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초 김부용 시선(개정판)(한국의 한시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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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으로 이름난 기생들이 많았지만, 정작 시집을 남긴 기생들은 많지 않았다. 대개는 한 권의 시집을 엮을 만큼 작품의 분량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다른 시인들처럼 그들의 시집을 엮어줄 만한 후손이나 제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이름난 기생 황진이도 몇 편의 시조와 한시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뿐이다.
운초는 기생으로 출발했지만 김이양의 소실로 들어앉았기에 시집을 정리해줄 사람들을 만난 셈이다. 삼호정에서 함께 사귀며 시를 지었던 죽서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 시집을 남겼고, 금원도 시문집을 남겼다. 운초의 경우에는 오십 년이나 차이가 나는 남편 김이양이 먼저 죽었으므로, 누가 시집을 엮어 주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의 시가 아름다웠기에, 여러 사람들이 그의 시를 필사하여 전해 주었다. - 머리말 중에서
운초는 기생으로 출발했지만 김이양의 소실로 들어앉았기에 시집을 정리해줄 사람들을 만난 셈이다. 삼호정에서 함께 사귀며 시를 지었던 죽서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 시집을 남겼고, 금원도 시문집을 남겼다. 운초의 경우에는 오십 년이나 차이가 나는 남편 김이양이 먼저 죽었으므로, 누가 시집을 엮어 주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의 시가 아름다웠기에, 여러 사람들이 그의 시를 필사하여 전해 주었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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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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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부 규장각 필사본에 있는 시들]
ㆍ봄밤 _ 15
ㆍ도영헌에서 _ 16
ㆍ기생들의 춤을 보면서 _ 17
ㆍ행화촌 _ 18
ㆍ술손님에게 _ 19
ㆍ부용당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_ 20
ㆍ연광정에서 _ 21
ㆍ외로운 무덤 _ 22
ㆍ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_ 23
ㆍ강선루에 올라 _ 24
ㆍ무진대에서 _ 25
ㆍ망미헌에서 _ 26
ㆍ사절정에 올라 _ 27
ㆍ소 한 마리밖에 찾아주지 못한 옥부처 _ 28
ㆍ임을 보내며 _ 29
ㆍ평양 기생 백년춘에게 _ 30
ㆍ김씨의 열녀문에다 _ 31
ㆍ가을 _ 32
ㆍ새벽 창 _ 33
ㆍ늦은 봄날 대동강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며 _ 34
ㆍ송악산을 지나며 _ 35
ㆍ길을 가다가 _ 36
ㆍ붓을 멈추며 _ 37
ㆍ새벽에 일어나서 _ 38
ㆍ스스로 위로하다 _ 39
ㆍ부용당 _ 40
ㆍ부용화가 더 예쁘다더니 _ 42
ㆍ선교에서 달빛 속에 걸으며 _ 43
ㆍ해곡의 시를 받들어 화답하다 _ 44
ㆍ연천 대감의 시를 받들어 차운하다 _ 45
ㆍ봄을 보내고서 _ 47
ㆍ연천 상공의 운을 다시 받아 _ 48
ㆍ낮잠 _ 49
ㆍ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_ 50
ㆍ한가한 밤에 혼자 앉아서 _ 51
