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꿈 만들어진 화교
중국 화교정책 역사
Regular price
$16.85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오늘날의 중국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 책은 감히 밝히지 못한다. 다만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꿈에 의해 규정받고 동원되었던 화교의 삶이다. 특히 중국의 화교정책은 화교의 생존과 발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물론 중국의 화교정책은 과거의 그것에 비해서 크게 성숙되었고, 또한 노련해졌다.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 화교의 국적을 기준으로 정책대상을 분리하는 전략, 철저히 상호간의 이익을 중시하는 방향, 그리고 지극히 조심스러운 태도 등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화교정책 속에서 화교는 언제나 중국에 종속되어 있을 뿐, 독립되어 있지 못하다. 이 말인즉, 중국의 꿈에 따라 화교의 이용가치는 달라지며, 심지어 이 꿈에 따라 화교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이, 화교 또한 스스로가 주인인 삶을 영위한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이 책이 그려내는 화교의 삶이 화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님을 인정한다. 이 책의 주제는 화교 스스로의 삶이 아니라 중국의 화교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화교의 피동적 삶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화교정책 속에서 화교는 언제나 중국에 종속되어 있을 뿐, 독립되어 있지 못하다. 이 말인즉, 중국의 꿈에 따라 화교의 이용가치는 달라지며, 심지어 이 꿈에 따라 화교가 희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이, 화교 또한 스스로가 주인인 삶을 영위한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이 책이 그려내는 화교의 삶이 화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님을 인정한다. 이 책의 주제는 화교 스스로의 삶이 아니라 중국의 화교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화교의 피동적 삶이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책속으로 이어서]
이 기록은 가운데라는 의미로 시작된 中國이 춘추시대에 이르면서 아무런 근심 없이 평온함이 넘치는 유토피아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유토피아가 그러하듯이 中國 역시 그 반대의 개념인 디스토피아를 전제한다. 즉, 유토피아-中國은 언제나 오랑캐인 이적(夷狄)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이상을 드러낸다. 예의가 없는 이적은 어떤 경우에도 中國을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이며, 또한 中國에 대해 결코 능동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끊임없이 中國을 괴롭힌다. 그러하기에 中國 군자의 의무는 이적으로부터 中國을 수호해야 할 뿐 아니라 예의를 통해 이적을 교화시켜 中國에 참여케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중국의 역사는 중원지역과 그 주변을 둘러싼 역사공동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융합의 결과이다. 즉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는 중원지역의 초기 역사공동체였고, 춘추전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오대십국(五代十國) 등은 각 역사공동체사이의 융합과정이었으며, 한(漢)나라, 당(唐)나라, 청(淸)나라는 그 융합의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개되었던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에 관한 논쟁, 즉 유토피아-中國과 디스토피아-이적의 대결에 관한 논쟁에서 이 양자를 구분하는 척도는 예의라 하는 문화(혹은 신념)적 조건이었지, 특정종족이나 특정지역을 뜻하는 절대적 조건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전국시기 초(楚)나라는 스스로를 오랑캐인 만이(蠻夷)라 낮추었지만, 초나라가 보여준 예의로 인해 中國으로 인정받았고, 반대로 정(鄭)나라는 원래 中國에 속했지만 그 행위가 예의에 부합하지 않아 이적으로 내몰렸다.
민족융합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부터 예의를 기준으로 가해지던 中國에 대한 해석은 위진남북조시대와 송요금(宋遼金) 대치시대를 경과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위진남북조시대, 남과 북의 왕조는 각기 스스로를 中國이라 자부하면서 상대를 북방오랑캐, 섬 오랑캐 등으로 멸시하였는데, 이는 中國이라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정통을 둘러싼 쟁탈전이었다.
요나라에 이르면서 중국에 대한 해석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초 태생은 거란이라고 불리는 오랑캐이지만 이미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요나라는 예의가 있다면 어디든 中國일 수 있다면서 中國을 다원화시켰다. 요나라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경쟁 상대였던 송나라까지도 역시 中國이라 칭했다. 요나라의 경우와 같이 한족이 아닌 만주족 출신으로 중원을 통치한 청(淸)나라는 이 다원적 中國의 가치를 계승하였다. 청나라 옹정제(雍正帝)는 中國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과거 중국이 통일된 이래 그 강역은 넓지 않아, 그 가운데 중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는 이적으로 배척되었다. 그런데 요순삼대 이전 묘(苗), 형초(楚), 험윤은 현재의 후난(湖南), 후베이(湖北), 샨시(山西)지역인데, 오늘날 어찌 이적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청나라는 만주이며 역시 중국의 일원이다. 순(舜)임금은 동이(東夷)이고, 문황(文王)은 서이(西夷)이지만, 어찌 그 성스러운 덕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예의를 기준으로 한 中國인식은 중국 땅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과거 조선, 일본, 베트남 또한 中國을 자처하였다는 사실은 中國이 갖는 보편적이고 다원적인 의미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일본과 베트남의 각종 사료를 뒤져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ㆍ中國에 성(聖)이 있으면 곧 제후가 따른다.
