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유학의 지평(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감성총서 21)
공감장들ㅣ감성적 주체ㅣ감정적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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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감성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지속해 오고 있는 저자가 ‘낯설게 유학읽기의 방법을 통해 제안했던 ‘유학감성론’의 연장선에 있다. 전작인 『감성의 유학』에서는 유학자들의 삶과 행위를 재독해하면서 ‘감성에 대한 유학적 전망’을 모색하였다면, 『감성유학의 지평』에서는 ‘감성유학’이란 개념을 전면에 제기하면서 이 논의를 ‘새로운’ 주체 발견을 위한 공감적이고 구성적인 사유와 연동하고 있다.
저자는 이전과 다른 각성된 주체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각각의 개체들이 지닌 ‘신체화된 감성’의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지향성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감성의 특성이 공적인 공감대를 구성하여 ‘공감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논의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행화된 유학 연구에서는 유교적 학술ㆍ문화를 토양으로 하는 유학자들의 삶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주로 고찰하였다. 그러나 감성유학은 유학적 삶의 형식들은 이미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공감적 감성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 보았고, 그 자체를 정치적인 과정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공감’의 ‘장’들이 경쟁하고 중첩되는 ‘삶-정치’의 현실에서 ‘감성적 주체’가 구성되고, 그러한 발견은 감성유학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논쟁적 지점이다.
유학적 공감장들의 경쟁 속에서 감성적 주체의 구성과 발견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과 감성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을 ‘감성적 근대성’의 측면에서 파악하였다.
이 책은 16세기 조선유학자들의 공감과 여정에서부터 신자유주의 시대로 지칭되는 우리시대의 부끄러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성적 흐름을 ‘공감장들’, ‘감성적 주체’, ‘감성적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이전과 다른 각성된 주체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각각의 개체들이 지닌 ‘신체화된 감성’의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지향성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감성의 특성이 공적인 공감대를 구성하여 ‘공감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논의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행화된 유학 연구에서는 유교적 학술ㆍ문화를 토양으로 하는 유학자들의 삶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주로 고찰하였다. 그러나 감성유학은 유학적 삶의 형식들은 이미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공감적 감성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 보았고, 그 자체를 정치적인 과정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공감’의 ‘장’들이 경쟁하고 중첩되는 ‘삶-정치’의 현실에서 ‘감성적 주체’가 구성되고, 그러한 발견은 감성유학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논쟁적 지점이다.
유학적 공감장들의 경쟁 속에서 감성적 주체의 구성과 발견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과 감성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을 ‘감성적 근대성’의 측면에서 파악하였다.
이 책은 16세기 조선유학자들의 공감과 여정에서부터 신자유주의 시대로 지칭되는 우리시대의 부끄러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성적 흐름을 ‘공감장들’, ‘감성적 주체’, ‘감성적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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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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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이어서]
낙남현상과 사회적 관계망의 변화
호남유학을 거론할 때, 선행연구자들은 '호남湖南'이라는 별칭의 유래에 대한 검토와 '호남과 유학' 혹은 '호남과 사림'을 결합한 용어의 타당성에 대해 먼저 언급한다. 호남이라는 말은 전라도全羅道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고영진은 선행연구에서, 이 별칭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이고, 이 같은 별칭의 사용은 "전라도가 행정 단위뿐만 아니라 역사ㆍ문화적 공통체로서의 지역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고영진의 주장처럼, '전라도' 혹은 '호남'이라는 용어가 출현하였다는 것은, 이것이 지시하는 '지역'이 특정한 비교 대상과 다른 '특이성singularity'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특이성을 어떤 점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호남유학'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우리는 무엇을 '호남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16세기에 형성된 호남유학이라는 것이 한국유학의 지평에서 어떠한 특이성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의 시민권은 여전히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16세기 호남유학의 특이점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원론적이지만 매우 다층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특히 16세기적 현상, 곧 '호남'이라는 별칭이 16세기 중엽에 이 지역에서 쓰이게 된 사상·문화적 토대가 무엇이었는지는 우선적으로 해명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선행 연구 가운데 박학래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박학래는 16세기 초에 발아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기 이후, 조선유학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호남유학의 지반을 고려말-조선 개국기의 '낙남落南' 현상에서 찾고 있다. 려말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태도를 취했던 일군의 유학자들이 조선개국에 반대하여 낙향하게 되고, 그런 인사들 가운데 경성京城(서울)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기후와 물산이 풍부한 남도로 낙향한 경우가 그러한 사례라는 것이다.
