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필재 김종직 시선(한국의 한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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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 김종직의 시에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 항상 정치와 학문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자연으로 돌아가 한가롭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퇴계선생언행록〉에 “점필재는 학문한 사람이 아니다. 평생 힘쓴 것은 화려한 문장이다.”라고 할 만큼 그는 문장에도 힘쓴 성리학자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점필재의 시는 더욱 남다른 점이 있다.
…… 그의 이름이 역사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그의 학문과 문장 때문이었지만, 무오사화를 일으킨 〈조의제문(弔義帝文)〉 때문이기도 하다.
- 머리말 중에서
…… 그의 이름이 역사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그의 학문과 문장 때문이었지만, 무오사화를 일으킨 〈조의제문(弔義帝文)〉 때문이기도 하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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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ㆍ응천 죽지곡 9장을 써서 양씨 여인에게 주다 _ 13
ㆍ매포루에 올라 쌍매당의 시에 차운하다 _ 18
ㆍ칠원 동헌에 걸린 시에 차운하여 동년인 최 현감에게 주다 _ 19
ㆍ기생을 물리치다 _ 20
ㆍ옥금이 밤에 소금을 불다 _ 21
ㆍ신 한 짝을 물에 떨어뜨리고 _ 22
ㆍ임군이 두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_ 24
ㆍ성환역에서 묵으며 제주도 이야기를 듣고 〈탁라가〉를 짓다 _ 26
ㆍ2월 30일에 서울로 들어가려고 _ 33
ㆍ흥을 붙이다 _ 34
ㆍ사월 초파일 관등놀이 _ 35
ㆍ태백의 악부에 비겨 〈동무음〉을 짓다 _ 36
ㆍ술 빚으라고 쌀을 보냈기에 _ 42
ㆍ종 김삼이 달아나다 _ 43
ㆍ동성의 참새들 _ 44
ㆍ중양절에 국화가 없다 _ 45
ㆍ성지 어머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_ 46
ㆍ어자경을 대신하여 멀리 있는 여인에게 부치다 _ 49
ㆍ금강산에 올라 해 뜨는 것을 구경하다 _ 51
ㆍ눈 온 뒤에 범을 쏘다 _ 54
ㆍ경주의 한식날 _ 58
ㆍ동래현 온천 _ 59
ㆍ경주 효소왕의 묘 _ 61
ㆍ도요저 _ 62
ㆍ정월 초닷새날 안강현 동산에서 사냥을 마치다 _ 63
ㆍ장현 아래 인가에서 _ 64
ㆍ회소곡 _ 65
ㆍ우식곡 _ 67
ㆍ치술령 _ 69
ㆍ달도가 _ 70
ㆍ양산가 _ 72
ㆍ황창랑 _ 74
ㆍ사방지 _ 76
ㆍ미인을 대신해서 세번에게 화답하다 _ 78
ㆍ가흥참 _ 79
ㆍ돼지를 잡고 술을 마시다 _ 82
ㆍ가야의 옛집으로 돌아가는 선원을 배웅하다 _ 84
ㆍ수군이 금산으로 가다 _ 87
ㆍ촉석루 시를 지어 조 교수에게 드리다 _ 88
ㆍ말 위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다 _ 90
ㆍ낙동요 _ 92
ㆍ길가에 있는 소나무 껍질이 다 벗겨지다 _ 95