ㆍ신라(新羅)가 中國을 모시지 않는다.
ㆍ中國을 편하게 하다.
ㆍ적들이 中國에 있어 민심이 불안하다.
ㆍ中國의 영웅호걸
흥미롭게도 위에서 언급된 모든 中國은 중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일본 혹은 베트남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다. 조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음의 기록이 있다.
우리 동방은 기자(箕子)가 오신 이후 교화가 크게 행해져 남자에게는 열사의 기풍이, 여자에게는 정절의 풍속이 만들어져 역사적으로 "작은 중화-소중화(小中華)"라 칭했다.
조선 초기, 조선은 스스로를 "작은 중화"라 낮추었지만, 만주족이 중원을 장악한 이후부터는 아예 스스로를 中國이며 중화(中華)라 선언하면서 오히려 중원왕조인 청나라를 멸시하였다. 중원이라는 공간에 中國을 계승한다던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일본, 베트남, 조선은 스스로를 中國이라 자부하고 있었고, 심지어 중원의 왕조를 오히려 "적(賊)"이나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것이다.
결국 고대 동아시아에서 이야기되던 中國은 예의만 있다면 어디에나 실현 될 수 있는 이상공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대 중원의 모든 왕조는 스스로 中國의 정통을 잇고, 中國을 실현한다고 했을 뿐, 中國이라는 국호를 붙이지 못했다.
예의를 아는 자가 어찌 감히 스스로를 군자라 칭하고, 스스로의 공간을 中國이라 높이겠는가!
이 기록은 가운데라는 의미로 시작된 中國이 춘추시대에 이르면서 아무런 근심 없이 평온함이 넘치는 유토피아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유토피아가 그러하듯이 中國 역시 그 반대의 개념인 디스토피아를 전제한다. 즉, 유토피아-中國은 언제나 오랑캐인 이적(夷狄)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이상을 드러낸다. 예의가 없는 이적은 어떤 경우에도 中國을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이며, 또한 中國에 대해 결코 능동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끊임없이 中國을 괴롭힌다. 그러하기에 中國 군자의 의무는 이적으로부터 中國을 수호해야 할 뿐 아니라 예의를 통해 이적을 교화시켜 中國에 참여케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중국의 역사는 중원지역과 그 주변을 둘러싼 역사공동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융합의 결과이다. 즉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는 중원지역의 초기 역사공동체였고, 춘추전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오대십국(五代十國) 등은 각 역사공동체사이의 융합과정이었으며, 한(漢)나라, 당(唐)나라, 청(淸)나라는 그 융합의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개되었던 화하(華夏)와 이적(夷狄)에 관한 논쟁, 즉 유토피아-中國과 디스토피아-이적의 대결에 관한 논쟁에서 이 양자를 구분하는 척도는 예의라 하는 문화(혹은 신념)적 조건이었지, 특정종족이나 특정지역을 뜻하는 절대적 조건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전국시기 초(楚)나라는 스스로를 오랑캐인 만이(蠻夷)라 낮추었지만, 초나라가 보여준 예의로 인해 中國으로 인정받았고, 반대로 정(鄭)나라는 원래 中國에 속했지만 그 행위가 예의에 부합하지 않아 이적으로 내몰렸다.
민족융합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부터 예의를 기준으로 가해지던 中國에 대한 해석은 위진남북조시대와 송요금(宋遼金) 대치시대를 경과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위진남북조시대, 남과 북의 왕조는 각기 스스로를 中國이라 자부하면서 상대를 북방오랑캐, 섬 오랑캐 등으로 멸시하였는데, 이는 中國이라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정통을 둘러싼 쟁탈전이었다.
