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드라마(문학 세계 현대 시인집 203)
이혜자 시집
시집 『나의 드라마』에 실린 시편들은, 세계와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바탕으로 병마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빚어진 어둠과 슬픔, 절망과 좌절의 기록이며 그 너머의 꿈에 불을 지피며 길어 올린 애틋한 언어의 결정체이다. 그의 투병 시편에는 상실감과 박탈감과 함께 그 아픔 때문에 절망감에 빠져 헤매거나 자괴감으로 몸부림친 궤적들이 두드러져 있다. 하지만 시인은 다시 그 아픔과 비극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온전한 생명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돋우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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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9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혜자 시인은 피가 생성되지 않는 희귀병과 투병중이다. 시집 『나의 드라마』에 실린 시편들은, 세계와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바탕으로 병마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빚어진 어둠과 슬픔, 절망과 좌절의 기록이며 그 너머의 꿈에 불을 지피며 길어 올린 애틋한 언어의 결정체이다. 그의 투병 시편에는 상실감과 박탈감과 함께 그 아픔 때문에 절망감에 빠져 헤매거나 자괴감으로 몸부림친 궤적들이 두드러져 있다. 하지만 시인은 다시 그 아픔과 비극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온전한 생명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돋우어 낸다.
우리의 삶은 밝음보다 어둠에, 기쁨보다 슬픔에, 희망보다는 절망에 무게가 실리게 마련이다. 극단적으로는 절망하고 좌절하면서도 그 반대편으로 나아가려는 꿈을 꾸기 때문에 더 나은 삶에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그런 삶을 지향하는 만큼의 꿈에 불이 지펴지기도 한다. 시 쓰기는 바로 그런 꿈을 향한 불 지피기이며, 진실을 향한 마음 열어 보이기에 다름 아니다.
2. 그렇고 그런, 드라마 같은 절망과 희망 사이
시인의 내면은 어둡고 처절하다. 자신은 물론 자신의 허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마찬가지 빛깔을 띠고 있다. 오랜 투병 생활 때문이겠지만, 죽음을 가까이 끌어들여 응시하는가 하면, 극단적으로 죽음 이후의 장면까지 처연하게 떠올려 보인다.
나와 묻힐 나의 그림자
나의 음지, 나의 그늘
마지막까지 내 곁에서 침묵할
우스꽝스러운!
밟혀도 꿈쩍도 않는 척
언제나 무지 아플 너로 인하여
나는 통곡한다
그림자, 나의 상복
?「그림자」 부분
시인은 자신의 지금, 여기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주인공이 뛰쳐 나간/ 그렇고 그런 드라마"(「나의 드라마」)라고 처연한 어조로 토로한다. 걱정이 늘어나 쌓이고 행복은 자꾸만 소멸하고 있으며, 한때 '꽃이 만발'했던 시절의 삶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비애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온전치 못한 삶에 대한 이 지독한 절망감은 그 반대 방향의 날들에 대한 치열한 열망의 역설로 읽히게 하며, 처연한 반어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한때 나의 생 또한 꽃이 만발하였다
그리고 단풍이 들었고
후두둑 졌고
바삭바삭 부서지고
마침내 주인공이 뛰쳐 나간
그렇고 그런 드라마가 되었다
?「나의 드라마」 부분
3. 병상 일기, 자괴감 너머의 희망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과 그 초월이나 초극에의 꿈은 인고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절박하기도 이를 데 없다. 혈소판이 급격히 떨어져 큰 병원으로 옮겨진 화자는 "인턴 그녀의 말처럼 시한부란 이름으로/ 길 위에서 휙 날아가 버릴지"(「난파선을 타고」)도 모를 위기감 속에 놓이게 된다. 그 위기감 속에서 "종일토록 해야 할 일들이란/ 침상에서 약 삼키는 일/ 그리고 혈색소 수혈, 혈소판 수혈, 채혈/ 몸 여기저기에 바늘 꽂는 일"(「삼키다」)이며, 그런 불안과 초조로 담당 의사의 말에 신경의 올을 죄다 곤두세우는 일일 따름이다.
김나리 선생은 어떤 말을 물고 올까
혈소판 수치가 더 떨어졌다고
당장 수혈을 해야 한다고 할까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할까
스테로이드로 퉁퉁 부은 나의 얼굴은
그녀에게 당연한 모습으로 보일까
― 「김나리 선생은 어떤 말을 물고 올까」 부분
병상 일기의 한 토막 같은 이 시는 화자가 놓인 상황을 가감 없이 처절하게 보여 준다. '뙤약볕에 꽃도 쓰러지'고 말 것 같은 절박한 순간들을 숨막힐 지경으로 떠올리는 이 불안과 초조는 '내가 봐야 할 얼굴은 말라 가고'라는 대목에 이르면 더욱 안쓰럽고 눈물겹게 만든다.
