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신은 물고기(문학세계 현대시인집 205)
양수덕 시집
2009년도 신춘문예로 등단한 양수덕 시인의 첫 번째 시집『신발 신은 물고기』. 이 시집은 정당하고 순수한 개인의 노력이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왜곡될 때 분열되어 나타나는 일상의 가치들을 이야기 한다. 그러한 삶의 공간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합당한 결실이 마련되지 않는다. 소박한 일상조차도 비루와 왜소함으로 허덕이게 만드는 외부의 영향은 현대인들의 내면을 고갈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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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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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이데올로기라는 세계의 일방성에서
자아의 꿈을 지키는 상상의 발아發芽
『신발 신은 물고기』
이 세계가 작동하는 은밀한 방식은 왜곡이다. 그렇기에 진실과 다르게 현존하는 제반의 가치들이 개인의 의식을 억압할 때 삶의 질적인 변화를 갈구하는 목소리는 거칠고 절박해질 수밖에 없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긍정의 물리력은 개인들의 의지와 꿈을 점점 왜소화시킨다. 불행의 원인은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불신하는, '너'의 문제라는 것이 긍정의 이데올로기가 강조하는 핵심이다.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양수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신발 신은 물고기』는 정당하고 순수한 개인의 노력이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왜곡될 때 분열되어 나타나는 일상의 가치들을 이야기 한다. 그러한 삶의 공간에서는 개인의 노력에 합당한 결실이 마련되지 않는다. 소박한 일상조차도 비루와 왜소함으로 허덕이게 만드는 외부의 영향은 현대인들의 내면을 고갈시킬 뿐이다.
1. 긍정의 신화로 위장된 세계와의 싸움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다시再'는 개인을 길들이는, 즉 제도와 법규에 맞게 개인을 규격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인 '명령어'로 작동한다. 다양한 개인들의 삶을 평준화해서 자각이라는 고유의 권리를 망각한 한 무리의 '군중'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현실의 추동력이라는 것을 양수덕은 생활의 경험으로 간파하고 있다.
재생 재도전 재출발 재탕…… 재 자字의 말벗들이 도란
거린다 쑥스럽고 뻔뻔해야 하고 미안하고 아뜩한 옴 붙은
것들 옴 떼려 몸부림치는 것들
너를 읽을 수 있다 나 또한 비 온 뒤 눈치 없이 자라나는
재 자字의 균사체
시대는 바뀌어도 실패는 늘 복고풍으로 온다 날림은 무
릎을 헐고 기면서 온다 올지라도 푸른 목발처럼 일어나라
는 속의 말
― 「코믹 드라마」 부분
누군가 나에게 '다시再'를 강요했을 때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곧추세워 가는 의지와 성찰의 건강한 발현으로서의 '다시'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성공을 염원하는 개인들의 욕망에 대해 그리고 그 욕망의 실패에 대해 이 사회는 근원적인 처방보다는 '다시'라는 기계적인 명령어를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그러한 과정은 개인들의 삶을 비루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쑥스럽고 뻔뻔해야 하고 미안"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가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해 시인은 '코믹 드라마'라는 표현을 통해 냉소한다. "재생 재도전 재출발 재탕…… 재 자字의 말벗들이 도란"거리는 현실의 우스꽝스러운 소란을 직시하면서도 "나 또한 비 온 뒤 눈치 없이 자라나는 재 자字의 균사체"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며 '다시'라는 명령어가 전파하는 질곡의 감염력이 얼마나 무차별적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을 자각하고 그에 맞서 "푸른 목발처럼 일어나라는 속의 말"을 되뇌며 긍정의 신화로 위장된 세계와 응전하고자 한다.
'빛'의 이미지는 밝고 선함, 신성함, 영광 등의 의미를 함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양수덕에게 '빛'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불현듯 '나'의 공간을 치고 들어오는 불온한 파장이며, '부스러기'만 떨어뜨리는 허망한 실체인 것이다.
