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재 박상 시선(한국의 한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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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재 박상은 시인으로도 이름났지만,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으로 더 이름이 났다. 그는 정작 기묘년에 무사하였지만, 그와 기묘사화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는 기묘명현과 함께 어울려 사림정치를 논했고, 그들에 앞서 바른 말과 바른 행동을 하다가 여러 차례 괴로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의 아우 육봉은 그의 유고를 모아 ≪눌재집≫을 간행하면서 그 서문에서 ≪시경≫이나 ≪초사≫와 이백이나 두보의 시에 깊은 조예가 없으면 눌재의 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디 이러한 시들뿐이랴. 그의 독서 세계는 끝없이 넓어서, 그의 시 가운데 제자백가는 물론이고, 끝내 출처를 알 수 없는 문자들도 자주 나온다. 이처럼 박학다식하였던 그의 독서 세계가 자유분방한 그의 문학 세계와 만나고, 또 폭군 연산과 중종반정이라는 시대와 부딪히면서 그의 시가 지어졌던 것이다. 그의 문학과 사람됨은 영조와 정조 때에 와서 다시 평가되었다.
- 머리말 중에서
그의 아우 육봉은 그의 유고를 모아 ≪눌재집≫을 간행하면서 그 서문에서 ≪시경≫이나 ≪초사≫와 이백이나 두보의 시에 깊은 조예가 없으면 눌재의 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디 이러한 시들뿐이랴. 그의 독서 세계는 끝없이 넓어서, 그의 시 가운데 제자백가는 물론이고, 끝내 출처를 알 수 없는 문자들도 자주 나온다. 이처럼 박학다식하였던 그의 독서 세계가 자유분방한 그의 문학 세계와 만나고, 또 폭군 연산과 중종반정이라는 시대와 부딪히면서 그의 시가 지어졌던 것이다. 그의 문학과 사람됨은 영조와 정조 때에 와서 다시 평가되었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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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본집
〈권 1〉
ㆍ석천 임억령이 보내준 시를 갚아주다 _ 15
ㆍ적암의 시에 화답하다 _ 20
ㆍ국학에 들어가는 성산 이진사를 배웅하다 _ 23
ㆍ석천의 운을 받들어 화답하다 _ 28
ㆍ산으로 들어가는 조희를 배웅하며 맹호연의 시운을 쓰다 _ 31
ㆍ적암의 시를 받들어 화답하다 _ 33
ㆍ아들과의 문답을 간추려서 적암의 〈부언편〉을 받들어 갚아드리다 _ 36
〈권 2〉
ㆍ아내와 자식들을 협곡에 묻고 슬퍼하다 _ 42
ㆍ가을날 병을 탄식하다 _ 46
〈권 3〉
ㆍ옛시를 본받아 짓다 _ 48
ㆍ낙동역에서 자다 _ 52
ㆍ의령 고 현감의 시에 화답하다 _ 54
ㆍ꿈 속에서 형님을 보다 _ 56
ㆍ김제에서 부안에 이르다 _ 58
ㆍ금산에서 입으로 부르다 _ 59
ㆍ띠를 인 정자 _ 60
ㆍ괴로운 장마비 _ 63
ㆍ쾌심정에 쓰다 _ 64
ㆍ다시 언룡의 시에 화답하다 _ 65
ㆍ제목없이 짓다 _ 66
ㆍ직제학 서덕재를 배웅하다 _ 68
ㆍ중원 북쪽 나루에서 관동으로 돌아가는 아우와 헤어지다 _ 69
〈권 4〉
ㆍ황산 개태사 무쇠절구를 아우의 시에 차운해서 짓다 _ 70
ㆍ무옥만사 _ 71
ㆍ동지중추부사 김세필이 지비천에 집을 짓고 미장이가 오는 편에 편지를 보냈기에 시를 지어 답하다 _ 72
