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 원천석 시선(개정판)(한국의 한시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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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은 고려에 벼슬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고려왕조에 충성할 의무는 없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식과 문장이 뛰어났지만, 진사가 되는 데 그쳤다. 고려 말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강원도 치악산에 은거하여 제자들이나 가르치며 한평생을 보냈다. 그의 제자인 태종이 벼슬하기를 권하려 치악산까지 찾아왔지만, 그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숨으면서 끝까지 만나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치악산 일대에는 그 자취들이 남아 있어, 그의 행적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산 속에 숨어 사는 것만으로 일생을 마치지는 않았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들을 그대로 기록하여, 후대의 역사적인 증언이 되게 하였다. 고려왕조의 창왕과 우왕이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핏줄이라는 이유 때문에 폐위되는 과정부터, 이성계 일파가 결국은 왕씨의 고려왕조를 폐하고 새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정하는 과정까지, 그는 자기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1,144수의 시로 기록하였다. 시는 그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그는 산 속에 숨어 사는 것만으로 일생을 마치지는 않았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들을 그대로 기록하여, 후대의 역사적인 증언이 되게 하였다. 고려왕조의 창왕과 우왕이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핏줄이라는 이유 때문에 폐위되는 과정부터, 이성계 일파가 결국은 왕씨의 고려왕조를 폐하고 새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정하는 과정까지, 그는 자기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1,144수의 시로 기록하였다. 시는 그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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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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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제1권]
ㆍ신묘년 삼월에 금강산으로 가다가 횡천에 이르러 _ 17
ㆍ갈풍역을 지나다 _ 18
ㆍ춘주에서 _ 19
ㆍ매화 가지 끝에 걸린 달 _ 20
ㆍ그림 속의 산 _ 21
ㆍ남만에서 들어온 종이 _ 22
ㆍ어진이 불러들인 이불 _ 23
ㆍ나라에 금주령이 내렸는데 제호조 소리를 듣다 _ 24
ㆍ갑오년 시월에 회양으로 가다가 횡천에 이르러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 _ 25