반짝이는 것들이 치고 들어온다
누군가 제 길 끌고 왔다가 빠르게 사라지자
잠시 밀실까지 환해지는 흉내를 내본다
긍정의 떨림으로 몸살 나는 빛은
부스러기들만 떨어뜨렸다
구석기 시대의 잠 속에서
가지고 놀던 볍씨 몇 알
마늘 먹고 천일을 들뜬 웅녀의 기억은 이제 눈곱 낀 화첩
이제 새벽으로 갈아타지 않겠다
먹구름을 닦으리라는 아침에 휘말리지 않겠다
퍼내도 퍼내도 끝없이 푸른 하늘이 딸려 나오는
빛의 서식지
그 득시글한 세상의 소란에 헛배 부른 채
잠과 깬 잠 사이에서
천년의 굴절로
나는 모호하다
세상은 나를 통과하나 나는 한 번도 통과하지 않았다
― 「동굴 시대」 전문
'긍정의 떨림'으로 소란스러운 세계는 시인에게 '헛배'처럼 부풀어 오른 과장과 과잉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볍씨 몇 알'과 '마늘'로 인간이 되고자 희망했던 '웅녀'의 신화는 이제 없다는 인식에 도달했을 때 시인은 "천년의 굴절로/ 나는 모호하다"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현실과 이상 그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해 '나는 모호하다'라고 진단했을 때 그 이면에는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지난한 시간이 퇴적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희망과 긍정과 소통이라는 소란스런 단어들이 생활의 주변에 난무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나'를 발아시키는 씨앗이 되지 못한다는 경험적 자각은 "세상은 나를 통과하나 나는 한 번도 통과하지 않았다"는 박탈剝脫과 고립의 감정으로 심화된다.
2. 빙장氷葬의 상징을 통해 삶의 소중한 무늬를 발아發芽하다.
세계의 일방성은 개인의 고유함과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폭력성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일방성이 야기하는 고립감은 '부러진 날개'와 '부러진 발목'(「눈집」), '상한 뿌리'(「치석」), '먼지의 뿌리인 날개'(「먼지의 뿌리인 날개」) 등 불구적 이미지로 외화되어 이 시집 전체에 포석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미지들이 연민의 감정을 유발하지 않고 실존의 긴장성으로 읽히는 이유는 "늙은 아이가 빈 백지로 복사되었던 십 년/ 나도 성장을 멈추었다"(「인형의 방」),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자 세계에도 속해 있지 않다"(「압화」)와 같은 강력한 진술들이 곳곳에서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술은 관념의 소산이 아니라 침묵과 고립으로 응어리진 시간을 견뎌온 시인의 내밀한 상처와 경험이 빚어낸 삶의 소중한 무늬라 할 수 있다. 그 시간들이란 "누구도 내 속 빛으로 물들어 준 적 없는, 껍질 안쪽에 웅크린 나는 검은 분위기 이 봐 이 봐 그가 속삭였다 모기 소리라도 끄집어내려 했으나 나는 발아하지 못한 씨"(「골콘다」)의 응축된 시간을 뜻하며 "딱딱한 껍질 안에서 뺨 붉히며 밖을 살피는 밤"(「굴러가는 것들」)과 같은 모색의 시간을 뜻한다.
긍정을 강요하는 이 시대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직시하면서, "내세울 게 너무 많은 부류들이 세상을 쥐락펴락"(「바람의 이력서」)하는 것과 맞서고자 했던 결연한 정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을 시인은 빙장氷葬의 상징을 통해 드러낸다.
