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자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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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과연 자신의 시대와 역사를 책임질 만한 '소명의 정치가'였는가,
아니면 권력욕에 사로잡힌 '권력정치의 화신'이었는가.
그동안 김구는 진정한 민족주의자, 민족통일의 상징, 겨레의 큰 스승으로 거족적인 존숭을 받으며 불가침의 신성을 간직한 역사인(歷史人)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그는 과연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할 만한 정치적 자질과 윤리를 갖춘 인물이었는가. 자신의 신념이 초래할 결과를 감당할 만한 정치적 이성과 인격을 갖춘 지도자였는가. 그의 남북협상은 과연 민족통일의 대의를 실천한 고뇌에 찬 결단이자 위대한 발걸음이었는가. 이 연구는 막스 베버의 '소명의 정치론'을 이론틀로 삼아 김구의 남북협상을 재구성·재평가한다. 이른바 '베버 프레임'은 '통일의 화신 김구' 신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그의 정치적 선택과 행위를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논의틀을 제공한다.
아니면 권력욕에 사로잡힌 '권력정치의 화신'이었는가.
그동안 김구는 진정한 민족주의자, 민족통일의 상징, 겨레의 큰 스승으로 거족적인 존숭을 받으며 불가침의 신성을 간직한 역사인(歷史人)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그는 과연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할 만한 정치적 자질과 윤리를 갖춘 인물이었는가. 자신의 신념이 초래할 결과를 감당할 만한 정치적 이성과 인격을 갖춘 지도자였는가. 그의 남북협상은 과연 민족통일의 대의를 실천한 고뇌에 찬 결단이자 위대한 발걸음이었는가. 이 연구는 막스 베버의 '소명의 정치론'을 이론틀로 삼아 김구의 남북협상을 재구성·재평가한다. 이른바 '베버 프레임'은 '통일의 화신 김구' 신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그의 정치적 선택과 행위를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논의틀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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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해체돼야 할 '민족통일의 화신 김구 신화'
'테러리스트 김구'를 정조준한 학자, 이번엔 '반역자 김구'로 돌아오다
강렬한 민족주의자와 국가 반역자,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
2026년은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을 맞는 해다. 유네스코(UNESCO)는 겨레의 큰 스승이자 독립운동가인 그의 업적을 기리며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15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Kim Koo)'로 공식 지정했다. 유네스코는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이후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높은 문화의 힘'을 통해 인류 전체에 행복을 주는 '문화국가'를 꿈꾸었다"며 "'평화의 방벽을 인간의 마음속에 세워야 한다'는 유네스코 헌장 정신은 인류 불행 원인을 '인의(仁義)와 자비, 사랑 부족'으로 보고 문화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의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번 기념해 지정은 그의 선구적인 평화 사상과 문화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국제사회가 공인한 결과"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김구라는 상징을 반복 호출해온 기억의 공간이다. 사후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김구는 여전히 한국인을 훈육하는 '민족의 스승'으로 군림하고 있다. 해마다 그의 혼백은 민족의 정령으로 소환되며, 정치적 판단보다 감정의 언어로 해석돼 불가침의 신성으로 재현된다.
1948년 4월 남북협상 참여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정부는 안 된다"는 선언은 김구를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보다 더 높은 도덕적 상징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김구는 이성보다 감정으로 민족주의를 실천한 민족의 거성, 평화와 통일의 십자가를 짊어진 민족의 메시아로 신격화되었다.
그러나 김구 신화에는 '붉은 균열'이 존재한다. 대·한·민·국·반·역·자.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김구 암살자로 두고두고 비난받는 안두희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안두희는 김구와 그 주변을 공산당과 협력하는 세력으로 인식했고, "나에 대한 반동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이라는 발언을 통해 김구를 '대한민국 반동'으로 확신했으며, "영감과 나라를 바꾸자"는 심정으로 그 판단을 행동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2024년 『테러리스트 김구』를 통해 시대의 금기를 건드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저자 정안기가 2년 만에 『반역자 김구』를 통해 '국민 영웅'으로 비춰지고 있는 백범 김구에 대한 또 하나의 탈신화화에 도전한다. 2년 전 '테러리스트와 국부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강렬한 민족주의자와 대한민국 반역자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나선다.
저자는 특히 김구의 귀국 이후 이루어진 '남북협상'을 단일 사건이 아니라 그 전후의 정치적 맥락에서 재구성하고, 막스 베버의 '소명의 정치론'을 적용해 그의 정치적 자질과 윤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 책은 남북협상 자체뿐 아니라 전사(前史)와 후사(後史)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결론을 내린다.
그동안 김구의 행보는 통일 지향으로도, 대한민국 건국 부정으로도 해석되어왔지만 두 관점을 통합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드물었고, 감정에 치우친 접근은 평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 그의 정치적 선택과 역사적 귀결을 '도덕과 신화의 언어'에서 '역사와 정치의 영역'으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남북협상에 나선 '정치가로서의 김구'에 대한 평가 기준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설파한 '소명으로서의 정치'다. 베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소명으로서의 정치가에 대한 자질로 열정(Passion)과 책임감(Responsibility), 균형감각(Proportion)을 제시한 바 있다. 요컨대 정치가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이성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 베버의 통찰이다. 그에게 정치가는 선의를 좇는 도덕가가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결과를 빚어내는 장인이었다. 그가 말한 '소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따라 현실의 악마와 맞서는 정신적 부름(Spiritual calling)'이었고, 정치는 신념과 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었다.