낙남현상은 국가적 변란이나 사화와 같은 참혹한 살육이 자행될 때,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연산조의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 그리고 중종대의 기묘사화己卯士禍 시기에 죽음의 공포정치를 피해 정계에 진출했던 사류들이 낙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과 지방을 구분했던 유교적 통치시스템 하에서 안락했던 중앙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척박한 타향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사건이다.
사화를 피하여 처가지향妻家之鄕인 광주로 낙남했던 기진奇進(勿齋, 1487-1555, 본관 幸州)의 가계가 그러했고, 기진의 아들 기대승奇大升(高峯, 1527-1572)도 그러한 낙향에 울분을 토로하면서 한편으로는 상경종사上京從仕의 열망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낙남의 또 다른 형태가 '유배流配'다. 한때 행세하던 집안의 일원이자 유교적 교양을 학습한 관료학자였던 이들이 낯선 타향에 비자발적으로 이주하여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죄목에 따라 유배지의 생활에도 편차가 있었지만 다수의 유배자들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떨어져 외딴 곳에 고독하게 산다. 유배지의 생활에 적응한 이들 가운데는 지역의 학술문화를 이전과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진흥시키는 이들도 나온다.
정보의 유통과 학술의 교류가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유배자들과 지역민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향촌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남도의 승평昇平(순천)에 유배되었던 김굉필金宏弼(寒喧堂, 1454-1504, 본관 瑞興)과 지역의 사류들이 만나는 과정도 그러한 사례이다.
지방의 문화가 바뀌고 학술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수용은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저항과 반발, 혹은 배제를 일상화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관행화되고 익숙한 것들과 공존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16세기 이래로 호남의 유학자들이 국가의 공식적인 시험을 통해 요직에 진출하고, 새로운 학술이 호남지역에서 산출된 것을 보면, 이질적인 것들과의 경쟁 과정에서 이 지역사회의 역량이 창출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는 무엇에서 비롯하였을까?
변화는 다층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나겠지만, 주목되는 점은 학술의 불모지였던 호남지역에서 '소학小學적 실천'이 매우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김경호의 선행연구에 따르면, 조선전기에 유통된 성리서적 가운데 성종대에는 『성리대전性理大全』, 연산대에는 『대학연의大學衍義』가 두드러지고, 중종대에는 『근사록近思錄』과 『소학小學』이 대두하다가 중종12년(1517)을 기점으로 해서 『소학』이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현상은 김안국金安國(慕齋, 1478-1543, 본관 義城)을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유학자들이 중종의 용인 하에 '향약鄕約'을 시행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중종14년(1519) 음력 11월 이후 훈구관료들에 의한 조광조趙光祖(靜庵, 1482-1520, 본관 漢陽), 김식金湜(沙西, 1482-1520, 본관 淸風)을 비롯한 신진사류에 대한 숙청으로 인해 향약에 대한 논의는 후퇴하고 『소학』은 불온서적이 되어 소학적 실천은 기피忌避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소학』을 존신했던 사류들에 대한 탄압의 성격을 보여준다. 『소학』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중종 후반기(중종38년, 1543)에 사림파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시점에 맞추어서 거론된다.
16세기 전반기 조선사회에서 『소학』이 강조되었던 것은 유학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수기修己와 율신律身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는 기풍의 진작과 연관된다. 소학적 실천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유교적 통치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려던 소장사류들의 운동에서 비롯하였다.
