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시선(한국의 한시 29)
윤선도의 『고산 윤선도 시선』은 〈국도에서 배를 돌리며〉, 〈안변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읊다〉, 〈운을 불러 양수재에게 지어주다〉, 〈날 저물어 광나루 시골집에서 자며 우연히 읊다〉, 〈하씨 집안에 시집간 당고모의 죽음을 슬퍼하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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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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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중에서
목차
목차
국도에서 배를 돌리며ㆍ13
안변으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읊다ㆍ14
운을 불러 양수재에게 지어주다ㆍ15
날 저물어 광나루 시골집에서 자며 우연히 읊다ㆍ16
하씨 집안에 시집간 당고모의 죽음을 슬퍼하다ㆍ17
남가희의 죽음을 슬퍼하며ㆍ18
수원 벽 위에 쓰여 있는 시에 차운하다ㆍ19
새벽에 길을 가며ㆍ20
여산 미륵당ㆍ21
병이 그치다ㆍ23
아버님 대신 차운해 정언 강대진의 시를 갚다ㆍ24
을묘년 섣달에 남양 큰아버님의 옛집에 갔다가 느낌이 있어 율시 두 수를 짓다ㆍ25
면숙의 유배지로 가는 면부를 보내며ㆍ27
겸보 숙장의 시에 차운하여 회포를 읊다ㆍ29
홍면숙에게 지어주다ㆍ30
길가에 있는 사람에게 장난삼아 지어주다ㆍ32
길주 가는 길에서ㆍ33
경원에 이르러 셋집에 쓰다ㆍ34
잠이 깨어 어버이를 생각하다ㆍ36
친구를 생각하다ㆍ37
정인관암ㆍ38
건원보를 나서며 지어 주다ㆍ39
다시 정인관암에 오르다ㆍ40
곡수대ㆍ41
달을 보고 어버이를 생각하다ㆍ43
진호루에 올라 처마 위의 시에 차운하다ㆍ44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ㆍ45
매미 소리를 듣다ㆍ46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ㆍ47
낙망의 시에 차운하다ㆍ48
두통을 앓으면서 할 일이 없어 〈구가〉를 펼쳐 읽다가 느낌이 있어ㆍ49
다시 앞 시의 운을 쓰다ㆍ51
집을 짓고 나서 흥에 겨워ㆍ52
「김 장군전」 뒤에 쓰다ㆍ53
아우와 헤어지면서 지어 주다ㆍ55
병중에 회포를 풀다ㆍ57
장자호의 시에 차운하다ㆍ58
옛시에 차운하여 가을밤에 우연히 읊다ㆍ59
대둔사에서 놀다가 처마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ㆍ60
두무포에서 배를 거슬러 올라가며ㆍ62
환희원 주막 벽 위의 시에 차운하다ㆍ63
차운하여 답하다ㆍ64
유상주의 시를 받들어 차운하다ㆍ65
은산 객관에서 할아버지 이견당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ㆍ66
묵매ㆍ69
환희원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ㆍ70
가야산에 노닐다ㆍ71
죽은 아들 진사 의미를 슬퍼하며ㆍ72
오운대에서 짓다ㆍ73
낚싯배ㆍ74
낙서재ㆍ75
황원잡영ㆍ76
대재를 지나면서ㆍ78
하늘을 깁다ㆍ79
새 집에서 한가위 달을 바라보다ㆍ80
산속 서재에서 밤새 이야기하며 계하의 시에 차운하다ㆍ81
시름을 풀다ㆍ82
다섯 그루 버드나무ㆍ84
옛 거문고를 읊으며 아울러 시를 쓰다ㆍ85
금쇄동을 처음 발견하고 짓다ㆍ87
낙서재에서 우연히 읊다ㆍ88
이웃스님이 황무지 개간하는 일을 와서 돕기에 감사하다ㆍ89
권반금과 헤어지며 지어주다ㆍ90
책상을 마주하고ㆍ91
우연히 읊다ㆍ92
종이연에 장난삼아 짓다ㆍ93
차운하여 한화숙에게 부치다ㆍ94
인평대군께 삼가 차운하여 바치다ㆍ95
임진년 사월 이십팔 일에 비가 오는 것을 기뻐하다ㆍ97
심희성이 화답한 시에 감사하다ㆍ99
이계하가 심희성에게 차운해 지어준 시의 운을 다시 써서 세 수를 지어 감사하며 부치다ㆍ100
방장산인의 〈부용조수가〉」에 장남삼아 차운하다ㆍ101
옛시의 구절을 모아 부채에 써서 누구에게 주다ㆍ103
병들어 고산으로 돌아오다가 배 위에서 흥을 느끼다ㆍ106
차운하여 국경에게 부치다ㆍ108
정심암ㆍ109
계묘년 세밑에 느낀 바 있어 노소재의 시체를 본받아 짓다ㆍ110
사간 이연지의 시에 차운하다ㆍ111
사실대로 쓰다ㆍ112
시름을 풀다ㆍ113
[부록]
작품해설 / 自然ㆍ人間ㆍ藝術 / 윤덕진ㆍ117
연보ㆍ128
原詩題目 찾아보기ㆍ141
저자
저자
성은 윤씨이고 휘는 선도이며, 자는 약이(約而)이다. 그의 선조는 호남 해남현 사람이다. 고조의 휘는 효정(孝貞)인데, 생원에 합격했지만 숨어 사는 것을 덕으로 여겨 벼슬하지 않았다. 호는 어초은(漁樵隱)이며,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612년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정치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상소를 올린 일로 서울에서 2천여 리나 떨어진 경원으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북쪽 변방의 오랑캐와 통할 수도 있다는 이이첨의 말을 듣고 남쪽으로 유배지가 옮겨진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금오랑으로 부름받았으나, 곧 파직되어 해남으로 돌아갔다. 1628년에는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로 임명되었다. 1632년에는 호조좌랑으로 있다가 곧 공조정랑으로 다시 첨정으로 승진했으나 병 때문에 해남으로 돌아갔다. 다음해에는 관서지방 경시관이 되었다가 병으로 사퇴를 청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종묘사직ㆍ원손ㆍ대군을 모시고 먼저 강화도로 향했으나 청나라와 화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을 듣고 탐라도에 들어가 살려다가 보길도의 모습을 보고 그곳에 정착하여 부용동이라 이름 지은 격자봉 아래에 낙서재라 편액을 걸고 그곳에서 지내는 중, 호란 때 임금께 문안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영덕에 유배되었다. 1671년 낙서재에서 여든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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