ㆍ약산 동대에 올라 _ 52
ㆍ연천 상공께 _ 53
ㆍ귀성에 쫓겨와 살며 _ 54
ㆍ귀성에서 돌아오다가 한밤중 연광정에 올라 _ 57
ㆍ지는 매화 _ 58
ㆍ산마을을 지나다가 _ 59
ㆍ빗속에 느낌을 쓰다 _ 60
ㆍ스스로 비웃다 _ 61
ㆍ가을날의 생각 _ 63
ㆍ이른 봄 _ 64
ㆍ늦은 봄에 동문을 나서며 _ 65
ㆍ오강루에서 _ 66
ㆍ어사또에게 _ 68
ㆍ오강루에서 한밤중 생각하다 _ 69
ㆍ임진강 나루터에서 _ 71
ㆍ연천선생의 시를 받들어 화답하다 _ 72
[2부 규장각 필사본에 없는 시들]
ㆍ연천상공의 시를 삼가 차운하다 _ 75
ㆍ입춘 다음날 서울에서 여러분을 모시고 _ 77
ㆍ강가 다락에서 칠석을 맞아 _ 78
ㆍ강가의 밤은 고즈넉한데 _ 79
ㆍ이십 년 만에 만난 설파에게 _ 80
ㆍ늙은 영남 기생에게 _ 81
ㆍ경산과 헤어지면서 _ 83
ㆍ삼호정에서 저녁에 바라보며 _ 84
ㆍ금앵과 헤어지면서 _ 85
ㆍ옛친구와 헤어지면서 _ 86
ㆍ황강에 있는 선배를 생각하며 _ 88
ㆍ오라버니를 그리워하며 _ 89
ㆍ여수관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_ 90
ㆍ임인년 대보름날 달을 보며 영감님께 부치다 _ 91
ㆍ일벽정에서 밤을 맞아 죽군에게 _ 92
ㆍ오강루에 몇 명이 모여서 _ 93
ㆍ검수에서 자며 _ 94
ㆍ도화동 주인 노파에게 _ 95
ㆍ새벽에 일어나서 _ 96
ㆍ황강노인을 기다리며 _ 97
ㆍ시름을 풀다 _ 98
ㆍ묘향산을 가는 길에서 _ 99
ㆍ십오 년 정든 임을 여의고 _ 100
ㆍ층계시 _ 101
[부록]
ㆍ운초의 생애와 시/김미란 _ 109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120
ㆍ봄밤 _ 15
ㆍ도영헌에서 _ 16
ㆍ기생들의 춤을 보면서 _ 17
ㆍ행화촌 _ 18
ㆍ술손님에게 _ 19
ㆍ부용당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_ 20
ㆍ연광정에서 _ 21
ㆍ외로운 무덤 _ 22
ㆍ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_ 23
ㆍ강선루에 올라 _ 24
ㆍ무진대에서 _ 25
ㆍ망미헌에서 _ 26
ㆍ사절정에 올라 _ 27
ㆍ소 한 마리밖에 찾아주지 못한 옥부처 _ 28
ㆍ임을 보내며 _ 29
ㆍ평양 기생 백년춘에게 _ 30
ㆍ김씨의 열녀문에다 _ 31
ㆍ가을 _ 32
ㆍ새벽 창 _ 33
ㆍ늦은 봄날 대동강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며 _ 34
ㆍ송악산을 지나며 _ 35
ㆍ길을 가다가 _ 36
ㆍ붓을 멈추며 _ 37
ㆍ새벽에 일어나서 _ 38
ㆍ스스로 위로하다 _ 39
ㆍ부용당 _ 40
ㆍ부용화가 더 예쁘다더니 _ 42
ㆍ선교에서 달빛 속에 걸으며 _ 43
ㆍ해곡의 시를 받들어 화답하다 _ 44
ㆍ연천 대감의 시를 받들어 차운하다 _ 45
ㆍ봄을 보내고서 _ 47
ㆍ연천 상공의 운을 다시 받아 _ 48
ㆍ낮잠 _ 49
ㆍ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_ 50
ㆍ한가한 밤에 혼자 앉아서 _ 51
ㆍ약산 동대에 올라 _ 52
ㆍ연천 상공께 _ 53
ㆍ귀성에 쫓겨와 살며 _ 54
ㆍ귀성에서 돌아오다가 한밤중 연광정에 올라 _ 57
ㆍ지는 매화 _ 58
ㆍ산마을을 지나다가 _ 59
ㆍ빗속에 느낌을 쓰다 _ 60
ㆍ스스로 비웃다 _ 61
ㆍ가을날의 생각 _ 63
ㆍ이른 봄 _ 64
ㆍ늦은 봄에 동문을 나서며 _ 65
ㆍ오강루에서 _ 66
ㆍ어사또에게 _ 68
ㆍ오강루에서 한밤중 생각하다 _ 69
ㆍ임진강 나루터에서 _ 71
ㆍ연천선생의 시를 받들어 화답하다 _ 72
[2부 규장각 필사본에 없는 시들]
ㆍ연천상공의 시를 삼가 차운하다 _ 75
ㆍ입춘 다음날 서울에서 여러분을 모시고 _ 77
ㆍ강가 다락에서 칠석을 맞아 _ 78
ㆍ강가의 밤은 고즈넉한데 _ 79
ㆍ이십 년 만에 만난 설파에게 _ 80
ㆍ늙은 영남 기생에게 _ 81
ㆍ경산과 헤어지면서 _ 83
ㆍ삼호정에서 저녁에 바라보며 _ 84
ㆍ금앵과 헤어지면서 _ 85
ㆍ옛친구와 헤어지면서 _ 86
ㆍ황강에 있는 선배를 생각하며 _ 88
ㆍ오라버니를 그리워하며 _ 89
