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그늘(문학세계현대시선집 199)
안차애 시집
안차애 시집 『치명적 그늘』.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세상의 길들 너머에 네가 있다’, ‘명왕성을 보내며’, ‘바닥을 보았다’, ‘눈물거름 농법’, ‘나는 다혈질이다’, ‘당신에 관한 보고서’, ‘심심 여여한 그 맛’, ‘왼편이 불안하다’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사냥감을 찾아서」로 당선하면서 활달한 상상력과 신선한 목소리로 시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안차애 시인은 잇달아 엮어낸 첫 시집 『불꽃나무 한그루』로시적 역량을 펼쳐 보였다. 신진시인답지 않게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눈매와 거리낌 없이 펼쳐지는 입담으로 영글어낸 상상력의 열매들이 너무나 탐스러워 시인의 진경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시단의 많은 시인, 비평가들의 기대를 받았다.
평론가 고명철은 "어떤 경계에 속박되지 않은 채 그 경계를 자유롭게 훌훌 넘나들어 창공에 떠 있는 독수리가 사냥감을 정확히 포착하듯… 영혼용 투명 광속기 운전면허증을 지닌 채 현대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현대를 '관통'하고, 생의 단면을 거침없이 횡단하고 싶어 한다"고 평가했다.
시인은 근년에 이르러 마침내 '길이 뻗어나간 기록이자 길의 내용이며 길의 깊이이자 넓이'를 담은 두 번째 시집 『치명적 그늘』을 출간하게 되었다. 고통받는 자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으로 무너져본 자만이 그 고통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희망의 전언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시집을 읽어 내려가며 마음에 휘감기는 시편들을 읽는 재미도 각별하지만 처연한 삶의 상처를 풀어내고 씻어내는 동병상련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박제천 시인은 "안차애 시인의 이번 시집을 아우르는 주제는 한마디로 말해 '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그 길이 뻗어나간 기록이자 길의 내용이다. 길의 깊이이자 넓이이다. 이 때문에 시인의 새 시집은 특별한 재미를 듬뿍 맛보게 만든다. 편편이 읽어나가는 입담이 가락에 맞추어 구성지게 마음에 휘감기는 재미도 각별하지만 입담마다 덩굴져 펼쳐진 처연한 삶의 상처를 신명나게 풀어내고 씻어내는 춤사위며 발림에 취하다가 한마당 씻김굿을 치룬 듯 가슴의 응어리가 뻥 뚫린다. 이런 신비 체험에 거듭 빠져들다 보면 시인의 공력이 이렇듯 대단한 것인가!"며 감탄하게 된다고 하였다.
1. 길의 노래, 아픔의 노래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6번지라고
내비게이션에 치고 토지문학관 가는 길
어눌한 속도로 길이 길을 짓는다
성긴 땀으로 길이 길을 낸다
한 굽이가 다른 굽이를 휘감아 돌고
한 모퉁이가 다른 모퉁이를 공글러가며 내는 길
산자락이 연옥색 바다를 안감으로 끌어넣거나
출렁 바다가 미륵산 그림자를
이중문양으로 수놓기도 하는 길
길들의 도련은 굽 돌 즈음에 늘 젖어 있다
어둡게 젖은 산굽이에선
멀미처럼 비린내가 피어오른다. 피 냄새 짙어질수록
까치독사빛 줄글이 꼿꼿이 고개를 들고
생의 배후에서부터 사설 긴 감침질을 시작한다
땀 진 발끝은 반드시 피 밴 다음 자국을 끌고 오고
촘촘한 눈물빛 여백으로 길 한 벌, 짓는다
몇 생을 오가며 지어낸 육필원고인지
박음질 자국마다 오랜 침향이다.
ㅡ「길 한 벌 짓다」 전문
시인이 길을 가는 것은 "세상의 길들 너머에 네가 있"기 때문인가. 시인의 말은 쉼 없이 이어진다. 동작으로 치면 연속동작이다. 태권도의 '품세'처럼 한치의 빈틈도 없이 펼쳐지는 연속동작이다. 안차애 시인의 시는 말로 이어지는 연속동작이다. 자연스럽게 새 말들이 이어져 나가면서 상상력의 장력을 풀었다가 감아쥐고, 감았다가는 다시 풀어준다. 연줄로 연을 부려 하늘로 마음껏 헤엄쳐가게 만드는 연놀이와 같다. 긴장을 놓지 않는다. 유수처럼 끝없이 이어지되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끼워 넣는 말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감칠맛 나게 말을 운용하면서 너스레 속에 마음을 놓다보면 어느새 휘감겨드는 말의 비의에 잠기게 된다.
2. '생의 진창'을 빠져나가는 길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킬로 순례 길은 버려야 사는 길이다
마음의 짐이든 몸의 짐이든 버려야
어깨 패이지 않고 발톱 빠지지 않고
눈물에 탈수되지 않고, 마침내 걸어내는 길이다
한 이틀 걷고는 소설책 한 권과 안내책자를 버렸다
또 며칠 걷고는
소주 팩과 고추장 튜브를 다 먹어치웠다
반도 못 가 물 로션과 샴푸를 버렸다
여자와 향내를 버리고 나니
휜 길의 한숨소리나 새벽별의 기침소리가 간간 들렸다
배낭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건
수건 두 개, 속옷 두 벌, 여벌 옷 한 벌과 침낭
물파스와 바셀린, 칫솔치약 세트였다 그리고
6포인트로 줄여 양면 출력한 시 한 묶음이 들어 있었다
냄새나고 구질구질한 시 300편,
내내 버리고 싶었지만 끝내 버리지 못했다
땀에 절고 햇살에 바래고 불면과 피로에 찌든 채
배낭 한 구석에 구겨져 징징거리고 있었다
생필품이었다
ㅡ「생필품」 전문
안차애 시인에게 '길'은 생필품이다. "냄새나고 구질구질한 시 300편"이 곧 시인의 길이다. 길의 내력이다.
