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 시집(개정증보판)(한국의 한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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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땅에서 육두품의 아들로 태어난 최치원은 넓은 세계에서 자기의 재주를 맘껏 펴 보려고 당나라로 유학 갔다. 6년 만에 빈공과에 급제하여 벼슬도 얻었고 〈토황소격문〉으로 황소의 난을 진압하여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외국인이었던 그에게는 뛰어넘지 못할 장벽이 있었고, 그는 다시 고향 신라를 그리워하였고 다시 신라로 돌아왔다. 과연 그의 정신적 고향은 어디였을까?
그를 철저한 사대주의자로 비난한 애국지사도 있었고, 우리나라 한문학의 비조라고 추앙한 문인들도 많았다. 그가 만당(晩唐) 시절에 유학 갔기에 그의 시는 격이 낮다고 깎아내린 비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만당 시절에 유학 간 것이 어찌 그의 잘못이겠으며, 한문학을 발전시킨 것이 어찌 그의 죄였을까?『계원필경집』과『동문선』에 실린 그의 글에 의해서만 그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그의 시를 모두 엮었다.
그를 철저한 사대주의자로 비난한 애국지사도 있었고, 우리나라 한문학의 비조라고 추앙한 문인들도 많았다. 그가 만당(晩唐) 시절에 유학 갔기에 그의 시는 격이 낮다고 깎아내린 비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만당 시절에 유학 간 것이 어찌 그의 잘못이겠으며, 한문학을 발전시킨 것이 어찌 그의 죄였을까?『계원필경집』과『동문선』에 실린 그의 글에 의해서만 그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그의 시를 모두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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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계원필경집』에 실린 시 _11
ㆍ태위께 _13
ㆍ피난길에 들른 상서께 _15
ㆍ돌아오는 제비 노래를 지어서 태위에게 바치다 _17
ㆍ양섬 수재의 송별시에 답하다 _18
ㆍ일행이 산양에 머물 적에 태위가 잇따라 옷감을 보내면서 부모를 뵙고 축수하는 예물로
삼게 하였으므로 삼가 시를 지어 사례하다 _20
ㆍ여도사와 헤어지며 _22
ㆍ진사 양섬이 헤어지며 보내준 시를 받고서 _23
ㆍ초주 장상서가 수곽에서 영접하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 _24
ㆍ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오만 수재에게 _25
ㆍ바위 봉우리 _26
ㆍ조수 물결 _27
ㆍ바닷가 모래톱 _28
ㆍ들불 _29
ㆍ진달래 _30
ㆍ바다 갈매기 _31
ㆍ산마루 가파른 바윗돌 _32
ㆍ바윗돌 위의 키작은 소나무 _34
ㆍ붉게 물든 나무 _36
ㆍ바위 위에 흐르는 샘물 _37
ㆍ섣달 그믐날 밤 벗에게 시를 받고서 _38
ㆍ봄바람 _39
ㆍ바닷가에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 _40
ㆍ봄날 새벽에 한가히 바라보며 _41
ㆍ바닷가를 한가롭게 걸으며 _42
ㆍ해동으로 돌아올 즈음에 참산의 봄 경치를 바라보며 _43
ㆍ김원외가 참산의 청상인에게 준 시에 화운하다 _44
ㆍ해문 절간에 있는 버들 _45
『동문선』에 실린 시 _47
ㆍ세상 사람들은 단술만 즐긴다네 _49
ㆍ접시꽃 _50
ㆍ강남의 여인 _51
ㆍ마음의 거울을 닦고 _52
ㆍ장안 여사 이웃에 우신미 장관이 살기에 시를 지어 부친다 _53
ㆍ반백 년 도를 닦는 지광상인께 _54
ㆍ운봉사에서 _55
ㆍ당성(唐城)에 나그네로 놀러 갔더니 선왕(先王) 때 악관(樂官)이 서(西)로 돌아오려 하면 서, 밤에 두어 곡(曲)을 불며 선왕의 은혜를 그리워하여 슬피 울기에, 시를 지어 주다 _56
ㆍ윤주 자화사 상방에 올라 _57
ㆍ가을날에 우치현을 다시 지나며 이장관에게 부치다 _58
ㆍ강남으로 돌아가는 진사 오만을 보내며 _59
ㆍ봄날 새벽에 우연히 쓰다 _60
ㆍ늦은 봄 즉흥으로 동료 사자 고운에게 화답하다 _62
ㆍ진사 장교가 마을에 살면서 병중에 부친 시를 화답하다 _63
ㆍ가을날 밤비가 내리는데 _65
ㆍ나는 참으로 중이로구나 _66
ㆍ길을 가다가 _67
ㆍ요주파양정에서 _68
ㆍ산양에서 고향의 벗과 헤어지며 _69
ㆍ우강 역정에서 _70
ㆍ봄날에 벗을 청하였으나 오지 않아 절구를 부치다 _71
ㆍ서경 소윤 김준과 헤어지며 _72
ㆍ금천사 주지께 _73
ㆍ재곡 난야에 혼자 사는 스님께 _74
ㆍ황산강 임경대에서 _75
ㆍ가야산 독서당에 쓰다 _76
우리나라 놀이 다섯 편 _77
ㆍ금칠한 공 놀이 _79
ㆍ월전 _80
ㆍ큰 얼굴 _81
ㆍ속독 _82
ㆍ사자 _83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최치원의 친필 시들 _85
부록 _91
ㆍ『계원필경집』 머리말 _93
ㆍ부산 해운대에 있는 최치원 동상의 비문/ 이은상 _96