요나라에 이르면서 중국에 대한 해석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초 태생은 거란이라고 불리는 오랑캐이지만 이미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요나라는 예의가 있다면 어디든 中國일 수 있다면서 中國을 다원화시켰다. 요나라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경쟁 상대였던 송나라까지도 역시 中國이라 칭했다. 요나라의 경우와 같이 한족이 아닌 만주족 출신으로 중원을 통치한 청(淸)나라는 이 다원적 中國의 가치를 계승하였다. 청나라 옹정제(雍正帝)는 中國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과거 중국이 통일된 이래 그 강역은 넓지 않아, 그 가운데 중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는 이적으로 배척되었다. 그런데 요순삼대 이전 묘(苗), 형초(楚), 험윤은 현재의 후난(湖南), 후베이(湖北), 샨시(山西)지역인데, 오늘날 어찌 이적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청나라는 만주이며 역시 중국의 일원이다. 순(舜)임금은 동이(東夷)이고, 문황(文王)은 서이(西夷)이지만, 어찌 그 성스러운 덕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예의를 기준으로 한 中國인식은 중국 땅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과거 조선, 일본, 베트남 또한 中國을 자처하였다는 사실은 中國이 갖는 보편적이고 다원적인 의미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일본과 베트남의 각종 사료를 뒤져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ㆍ中國에 성(聖)이 있으면 곧 제후가 따른다.
ㆍ신라(新羅)가 中國을 모시지 않는다.
ㆍ中國을 편하게 하다.
ㆍ적들이 中國에 있어 민심이 불안하다.
ㆍ中國의 영웅호걸
흥미롭게도 위에서 언급된 모든 中國은 중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일본 혹은 베트남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다. 조선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음의 기록이 있다.
우리 동방은 기자(箕子)가 오신 이후 교화가 크게 행해져 남자에게는 열사의 기풍이, 여자에게는 정절의 풍속이 만들어져 역사적으로 "작은 중화-소중화(小中華)"라 칭했다.
조선 초기, 조선은 스스로를 "작은 중화"라 낮추었지만, 만주족이 중원을 장악한 이후부터는 아예 스스로를 中國이며 중화(中華)라 선언하면서 오히려 중원왕조인 청나라를 멸시하였다. 중원이라는 공간에 中國을 계승한다던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일본, 베트남, 조선은 스스로를 中國이라 자부하고 있었고, 심지어 중원의 왕조를 오히려 "적(賊)"이나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것이다.
결국 고대 동아시아에서 이야기되던 中國은 예의만 있다면 어디에나 실현 될 수 있는 이상공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대 중원의 모든 왕조는 스스로 中國의 정통을 잇고, 中國을 실현한다고 했을 뿐, 中國이라는 국호를 붙이지 못했다.
예의를 아는 자가 어찌 감히 스스로를 군자라 칭하고, 스스로의 공간을 中國이라 높이겠는가!
목차
목차
일러두기 / 4
머리말 / 5
제1장 중국, 中國, China / 13
제2장 중국 해외 이민자의 여러 이름 / 35
제3장 만들어진 화교 / 69
제4장 통일전선을 위한 화교 / 91
제5장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화교 / 123
제6장 개혁개방을 위한 화교 / 149
제7장 화교경제의 특성과 화교네트워크 / 167
제8장 외교정책과 화교정책의 딜레마 / 183
제9장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 213
제10장 화교정책의 팽창과 조선족 / 237
부록
1. 대청국적조례 / 261
2. 이중국적문제에 관한 조약 / 265
3. 중화인민공화국 국적법 / 269
4.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 271
5.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실시 시행령 /274
인명색인 / 278
머리말 / 5
제1장 중국, 中國, China / 13
제2장 중국 해외 이민자의 여러 이름 / 35
제3장 만들어진 화교 / 69
제4장 통일전선을 위한 화교 / 91
제5장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화교 / 123
제6장 개혁개방을 위한 화교 / 149
제7장 화교경제의 특성과 화교네트워크 / 167
제8장 외교정책과 화교정책의 딜레마 / 183
제9장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 213
제10장 화교정책의 팽창과 조선족 / 237
부록
1. 대청국적조례 / 261
2. 이중국적문제에 관한 조약 / 265
3. 중화인민공화국 국적법 / 269
4.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 271
5. 귀교 교권 권익보호법 실시 시행령 /274
인명색인 / 278
저자
저자
최승현
전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이다.
北京大學 張注洪선생, 何芳川선생, 宋成有선생으로부터 중국현대역사, 아태지역역사, 동북아역사를 공부했다.
화교, 한중관계, 중국민족정책이 주요 관심사이다.
北京大學 張注洪선생, 何芳川선생, 宋成有선생으로부터 중국현대역사, 아태지역역사, 동북아역사를 공부했다.
화교, 한중관계, 중국민족정책이 주요 관심사이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