전체가 되도록 응집성과 응결성을 갖춘 발화를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언어학적 능력은 언어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칙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에 걸맞은 발화를 생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능력은 불완전한 언어 지식, 피로나 주의의 흐트러짐과 같은 제약을 극복하고 친숙하지 않은 맥락에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화용 교육과 관련하여 [그림 1.1]에서 눈여겨 볼 것은 각각의 능력의 상위에 맥락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법적, 담화적, 사회언어학적, 전략적 능력이 맥락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언어학적 능력과 전략적 능력은 그 성격상 맥락을 기본적인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담화적 능력에서 말하는 응집성과 응결성은 맥락을 형성하고 이해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문법적 능력 역시 언어 학습자가 맥락에 적절한 문장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Savignon(2001: 17)에서는 문법적 능력이 의미를 해석하고 표현하며 협상하는 데에 언어 규칙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논의를 살펴볼 때 의사소통 능력에 대한 논의에서 화용 능력이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화용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맥락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용 교육의 중요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Bachman(1990), Bachman & Palmer(1996)에서는 언어 평가의 개발과 연구를 위해 의사소통 능력을 개념화했는데 화용 능력을 의사소통 능력의 주요 구성요소로 다루고 있다. 이들의 논의에서 의사소통 능력은 언어 수행(competence) 능력(또는 언어 지식)과 전략적 능력으로 구성된다.
문법 지식
텍스트 지식
기능적 지식
사회언어학적 지식
의사소통 능력
언어 지식
전략 지식
화용적 지식
구성 지식
[그림 1.2] 의사소통 능력의 구성(Bachman & Palmer 1996)
[그림 1.2]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 지식은 구성 지식과 화용적 지식으로 나뉜다. 구성 지식은 발화, 문장, 텍스트를 구성하는 지식을 말하는데, 문법 지식과 텍스트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각각 [그림 1.1]의 문법적 능력과 담화적 능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용적 지식은 기능적 지식과 사회언어학적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기능적 지식이란 의사소통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발화, 문장,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이는 생각이나 지식을 표현하고 교환하기 위한 개념적(ideational) 기능, 주변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작적(manipulative) 기능, 세상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기 위한 발견적(heuristic) 기능, 창의적 활동을 위한 상상적(imaginative) 기능을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언어학적 지식이란 방언(dialect), 변이형(varieties), 언어사용역(register), 언어 표현의 자연스러움과 관용 표현, 문화적 지시(reference)와 비유 표현을 포함한다.
[그림 1.2]에서는 텍스트 지식과 화용적 지식을 별개의 것으로 다루고 있지만 텍스트 지식이 응집성, 수사적/대화적 구성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텍스트 지식 역시 화용적 지식 중 일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 지식, 기능적 지식, 사회 언어학적 지식은 결국 응집성 있는 담화를 구성하고 특정한 의사소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며 사회적 맥락에 적절한 발화를 산출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화용적 지식이 의사소통 능력의 주요 구성요소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화용 교육의 필요성은 외국어 학습자의 언어에 대한 연구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Thomas(1983)에서는 언어적,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에서 일어나는 화용적 실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화용적 실패란 화자의 판단에 청자가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발화의 힘(the force of the speaker's utterance)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Thomas 1983: 94). 예를 들면 화자는 요청을 의도하고자 했으나 이것이 청자에게는 명령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또는 화자는 공손하게 요청을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말한 것이 청자에게는 노골적이고 무례한 발화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화자가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용적 실패라고 불린다.
화용적 실패는 언어적 문제와 관련한 화용언어적(pragmalinguistic) 실패와 문화 간의 서로 다른 인식에서 발생하는 사회화용적(sociopragmatic) 실패로 나뉜다. 요청의 경우 학습자가 요청의 힘을 완화하는 외국어 표현을 몰라서 직접적인 명령을 하게 될 수 있는데 이는 화용언어적 실패의 예에 해당한다. 또는 사회적 규범상 요청을 하기 어려운 상대에게 학습자가 거리낌 없이 요청을 한다면 이는 사회화용적 실패의 하나가 된다. 일반적으로 화용언어적 실패에 비해 사회화용적 실패를 극복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Ellis 2008: 190). 사회화용적 실패는 특정 문화권의 사회적 규범에 관련되어 있어서 언어적 행위의 적절함과 수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판단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교육에서도 학습자의 화용적 실패가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한상미(2005)에서는 영어권 학습자와 한국어 모어 화자 간의 의사소통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분석하였는데 문법적 오류에 비해서 화용적 실패가 의사소통의 장애를 유발하는 빈도가 더 높았다. 문법적 오류 1,253회 중에서 의사소통의 장애를 일으킨 것은 18회에 불과하였지만, 화용적 실패의 경우 전체 359회 중 232회가 의사소통의 장애를 초래한 것이다. 이는 화용적인 문제가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즉, 문법적 오류보다는 화용적 실패가 의사소통의 흐름을 지연 또는 중단시키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또한 대화 참여자들은 문법적 오류보다 화용적 실패를 더욱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문법적 오류는 학습자의 언어 지식의 부족 등을 이유로 비교적 쉽게 용인되는 반면에 화용적 실패는 학습자의 인성 또는 학습자가 속한 문화권의 가치 체계의 문제로 여겨지기 쉬운 것이다.