이 책은 김구의 남북협상을 이념적 찬양이나 일방적 비판에 머물렀던 기존의 감성적·이념적 서사 대신, '베버 프레임'으로 다층적·복합적·가치중립적 관점에서 실증 분석한다. 이는 정치적 선택의 윤리성과 현실성 사이에서 동태적 균형을 모색하는 정치가의 자기 성찰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현대적 시사점을 지닌다.
혼돈으로 가득했지만 진공 상태였던 해방 공간에서, 미국은 동유럽의 사례를 교훈 삼아 신탁통치를 통해 한국인들의 근본적 자유를 보장하고 통일독립과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는 동시에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김구의 반공·반탁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협상 공간을 제약하고 교섭력 약화를 초래했다.
김구의 반공·반탁은 미국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가장 뼈아픈 비수'였고, 미·소공위라는 '자주독립의 사다리'를 걷어찬 '기회주의적 정치가'의 표본이었다. 김구의 반공·반탁운동은 해방 직후 임시정부가 유일한 정권 수임 기관이 돼야 한다는 임정봉대 노선과 결합된 권력정치의 전형이었다. 분단은 미·소 대립이라는 국제정치 산물을 넘어 김구의 권력정치와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김구의 남북협상 성립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적 탄력성 역시 이상과 신념의 일관성이라기보다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투쟁 결과였다. 즉, '소명으로서의 정치'라기보다 정략과 생존이 교차하는 권력정치의 전형에 가까웠다. 그의 남북협상은 민족주의적 결단이라기보다 북로당의 대남전략과 임정봉대의 권력 구상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산물이었다.
김구의 남북연석회의 참석 자체부터 '통일의 이상'에 따른 주도적 결단이라기보다는 주도권을 상실한 종북적 대응, 곧 '정치적 들러리의 선택'에 가까웠다. 1947년 후반 이후 정치적 고립과 권력 기반이 흔들리는 국면에서 남북협상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도 구체적 전략도 복안도 없이 민족 정서에 의존해 정치적 책임과 준비를 결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당초 계획과 달리 김구의 요청으로 회의 규모를 확대해 협상이라는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시위성과 이벤트성을 강화한 형태로 변질되었다. 남측 대표단을 '준비된 잔치의 들러리'로 만든 구조적 책임 역시 김구에게 있었다.
이는 최근 공개된 소련공산당 기밀문서와 레베제프 일기 등을 종합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당시 남북연석회의는 김구·김규식과 김일성·북로당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소련군정이 배후에서 치밀하게 기획·연출·감독한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다.
소련은 김구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회의 형식과 일정 변경, 돌발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책까지 마련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북로당은 소련군정의 기획·연출을 집행하는 정치적 에이전트에 머물렀다. 연석회의는 외세의 통제 아래 연출된 정치 무대였다. 이 '이벤트'에 가장 필요했던 인물이 김구였고, 소련군정은 김구를 평양으로 '유인'하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펼쳤다.
정치 이벤트에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리 만무했다. 1948년 4월의 남북연석회의는 통일 협상이라기보다 '붉은 공문서'를 생산·공인한 회의였다. 이때 채택된 결정서·격문·요청서와 남북지도자협의회 공동성명은 사전에 설계된 정치노선을 문서화한 결과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구는 협상의 주체라기보다 '붉은 공문서'를 보증하는 공증인에 가까웠다. 남북연석회의에서 발표한 남한 단선·단정 반대, UN한위 철거, 미·소 양군 철수, 민주주의 통일정부 수립 등 이른바 '4원칙'은 형식적으로는 민족자주와 통일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소련의 대남 적화노선을 정당화하는 문서적 장치였다.
소련과 북한은 김구를 '구워삶기' 위해 그가 과거 정혼했던 도산 안창호의 여동생 안신호에게 시중을 들게 하고, 김구가 살며 인연을 맺었던 곳들을 미리 정비해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연석회의에 앞서 프락치를 통해 김구의 식성까지 상세히 파악한 뒤 매끼 녹두묵과 김을 식탁에 올리게 했다.
김구는 일부러 검박하게 꾸며놓은 김일성 생가와 비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처럼 연출한 혁명자유가족학원 등이 있는 '혁명의 성지' 만경대를 방문하고,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감동을 받는다. 5월 1일 참관했던 메이데이 군사 퍼레이드는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로 마무리하며 무력시위를 펼쳤다. 그럼에도 김구는 돌아온 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미군 철수를 줄기차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 책은 특히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메이데이 다음 날 '쑥섬 야유회'의 전모를 공개함으로써 남북연석회의라는 거창한 슬로건에 가려진 북한의 속내를 정확히 짚는다. 이 모임은 '김구'라는 정치적 대어를 '연공합작'으로 엮어내려는 '정치적 어죽 잔치'에 가까웠고, 친선이라는 형식과 달리 정치적 포섭을 지향한 정략적 성격을 띠었다.