이들은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출처出處의 정당성, 곧 출처의리出處義理를 중시하였다.
조선전기 소학적 실천의 중심에 김종직金宗直(佔畢齋, 1431-1492, 본관 善山)과 김굉필, 이들을 계승하면서 지치至治를 표방했던 조광조가 있었다. '소학동자'로 불렸던 김굉필은 희천熙川의 유배지에서 조광조를 가르쳤고, 전라도 승평昇平으로 배소配所가 옮겨지면서 호남에 『소학』의 자양분이 뿌려진다. 기묘사화의 희생자였던 조광조가 전라도 능주綾州로 유배되고,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서 양팽손梁彭孫(學圃, 1488-1545, 본관 濟州)을 비롯한 호남의 사류들과 만났다는 것은 호남유학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조광조의 능주 적거謫居와 그 유허遺墟는 후대에 호남유학의 위상을 대변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한다. 기묘사화 이후, '소학적 삶'을 따랐던 살아남은 이들은 중앙과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유배되거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낙향한다.
낙향하거나 낙남을 선택한 후 향리에 은거한 이들은 향촌에서 『소학』의 가르침을 내면화 하고 강학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다.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同福에 유배되었던 최산두崔山斗(新齋, 1483-1536, 본관 光陽)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던 김인후나 유희춘柳希春(眉巖, 1513- 1577, 본관 善山)도 역설적이지만, 그러한 정치적 격변이 낳은 학술적 수혜자였다.이렇듯 출처를 중시했던 유교지식인들의 호남지역으로의 비자발적인 낙향이나 정치적 유배, 자발적 귀향에 의한 낙남현상은 향촌사회의 지적 역량과 결합하여 새로운 학풍을 낳는다.
"성인은 학문을 통해 기약할 수 있다"고 하는 "성가학聖可學"의 도학적 이상은 현실화 가능성한 『소학』의 가르침에 스며들어 호남의 학술판도를 일신한다. 이러한 학술적 흐름이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면서 공간적으로 호남의 '순천-능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주목되는 지점이다
낙남현상과 사회적 관계망의 변화
호남유학을 거론할 때, 선행연구자들은 '호남湖南'이라는 별칭의 유래에 대한 검토와 '호남과 유학' 혹은 '호남과 사림'을 결합한 용어의 타당성에 대해 먼저 언급한다. 호남이라는 말은 전라도全羅道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고영진은 선행연구에서, 이 별칭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이고, 이 같은 별칭의 사용은 "전라도가 행정 단위뿐만 아니라 역사ㆍ문화적 공통체로서의 지역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고영진의 주장처럼, '전라도' 혹은 '호남'이라는 용어가 출현하였다는 것은, 이것이 지시하는 '지역'이 특정한 비교 대상과 다른 '특이성singularity'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특이성을 어떤 점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호남유학'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우리는 무엇을 '호남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16세기에 형성된 호남유학이라는 것이 한국유학의 지평에서 어떠한 특이성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의 시민권은 여전히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16세기 호남유학의 특이점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원론적이지만 매우 다층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특히 16세기적 현상, 곧 '호남'이라는 별칭이 16세기 중엽에 이 지역에서 쓰이게 된 사상·문화적 토대가 무엇이었는지는 우선적으로 해명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선행 연구 가운데 박학래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박학래는 16세기 초에 발아하기 시작하여 16세기 중기 이후, 조선유학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호남유학의 지반을 고려말-조선 개국기의 '낙남落南' 현상에서 찾고 있다. 려말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태도를 취했던 일군의 유학자들이 조선개국에 반대하여 낙향하게 되고, 그런 인사들 가운데 경성京城(서울)과 떨어져 있으면서도 기후와 물산이 풍부한 남도로 낙향한 경우가 그러한 사례라는 것이다.