ㆍ초사흗날 횡천을 떠나면서 _ 26
ㆍ열이튿날 교주를 떠나 금성에 이르다 _ 27
ㆍ청양을 지나다 _ 28
ㆍ방산 가는 길에서 _ 29
ㆍ연기 나는 집이 하나도 없어 _ 30
ㆍ춘주 신대학의 교외 별장에 쓰다 _ 32
ㆍ을미년 칠월 어느 날 춘성의 두 서생 김생과 안생이 공부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여러 서생들이 시를 지어 송별하는데 추(秋)자 운을 얻다 _ 33
ㆍ형님께서 보내 주신 시에 차운하다 _ 35
ㆍ말 _ 36
ㆍ이름이 군적에 오르다 _ 37
ㆍ즉사 _ 39
ㆍ경자년 정월 십구일에 딸아이를 낳았는데, 예쁘고도 영리했다. 올해 5월 십칠 일에 병으로 죽었기에 시를 지어서 곡한다 _ 40
ㆍ조목감을 곡하다 _ 41
ㆍ송목사의 화답을 받고 다시 차운하다 _ 42
ㆍ그윽한 골짜기의 굉대사가 상원사 주사굴 서쪽 봉우리에 암자를 새로 짓고 암자 이름을 무주암이라 했는데 그 높고 뛰어난 경치를 아름답게 여겨 시 한 수를 지어서 굉대사에게 올리다 _ 44
ㆍ동년인 정도전이 찾아와서 지어 준 시에 차운하다 _ 45
ㆍ임기가 차서 서울로 돌아가는 송목사를 배웅하다 _ 47
ㆍ동년인 김비가 보내 준 시에 차운하다 _ 48
ㆍ조카 식이 보내 온 시에 차운하다 _ 49
ㆍ김매는 늙은이의 노래 _ 52
ㆍ안사호 집에 모여 몇몇 사람이 술잔을 나누면서 시 한 수를 지어 이선생에게 보이다 _ 55
ㆍ동년인 허중원이 시를 보내 왔으므로 글자를 나누어서 운을 삼아 이십팔 수를 짓다 _ 57
ㆍ춘성 향교의 여러 대학들에게 보내다 _ 59
ㆍ나옹화상의 〈운산도(雲山圖)〉에 쓰다 _ 61
ㆍ청평사 _ 62
ㆍ읍선루 _ 63
[제2권]
ㆍ〈삼소도〉에 쓰다 _ 67
ㆍ경술년 초여름에 회포를 쓰다 _ 68
ㆍ복사꽃 69
ㆍ구월 오일에 손님과 술잔을 나누다 _ 70
ㆍ말 _ 73
ㆍ생원 김누에게 약을 청하다 _ 74
ㆍ최안을에게 받은 시에 차운하다 _ 75
ㆍ춘주 천전마을에 묵다 _ 77
ㆍ즉사 _ 78
ㆍ여러분이 화답한 시에 다시 차운하다 _ 79
ㆍ금성령으로 부임하는 아우 자성을 보내면서 _ 82
ㆍ더위 속에 한가롭게 읊다 _ 83
ㆍ병진년 윤구월에 일본의 여러 선덕들이 이곳에 왔는데 그 총림의 전형이 우리 나라의 제도와 비슷해서 시 한 수를 지어 주다 _ 84
ㆍ설자사가 도경선사에게 보낸 시에 차운하다 _ 85
ㆍ곡계(谷溪)의 시권에 쓰다 _ 86
ㆍ늦봄 _ 87
ㆍ철원관 북관정 시에 차운하다 _ 88
ㆍ추석날 선영에 참배하다 _ 89
ㆍ불경을 베끼는 이에게 지어 주다 _ 90
[제3권]
ㆍ김해 선달 신맹경에게 부치다 _ 93
ㆍ홀아비로 이십일 년을 지내고 _ 94
ㆍ소암(笑巖)의 시권에 쓰다 _ 95
ㆍ스스로 읊다 _ 96
ㆍ오도(悟道) 고개를 오르면서 _ 97
ㆍ기생 딸이 떠나가자 노파 어미가 슬피 울다 _ 98
ㆍ원신(元信)의 시권에 쓰다 99
ㆍ〈서방구품도〉가 이뤄지기를 원하는 시 _ 100
ㆍ배웅하다 _ 101
ㆍ환희당 당두의 시에 차운하다 _ 102
ㆍ좌망 _ 103
ㆍ세 가르침이 하나의 이치일세 _ 104
- 유교 _ 105
- 도교 _ 106
- 불교 _ 106
ㆍ명나라 의복제도를 따르게 되었기에 _ 108
ㆍ해동의 두 현인을 찬양하다 _ 109
ㆍ판삼사사 _ 110
ㆍ무문전사의 시권에 쓰다 _ 111
ㆍ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_ 112
ㆍ아야니 서쪽 강을 건너다 _ 113
ㆍ스스로 읊다 _ 114
ㆍ환희당 대로의 시에 차운하다 _ 115
ㆍ십오일 날 빗속에서 읊다 _ 116
ㆍ느낀 바가 있어 _ 118
ㆍ아이들에게 설상을 받고 _ 120
ㆍ엎드려 들으니 주상 전하께서 강화로 옮기고 원자께서 즉위하셨다기에 감회를 읊다 _ 121
[제4권]
ㆍ기사년 정월 설날 아침에 _ 125
ㆍ도통사 최영 장군이 사형당했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다 _ 126
ㆍ소나무를 심다 _ 129
ㆍ이 달 십오일에 나라에서 정창군을 세워 왕위에 올리고 전왕 부자는 신돈의 자손이라 하여 폐위시켜 서인으로 삼았다는 말을 듣고 _ 132