5월 3일 오후 김구는 김일성과 단독면담을 갖고 대남송전·통수, 조만식 석방·월남, 한독당원 석방, 정치적 피난처 제공 등을 논의했다. 김일성은 한독당원 석방 요구에 대해 테러분자라며 거부했는데, 이는 김구·한독당이 1946년 이래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테러 공작과 연계돼 있음을 시사한다. 김구가 정치적 망명과 함께 안창호의 고향 인근 과수원 제공 및 집필 지원을 요구하는 등 단독면담은 단순한 의견 교환을 넘어 정치적 선택지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고, 김일성의 치밀한 포섭 전략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준다.
후사에서는 일제시대와 그 이후까지 각종 암살과 공작을 펼쳤던 김구를 향한 북한의 특별공작 과정과 근거, 이유 등을 분석한다. 김일성은 대표성과 정통성도 없는 임정봉대의 제도화를 위해 암살과 폭력을 주저하지 않았던 김구를 남한 정계의 취약한 고리로 인식했다. 그런 가운데 추진된 김구의 남북협상은 결국 '통일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이기보다는 소련의 구상과 북로당의 정략이 결합된 정치적 이벤트에 철저히 이용당한 꼴이 되었다. 김구의 평양행은 미국과 이승만에게 타격을 주었고, 김일성은 이익을 얻은 반면 김구는 그렇지 못했다.
북한에서 돌아온 김구는 유엔 결의에 의한 남한만의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이승만과 미군정이 분단 정권 수립을 위해 실시한 선거이자 다수의 정치세력이 배제된 불공정한 엉터리 선거로 규정했다. 오히려 그와 한독당은 '통일정부'를 표방한 북한의 '인공' 수립에 합력하며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김구는 심지어 당시 주한 중국 총영사였던 유어만(劉馭萬)과의 대화에서 "지금 잠시 남한에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소련에 의해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 발언을 했다. 부통령 취임 권유에는 "어차피 적화될 나라의 부통령"이라며 거절하기도 했다. 이승만·이시영의 정·부통령 취임 후에도 김구는 이를 '반 조각 정부'로 규정해 정통성을 부정했다. 이후 김구와 한독당은 '공산당 제5열'이라는 비난과 함께 심각한 내분에 휘말렸다.
오랜 후인 1986년, 김일성의 특명으로 '김구의 남북협상'과 '김일성의 남북연석회의' 역사화 작업이 추진됐다. 북한 선전 매체는 김일성을 탁월한 영도력과 포용력을 지닌 지도자로 부각하는 한편, 김구는 '감화와 전향'의 객체로 재구성했다. 여기서조차 김구의 남북협상은 북한 체제의 정통성과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정치적 오브제로 전락했다.
1980년대 후반 종북 주사파는 친일 미청산을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규정하는 '해방전후사' 인식을 바탕으로 이승만을 폄하하고 김구를 신화화하기 시작했다. '김구 띄우기와 이승만 깎아내리기'는 이들의 역사 공작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였지만, '통일의 화신 김구' 프레임은 김일성에 의해 창작된 서사에 가깝다. 결국 오늘날 유통되는 '김구 신화'는 김일성의 구상과 종북 주사파의 연출이 결합된 '역사 공작'의 산물이다.
김구는 과연 자신의 시대와 역사를 책임지기에 충분한 공덕심을 갖춘 '소명의 정치가'였는가, 아니면 권력욕에 사로잡힌 '권력정치의 화신'이었는가? 1949년 6월 비극적 종말로 막을 내린 김구 권력정치의 더 상세한 내막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20세기 '소명의 정치가(Politics as a vocation)'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독립 정신과 건국 운동을 재조명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저자는 특히 1,364개나 되는 미주를 통해 철저히 사료에 바탕한 주장으로 '김구 신화'를 해체하고 있다.
김구는 1946년 12월 말 모스크바협정 발표 직후부터 반공·반탁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좌우 대립을 격화시키고, 정치세력들의 균형을 뒤흔드는 '극우분열주의 정치'를 통해 미군정 통치 주권에 도전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폭력과 함께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제거를 목표로 암살단을 북파하기도 했다.
1947년 6월의 반공·반탁 시위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 결렬과 분단 고착화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김구의 선택은 자주독립이라는 명분과 달리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반대에서 찬성, 그리고 남북협상에 이르는 그의 잇따른 노선 변화는 미·소공위 결렬, 한국 문제 UN 이관, 단독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김구에게 북한은 '도저히 합작할 수 없는 빙탄(氷炭)' 같은 존재였지만,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아닌 통일정부가 수립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 노선을 전환하고 남북협상에 나선다. 그러다 '북조선과 내통했다'는 의혹까지 받게 되지만, 결국 1948년 4월 평양으로 갔던 김구의 남북협상은 낭만적인 통일정부 수립과 민족주의적 이상의 실천이라기보다, 한국민주당 정치부장 장덕수 피살 사건의 여파로 남한 단독선거에서 김구의 한국독립당 승리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김일성과의 정략적 이해가 맞물린 권력정치의 산물이었다.
