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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부흥의 아버지 로버트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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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알렉산더 하디 발자취 (Robert Alexander Hardie, 河鯉泳 1865-1949)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는 1865년 6월 11일 캐나다 온타리오 세네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토론토의과대학 1학년 때 학생자원운동 지도자 포어맨 목사의 강연을 듣고 해외선교를 지원하였으며 졸업반 때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토론토대학 선배 선교사 게일의 호소를 듣고 한국을 선교지로 택하였다.
토론토대학생선교회 파송을 받아 1890년 9월 내한하여 서울과 부산, 원산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다가 1898년 5월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로 소속을 옮긴 후 개성과 서울, 원산에서 사역하였고 190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선교사로서 능력의 한계를 느끼던 중 1903년 8월 선교사연합사경회를 인도하다가 ‘성령 세례’와 회심을 체험하고 원산 부흥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또한 1906년 8월 평양 선교사연합사경회를 인도함으로 1907년 1월 평양 부흥운동을 촉발시켰으며 이로써 하디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었다.
1907년 9월부터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가 되어 성서신학을 강의하였고 1913년부터 10년간 교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시기 피어선기념성경학원(현 평택대학교) 교수 및 교장을 역임하였고 1923년부터 조선예수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장과 〈기독신보〉 사장으로 문서, 언론사역에 종사하면서 60여 권의 저술과 2백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45년 선교사역을 마친 후 1935년 4월 은퇴, 귀국한 후 1949년 6월 30일 미국 랜싱에서 별세하였다. 의료 선교로 시작하여 복음전도와 교회 목회, 부흥운동, 신학교육, 문서선교, 기독교 농촌운동, 초교파 연합운동 분야에서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았던 개척시대 선교사였다.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는 1865년 6월 11일 캐나다 온타리오 세네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토론토의과대학 1학년 때 학생자원운동 지도자 포어맨 목사의 강연을 듣고 해외선교를 지원하였으며 졸업반 때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토론토대학 선배 선교사 게일의 호소를 듣고 한국을 선교지로 택하였다.
토론토대학생선교회 파송을 받아 1890년 9월 내한하여 서울과 부산, 원산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다가 1898년 5월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로 소속을 옮긴 후 개성과 서울, 원산에서 사역하였고 190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선교사로서 능력의 한계를 느끼던 중 1903년 8월 선교사연합사경회를 인도하다가 ‘성령 세례’와 회심을 체험하고 원산 부흥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또한 1906년 8월 평양 선교사연합사경회를 인도함으로 1907년 1월 평양 부흥운동을 촉발시켰으며 이로써 하디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아버지’란 칭호를 얻었다.
1907년 9월부터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가 되어 성서신학을 강의하였고 1913년부터 10년간 교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시기 피어선기념성경학원(현 평택대학교) 교수 및 교장을 역임하였고 1923년부터 조선예수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장과 〈기독신보〉 사장으로 문서, 언론사역에 종사하면서 60여 권의 저술과 2백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45년 선교사역을 마친 후 1935년 4월 은퇴, 귀국한 후 1949년 6월 30일 미국 랜싱에서 별세하였다. 의료 선교로 시작하여 복음전도와 교회 목회, 부흥운동, 신학교육, 문서선교, 기독교 농촌운동, 초교파 연합운동 분야에서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았던 개척시대 선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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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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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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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새로운 부흥의 불쏘시개, 로버트 하디 / 이철ㆍ03