〈권 5〉
ㆍ동지중추부사 김세필의 시에 다시 차운하여 시골집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짓다 _ 74
ㆍ동지중추부사 김세필이 지은 시에 세 번째 화운하여 시골집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읊다 _ 78
속집
〈권 1〉
ㆍ서경의 부산정 시에 차운하다 _ 83
ㆍ소사에서 서경과 헤어지다 _ 85
ㆍ일본국 사승 역창의 시에 차운하다 _ 86
ㆍ무진정에서 탈춤을 즐기다 _ 87
ㆍ함창 광원루에서 현판시에 차운하다 _ 89
ㆍ상주에서 충주로 옮겨가면서 함창에 이르렀다가 조 현감에게 지어 주다 _ 90
ㆍ상주 교수 장세창의 시에 차운하여 헤어지는 마음을 쓰다 _ 91
ㆍ봉암사에 쓰다 _ 92
ㆍ봉암사 남루에서 _ 94
ㆍ상주에서 충주에 이르다 _ 95
ㆍ벗이 편지를 보내 배를 빌려서 한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기에 시를 지어 답하다 _ 96
ㆍ다시 화답하다 _ 100
ㆍ청주 초정약수에서 목욕하다 _ 101
ㆍ하서에게 지어 주다 _ 104
ㆍ형주를 지나면서 _ 105
ㆍ병이 나서 춥기에 연산현에 머무르다 _ 107
ㆍ율봉역에서 자다 _ 108
ㆍ금구 객관에서 두견새소리를 듣다 _ 109
ㆍ급제하여 남쪽으로 돌아가는 친구 전헌 징지를 송별하다 _ 110
ㆍ반가운 비 _ 111
ㆍ이 시를 부쳐 벗에게 답하다 _ 112
ㆍ이함창 부인 안씨 만사 _ 113
ㆍ술자리에서 늙은 내시에게 지어 주다 _ 115
ㆍ황헌지에게 부쳐서 주다 _ 116
ㆍ사옹원 분원 직장 권행과 헤어지다 _ 118
ㆍ생원 최언실에게 이 시를 지어 주며 배웅하다 _ 119
ㆍ아들 생일에 짓다 _ 122
ㆍ정 진사가 내 아들 민중과 함께 속리산에 들어가 책을 읽다 _ 123
ㆍ진사 허분이 감사를 찾아보고 사창의 민가에서 자다가 도둑에게 말을 잃어 버렸기에 시를 지어 위로하다 _ 124
ㆍ진천 정 현감에게 장난삼아 써보내 허분을 풀어 달라고 청하다 _ 125
ㆍ정한원에게 지어 주다 _ 126
ㆍ제목없이 짓다 _ 127
ㆍ석천의 시에 삼가 화답하다 _ 128
〈권 2〉
ㆍ석천에게 _ 129
ㆍ첩박명 _ 130
ㆍ진원 동헌의 시에 차운하다 _ 135
ㆍ수지의 시에 화운하다 _ 136
ㆍ헤어지는 술자리에서 즉흥시를 읊다 _ 137
ㆍ문경 남쪽 삼십 리에 있는 옛성을 지나다 _ 138
ㆍ일선의 시를 갚아드리다 _ 139
ㆍ상림역장의 집에서 묵다 _ 140
ㆍ비 오기를 빌다 _ 141
ㆍ꿈을 적다 _ 142
ㆍ제천 동헌에서 입으로 읊다 _ 143
ㆍ한양성 서쪽에서 물이 불어난 것을 보다 36운 _ 144
ㆍ가을 장마를 탄식하다 _ 150
ㆍ유배지에서 회포를 쓰다 _ 152
ㆍ물재가 화운한 시를 갚아드리다 _ 155
ㆍ연보 _ 163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169
〈권 1〉
ㆍ석천 임억령이 보내준 시를 갚아주다 _ 15
ㆍ적암의 시에 화답하다 _ 20
ㆍ국학에 들어가는 성산 이진사를 배웅하다 _ 23
ㆍ석천의 운을 받들어 화답하다 _ 28
ㆍ산으로 들어가는 조희를 배웅하며 맹호연의 시운을 쓰다 _ 31
ㆍ적암의 시를 받들어 화답하다 _ 33
ㆍ아들과의 문답을 간추려서 적암의 〈부언편〉을 받들어 갚아드리다 _ 36
〈권 2〉
ㆍ아내와 자식들을 협곡에 묻고 슬퍼하다 _ 42
ㆍ가을날 병을 탄식하다 _ 46
〈권 3〉
ㆍ옛시를 본받아 짓다 _ 48
ㆍ낙동역에서 자다 _ 52
ㆍ의령 고 현감의 시에 화답하다 _ 54
ㆍ꿈 속에서 형님을 보다 _ 56
ㆍ김제에서 부안에 이르다 _ 58
ㆍ금산에서 입으로 부르다 _ 59
ㆍ띠를 인 정자 _ 60
ㆍ괴로운 장마비 _ 63
ㆍ쾌심정에 쓰다 _ 64
ㆍ다시 언룡의 시에 화답하다 _ 65
ㆍ제목없이 짓다 _ 66
ㆍ직제학 서덕재를 배웅하다 _ 68