1948년 4월 김구의 평양행은 단순한 정치 일정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겨냥한 정치심리전의 무대였다. 약 30년 만의 귀향길에서 그를 맞은 것은 논리와 토론이 아니라 인물·공간·장면이 치밀하게 배치된 감정의 연출이었다. 비공식 일정은 감동과 위압을 교차시키며 그의 향수와 기대, 불안과 동경을 자극했고, 이는 내면의 구조적 결핍과 맞물려 그의 인식과 판단을 뒤흔들었다. 결국 남북협상은 협상의 외피를 쓴 정치심리전이었고, 그 귀결은 남한 우익의 거두 김구를 반공에서 연공으로, 대한민국 건국 노선에서 반(反)대한민국 노선으로 돌려세우는 데 있었다.
실제로 남북협상에서 돌아온 김구는 북로당·남로당과 연대해 '남조선단독선거 반대투쟁전국위원회'를 결성하고 5·10 총선 분쇄 투쟁에 나섰다. 그는 '공산당 제5열'이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양군 철수, 총선 무효, 남북 총선, 통일정부 수립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정부 캠페인에 몰두했다. 아울러 화평통일이라는 언사로 연공합작의 기만성을 은폐하고 UN의 정부 승인 저지와 여순반란 사주·합작을 도모했다.
이러한 급작스런 김구의 노선 전환은 '반공 민족주의자 김구'라는 기존 이미지와 충돌하며 '남북협상의 패러독스'를 낳게 된다. 기존 시각은 김구의 남북협상 참여를 우익진영·미군정·UN한위에 대한 실망과 민족주의적 소신의 결과로 보지만, 이후 행보를 종합하면 그의 전향은 단순한 민족주의의 변주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주의에 따른 정략적 선택에 가깝다. '우익적 김구'와 '민족적 김구' 사이의 단절과 긴장, 그 간극이야말로 남북협상의 본질을 드러낸다.
'테러리스트 김구'를 정조준한 학자, 이번엔 '반역자 김구'로 돌아오다
강렬한 민족주의자와 국가 반역자,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
2026년은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을 맞는 해다. 유네스코(UNESCO)는 겨레의 큰 스승이자 독립운동가인 그의 업적을 기리며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15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Kim Koo)'로 공식 지정했다. 유네스코는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이후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높은 문화의 힘'을 통해 인류 전체에 행복을 주는 '문화국가'를 꿈꾸었다"며 "'평화의 방벽을 인간의 마음속에 세워야 한다'는 유네스코 헌장 정신은 인류 불행 원인을 '인의(仁義)와 자비, 사랑 부족'으로 보고 문화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의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번 기념해 지정은 그의 선구적인 평화 사상과 문화다양성 존중의 가치를 국제사회가 공인한 결과"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김구라는 상징을 반복 호출해온 기억의 공간이다. 사후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김구는 여전히 한국인을 훈육하는 '민족의 스승'으로 군림하고 있다. 해마다 그의 혼백은 민족의 정령으로 소환되며, 정치적 판단보다 감정의 언어로 해석돼 불가침의 신성으로 재현된다.
1948년 4월 남북협상 참여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정부는 안 된다"는 선언은 김구를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보다 더 높은 도덕적 상징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김구는 이성보다 감정으로 민족주의를 실천한 민족의 거성, 평화와 통일의 십자가를 짊어진 민족의 메시아로 신격화되었다.
그러나 김구 신화에는 '붉은 균열'이 존재한다. 대·한·민·국·반·역·자.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김구 암살자로 두고두고 비난받는 안두희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안두희는 김구와 그 주변을 공산당과 협력하는 세력으로 인식했고, "나에 대한 반동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이라는 발언을 통해 김구를 '대한민국 반동'으로 확신했으며, "영감과 나라를 바꾸자"는 심정으로 그 판단을 행동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2024년 『테러리스트 김구』를 통해 시대의 금기를 건드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저자 정안기가 2년 만에 『반역자 김구』를 통해 '국민 영웅'으로 비춰지고 있는 백범 김구에 대한 또 하나의 탈신화화에 도전한다. 2년 전 '테러리스트와 국부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던 저자는, 이번에는 '강렬한 민족주의자와 대한민국 반역자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나선다.
저자는 특히 김구의 귀국 이후 이루어진 '남북협상'을 단일 사건이 아니라 그 전후의 정치적 맥락에서 재구성하고, 막스 베버의 '소명의 정치론'을 적용해 그의 정치적 자질과 윤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 책은 남북협상 자체뿐 아니라 전사(前史)와 후사(後史)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결론을 내린다.
그동안 김구의 행보는 통일 지향으로도, 대한민국 건국 부정으로도 해석되어왔지만 두 관점을 통합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드물었고, 감정에 치우친 접근은 평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 그의 정치적 선택과 역사적 귀결을 '도덕과 신화의 언어'에서 '역사와 정치의 영역'으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남북협상에 나선 '정치가로서의 김구'에 대한 평가 기준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설파한 '소명으로서의 정치'다. 베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소명으로서의 정치가에 대한 자질로 열정(Passion)과 책임감(Responsibility), 균형감각(Proportion)을 제시한 바 있다. 요컨대 정치가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이성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 베버의 통찰이다. 그에게 정치가는 선의를 좇는 도덕가가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결과를 빚어내는 장인이었다. 그가 말한 '소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따라 현실의 악마와 맞서는 정신적 부름(Spiritual calling)'이었고, 정치는 신념과 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었다.