투병 때문에 갈등하는 심경을 진솔하게 드러낸 시 「책읽기」는 그 극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행위가 '미친 짓'이라고까지 비하되는 이 시에서 화자는 너무나 많은 세상의 함정 때문에 소멸의 위기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절박함을 비켜서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날마다 파도처럼 책장을 넘겨도 기록된 해법 한 줄 없는데" 자꾸만 그 책을 읽게 되며, 그 행위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꼬인 삶의 실마리를 찾아 밤새 뒹굴뒹굴, 책을 안고. 동행 없는 길, 죽은 자의 책을 덮고 나름 잘 그린 그림을 펼치지만 내 생은 졸작"이라는 자괴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자괴감 너머의 희망을 집요하게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투병의 나날이 "펼쳐졌다 접히는 파라솔 같은/ 차려졌다 치워지는 밥상 같은 하루"(「하루들」)의 연속이고, "물 위에 빚은 물수제비처럼 가끔 진동할 뿐인/ 생은 취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지겨움/ 가시지 않는 갈증"(같은 시)이 되고 마는 '시지포스의 바위 굴리기'와 같다고 하더라도, 그 한가운데서 끈질기게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다. 심지어,
편지처럼구겨진얼굴로아픔을굴리고있다
지금은생각을파먹는벌레가되어
추억을갉아먹고있다
― 「그리움」 부분
거나, 빨갛게 영글어가는 사과의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를 떠올리면서는,
그 사과의 살 속에서 살고 싶다
징그럽도록 맑아지는 머릿속을 떠나
차라리 꿈틀꿈틀 벌레이고 싶다
― 「나는 희망한다」 부분
는 심경에 이르게 될 지경으로 '희망에의 끈'은 집요하다.
4. '꼭 살아줘야 해 사랑해 줄 수 있게'
투병 과정에는 가족이나 타인들과의 관계도 그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 더욱 돈독해질 수 있고 아주 멀어져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역시 남편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크게 달라진 것으로 그려져 있다. 어떤 절대자에게도 무릎 꿇지 않던 남편이 의사 앞에 무릎 꿇고 화자에게 "폭풍 속에서 벼락을 피해 가던 밤"(「성윤경 교수와 나의 남편」)을 만들어 준다. 게다가 평소 네 살이 적은 화자보다 네 배나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던 남편이지 않았던가.
이와는 달리 모녀나 자매 사이의 관계는 감정과 감성이 가장 앞서며, 혈육의 정이 진하게 배어나게 마련이다. "엄마는/ 국 가득, 밥 가득, 반찬 가득가득/ 그렇게 그릇그릇 담아두고/ 일터로"(「엄마」) 가면서도 "병든 딸을 가슴에 넣고"(같은 시) 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그 어머니를 향해서 딸은 "당신의 인생을 너무 많이 오랫동안 망쳐버렸군요, 당신을 위해 힘을 내야죠, 나의 엄마, 당신처럼"(「나의 엄마」)이라는 독백을 낳게 한다. 자매간에는 더욱 애틋한 풍경들이 연출된다.
꼭 살아 줘야 해 사랑해 줄 수 있게
사랑해 용서해 미안해 고마워
내 동생의 주문을 따라
가슴에 손을 얹고
사랑해 용서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용서해 미안해 고마워
밤새
― 「동생의 만트라」 부분
죽음의 책장은 늘
뻔한 스토리를 가진
삶의 또 다른 얼굴로
일요일처럼 펼쳐져 있다
― 「죽음은」 부분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죽음을 끌어당겨 바라보지만, 죽음이 한 이불을 덮고 바짝 붙어 누운 존재로, 삶의 또 다른 얼굴로 한가하게 느껴지는 대상이 되는 정황에까지 이른다. 투병과 온전한 생명력의 회복에 마음자리가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화자에게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목차
목차
나의 드라마 _______ 10
책 읽기 _______ 11
하루들 _______ 12
맑은 날 _______ 13
나는 희망한다 _______ 14
그리움 _______ 16
산불 조심 _______ 17
그를 보내고 _______ 18
내장을 도둑맞다 _______ 19
동동주 _______ 20
까치의 독백 _______ 21
벚꽃 사이로 _______ 22
부채질을 하고 싶다 _______ 23
바람이 등을 밀어 _______ 24
도토리묵 _______ 25
그림자 _______ 26
나는 발효 중 _______ 28
2
나의 계보 _______ 30
집으로 _______ 31
달달한 생 _______ 32
그 하나님께서 _______ 33
눈 _______ 34
기다리기 _______ 35
가족 _______ 36
완벽한 하루 _______ 37
내가 아는 그, 택배 아저씨 _______ 38
장보기 _______ 39
시립도서관 _______ 40
새것처럼 살다 _______ 42
분수처럼 _______ 43
유통 기한 _______ 44
부실한 공상 _______ 45
자꾸 눈길을 끄는 그녀 _______ 46
사는 거 _______ 47
가끔 35분간 기차를 탄다 _______ 48
3
몰랐습니다 _______ 50
김나리 선생은 어떤 말을 물고 올까 _______ 51
둥글게 산다 _______ 52
한 번도 절망하지 않았다 _______ 53
난파선을 타고 _______ 54
이천십삼년 팔월 십이일은 _______ 55
성윤경 교수와 나의 남편 _______ 56
아는 여자 _______ 57
동생의 만트라 _______ 58
내 손에 늦은 단풍 들었네 _______ 59
행복한 상상 _______ 60
삼키다 _______ 61
엄마 _______ 62
나의 엄마 _______ 63
죽음은 _______ 64
변하다 _______ 65
동네 세 바퀴 돌 동안 _______ 66
4
아이들 머리맡에서 _______ 68
옛집 _______ 69
살아남기 _______ 70
네가 좋다 _______ 71
복사기 앞에서 1 _______ 72
복사기 앞에서 2 _______ 73
마치 바위처럼 _______ 74
천국은 없다 _______ 75
개봉박두 _______ 76
여기에 _______ 78
종일 말리다 _______ 80
흔들리는 것들 _______ 81
주스 한 잔 _______ 82
아침에 _______ 84
생각하면 _______ 85
그녀는 _______ 86
너에게 기쁨이라면 _______ 88
시 읽기
아픔 너머의 꿈에 불 지피기 이태수 시인 _______ 89
저자
저자
1971년 경북 칠곡 출생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열림》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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