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역사소설
끝나지 않은 백두산의 노래 『남이』. 권무일의 역사소설로, 세조 때 남이 장군이 북벌을 감행하여 여진을 발본색원하려는 의지와 과정을 담아냈다. 특히 20만 양병을 주장하고 실천에 옮기려는 기상을 살펴보았으며, 국가의 간성이 무너지고 나중에 민족의 비극이 연출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사건을 함께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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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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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긴 불세출의 영웅이 민족의 얼로 다시 태어났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頭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남아 20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뉘라서 대장부라 부르리오.
남이 장군을 떠올릴 때 백두산에 남겼다는 이 한 편의 시조가 가장 먼저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시조의 단어 하나를 정적들이 바꾸어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사지가 찢겨져 나가는 참형을 당했다는 이야기 정도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300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남이는 '충무공(忠武公)'으로 추서된다.
이렇듯 한번 역모에 연루되어 역적의 이름이 오르면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과 친족들까지 처참하게 죽거나 가문의 씨를 말리듯 그 일가들이 노비 혹은 관기로 나이를 불문하고 흩어지기 때문에 후대에 이르러 신원이 복원되더라도 그 개인의 기록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더구나 세조 때의 기록이 그 어느 왕조실록보다 많은 첨삭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남이 장군의 성장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세조 때 남이 장군이 옛 고구려의 도읍지(압록강에서 200리 북쪽)인 올라산성(지금의 오녀산성)을 점령한 일은 우리 역사상 영토의 확장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는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한 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적개공신 1등에 올랐으며, 서북변의 야인을 토벌하고 끊임없이 불벌을 누볐던 무장 중의 무장이었다.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세조의 총애를 받고, 공조판서에서 28세의 나이에 병조판서까지 오른 인물이다.
저자는 남이 장군의 전설이 남아있는 축령산과 남이섬을 찾아 그곳을 출생과 성장의 무대로 삼으면서 실록의 비어있는 행간을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특히 남이 장군이 북벌을 감행하여 여진을 발본색원하려 했던 의지와 미래를 예측하여 20만 양병을 주장하고 실천에 옮기려 했으나 미처 원대한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억울하게 죽음으로써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국가 간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로 세조의 시대가 열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한명회, 신숙주 등 당대의 거물급 정치인들의 권좌를 향한 욕망은 수양대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 4명의 임금을 섬기며 뛰어난 학자이자 백두산 호랑이로 불렸던 김종서 장군을 한순간에 제거해 버리고, 단종의 복위를 위해 거사를 준비했던 사육신의 처형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피바람을 딛고 일어선 세조는 끊임없이 반정공신들의 힘을 이용하는 한편 견제하며 자신의 왕업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지만 그가 가장 아꼈고 믿었던 남이 장군은 세조의 죽음과 함께 원대한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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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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