ㆍ나라에서 명령하여 전왕 부자에게 죽음을 내리다 _ 134
ㆍ꿈을 적다 _ 135
[제5권]
ㆍ두보의 시집을 읽고 _ 141
ㆍ백성들을 대신해서 읊다 _ 142
ㆍ목은 상국이 국화를 보고 시를 지어 보냈기에 차운하다 _ 143
ㆍ옛시를 본받아 짓다 _ 144
ㆍ향학의 여러 서생들에게 보내다 _ 146
ㆍ나라 이름을 고쳐서 조선이라고 하다 _ 147
ㆍ십이월 삼십일 _ 149
ㆍ새 나라 _ 150
ㆍ삼가 〈금척을 받든 글〉과 〈보록을 받는 어록〉을 읽고 경사롭게 여겨 찬양하다 _ 152
ㆍ정이상이 지은 노래 네 곡을 찬양하다 _ 154
[부록]
ㆍ〈해설〉 원천석의 생애와 문학 _ 159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166
ㆍ신묘년 삼월에 금강산으로 가다가 횡천에 이르러 _ 17
ㆍ갈풍역을 지나다 _ 18
ㆍ춘주에서 _ 19
ㆍ매화 가지 끝에 걸린 달 _ 20
ㆍ그림 속의 산 _ 21
ㆍ남만에서 들어온 종이 _ 22
ㆍ어진이 불러들인 이불 _ 23
ㆍ나라에 금주령이 내렸는데 제호조 소리를 듣다 _ 24
ㆍ갑오년 시월에 회양으로 가다가 횡천에 이르러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 _ 25
ㆍ초사흗날 횡천을 떠나면서 _ 26
ㆍ열이튿날 교주를 떠나 금성에 이르다 _ 27
ㆍ청양을 지나다 _ 28
ㆍ방산 가는 길에서 _ 29
ㆍ연기 나는 집이 하나도 없어 _ 30
ㆍ춘주 신대학의 교외 별장에 쓰다 _ 32
ㆍ을미년 칠월 어느 날 춘성의 두 서생 김생과 안생이 공부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여러 서생들이 시를 지어 송별하는데 추(秋)자 운을 얻다 _ 33
ㆍ형님께서 보내 주신 시에 차운하다 _ 35
ㆍ말 _ 36
ㆍ이름이 군적에 오르다 _ 37
ㆍ즉사 _ 39
ㆍ경자년 정월 십구일에 딸아이를 낳았는데, 예쁘고도 영리했다. 올해 5월 십칠 일에 병으로 죽었기에 시를 지어서 곡한다 _ 40
ㆍ조목감을 곡하다 _ 41
ㆍ송목사의 화답을 받고 다시 차운하다 _ 42
ㆍ그윽한 골짜기의 굉대사가 상원사 주사굴 서쪽 봉우리에 암자를 새로 짓고 암자 이름을 무주암이라 했는데 그 높고 뛰어난 경치를 아름답게 여겨 시 한 수를 지어서 굉대사에게 올리다 _ 44
ㆍ동년인 정도전이 찾아와서 지어 준 시에 차운하다 _ 45
ㆍ임기가 차서 서울로 돌아가는 송목사를 배웅하다 _ 47
ㆍ동년인 김비가 보내 준 시에 차운하다 _ 48
ㆍ조카 식이 보내 온 시에 차운하다 _ 49
ㆍ김매는 늙은이의 노래 _ 52
ㆍ안사호 집에 모여 몇몇 사람이 술잔을 나누면서 시 한 수를 지어 이선생에게 보이다 _ 55
ㆍ동년인 허중원이 시를 보내 왔으므로 글자를 나누어서 운을 삼아 이십팔 수를 짓다 _ 57
ㆍ춘성 향교의 여러 대학들에게 보내다 _ 59
ㆍ나옹화상의 〈운산도(雲山圖)〉에 쓰다 _ 61
ㆍ청평사 _ 62
ㆍ읍선루 _ 63
[제2권]
ㆍ〈삼소도〉에 쓰다 _ 67
ㆍ경술년 초여름에 회포를 쓰다 _ 68
ㆍ복사꽃 69
ㆍ구월 오일에 손님과 술잔을 나누다 _ 70
ㆍ말 _ 73
ㆍ생원 김누에게 약을 청하다 _ 74
ㆍ최안을에게 받은 시에 차운하다 _ 75
ㆍ춘주 천전마을에 묵다 _ 77
ㆍ즉사 _ 78
ㆍ여러분이 화답한 시에 다시 차운하다 _ 79
ㆍ금성령으로 부임하는 아우 자성을 보내면서 _ 82
ㆍ더위 속에 한가롭게 읊다 _ 83
ㆍ병진년 윤구월에 일본의 여러 선덕들이 이곳에 왔는데 그 총림의 전형이 우리 나라의 제도와 비슷해서 시 한 수를 지어 주다 _ 84
ㆍ설자사가 도경선사에게 보낸 시에 차운하다 _ 85
ㆍ곡계(谷溪)의 시권에 쓰다 _ 86
ㆍ늦봄 _ 87
ㆍ철원관 북관정 시에 차운하다 _ 88
ㆍ추석날 선영에 참배하다 _ 89
ㆍ불경을 베끼는 이에게 지어 주다 _ 90
[제3권]
ㆍ김해 선달 신맹경에게 부치다 _ 93
ㆍ홀아비로 이십일 년을 지내고 _ 94
ㆍ소암(笑巖)의 시권에 쓰다 _ 95
ㆍ스스로 읊다 _ 96