하디, 다시 불어오는 성령체험의 메시지 / 이영훈ㆍ05
한국의 오순절-원산 성령강림의 주역 / 최이우ㆍ07
Ⅰ. 세네카에서 원산까지:독립 선교사로 내한(1865-1898)
1. "떠나라!" 16
조상과 고향교회
2.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되라!"ㆍ21
부모의 유언과 진로 결정
3. "땅 끝까지 이르러"ㆍ28
서울과 부산 선교
4. "부르심에 응하여"ㆍ35
원산 선교 개척과 초기 사역
Ⅱ. 원산에서 평양까지:남감리회 이적과 원산 부흥운동(1898-1907)
5.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ㆍ44
남감리회 선교사가 되는 과정
6. "어디든지 가오리다."ㆍ52
감리교 파송목회
7.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ㆍ59
선교와 목회 능력의 한계
8. "오직 말씀과 기도로"ㆍ66
하디와 원산 부흥운동 1: 진정한 감리교인
9. "회개의 마중물"ㆍ73
하디와 원산 부흥운동 2: 회개와 중생의 체험
10. "누룩처럼, 요원의 불꽃처럼"ㆍ80
하디와 원산 부흥운동 3: 김화와 서울, 개성 거쳐 인천까지
11.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ㆍ91
하디와 원산 부흥운동 4: 선교연합과 평양 부흥운동 촉발
1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ㆍ99
말씀과 전도 사역
Ⅲ. 산 위의 신학동네: 말씀 전도와 신학 교육(1907-1918)
13. "가르쳐 지키게 하라"ㆍ108
신학교 강의와 목회
14. "영성과 지성을 갖춘 전도자 양성"ㆍ116
협성신학교 설립의 주역
15. "대를 이은 사랑과 헌신"ㆍ124
2대 선교사로 내한한 하디의 두 딸
16. "연합하여 자라게 하시니"ㆍ132
종교교회, 석교교회 담임과 영신학교 설립
17. "사람 세우기"ㆍ138
목회자 양성과 지도력 육성
18. "네 지경이 넓혀지리라"ㆍ145
「신학세계」 창간과 신학연구
19. "부모에게 기쁜 소식"ㆍ153
두 딸, 에바와 베씨의 한국선교
Ⅵ. 영성과 지성의 조화: 협성신학교 교장 사역(1918-1923)
20. "불의 연단을 받은 신학교"ㆍ162
협성신학교 화재사건
21.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ㆍ170
협성신학교와 3ㆍ1운동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에게 편지하노니"ㆍ177
문서 강의와 설교
23. "감추인 것이 드러나리라"ㆍ183
귀국 보고와 일본의 죄상 폭로
24. "내 백성을 위로하라"ㆍ192
예언서 연구와 위로 메시지
25.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ㆍ201
협성신학교 교장 사역
26. "머물 때와 떠날 때"ㆍ209
협성신학교 교장 사임
Ⅴ. 제2의 고향에서: 문서선교와 농촌운동(1923-1930)
27. "진리의 말씀을 기록하라"ㆍ218
조선예수교서회와 「기독신보」 사역
28. "누가 이웃이 되겠는가"ㆍ226
일본 여행과 일본 선교
29. "나그네의 고향 생각"ㆍ233
성지 순례와 유럽 여행
30. "죽어가는 농촌을 살리자"ㆍ239
기독교 농촌운동
31. "기름 부어 세우라"ㆍ246
지도자 육성과 선교 이양
32. "40년 광야의 축복"ㆍ255
선교 40주년 기념식
33. "둘이 하나가 되리라"ㆍ263
남북 감리교 합동운동
34. "교파주의 장벽을 넘어"ㆍ273
초교파 연합과 일치운동
Ⅵ. 본향을 찾아서: 은퇴와 별세(1930-1949)
35. "마지막까지 시작처럼"ㆍ280
마무리 사역
36. "조선 땅에 묻히리라"ㆍ287
마지막 안식년 휴가
37. "희년에 떠나다"ㆍ295
은퇴와 귀국
38. "하나님의 사람"ㆍ301
별세, 그 이후
39. "한 책의 사람"ㆍ308
성경 읽기와 연구
40. "영의 사람"ㆍ314
영성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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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람 세우기"ㆍ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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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죽어가는 농촌을 살리자"ㆍ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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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와 귀국
38. "하나님의 사람"ㆍ301
별세, 그 이후
39. "한 책의 사람"ㆍ308
성경 읽기와 연구
40. "영의 사람"ㆍ314
영성과 기도
저자
저자
이덕주
李德周
감리교신학대학교 은퇴교수. 본사에서 펴낸 책으로 자전적 신앙에세이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외에 『한국 교회 이야기』, 『한국 영성 새로 보기』, 『신석구』, 『유관순』, 『손정도』,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 등 여러 책이 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은퇴교수. 본사에서 펴낸 책으로 자전적 신앙에세이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외에 『한국 교회 이야기』, 『한국 영성 새로 보기』, 『신석구』, 『유관순』, 『손정도』, 『영의 사람 로버트 하디』 등 여러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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