ㆍ전은의 사계절 _ 96
ㆍ성주가 황어 열 마리를 우리 어머님께 보내왔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 _ 97
ㆍ청주에서 남계도사를 방문하고 그 이튿날 부치다 _ 98
ㆍ송춘시에 화답하다 _ 99
ㆍ말에서 떨어졌기에 _ 101
ㆍ세조 혜장대왕 악장 _ 102
ㆍ생원 유호인이 낙제하여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부치다 _ 103
ㆍ광릉군이 남원 동헌에서 지은 시에다 화운하여 종사관 정가정을 대신하여 짓다 _ 104
ㆍ또 국화와 영숙에게 답하다 _ 106
ㆍ지겨운 비 _ 107
ㆍ비를 기뻐하다 _ 108
ㆍ두류산 기행시 _ 110
ㆍ다섯 살에 죽은 목아를 슬퍼하다 _ 112
ㆍ목아를 임시로 묻다 _ 113
ㆍ태보에게 답하다 _ 115
ㆍ고열승에게 지어 주다 _ 117
ㆍ다원 2수 _ 118
ㆍ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원에게 _ 120
ㆍ진산군을 모시고 화장사에서 자다 _ 122
ㆍ정월 초열흘날 아내가 금산에서 돌아오다 _ 123
ㆍ남을 대신하여 의영고 계축에 쓰다 _ 125
ㆍ동년인 이천군수 이유인의 시권에 두 수를 쓰다 _ 127
ㆍ칠월 일일에 병이 심해졌다가 다시 깨어났는데 삼일에야 열기가 물러갔다 _ 129
ㆍ청심루에 올라갔다가 주인은 만나지도 않고 돌아와 _ 130
ㆍ신륵사 아래에 배를 대놓고 _ 131
ㆍ낙원 촌집에 묵으면서 오체를 본따서 짓다 _ 133
ㆍ호랑이를 쏘았건만 닭이 울자 달아나다 _ 134
ㆍ고 문좌에게 화답하다 _ 136
ㆍ고풍 _ 137
ㆍ장난 삼아 길 직장에게 지어 주다 _ 139
ㆍ돼지머리를 글 배우러 온 제자들에게 주다 _ 140
ㆍ윤료가 〈선산지리도〉를 만들었으므로 그 위에 절구 열 수를 쓰다 _ 141
ㆍ섣달 그믐밤 _ 143
ㆍ조신을 보내면서 본자를 얻어 짓다 _ 144
ㆍ강수에게 답하다 _ 148
ㆍ구파헌의 운에 화답하면서 선원 극기와 함께 짓다 _ 149
ㆍ무릉교 _ 150
ㆍ고운의 시운을 빌려 시석에 쓰다 _ 151
ㆍ나승의 시운을 빌려 비구니 도원의 시권에 쓰다 _ 152
ㆍ아이가 이미 죽었다기에 _ 153
ㆍ시월 십일일에 곤이 죽어 십오일에 일현에 임시로 장사지내다 _ 154
ㆍ사월 십일일에 비가 오다 _ 158
ㆍ유씨 여인에게 노래 다섯 장을 부치다 _ 159
ㆍ수재 양준과 공생 홍유손에게 지어 주다 _ 162
ㆍ십일일이 곤의 소상이다 _ 166
ㆍ노수재가 또 양씨 스님을 위해 시를 지어 달라고 하다 _ 167
ㆍ금산군수 이인형에게 치하하다 _ 169
ㆍ취옹정에서 선원의 원옹운에 화답하다 _ 171
ㆍ전지로 말미를 얻어 십일월 이십일에 숙인을 미곡에 이장하다 _ 173
ㆍ섣달 그믐밤 _ 174
ㆍ선원이 병가를 내서 침상에 누워 있다는 말을 듣고 장난 삼아 지어 주다 _ 175
ㆍ사옹원 정 정영통의 시에 차운하다 _ 177
ㆍ정정이 사옹원에서 나막신을 신고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시를 지었으므로 이에 차운하다 _ 178
ㆍ귀인 이십여 명이 비를 맞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_ 179
ㆍ성은으로 직제학을 제수하다 _ 180
ㆍ의상인이 화답하였으므로 다시 답하다 _ 181
ㆍ의금부의 회음도에 쓰다 _ 182
ㆍ한식날 촌집에서 _ 183
ㆍ보천탄 _ 184
ㆍ아내가 국화주 석 잔을 권하기에 _ 186
ㆍ심한 추위 _ 187
ㆍ우물이 마르다 _ 188
ㆍ서재에 있는 책을 훔쳐갔다기에 _ 189
ㆍ쉰여섯에 아들을 낳고 기뻐서 _ 191
ㆍ늘그막의 꽃구경은 안개 속에 보는 것 같아 _ 193
ㆍ천안 선화루에 오르다 _ 196
ㆍ태인의 연지 가에서 최치원을 생각하다 _ 197
ㆍ법성포 서봉 _ 198
ㆍ추강에게 화답하다 _ 199