시인은 말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버려야 사는 길"이라고. "마음의 짐이든 몸의 짐이든 버려야" 하기에 "여자와 향내"까지 버리니, "휜 길의 한숨소리나 새벽별의 기침소리가 간간 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시 300편"은 버리지 못했기에 "징징거리고 있었다" 한다. 그것이 곧 삶의 길을 걸으면서 간간이 들을 수 있었던 "휜 길의 한숨소리나 새벽별의 기침소리"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길, 시인의 길, 상처의 길, 깨우침의 길이 모든 길의 다른 이름, 다른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시인은 오로지 걸어야만 한다. 그것이 곧 시의 길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것이 곧 시인이 "한생의 진창"을 빠져나가는 길이다.
시집 속을 걷다보면 시인이 왜 산천에 길을 내었는지 어째서 마음으로 길을 지었는지 공감하게 된다. 함께 둘러보면 자연의 펼쳐짐을 완상하고 깊이를 들여다보며 공유하는 아름다움이 꿈결처럼 뒤따른다. 낯익은 것들은 그대로 반갑고 낯선 것들은 그대로 설렌다. 반가움과 설렘을 크게 들이마시면 맑은 산소를 마신 것처럼 머리가 개운해지고 시인이 들려주는 길 안내는 꽃이 피는 소리, 나뭇잎이 돋아나는 소리와 다르지 않게 된다. 그 소리들을 헤아리며 시집을 덮으면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어느새 제자리에 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노자의 상선약수, 장자의 좌망과 인뢰, 지뢰, 천뢰 역시 어느덧 길을 내고 물길을 터서 자연을 이루듯 시인이 낸 길이 시인 혼자 걸어간 길이 아니라 누구라도 걸어갈, 처음부터 있었던 길이 되어버린 한 권의 시집이다.
장석주 시인은 안채애 시인의 이번 시집을 통독하고 다음처럼 말한다.
"안차애 시의 어조는 거침없이 활달하고, 관심 품목은 길다랗다. 시인의 눈길이 식물계에서 우주계까지, 불교 경전들에서 뇌과학까지 안 미치는 데가 없다. 그토록 오지랖이 넓으니, 시는 그야말로 "잡화만발(雜花滿發)"이다. 그 활활발발(活活潑潑)한 오지랖의 폭은 곧 삶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넓이로서만 곡진하고 의연하다. 안차애의 시적 상상력은 팽창과 수축 운동을 하며 밀고 나간 끝에 마침내 실핏줄처럼 뻗는 세상의 길들을 꿰고 아우르는 장관을 보여준다. 길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빛나는데, 이 장관에 감탄하며 시인이 길의 탐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이 세상의 길들을 탐문한 뒤 건네는 시적 전언(傳言)에 따르면, 한 생이란 "길 한 벌 짓는 일"이고, 생이란 저마다 피로 쓰는 "육필원고"가 아닌가! 그의 시들에서 생의 감침질 흔적을 찾고, 박음질 자국마다 고투(苦鬪)로 짙게 밴 침향을 음미하는 즐거움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목차
목차
분기점 / 난폭한 잠 / 세상의 길들 너머로 네가 있다 / 존재는 길쪽으로 쏠려 있다 / 길 한벌 짓다 /
나는 진화의 산물이다 /생필품 / 두한족열 / 명왕성을 보내며 / 그리운 몇 컷 / 누들 로드 / 비빌 언덕, 구 /
마녀사냥을 반성함 / 천수 천안 스마트폰 / 연 / 그리움 한채 복원하다 / 압화 / 저어서 간다 / 바비의 스토리텔링
2
총량 불변의 법칙 / 독광합성 / 주정뱅이 꽃 / 식물들의 해례본 / 붉은 연주 / 전쟁과 평화 / 바닥을 았다 /라우마 / 초록간호사 /
상처는 힘이 쎄다 / 치명적그늘 / 기억의 지층 / 눈물거름 농법 / 난 보라색이 좋다 / 촘촘한 향기 / 족두리꽃 화관
3
클라우드 요 법 / 악처론 / 꾹꾹,, 쑥쑥, 염송 / 고봉밥 / 나는 다혈질이다 / 카푸치노심리학 / 잡화엄경 / 따뜻한무덤 / 금강고스톱 /
즐거운 나라미용실 / 학이습지면 / 어머니는 아직도 생산중이시다 / 반쪽의 힘, 반쪽의 슬픔 / 그늘을 키운다 / 당신에 관한 보고서 /
동병사련 / 가계도 / 나는 귀족의 족보를 가졌다 /
가계도
4
감렬하다 / 심심 여여 한 그맛 / 사경 / 오방색 / 비는 지금 묵음기도 중 / 환한슬픔의 숲 / 바디블루스 / 문학 구급상자 /
원편이 불편다하다 / 콩, 날아오르다 / 끈 이야기 / 씨 앗줌 심어 보실래요 ? / 소셜거머스 공공구매
작품해설 / 박제천 시인)
상선약수와 선찬라지만상에 길을 내고
저자
저자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