향기가 절박하다
불씨란 불씨 다 삼킨다 해도
피 돌지 않는 고깃덩어리가
단단하고 차가운 요람으로 돌아간다
낡은 구조물을 비추는 얼음수의
피는 더 이상 달리지 않고
낮달처럼 숨어든 그늘과 바람이 끼적이다 만 비망록은
관 속의 행진
무정란을 까던 입을 잠근다
얼음의 숨결을 뿜으며 나를 망치질한다
감각이 죽고 나서야 누운 곳이 얼음 잔디 같아서
물오르는 몸, 나뭇가지 뻗고 잎사귀 돋느라 소동이더니 한순간에 진다
되돌아 불러 보는 몸의 봄
죽어서도 제게 속는 고깃덩어리
나는 죽어서까지 냄새 피우는 동물이 아니다
몸을 태우는 연기는 지상에서 가장 무거운 배설물
몸의 여섯 구멍으로 도랑물 흘리지 않겠다
독수리도 식상한 뼈는 안 먹지
묻힐 땅뙈기 축내지 않고
질깃한 목숨을 고민 없이 노래하는 나무 곁에는 묻히지 않으리
믿을 수 있는 얼음장, 고독한 악기, 용장의 선택이 나였다고 말하마
뜨겁게 크게 죽을 일만 남았다
얼음 감옥에 장기 복역수란 없다
한 옴큼 가루가 될 고깃덩어리
얼음이 마시는 푸른 달빛 한 컵
그 향기 날리며 불멸의 악기를 켤 순도 99.9%
― 「빙장氷葬」 전문
차고 단단한 '얼음'은 생명의 정지를 의미하는 원형적 이미지이다. 이 시의 화자는 이러한 죽음의 숨결을 두려워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는 결연하게 "뜨겁게 크게 죽을 일만 남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얼음 감옥에 장기 복역수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생의 지리멸렬을 단번에 뛰어넘어 고결한 자아의 상태로 치솟을 수 있는 정신의 가능성! 모든 오염과 훼손을 건너뛰어 '순도 99.9%'의 악기로 탄생하는 이 도약의 순간을 시인은 꿈꾼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단단하고 차가운 요람"은 정화와 재생이 함께 이루어지는 '시 쓰기'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거듭해서 세속화된 자아를 쇄신하기 위해 스스로의 욕망을 동결시킨다. 동결의 고통을 받아들일 때 그는 새로운 자아로 재생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직 세상에 없는 '고독한 악기'라 할 수 있다. 그 악기는 깊고 고통스럽게 울리며 자기 쇄신의 길을 닦을 것이다. "할 말이 빽빽하게 지워지고 있는 백지 위 마른 목, 백 년의 동토, 그 미개척지"(「골콘다」)에 앞으로 무엇이 새롭게 탄생할지 기대하게 된다.
목차
목차
낮잠/ 눈집/ 물뱀들/ 어느 좀도둑/ 소금 인형/ 치석
거미는 다리가 길다/ 그 자리/ 바람난 잎/ 동굴 시대
굴러가는 것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일 듯이,/ 인형의 방
가족/ 코믹 드라마/ 폭탄머리/ 불량한 시청자/ 뻐꾸기 기르기
붉은 메시지/ 물 건너간 소식/ ?피쉬/ 바람의 이력서
2
이색 광고가 때로 유혹해요/ 옥수수 편지/ 물고기 나무
온코 워킹/ 잊은 뼈/ 인동덩굴/ 붉은 귀/ 멍든 나비, 스킨십
상표는 볼 만해서,/ 구름 약국에 가 보았지/ 해저 동굴에 들다
요리사/ 유리한 배경/ 이 멜로드라마는 지칠 줄 모르나
고래가 독서한다/ 밤의 주문/ 행방/ 붓질하는 남자/ 마을버스
3
슈퍼 애인/ 집의 조건/ 물영아리/ 하얀 그늘/ 압화/ 연금술사
익숙한 계산/ 사이보그들/ 지친 갈색의 정물
4
저녁의 구도/ 별빛/ 씨 뿌리는 농부/ 나무 산책
바오밥 나무를 머리에 인 세상의 테오들에게
고흐를 만나다/ 노란 집/ 빙장/ 골콘다
□ 해설
빙장 속에서 발아하기ㅣ엄경희(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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