ㆍ중원 북쪽 나루에서 관동으로 돌아가는 아우와 헤어지다 _ 69
〈권 4〉
ㆍ황산 개태사 무쇠절구를 아우의 시에 차운해서 짓다 _ 70
ㆍ무옥만사 _ 71
ㆍ동지중추부사 김세필이 지비천에 집을 짓고 미장이가 오는 편에 편지를 보냈기에 시를 지어 답하다 _ 72
〈권 5〉
ㆍ동지중추부사 김세필의 시에 다시 차운하여 시골집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짓다 _ 74
ㆍ동지중추부사 김세필이 지은 시에 세 번째 화운하여 시골집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읊다 _ 78
속집
〈권 1〉
ㆍ서경의 부산정 시에 차운하다 _ 83
ㆍ소사에서 서경과 헤어지다 _ 85
ㆍ일본국 사승 역창의 시에 차운하다 _ 86
ㆍ무진정에서 탈춤을 즐기다 _ 87
ㆍ함창 광원루에서 현판시에 차운하다 _ 89
ㆍ상주에서 충주로 옮겨가면서 함창에 이르렀다가 조 현감에게 지어 주다 _ 90
ㆍ상주 교수 장세창의 시에 차운하여 헤어지는 마음을 쓰다 _ 91
ㆍ봉암사에 쓰다 _ 92
ㆍ봉암사 남루에서 _ 94
ㆍ상주에서 충주에 이르다 _ 95
ㆍ벗이 편지를 보내 배를 빌려서 한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기에 시를 지어 답하다 _ 96
ㆍ다시 화답하다 _ 100
ㆍ청주 초정약수에서 목욕하다 _ 101
ㆍ하서에게 지어 주다 _ 104
ㆍ형주를 지나면서 _ 105
ㆍ병이 나서 춥기에 연산현에 머무르다 _ 107
ㆍ율봉역에서 자다 _ 108
ㆍ금구 객관에서 두견새소리를 듣다 _ 109
ㆍ급제하여 남쪽으로 돌아가는 친구 전헌 징지를 송별하다 _ 110
ㆍ반가운 비 _ 111
ㆍ이 시를 부쳐 벗에게 답하다 _ 112
ㆍ이함창 부인 안씨 만사 _ 113
ㆍ술자리에서 늙은 내시에게 지어 주다 _ 115
ㆍ황헌지에게 부쳐서 주다 _ 116
ㆍ사옹원 분원 직장 권행과 헤어지다 _ 118
ㆍ생원 최언실에게 이 시를 지어 주며 배웅하다 _ 119
ㆍ아들 생일에 짓다 _ 122
ㆍ정 진사가 내 아들 민중과 함께 속리산에 들어가 책을 읽다 _ 123
ㆍ진사 허분이 감사를 찾아보고 사창의 민가에서 자다가 도둑에게 말을 잃어 버렸기에 시를 지어 위로하다 _ 124
ㆍ진천 정 현감에게 장난삼아 써보내 허분을 풀어 달라고 청하다 _ 125
ㆍ정한원에게 지어 주다 _ 126
ㆍ제목없이 짓다 _ 127
ㆍ석천의 시에 삼가 화답하다 _ 128
〈권 2〉
ㆍ석천에게 _ 129
ㆍ첩박명 _ 130
ㆍ진원 동헌의 시에 차운하다 _ 135
ㆍ수지의 시에 화운하다 _ 136
ㆍ헤어지는 술자리에서 즉흥시를 읊다 _ 137
ㆍ문경 남쪽 삼십 리에 있는 옛성을 지나다 _ 138
ㆍ일선의 시를 갚아드리다 _ 139
ㆍ상림역장의 집에서 묵다 _ 140
ㆍ비 오기를 빌다 _ 141
ㆍ꿈을 적다 _ 142
ㆍ제천 동헌에서 입으로 읊다 _ 143
ㆍ한양성 서쪽에서 물이 불어난 것을 보다 36운 _ 144
ㆍ가을 장마를 탄식하다 _ 150
ㆍ유배지에서 회포를 쓰다 _ 152
ㆍ물재가 화운한 시를 갚아드리다 _ 155
ㆍ연보 _ 163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169
저자
저자
박상
1474년(성종 5년) 5월 18일에 광주 서쪽 방하동 본댁에서 태어났다. 형님인 박정에게 글을 배웠다. 남보다 기억력이 뛰어나서 경술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문장이 나날이 나아졌다.
1505년에 전라도사(종5품)가 되었는데, 1506년 8월 금성관에서 우부리(牛夫里)를 곤장으로 때려 죽였다. 우부리는 연산군이 자신의 딸을 총애하자 그 힘을 믿고 제멋대로 포악한 짓을 저질렀다. 남의 부녀자를 약탈하고 남의 논밭을 빼앗아 가졌다. 감히 그의 죄를 다스리는 자가 없었으므로, 선생이 그를 장살(杖殺)하였다.