이 책은 김구의 남북협상을 이념적 찬양이나 일방적 비판에 머물렀던 기존의 감성적·이념적 서사 대신, '베버 프레임'으로 다층적·복합적·가치중립적 관점에서 실증 분석한다. 이는 정치적 선택의 윤리성과 현실성 사이에서 동태적 균형을 모색하는 정치가의 자기 성찰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현대적 시사점을 지닌다.
혼돈으로 가득했지만 진공 상태였던 해방 공간에서, 미국은 동유럽의 사례를 교훈 삼아 신탁통치를 통해 한국인들의 근본적 자유를 보장하고 통일독립과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는 동시에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김구의 반공·반탁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협상 공간을 제약하고 교섭력 약화를 초래했다.
김구의 반공·반탁은 미국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가장 뼈아픈 비수'였고, 미·소공위라는 '자주독립의 사다리'를 걷어찬 '기회주의적 정치가'의 표본이었다. 김구의 반공·반탁운동은 해방 직후 임시정부가 유일한 정권 수임 기관이 돼야 한다는 임정봉대 노선과 결합된 권력정치의 전형이었다. 분단은 미·소 대립이라는 국제정치 산물을 넘어 김구의 권력정치와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김구의 남북협상 성립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적 탄력성 역시 이상과 신념의 일관성이라기보다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투쟁 결과였다. 즉, '소명으로서의 정치'라기보다 정략과 생존이 교차하는 권력정치의 전형에 가까웠다. 그의 남북협상은 민족주의적 결단이라기보다 북로당의 대남전략과 임정봉대의 권력 구상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산물이었다.
김구의 남북연석회의 참석 자체부터 '통일의 이상'에 따른 주도적 결단이라기보다는 주도권을 상실한 종북적 대응, 곧 '정치적 들러리의 선택'에 가까웠다. 1947년 후반 이후 정치적 고립과 권력 기반이 흔들리는 국면에서 남북협상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도 구체적 전략도 복안도 없이 민족 정서에 의존해 정치적 책임과 준비를 결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당초 계획과 달리 김구의 요청으로 회의 규모를 확대해 협상이라는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시위성과 이벤트성을 강화한 형태로 변질되었다. 남측 대표단을 '준비된 잔치의 들러리'로 만든 구조적 책임 역시 김구에게 있었다.
이는 최근 공개된 소련공산당 기밀문서와 레베제프 일기 등을 종합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당시 남북연석회의는 김구·김규식과 김일성·북로당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소련군정이 배후에서 치밀하게 기획·연출·감독한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다.
소련은 김구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회의 형식과 일정 변경, 돌발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책까지 마련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북로당은 소련군정의 기획·연출을 집행하는 정치적 에이전트에 머물렀다. 연석회의는 외세의 통제 아래 연출된 정치 무대였다. 이 '이벤트'에 가장 필요했던 인물이 김구였고, 소련군정은 김구를 평양으로 '유인'하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펼쳤다.
정치 이벤트에서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리 만무했다. 1948년 4월의 남북연석회의는 통일 협상이라기보다 '붉은 공문서'를 생산·공인한 회의였다. 이때 채택된 결정서·격문·요청서와 남북지도자협의회 공동성명은 사전에 설계된 정치노선을 문서화한 결과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구는 협상의 주체라기보다 '붉은 공문서'를 보증하는 공증인에 가까웠다. 남북연석회의에서 발표한 남한 단선·단정 반대, UN한위 철거, 미·소 양군 철수, 민주주의 통일정부 수립 등 이른바 '4원칙'은 형식적으로는 민족자주와 통일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소련의 대남 적화노선을 정당화하는 문서적 장치였다.
소련과 북한은 김구를 '구워삶기' 위해 그가 과거 정혼했던 도산 안창호의 여동생 안신호에게 시중을 들게 하고, 김구가 살며 인연을 맺었던 곳들을 미리 정비해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연석회의에 앞서 프락치를 통해 김구의 식성까지 상세히 파악한 뒤 매끼 녹두묵과 김을 식탁에 올리게 했다.
김구는 일부러 검박하게 꾸며놓은 김일성 생가와 비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처럼 연출한 혁명자유가족학원 등이 있는 '혁명의 성지' 만경대를 방문하고,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감동을 받는다. 5월 1일 참관했던 메이데이 군사 퍼레이드는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로 마무리하며 무력시위를 펼쳤다. 그럼에도 김구는 돌아온 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미군 철수를 줄기차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 책은 특히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메이데이 다음 날 '쑥섬 야유회'의 전모를 공개함으로써 남북연석회의라는 거창한 슬로건에 가려진 북한의 속내를 정확히 짚는다. 이 모임은 '김구'라는 정치적 대어를 '연공합작'으로 엮어내려는 '정치적 어죽 잔치'에 가까웠고, 친선이라는 형식과 달리 정치적 포섭을 지향한 정략적 성격을 띠었다.