낙남현상은 국가적 변란이나 사화와 같은 참혹한 살육이 자행될 때,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특히 연산조의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 그리고 중종대의 기묘사화己卯士禍 시기에 죽음의 공포정치를 피해 정계에 진출했던 사류들이 낙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과 지방을 구분했던 유교적 통치시스템 하에서 안락했던 중앙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척박한 타향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사건이다.
사화를 피하여 처가지향妻家之鄕인 광주로 낙남했던 기진奇進(勿齋, 1487-1555, 본관 幸州)의 가계가 그러했고, 기진의 아들 기대승奇大升(高峯, 1527-1572)도 그러한 낙향에 울분을 토로하면서 한편으로는 상경종사上京從仕의 열망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낙남의 또 다른 형태가 '유배流配'다. 한때 행세하던 집안의 일원이자 유교적 교양을 학습한 관료학자였던 이들이 낯선 타향에 비자발적으로 이주하여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죄목에 따라 유배지의 생활에도 편차가 있었지만 다수의 유배자들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떨어져 외딴 곳에 고독하게 산다. 유배지의 생활에 적응한 이들 가운데는 지역의 학술문화를 이전과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진흥시키는 이들도 나온다.
정보의 유통과 학술의 교류가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유배자들과 지역민들과의 만남과 교류는 향촌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남도의 승평昇平(순천)에 유배되었던 김굉필金宏弼(寒喧堂, 1454-1504, 본관 瑞興)과 지역의 사류들이 만나는 과정도 그러한 사례이다.
지방의 문화가 바뀌고 학술이 일어나면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수용은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저항과 반발, 혹은 배제를 일상화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관행화되고 익숙한 것들과 공존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16세기 이래로 호남의 유학자들이 국가의 공식적인 시험을 통해 요직에 진출하고, 새로운 학술이 호남지역에서 산출된 것을 보면, 이질적인 것들과의 경쟁 과정에서 이 지역사회의 역량이 창출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는 무엇에서 비롯하였을까?
변화는 다층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나겠지만, 주목되는 점은 학술의 불모지였던 호남지역에서 '소학小學적 실천'이 매우 중요한 흐름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김경호의 선행연구에 따르면, 조선전기에 유통된 성리서적 가운데 성종대에는 『성리대전性理大全』, 연산대에는 『대학연의大學衍義』가 두드러지고, 중종대에는 『근사록近思錄』과 『소학小學』이 대두하다가 중종12년(1517)을 기점으로 해서 『소학』이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현상은 김안국金安國(慕齋, 1478-1543, 본관 義城)을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유학자들이 중종의 용인 하에 '향약鄕約'을 시행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중종14년(1519) 음력 11월 이후 훈구관료들에 의한 조광조趙光祖(靜庵, 1482-1520, 본관 漢陽), 김식金湜(沙西, 1482-1520, 본관 淸風)을 비롯한 신진사류에 대한 숙청으로 인해 향약에 대한 논의는 후퇴하고 『소학』은 불온서적이 되어 소학적 실천은 기피忌避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소학』을 존신했던 사류들에 대한 탄압의 성격을 보여준다. 『소학』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중종 후반기(중종38년, 1543)에 사림파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시점에 맞추어서 거론된다.
16세기 전반기 조선사회에서 『소학』이 강조되었던 것은 유학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수기修己와 율신律身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는 기풍의 진작과 연관된다. 소학적 실천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유교적 통치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려던 소장사류들의 운동에서 비롯하였다.
이들은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출처出處의 정당성, 곧 출처의리出處義理를 중시하였다.
조선전기 소학적 실천의 중심에 김종직金宗直(佔畢齋, 1431-1492, 본관 善山)과 김굉필, 이들을 계승하면서 지치至治를 표방했던 조광조가 있었다. '소학동자'로 불렸던 김굉필은 희천熙川의 유배지에서 조광조를 가르쳤고, 전라도 승평昇平으로 배소配所가 옮겨지면서 호남에 『소학』의 자양분이 뿌려진다. 기묘사화의 희생자였던 조광조가 전라도 능주綾州로 유배되고,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서 양팽손梁彭孫(學圃, 1488-1545, 본관 濟州)을 비롯한 호남의 사류들과 만났다는 것은 호남유학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조광조의 능주 적거謫居와 그 유허遺墟는 후대에 호남유학의 위상을 대변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한다. 기묘사화 이후, '소학적 삶'을 따랐던 살아남은 이들은 중앙과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유배되거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낙향한다.