한국어 학습자의 문법 능력이 발달하거나 전반적인 언어 숙달도(proficiency)가 높아진다고 해서 화용 능력도 같은 속도로 함께 발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도 화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한상미(2005)에서는 숙달도와 문법적 오류 및 화용적 실패의 관계를 분석하였는데, 숙달도가 높아질수록 문법적 오류와 화용적 실패의 발생이 줄어들지만 문법적 오류가 감소하는 비율(36.6%)에 비해 화용적 실패가 감소하는 비율(24.9%)이 낮다는 것을 밝혔다. 이정란(2011)에서는 문법 능력과 화용 능력의 발달 차이가 학습자의 숙달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학습자의 문법 능력이나 전반적인 언어 숙달도의 발달에 따라 화용 능력이 일부 개선되는 면이 있지만, 화용 능력의 어떤 측면은 고급의 단계에서도 여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보다 집중적으로 화용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3. 화용 교육의 내용과 방법
현재 한국어교육의 목적은 의사소통 능력의 개발에 있으므로 교수학습의 내용과 방법을 마련하는 데에 있어 한국어의 화용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해야만 한다. 따라서 언어 항목을 교수학습할 때에 맥락적인 요소를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맥락에 따라 억양, 어휘, 문법이 달리 실현되고 해석된다는 것을 교수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발화 차원에서 억양은 청자에 대한 화자의 감정과 태도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배주채 2011: 104) 화용 교수학습의 주요 대상이 된다. 특히 억양이 실현되는 양상에 따라 화자의 태도적인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문법 항목의 경우 억양 교수학습의 중요성이 더 크다. '-잖-'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내가 말했잖아.'와 같은 문장은 억양이 어떻게 실현되느냐에 따라 대화 상대방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분 나쁘지 않게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왜 모르느냐고 질책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휘 교육에서는 특정한 상황에서의 단어의 의미와 쓰임을 구체적으로 교수학습해야 한다. (3)은 '됐다'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표현하는 예를 보여준다. (3ㄱ)의 됐다는 어떤 상태에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3ㄴ)에서는 지금 상태로도 충분하다는 뜻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며, (3ㄷ)에서는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제안이 못마땅하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기능을 한다.
(3) ㄱ. 가: 저녁 아직 멀었어?
나: 다 됐어.
ㄴ. 가: 더 먹을래?
나: 아니, 이걸로 됐어.
ㄷ. 가: 이거 먹을래?
나: 됐어. 너나 먹어.
문법 교육에서는 특정한 문법 항목이 사용되는 맥락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4)와 (5)에서 문법 항목 '-은 김에'와 '-다길래'는 화자의 의도를 감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4)의 '-은 김에'는 다른 볼 일이 계기가 되어 상대방이 있는 곳에 오게 되었다는 의미를 전달해 상대방을 만나려고 했다는 화자의 의도를 감출 수 있다. (5)에서도 화자가 백화점에 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길래'를 사용한 것이다.
(4) 가: 여기 웬일이야?
나: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온 김에 잠깐 들렀어.
(5) 가: 백화점에 또 갔어?
나: 아니, 저기, 오늘 세일을 한다길래.
또한 화자와 청자의 관계 또는 화자가 청자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배경 지식에 따라서도 문법 항목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문법 교육에서는 실제 상황에서 맥락적인 요소에 따라 문법 항목의 선택과 해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교수학습의 내용을 계획해야 한다.