5월 3일 오후 김구는 김일성과 단독면담을 갖고 대남송전·통수, 조만식 석방·월남, 한독당원 석방, 정치적 피난처 제공 등을 논의했다. 김일성은 한독당원 석방 요구에 대해 테러분자라며 거부했는데, 이는 김구·한독당이 1946년 이래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테러 공작과 연계돼 있음을 시사한다. 김구가 정치적 망명과 함께 안창호의 고향 인근 과수원 제공 및 집필 지원을 요구하는 등 단독면담은 단순한 의견 교환을 넘어 정치적 선택지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고, 김일성의 치밀한 포섭 전략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준다.
후사에서는 일제시대와 그 이후까지 각종 암살과 공작을 펼쳤던 김구를 향한 북한의 특별공작 과정과 근거, 이유 등을 분석한다. 김일성은 대표성과 정통성도 없는 임정봉대의 제도화를 위해 암살과 폭력을 주저하지 않았던 김구를 남한 정계의 취약한 고리로 인식했다. 그런 가운데 추진된 김구의 남북협상은 결국 '통일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이기보다는 소련의 구상과 북로당의 정략이 결합된 정치적 이벤트에 철저히 이용당한 꼴이 되었다. 김구의 평양행은 미국과 이승만에게 타격을 주었고, 김일성은 이익을 얻은 반면 김구는 그렇지 못했다.
북한에서 돌아온 김구는 유엔 결의에 의한 남한만의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이승만과 미군정이 분단 정권 수립을 위해 실시한 선거이자 다수의 정치세력이 배제된 불공정한 엉터리 선거로 규정했다. 오히려 그와 한독당은 '통일정부'를 표방한 북한의 '인공' 수립에 합력하며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김구는 심지어 당시 주한 중국 총영사였던 유어만(劉馭萬)과의 대화에서 "지금 잠시 남한에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소련에 의해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 발언을 했다. 부통령 취임 권유에는 "어차피 적화될 나라의 부통령"이라며 거절하기도 했다. 이승만·이시영의 정·부통령 취임 후에도 김구는 이를 '반 조각 정부'로 규정해 정통성을 부정했다. 이후 김구와 한독당은 '공산당 제5열'이라는 비난과 함께 심각한 내분에 휘말렸다.
오랜 후인 1986년, 김일성의 특명으로 '김구의 남북협상'과 '김일성의 남북연석회의' 역사화 작업이 추진됐다. 북한 선전 매체는 김일성을 탁월한 영도력과 포용력을 지닌 지도자로 부각하는 한편, 김구는 '감화와 전향'의 객체로 재구성했다. 여기서조차 김구의 남북협상은 북한 체제의 정통성과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정치적 오브제로 전락했다.
1980년대 후반 종북 주사파는 친일 미청산을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규정하는 '해방전후사' 인식을 바탕으로 이승만을 폄하하고 김구를 신화화하기 시작했다. '김구 띄우기와 이승만 깎아내리기'는 이들의 역사 공작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였지만, '통일의 화신 김구' 프레임은 김일성에 의해 창작된 서사에 가깝다. 결국 오늘날 유통되는 '김구 신화'는 김일성의 구상과 종북 주사파의 연출이 결합된 '역사 공작'의 산물이다.
김구는 과연 자신의 시대와 역사를 책임지기에 충분한 공덕심을 갖춘 '소명의 정치가'였는가, 아니면 권력욕에 사로잡힌 '권력정치의 화신'이었는가? 1949년 6월 비극적 종말로 막을 내린 김구 권력정치의 더 상세한 내막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20세기 '소명의 정치가(Politics as a vocation)'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독립 정신과 건국 운동을 재조명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저자는 특히 1,364개나 되는 미주를 통해 철저히 사료에 바탕한 주장으로 '김구 신화'를 해체하고 있다.
김구는 1946년 12월 말 모스크바협정 발표 직후부터 반공·반탁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좌우 대립을 격화시키고, 정치세력들의 균형을 뒤흔드는 '극우분열주의 정치'를 통해 미군정 통치 주권에 도전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폭력과 함께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제거를 목표로 암살단을 북파하기도 했다.
1947년 6월의 반공·반탁 시위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 결렬과 분단 고착화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김구의 선택은 자주독립이라는 명분과 달리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반대에서 찬성, 그리고 남북협상에 이르는 그의 잇따른 노선 변화는 미·소공위 결렬, 한국 문제 UN 이관, 단독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김구에게 북한은 '도저히 합작할 수 없는 빙탄(氷炭)' 같은 존재였지만,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아닌 통일정부가 수립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 노선을 전환하고 남북협상에 나선다. 그러다 '북조선과 내통했다'는 의혹까지 받게 되지만, 결국 1948년 4월 평양으로 갔던 김구의 남북협상은 낭만적인 통일정부 수립과 민족주의적 이상의 실천이라기보다, 한국민주당 정치부장 장덕수 피살 사건의 여파로 남한 단독선거에서 김구의 한국독립당 승리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김일성과의 정략적 이해가 맞물린 권력정치의 산물이었다.