ㆍ오도(悟道) 고개를 오르면서 _ 97
ㆍ기생 딸이 떠나가자 노파 어미가 슬피 울다 _ 98
ㆍ원신(元信)의 시권에 쓰다 99
ㆍ〈서방구품도〉가 이뤄지기를 원하는 시 _ 100
ㆍ배웅하다 _ 101
ㆍ환희당 당두의 시에 차운하다 _ 102
ㆍ좌망 _ 103
ㆍ세 가르침이 하나의 이치일세 _ 104
- 유교 _ 105
- 도교 _ 106
- 불교 _ 106
ㆍ명나라 의복제도를 따르게 되었기에 _ 108
ㆍ해동의 두 현인을 찬양하다 _ 109
ㆍ판삼사사 _ 110
ㆍ무문전사의 시권에 쓰다 _ 111
ㆍ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_ 112
ㆍ아야니 서쪽 강을 건너다 _ 113
ㆍ스스로 읊다 _ 114
ㆍ환희당 대로의 시에 차운하다 _ 115
ㆍ십오일 날 빗속에서 읊다 _ 116
ㆍ느낀 바가 있어 _ 118
ㆍ아이들에게 설상을 받고 _ 120
ㆍ엎드려 들으니 주상 전하께서 강화로 옮기고 원자께서 즉위하셨다기에 감회를 읊다 _ 121
[제4권]
ㆍ기사년 정월 설날 아침에 _ 125
ㆍ도통사 최영 장군이 사형당했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다 _ 126
ㆍ소나무를 심다 _ 129
ㆍ이 달 십오일에 나라에서 정창군을 세워 왕위에 올리고 전왕 부자는 신돈의 자손이라 하여 폐위시켜 서인으로 삼았다는 말을 듣고 _ 132
ㆍ나라에서 명령하여 전왕 부자에게 죽음을 내리다 _ 134
ㆍ꿈을 적다 _ 135
[제5권]
ㆍ두보의 시집을 읽고 _ 141
ㆍ백성들을 대신해서 읊다 _ 142
ㆍ목은 상국이 국화를 보고 시를 지어 보냈기에 차운하다 _ 143
ㆍ옛시를 본받아 짓다 _ 144
ㆍ향학의 여러 서생들에게 보내다 _ 146
ㆍ나라 이름을 고쳐서 조선이라고 하다 _ 147
ㆍ십이월 삼십일 _ 149
ㆍ새 나라 _ 150
ㆍ삼가 〈금척을 받든 글〉과 〈보록을 받는 어록〉을 읽고 경사롭게 여겨 찬양하다 _ 152
ㆍ정이상이 지은 노래 네 곡을 찬양하다 _ 154
[부록]
ㆍ〈해설〉 원천석의 생애와 문학 _ 159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166
저자
저자
원천석
원천석의 본관은 원주이며 호는 운곡(耘谷), 자는 자정(子正)이다. 고려 말에 종부사령(宗簿寺令)을 지낸 원윤적(元允迪)의 아들로 1330년 7월 8일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강원도 원주에 기반을 둔 향리층이었고, 아버지 대에 와서 미관말직이나마 비로소 중앙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원천석은 10세 무렵에 아버지를, 14세에 형 천상(天常)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며 집안 형편은 어려웠던 듯하다. 그는 24세 되던 1353년 무렵부터 치악산 운곡에 은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군적에 편입되자 공부에 정진하였고 1360년에 국자 감시에 급제하여 군역에서 면제된 뒤에는 다시 운곡에 은거하였다. 그는 자주 강원도 일대를 여행하면서 다수의 기행시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승려들과도 끊임없는 교분을 나누기도 하였다.
원천석은 여말선초를 살다간 지식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왕조에서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고 원주 치악산 기슭에서 은거하면서 그 인생을 조용히 마감하였다. 이렇게 현실의 전면에 나선 적이 없던 원천석이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의 문헌이나 악부시에는 그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나타나 있다. 