우부리를 죽이고는 형벌을 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여, 명령을 기다리려고 서울로 올라가는데, 정읍서 10리쯤 지나다가 고개에 이르자 고양이가 나타나서 작은 길로 인도하였다. 선생이 이상하게 여겨서 작은 길로 따라갔다. 그래서 연산군이 보낸 금부도사와 길이 엇갈리게 되었다. 중종이 반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대로 고양이를 따라서 금강산의 절까지 갔다. 중들이 놀라고도 기뻐하면서 "우리 절의 고양이가 보이지 않은 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 지금 행차를 인도하여 왔구나" 하고는 조용한 방으로 맞아들여 머물게 하였다. 그뒤에 광주 오산에 있는 약간의 논밭을 절에 주어, 고양이의 먹이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사람들이 그 고개를 묘망(猫望)이라고 불렀다.
1507년 고관(考官)에 임명되었지만, 굳이 사퇴하여 법관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태학생들이 상소하고 재상들이 구제하여 풀려났다. 1508년 임피 현령(종5품)으로 나갔다(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지방관을 자원한 것이다). 1515년 정월에는 청백리로 뽑혔다.
8월에 순창 군수 김정과 함께 폐비 신씨(신수근의 딸)의 복위를 청하고, 중종반정의 공신이었던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의 죄를 논하였다
1519년 11월에 남곤이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어진 선비들을 귀양 보내었다. 조광조가 능주로 귀양 간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 남문 밖 십 리 되는 곳에 있는 분수원까지 쫓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상중이어서 조정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벗어난 것이다.
1521년 봄에 상주 목사(정3품) 벼슬을 받았다. 여름에 충주 목사로 옮겼다. 남곤이 그를 조광조의 일파라고 상소하여 배척하였다. 1522년 7월에 ≪도정절문집(陶靖節文集)≫을 간행하고, 그 발문을 지었다. ≪동국사략≫을 지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문집을 모아서 간행하였다.
1527년 봄에 파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름에 나주 목사 벼슬을 받았다.
1530년 4월 11일에 방하동 집에서 죽었다. 6월에 봉황산 성재동 묘좌원에 장례지냈다.
1547년(명종 2년 정미년) 4월에 그의 제자인 임억령이 금산 군수로 있으면서 ≪눌재집≫을 간행하였다.
1505년에 전라도사(종5품)가 되었는데, 1506년 8월 금성관에서 우부리(牛夫里)를 곤장으로 때려 죽였다. 우부리는 연산군이 자신의 딸을 총애하자 그 힘을 믿고 제멋대로 포악한 짓을 저질렀다. 남의 부녀자를 약탈하고 남의 논밭을 빼앗아 가졌다. 감히 그의 죄를 다스리는 자가 없었으므로, 선생이 그를 장살(杖殺)하였다.
우부리를 죽이고는 형벌을 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여, 명령을 기다리려고 서울로 올라가는데, 정읍서 10리쯤 지나다가 고개에 이르자 고양이가 나타나서 작은 길로 인도하였다. 선생이 이상하게 여겨서 작은 길로 따라갔다. 그래서 연산군이 보낸 금부도사와 길이 엇갈리게 되었다. 중종이 반정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대로 고양이를 따라서 금강산의 절까지 갔다. 중들이 놀라고도 기뻐하면서 "우리 절의 고양이가 보이지 않은 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 지금 행차를 인도하여 왔구나" 하고는 조용한 방으로 맞아들여 머물게 하였다. 그뒤에 광주 오산에 있는 약간의 논밭을 절에 주어, 고양이의 먹이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사람들이 그 고개를 묘망(猫望)이라고 불렀다.
1507년 고관(考官)에 임명되었지만, 굳이 사퇴하여 법관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태학생들이 상소하고 재상들이 구제하여 풀려났다. 1508년 임피 현령(종5품)으로 나갔다(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지방관을 자원한 것이다). 1515년 정월에는 청백리로 뽑혔다.
8월에 순창 군수 김정과 함께 폐비 신씨(신수근의 딸)의 복위를 청하고, 중종반정의 공신이었던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의 죄를 논하였다
1519년 11월에 남곤이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어진 선비들을 귀양 보내었다. 조광조가 능주로 귀양 간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 남문 밖 십 리 되는 곳에 있는 분수원까지 쫓아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상중이어서 조정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벗어난 것이다.
1521년 봄에 상주 목사(정3품) 벼슬을 받았다. 여름에 충주 목사로 옮겼다. 남곤이 그를 조광조의 일파라고 상소하여 배척하였다. 1522년 7월에 ≪도정절문집(陶靖節文集)≫을 간행하고, 그 발문을 지었다. ≪동국사략≫을 지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문집을 모아서 간행하였다.
1527년 봄에 파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름에 나주 목사 벼슬을 받았다.
1530년 4월 11일에 방하동 집에서 죽었다. 6월에 봉황산 성재동 묘좌원에 장례지냈다.
1547년(명종 2년 정미년) 4월에 그의 제자인 임억령이 금산 군수로 있으면서 ≪눌재집≫을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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