1948년 4월 김구의 평양행은 단순한 정치 일정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겨냥한 정치심리전의 무대였다. 약 30년 만의 귀향길에서 그를 맞은 것은 논리와 토론이 아니라 인물·공간·장면이 치밀하게 배치된 감정의 연출이었다. 비공식 일정은 감동과 위압을 교차시키며 그의 향수와 기대, 불안과 동경을 자극했고, 이는 내면의 구조적 결핍과 맞물려 그의 인식과 판단을 뒤흔들었다. 결국 남북협상은 협상의 외피를 쓴 정치심리전이었고, 그 귀결은 남한 우익의 거두 김구를 반공에서 연공으로, 대한민국 건국 노선에서 반(反)대한민국 노선으로 돌려세우는 데 있었다.
실제로 남북협상에서 돌아온 김구는 북로당·남로당과 연대해 '남조선단독선거 반대투쟁전국위원회'를 결성하고 5·10 총선 분쇄 투쟁에 나섰다. 그는 '공산당 제5열'이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양군 철수, 총선 무효, 남북 총선, 통일정부 수립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정부 캠페인에 몰두했다. 아울러 화평통일이라는 언사로 연공합작의 기만성을 은폐하고 UN의 정부 승인 저지와 여순반란 사주·합작을 도모했다.
이러한 급작스런 김구의 노선 전환은 '반공 민족주의자 김구'라는 기존 이미지와 충돌하며 '남북협상의 패러독스'를 낳게 된다. 기존 시각은 김구의 남북협상 참여를 우익진영·미군정·UN한위에 대한 실망과 민족주의적 소신의 결과로 보지만, 이후 행보를 종합하면 그의 전향은 단순한 민족주의의 변주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주의에 따른 정략적 선택에 가깝다. '우익적 김구'와 '민족적 김구' 사이의 단절과 긴장, 그 간극이야말로 남북협상의 본질을 드러낸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소명으로서의 정치
남북협상 전후사의 재구성
김구 남북협상의 패러독스
기존 연구의 한계와 재해석
연구의 대상·관점·방법
제1부 전사前史
1. 미·소공위의 동상이몽과 권력정치
모스크바협정과 해방정국의 균열
예비회담에서 드러난 미·소의 동상이몽
제1차 미·소공위의 대립과 결렬
협상 재개와 심화되는 상호 불신
제2차 미·소공위의 예견된 파국
반탁정치와 강대국 협력의 붕괴
한국 문제의 UN 이관과 국제화
UN 소총회 결정과 통일 구상의 좌절
갈무리
2. 기획·연출의 남북연석회의
미·소공위 결렬의 충격과 파장
단정과 통일을 둘러싼 이중전략
대남공작과 정치세력 포섭
남한 정치세력 접촉과 협상 프레임
김구 포섭과 정치적 정당성 확보
남북연석회의 기획과 정치적 설계
남북연석회의 실행과 연출된 정치 공간
남북연석회의 성격과 권력정치적 함의
갈무리
3. 권력정치로서의 남북협상
미·소공위기 김구의 정치 노선
이승만과의 정치적 바게닝
장덕수 암살의 정치적 분기
남북협상을 둘러싼 권력적 셈법
'2월 서신'과 협상 명분의 형성
'3월 서신'의 정치적 정략성
'백지환원'의 정치적 함의
두 정객의 북행과 동상이몽
갈무리
제2부 본사本史
4. 준비된 잔치의 슬픈 춤사위
무책과 상책의 북행길
연출된 회의의 개막과 진행
형식적 참여와 공허한 축사
현실로 드러난 이승만의 경고
성과 없는 '4김 회담'의 실상
남북지도자협의회와 공동성명
김일성의 자신감과 정치적 과시
귀환·보고와 정치적 파장
갈무리
5. 남북연석회의의 '붉은 공문서'들
서신 정치와 남북협상의 개시
현실을 조직하는 붉은 언어들
형식화된 토론과 예정된 결론
찬양과 동원의 수사학
공산 통일의 선전·동원 텍스트
군중과 문서의 연출된 결합
붉은 공동성명서와 협상의 귀결
갈무리
6. 늙은 정객의 향수와 심리전
평양의 '마타 하리' 안신호
영천암·송태산장 - 기억의 정치학
만경대혁명자유가족학원 - 감동의 연출
김일성 생가 - 연출된 검박함
메이데이 행사 - 전율의 무력시위
강량욱 목사 - 관용의 정치 연출
대동강 쑥섬 - 어죽 잔치의 속내
김일성 독대 - 결정의 순간
갈무리
제3부 후사後史
7. '공화국의 이름 없는 꽃' 성시백
대남공작의 대서사 〈붉은 단풍잎〉
베일에 싸인 성시백의 정체
사료에 비친 성시백의 실루엣
대남공작의 조직과 은밀한 활동
경교장에 스며든 붉은 그림자
해방공간의 임꺽정, 홍명희
공작망의 연결 고리, 안우생
성시백의 체포·심문 그리고 최후
갈무리
8. 공산통일을 향한 대폭주
방북 보고서와 폭주의 서막
5·10 총선 보이콧과 분쇄 전략
설계된 제안과 제2차 남북협상
연쇄적 파국과 협상의 후폭풍
'김구·유어만 대화록'의 재해석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과 인식 전환
UN의 정부 승인과 반(反)대한민국 캠페인
여순반란의 배후와 붉은 합작의 그림자
한독당의 분열·혼란과 좌경화
갈무리
9. 남북연석회의와 기억의 정치
정치적 오브제로 재구성된 김구