듣기와 말하기, 읽기와 쓰기 등의 기능 교육에서도 화용론의 주요 개념과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듣기와 말하기의 입말 기능 교육 영역에서는 요청, 거절, 칭찬, 감사와 같은 화행을 교수학습의 기본 단위로 삼을 수 있다. 또한 대화분석의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말차례, 인접쌍 등의 대화 구조, 청자 반응신호(back channeling)와 같은 언어적 상호작용의 특징을 교수학습의 내용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협력원리나 공손원리가 언어 사용에 반영되는 양상도 화용 교수학습 내용에 포함해야 한다. 이는 중간언어 화용론(interlanguage pragmatics)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읽기와 쓰기의 글말 교육 영역에서는 문장 단위의 언어 표현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구성하는 전형적인 방법과 이를 위해 사용되는 언어 표현도 교수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화용론의 개념과 원리를 교수학습할 때에는 명시적/암시적, 연역적/귀납적, 입력 중심/출력 중심의 방법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명시적/암시적 방법은 화용적인 측면들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다루는지에 따라 구분되며, 연역적/귀납적 방법은 원리를 먼저 제시하고 적용 양상을 다루는지 또는 적용 양상을 분석하여 원리를 이끌어 내게 하는지에 따라 구분된다. 입력과 출력 중심의 방법은 화용적인 요소를 담은 언어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고 학습자가 보다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또는 학습자가 입력받은 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것인지에 따라 구분된다. 이러한 방법론의 사용에는 절대적인 우위가 있을 수 없으나 교수학습의 환경에 따라 특정한 방법이 상대적으로 더 적절할 수는 있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화행과 담화, 공손 표현, 은유의 개념과 원리가 한국어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차례대로 다룬다. 2부에서는 화행의 개념과 연구 방법론, 화행의 실현 양상을 바탕으로 화행 교수학습의 내용과 방법, 기법적인 측면들을 논의할 것이다. 3부에서는 담화의 구성과 특성이 문법 교육과 기능 교육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다룬다. 4부에서는 문법 교육을 중심으로 공손 표현의 교수학습 내용을 정리해 본다. 마지막으로 5부에서는 은유를 어휘 교육과 쓰기 교육에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목차
목차
제1부 화용 교육
1. 화용론의 연구 대상과 범위
2. 화용 교육의 필요성
3. 화용 교육의 내용과 방법
제2부 화행 교육
1. 화행의 개념과 유형
2. 화행의 연구 방법
3. 화행의 실현 양상
3.1. 거절 화행 분석의 틀
3.2. 거절 화행의 전략
3.3. 변인에 따른 거절 화행의 실현 양상
4. 한국어 학습자의 화행 수행 양상
5. 화행 교육의 내용과 방법
5.1. 교수학습의 내용
5.2. 교수 방법론
5.3. 자료와 기법
제3부 담화 교육
1. 담화 교육의 중요성
2. 담화와 문법 교육
3. 담화와 기능 교육
3.1. 담화 중심의 쓰기 교육
3.2. 담화 중심의 말하기 교육
3.3. 담화 중심의 이해 교육
제4부 공손 표현 교육
1. 공손과 공손 표현의 개념
2. 한국어 공손 표현
3. 공손 표현과 문법 교육
3.1. 추측 범주의 문법 항목
3.2. 지시 범주의 문법 항목
3.3. 의도 범주의 문법 항목
3.4. 허용ㆍ당위 범주의 문법 항목
3.5. 희망 범주의 문법 항목
3.6. 지각 범주의 문법 항목
3.7. 가능성ㆍ능력 범주의 문법 항목
3.8. 간접 인용 범주의 문법 항목
3.9. 피동 범주의 문법 항목
3.10. 기타 범주의 문법 항목
제5부 은유 교육
1. 은유의 개념
2. 은유의 종류
2.1. 구조적 은유
2.2. 존재론적 은유
2.3. 지향적 은유
3. 은유와 어휘 교육
4. 은유와 쓰기 교육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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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서강대학교 프랑스문화 전공 졸업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한국어교육학과 석사 및 박사
국민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 강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협성대학교 강사
논문
「한국어 공손 표현의 교수학습 연구」
「외국인 학습자용 한국어 문법 교재의 문법 제시 방안 연구: 담화·맥락 정보를 중심으로」
「학문 목적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반론하기'의 전략과 언어 표현 연구」
「개념은유를 활용한 외국인 학부생 대상 교양 글쓰기 수업 연구」
「한국어 거절 화행 실현 양상과 교수학습 방안 연구」
교재
『거침없이 한국어』(공저)
『TOPIK 만점에 도전하라』(공저)
『학령기 자녀를 둔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공저)
『열린 한국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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