ㆍ마음은 만리 저 밖에/ 허경진 _101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112
ㆍ태위께 _13
ㆍ피난길에 들른 상서께 _15
ㆍ돌아오는 제비 노래를 지어서 태위에게 바치다 _17
ㆍ양섬 수재의 송별시에 답하다 _18
ㆍ일행이 산양에 머물 적에 태위가 잇따라 옷감을 보내면서 부모를 뵙고 축수하는 예물로
삼게 하였으므로 삼가 시를 지어 사례하다 _20
ㆍ여도사와 헤어지며 _22
ㆍ진사 양섬이 헤어지며 보내준 시를 받고서 _23
ㆍ초주 장상서가 수곽에서 영접하기에 시를 지어 사례하다 _24
ㆍ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오만 수재에게 _25
ㆍ바위 봉우리 _26
ㆍ조수 물결 _27
ㆍ바닷가 모래톱 _28
ㆍ들불 _29
ㆍ진달래 _30
ㆍ바다 갈매기 _31
ㆍ산마루 가파른 바윗돌 _32
ㆍ바윗돌 위의 키작은 소나무 _34
ㆍ붉게 물든 나무 _36
ㆍ바위 위에 흐르는 샘물 _37
ㆍ섣달 그믐날 밤 벗에게 시를 받고서 _38
ㆍ봄바람 _39
ㆍ바닷가에서 봄 경치를 바라보며 _40
ㆍ봄날 새벽에 한가히 바라보며 _41
ㆍ바닷가를 한가롭게 걸으며 _42
ㆍ해동으로 돌아올 즈음에 참산의 봄 경치를 바라보며 _43
ㆍ김원외가 참산의 청상인에게 준 시에 화운하다 _44
ㆍ해문 절간에 있는 버들 _45
『동문선』에 실린 시 _47
ㆍ세상 사람들은 단술만 즐긴다네 _49
ㆍ접시꽃 _50
ㆍ강남의 여인 _51
ㆍ마음의 거울을 닦고 _52
ㆍ장안 여사 이웃에 우신미 장관이 살기에 시를 지어 부친다 _53
ㆍ반백 년 도를 닦는 지광상인께 _54
ㆍ운봉사에서 _55
ㆍ당성(唐城)에 나그네로 놀러 갔더니 선왕(先王) 때 악관(樂官)이 서(西)로 돌아오려 하면 서, 밤에 두어 곡(曲)을 불며 선왕의 은혜를 그리워하여 슬피 울기에, 시를 지어 주다 _56
ㆍ윤주 자화사 상방에 올라 _57
ㆍ가을날에 우치현을 다시 지나며 이장관에게 부치다 _58
ㆍ강남으로 돌아가는 진사 오만을 보내며 _59
ㆍ봄날 새벽에 우연히 쓰다 _60
ㆍ늦은 봄 즉흥으로 동료 사자 고운에게 화답하다 _62
ㆍ진사 장교가 마을에 살면서 병중에 부친 시를 화답하다 _63
ㆍ가을날 밤비가 내리는데 _65
ㆍ나는 참으로 중이로구나 _66
ㆍ길을 가다가 _67
ㆍ요주파양정에서 _68
ㆍ산양에서 고향의 벗과 헤어지며 _69
ㆍ우강 역정에서 _70
ㆍ봄날에 벗을 청하였으나 오지 않아 절구를 부치다 _71
ㆍ서경 소윤 김준과 헤어지며 _72
ㆍ금천사 주지께 _73
ㆍ재곡 난야에 혼자 사는 스님께 _74
ㆍ황산강 임경대에서 _75
ㆍ가야산 독서당에 쓰다 _76
우리나라 놀이 다섯 편 _77
ㆍ금칠한 공 놀이 _79
ㆍ월전 _80
ㆍ큰 얼굴 _81
ㆍ속독 _82
ㆍ사자 _83
지리산 석굴 속에서 발견했다는 최치원의 친필 시들 _85
부록 _91
ㆍ『계원필경집』 머리말 _93
ㆍ부산 해운대에 있는 최치원 동상의 비문/ 이은상 _96
ㆍ마음은 만리 저 밖에/ 허경진 _101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112
저자
저자
최치원
신라 말기의 학자, 문장가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해운(海雲), 호는 고운(孤雲)이다. 경주 사량부(또는 본피부) 출신이다. 857년(헌안왕 1)에 태어나 868년(경문왕 8)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7년 만인 874년에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그 뒤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서 문한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29세 때 신라에 돌아와 시독(侍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라 신분체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함을 깨닫고 외지로 나가 태산군ㆍ천령군ㆍ부성군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894년에는 시무책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려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승 현준(賢俊) 및 정현사(定玄師)와 도우(道友)를 맺고 가야산에 은거하였다.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908년(효공왕12) 말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고 문창후(文昌侯)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금체시(今體詩)》, 《잡시부(雜詩賦)》, 《중산복궤집(中山覆需集)》 등의 시문집과 사서(史書)인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불교관계 글인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석순응전(釋順應傳)》, 《석이정전(釋利貞傳)》 등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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