'민족의 태양' 김일성 서사의 형성
〈로동신문〉, 김구 서사의 재편
'청사(靑史)'로 기록된 남북연석회의
역사화 매체와 서사의 제도화
영화 〈위대한 품〉과 시청각 정치
쑥섬과 기억의 물질화·공간화
남북협상의 상징화와 기념화
갈무리
에필로그
남북협상의 정치적 유산
가변과 불변의 정치노선
권력의지와 정치적 귀결
권력정치의 화신, 김구
원한과 저주의 정치학
부록
미주
참고 문헌
인명 색인
프롤로그
소명으로서의 정치
남북협상 전후사의 재구성
김구 남북협상의 패러독스
기존 연구의 한계와 재해석
연구의 대상·관점·방법
제1부 전사前史
1. 미·소공위의 동상이몽과 권력정치
모스크바협정과 해방정국의 균열
예비회담에서 드러난 미·소의 동상이몽
제1차 미·소공위의 대립과 결렬
협상 재개와 심화되는 상호 불신
제2차 미·소공위의 예견된 파국
반탁정치와 강대국 협력의 붕괴
한국 문제의 UN 이관과 국제화
UN 소총회 결정과 통일 구상의 좌절
갈무리
2. 기획·연출의 남북연석회의
미·소공위 결렬의 충격과 파장
단정과 통일을 둘러싼 이중전략
대남공작과 정치세력 포섭
남한 정치세력 접촉과 협상 프레임
김구 포섭과 정치적 정당성 확보
남북연석회의 기획과 정치적 설계
남북연석회의 실행과 연출된 정치 공간
남북연석회의 성격과 권력정치적 함의
갈무리
3. 권력정치로서의 남북협상
미·소공위기 김구의 정치 노선
이승만과의 정치적 바게닝
장덕수 암살의 정치적 분기
남북협상을 둘러싼 권력적 셈법
'2월 서신'과 협상 명분의 형성
'3월 서신'의 정치적 정략성
'백지환원'의 정치적 함의
두 정객의 북행과 동상이몽
갈무리
제2부 본사本史
4. 준비된 잔치의 슬픈 춤사위
무책과 상책의 북행길
연출된 회의의 개막과 진행
형식적 참여와 공허한 축사
현실로 드러난 이승만의 경고
성과 없는 '4김 회담'의 실상
남북지도자협의회와 공동성명
김일성의 자신감과 정치적 과시
귀환·보고와 정치적 파장
갈무리
5. 남북연석회의의 '붉은 공문서'들
서신 정치와 남북협상의 개시
현실을 조직하는 붉은 언어들
형식화된 토론과 예정된 결론
찬양과 동원의 수사학
공산 통일의 선전·동원 텍스트
군중과 문서의 연출된 결합
붉은 공동성명서와 협상의 귀결
갈무리
6. 늙은 정객의 향수와 심리전
평양의 '마타 하리' 안신호
영천암·송태산장 - 기억의 정치학
만경대혁명자유가족학원 - 감동의 연출
김일성 생가 - 연출된 검박함
메이데이 행사 - 전율의 무력시위
강량욱 목사 - 관용의 정치 연출
대동강 쑥섬 - 어죽 잔치의 속내
김일성 독대 - 결정의 순간
갈무리
제3부 후사後史
7. '공화국의 이름 없는 꽃' 성시백
대남공작의 대서사 〈붉은 단풍잎〉
베일에 싸인 성시백의 정체
사료에 비친 성시백의 실루엣
대남공작의 조직과 은밀한 활동
경교장에 스며든 붉은 그림자
해방공간의 임꺽정, 홍명희
공작망의 연결 고리, 안우생
성시백의 체포·심문 그리고 최후
갈무리
8. 공산통일을 향한 대폭주
방북 보고서와 폭주의 서막
5·10 총선 보이콧과 분쇄 전략
설계된 제안과 제2차 남북협상
연쇄적 파국과 협상의 후폭풍
'김구·유어만 대화록'의 재해석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과 인식 전환
UN의 정부 승인과 반(反)대한민국 캠페인
여순반란의 배후와 붉은 합작의 그림자
한독당의 분열·혼란과 좌경화
갈무리
9. 남북연석회의와 기억의 정치
정치적 오브제로 재구성된 김구
'민족의 태양' 김일성 서사의 형성
〈로동신문〉, 김구 서사의 재편
'청사(靑史)'로 기록된 남북연석회의
역사화 매체와 서사의 제도화
영화 〈위대한 품〉과 시청각 정치
쑥섬과 기억의 물질화·공간화
남북협상의 상징화와 기념화
갈무리
에필로그
남북협상의 정치적 유산
가변과 불변의 정치노선
권력의지와 정치적 귀결
권력정치의 화신, 김구
원한과 저주의 정치학
부록
미주
참고 문헌
인명 색인
저자
저자
정안기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일본경제사 연구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학술진흥재단(JSPS) 특별연구원,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객원연구원을 거쳐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한국연구재단(NRF) 인문사회학술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테러리스트 김구』(미래사, 2024), 『충성과 반역』(조갑제닷컴, 2020), 공저로는 『김창룡 재조명』(이승만북스, 2026),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미래사, 2020),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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