ㆍ전주에서 삼월 삼일에 향음례와 향사례를 행하다 _ 201
ㆍ고부 민락정에서 조운선을 바라보다 _ 203
ㆍ병중에 절구 열 수를 읊다 _ 205
[부록]
ㆍ김종직의 삶과 문학/ 최우영 _ 211
ㆍ연보 _ 218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222
ㆍ매포루에 올라 쌍매당의 시에 차운하다 _ 18
ㆍ칠원 동헌에 걸린 시에 차운하여 동년인 최 현감에게 주다 _ 19
ㆍ기생을 물리치다 _ 20
ㆍ옥금이 밤에 소금을 불다 _ 21
ㆍ신 한 짝을 물에 떨어뜨리고 _ 22
ㆍ임군이 두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_ 24
ㆍ성환역에서 묵으며 제주도 이야기를 듣고 〈탁라가〉를 짓다 _ 26
ㆍ2월 30일에 서울로 들어가려고 _ 33
ㆍ흥을 붙이다 _ 34
ㆍ사월 초파일 관등놀이 _ 35
ㆍ태백의 악부에 비겨 〈동무음〉을 짓다 _ 36
ㆍ술 빚으라고 쌀을 보냈기에 _ 42
ㆍ종 김삼이 달아나다 _ 43
ㆍ동성의 참새들 _ 44
ㆍ중양절에 국화가 없다 _ 45
ㆍ성지 어머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_ 46
ㆍ어자경을 대신하여 멀리 있는 여인에게 부치다 _ 49
ㆍ금강산에 올라 해 뜨는 것을 구경하다 _ 51
ㆍ눈 온 뒤에 범을 쏘다 _ 54
ㆍ경주의 한식날 _ 58
ㆍ동래현 온천 _ 59
ㆍ경주 효소왕의 묘 _ 61
ㆍ도요저 _ 62
ㆍ정월 초닷새날 안강현 동산에서 사냥을 마치다 _ 63
ㆍ장현 아래 인가에서 _ 64
ㆍ회소곡 _ 65
ㆍ우식곡 _ 67
ㆍ치술령 _ 69
ㆍ달도가 _ 70
ㆍ양산가 _ 72
ㆍ황창랑 _ 74
ㆍ사방지 _ 76
ㆍ미인을 대신해서 세번에게 화답하다 _ 78
ㆍ가흥참 _ 79
ㆍ돼지를 잡고 술을 마시다 _ 82
ㆍ가야의 옛집으로 돌아가는 선원을 배웅하다 _ 84
ㆍ수군이 금산으로 가다 _ 87
ㆍ촉석루 시를 지어 조 교수에게 드리다 _ 88
ㆍ말 위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다 _ 90
ㆍ낙동요 _ 92
ㆍ길가에 있는 소나무 껍질이 다 벗겨지다 _ 95
ㆍ전은의 사계절 _ 96
ㆍ성주가 황어 열 마리를 우리 어머님께 보내왔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 _ 97
ㆍ청주에서 남계도사를 방문하고 그 이튿날 부치다 _ 98
ㆍ송춘시에 화답하다 _ 99
ㆍ말에서 떨어졌기에 _ 101
ㆍ세조 혜장대왕 악장 _ 102
ㆍ생원 유호인이 낙제하여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부치다 _ 103
ㆍ광릉군이 남원 동헌에서 지은 시에다 화운하여 종사관 정가정을 대신하여 짓다 _ 104
ㆍ또 국화와 영숙에게 답하다 _ 106
ㆍ지겨운 비 _ 107
ㆍ비를 기뻐하다 _ 108
ㆍ두류산 기행시 _ 110
ㆍ다섯 살에 죽은 목아를 슬퍼하다 _ 112
ㆍ목아를 임시로 묻다 _ 113
ㆍ태보에게 답하다 _ 115
ㆍ고열승에게 지어 주다 _ 117
ㆍ다원 2수 _ 118
ㆍ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원에게 _ 120
ㆍ진산군을 모시고 화장사에서 자다 _ 122
ㆍ정월 초열흘날 아내가 금산에서 돌아오다 _ 123
ㆍ남을 대신하여 의영고 계축에 쓰다 _ 125
ㆍ동년인 이천군수 이유인의 시권에 두 수를 쓰다 _ 127
ㆍ칠월 일일에 병이 심해졌다가 다시 깨어났는데 삼일에야 열기가 물러갔다 _ 129
ㆍ청심루에 올라갔다가 주인은 만나지도 않고 돌아와 _ 130
ㆍ신륵사 아래에 배를 대놓고 _ 131
ㆍ낙원 촌집에 묵으면서 오체를 본따서 짓다 _ 133
ㆍ호랑이를 쏘았건만 닭이 울자 달아나다 _ 134
ㆍ고 문좌에게 화답하다 _ 136