ㆍ여수관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_ 90
ㆍ임인년 대보름날 달을 보며 영감님께 부치다 _ 91
ㆍ일벽정에서 밤을 맞아 죽군에게 _ 92
ㆍ오강루에 몇 명이 모여서 _ 93
ㆍ검수에서 자며 _ 94
ㆍ도화동 주인 노파에게 _ 95
ㆍ새벽에 일어나서 _ 96
ㆍ황강노인을 기다리며 _ 97
ㆍ시름을 풀다 _ 98
ㆍ묘향산을 가는 길에서 _ 99
ㆍ십오 년 정든 임을 여의고 _ 100
ㆍ층계시 _ 101
[부록]
ㆍ운초의 생애와 시/김미란 _ 109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120
저자
저자
김부용
운초(雲楚)는 평북 성천(成川) 출신의 기녀로서 주옥같은 한시 300여 편을 남긴 여류시인이다.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부용(芙蓉)이며 운초는 호이다. 운초의 생존 연대와 행적에 대해서는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아서 확실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운초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의 내용이나 단편적인 기록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김이양(金履陽)의 행적과 대조하면서 그녀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운초는 1800년경 평북 성천에서 태어났다. 원래 운초의 집안은 유학자 집안으로 그 고을에서는 뿌리가 있는 가문이었다. 운초는 1825년(을유년), 그녀의 나이 25살 무렵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5년 후인 1830년(경신년) 4월 16일에는 평북 귀성(龜城)에 갔다가 같은 해 겨울 평양으로 돌아왔다. 이때도 왜 귀성에 갔었는가 하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1831년에 운초는 김이양의 소실이 되었다. 김이양이 돌아간 후 운초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 즉 시재가 뛰어난 몇몇 소실들과 서로 모여 시를 주고받으며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용산에 위치하녀 한 눈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삼호정(三湖亭)이란 정자에 가끔 모여 시로써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시단((詩壇)과도 같은 성격의 모임이었다.
운초는 1800년경 평북 성천에서 태어났다. 원래 운초의 집안은 유학자 집안으로 그 고을에서는 뿌리가 있는 가문이었다. 운초는 1825년(을유년), 그녀의 나이 25살 무렵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5년 후인 1830년(경신년) 4월 16일에는 평북 귀성(龜城)에 갔다가 같은 해 겨울 평양으로 돌아왔다. 이때도 왜 귀성에 갔었는가 하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1831년에 운초는 김이양의 소실이 되었다. 김이양이 돌아간 후 운초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 즉 시재가 뛰어난 몇몇 소실들과 서로 모여 시를 주고받으며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용산에 위치하녀 한 눈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삼호정(三湖亭)이란 정자에 가끔 모여 시로써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시단((詩壇)과도 같은 성격의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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