그것은 원천석이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혼란과 변혁의 와중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원천석은 당시에 조선건국을 추진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저지른 현실 왜곡과 불의한 행위에 분노하였고, 나아가 그 시대의 진실을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야사(野史)》와 원고(原稿) 3권 2책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야사》는 그의 자손이 멸족을 두려워하여 불살라 버렸다고 하니, 조선건국 관정의 비도덕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서술한 정도를 추측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저술이 3권 2책의 원고는 집안에서 보관되어 내려오면서 일부가 부식되고 일실되기도 하였지만 그의 사후 200여 년이 지나서 세 차례 간행되었고 한 차례 필사되었다. - 〈원천석의 생애와 문학〉 중에서
원천석은 10세 무렵에 아버지를, 14세에 형 천상(天常)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며 집안 형편은 어려웠던 듯하다. 그는 24세 되던 1353년 무렵부터 치악산 운곡에 은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군적에 편입되자 공부에 정진하였고 1360년에 국자 감시에 급제하여 군역에서 면제된 뒤에는 다시 운곡에 은거하였다. 그는 자주 강원도 일대를 여행하면서 다수의 기행시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승려들과도 끊임없는 교분을 나누기도 하였다.
원천석은 여말선초를 살다간 지식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왕조에서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고 원주 치악산 기슭에서 은거하면서 그 인생을 조용히 마감하였다. 이렇게 현실의 전면에 나선 적이 없던 원천석이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의 문헌이나 악부시에는 그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나타나 있다. 그것은 원천석이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혼란과 변혁의 와중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원천석은 당시에 조선건국을 추진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저지른 현실 왜곡과 불의한 행위에 분노하였고, 나아가 그 시대의 진실을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야사(野史)》와 원고(原稿) 3권 2책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야사》는 그의 자손이 멸족을 두려워하여 불살라 버렸다고 하니, 조선건국 관정의 비도덕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서술한 정도를 추측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저술이 3권 2책의 원고는 집안에서 보관되어 내려오면서 일부가 부식되고 일실되기도 하였지만 그의 사후 200여 년이 지나서 세 차례 간행되었고 한 차례 필사되었다. - 〈원천석의 생애와 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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