ㆍ고풍 _ 137
ㆍ장난 삼아 길 직장에게 지어 주다 _ 139
ㆍ돼지머리를 글 배우러 온 제자들에게 주다 _ 140
ㆍ윤료가 〈선산지리도〉를 만들었으므로 그 위에 절구 열 수를 쓰다 _ 141
ㆍ섣달 그믐밤 _ 143
ㆍ조신을 보내면서 본자를 얻어 짓다 _ 144
ㆍ강수에게 답하다 _ 148
ㆍ구파헌의 운에 화답하면서 선원 극기와 함께 짓다 _ 149
ㆍ무릉교 _ 150
ㆍ고운의 시운을 빌려 시석에 쓰다 _ 151
ㆍ나승의 시운을 빌려 비구니 도원의 시권에 쓰다 _ 152
ㆍ아이가 이미 죽었다기에 _ 153
ㆍ시월 십일일에 곤이 죽어 십오일에 일현에 임시로 장사지내다 _ 154
ㆍ사월 십일일에 비가 오다 _ 158
ㆍ유씨 여인에게 노래 다섯 장을 부치다 _ 159
ㆍ수재 양준과 공생 홍유손에게 지어 주다 _ 162
ㆍ십일일이 곤의 소상이다 _ 166
ㆍ노수재가 또 양씨 스님을 위해 시를 지어 달라고 하다 _ 167
ㆍ금산군수 이인형에게 치하하다 _ 169
ㆍ취옹정에서 선원의 원옹운에 화답하다 _ 171
ㆍ전지로 말미를 얻어 십일월 이십일에 숙인을 미곡에 이장하다 _ 173
ㆍ섣달 그믐밤 _ 174
ㆍ선원이 병가를 내서 침상에 누워 있다는 말을 듣고 장난 삼아 지어 주다 _ 175
ㆍ사옹원 정 정영통의 시에 차운하다 _ 177
ㆍ정정이 사옹원에서 나막신을 신고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시를 지었으므로 이에 차운하다 _ 178
ㆍ귀인 이십여 명이 비를 맞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_ 179
ㆍ성은으로 직제학을 제수하다 _ 180
ㆍ의상인이 화답하였으므로 다시 답하다 _ 181
ㆍ의금부의 회음도에 쓰다 _ 182
ㆍ한식날 촌집에서 _ 183
ㆍ보천탄 _ 184
ㆍ아내가 국화주 석 잔을 권하기에 _ 186
ㆍ심한 추위 _ 187
ㆍ우물이 마르다 _ 188
ㆍ서재에 있는 책을 훔쳐갔다기에 _ 189
ㆍ쉰여섯에 아들을 낳고 기뻐서 _ 191
ㆍ늘그막의 꽃구경은 안개 속에 보는 것 같아 _ 193
ㆍ천안 선화루에 오르다 _ 196
ㆍ태인의 연지 가에서 최치원을 생각하다 _ 197
ㆍ법성포 서봉 _ 198
ㆍ추강에게 화답하다 _ 199
ㆍ전주에서 삼월 삼일에 향음례와 향사례를 행하다 _ 201
ㆍ고부 민락정에서 조운선을 바라보다 _ 203
ㆍ병중에 절구 열 수를 읊다 _ 205
[부록]
ㆍ김종직의 삶과 문학/ 최우영 _ 211
ㆍ연보 _ 218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222
저자
저자
김종직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생애를 언급하면서 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글은 그가 27세(세조 3년, 1457년)에 썼다고 하는 〈조의제문〉이다. 이때 김종직은 아직 벼슬길에 들어서지 않았는데, 의제를 죽인 항우에 단종을 죽인 세조를 비유하여 세조의 찬탈행위를 비난한 것이다. 그가 죽은 뒤인 1498년(연산군 4년)에 그의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이 글을 사초(史草)에 적어 넣은 것이 화근이 되어 비극적인 무오사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하였고 문집도 불에 타버리는 일을 겪게 되었다. 이렇게 〈조의제문〉은 정말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게 하였다. -〈김종직의 삶과 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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