낙향하거나 낙남을 선택한 후 향리에 은거한 이들은 향촌에서 『소학』의 가르침을 내면화 하고 강학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다.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同福에 유배되었던 최산두崔山斗(新齋, 1483-1536, 본관 光陽)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던 김인후나 유희춘柳希春(眉巖, 1513- 1577, 본관 善山)도 역설적이지만, 그러한 정치적 격변이 낳은 학술적 수혜자였다.이렇듯 출처를 중시했던 유교지식인들의 호남지역으로의 비자발적인 낙향이나 정치적 유배, 자발적 귀향에 의한 낙남현상은 향촌사회의 지적 역량과 결합하여 새로운 학풍을 낳는다.
"성인은 학문을 통해 기약할 수 있다"고 하는 "성가학聖可學"의 도학적 이상은 현실화 가능성한 『소학』의 가르침에 스며들어 호남의 학술판도를 일신한다. 이러한 학술적 흐름이 '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면서 공간적으로 호남의 '순천-능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주목되는 지점이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 5
제1부 감성유학의 공감장들
혼인과 사회적 관계망 : 16세기 호남유학의 공감장 / 18
불온한 공감 : 존재의 삶-정치 너머 / 57
여정과 소통 : 율곡의 감성정치학 / 87
제2부 감성적 주체
도래할 낙세 : 감성적 주체의 열망 / 122
마주한 파국 : 구한말 유교 지식인의 경계적 감성 / 158
제3부 감성적 근대성
한국유교 : 탈식민과 성찰 / 204
신자유주의시대 : 부끄러움의 윤리학 / 248
우리 시대의 사랑 : 경험, 서사, 의미화 / 281
제1부 감성유학의 공감장들
혼인과 사회적 관계망 : 16세기 호남유학의 공감장 / 18
불온한 공감 : 존재의 삶-정치 너머 / 57
여정과 소통 : 율곡의 감성정치학 / 87
제2부 감성적 주체
도래할 낙세 : 감성적 주체의 열망 / 122
마주한 파국 : 구한말 유교 지식인의 경계적 감성 / 158
제3부 감성적 근대성
한국유교 : 탈식민과 성찰 / 204
신자유주의시대 : 부끄러움의 윤리학 / 248
우리 시대의 사랑 : 경험, 서사, 의미화 / 281
저자
저자
김경호
강원도 고성의 검푸른 바다가 보이는 공현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하여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한국유학을 공부한 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인문한국 교수로 있으면서, 감성·마음·영성을 주제로 한국인의 감성체계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유학의 철학적 기반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감성의 유학』(2014), 『동양적 사유는 어떻게 탄생했는가』(2012), 『인격 성숙의 새로운 지평-율곡의 인간론』(2008)이 있고, 『우리시대의 슬픔』, 『우리시대의 분노』, 『우리시대의 사랑』, 『고봉과 현대의 대화』, 『감성의 세 층위』, 『한국유학사상대계』, 『조선유학의 개념들』,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등을 여러 사람과 함께 썼다.
현재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인문한국 교수로 있으면서, 감성·마음·영성을 주제로 한국인의 감성체계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유학의 철학적 기반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감성의 유학』(2014), 『동양적 사유는 어떻게 탄생했는가』(2012), 『인격 성숙의 새로운 지평-율곡의 인간론』(2008)이 있고, 『우리시대의 슬픔』, 『우리시대의 분노』, 『우리시대의 사랑』, 『고봉과 현대의 대화』, 『감성의 세 층위』, 『한국유학사상대계』, 『조선유학의 개념들』,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등을 여러 사람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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