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산 허균 시선(개정증보판 2판)(한국의 한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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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시는 그의 문집에 728편이 실려 있다. 그 밖에 중국의 시선(詩選)이라든가 그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모은 「황화집」에 20여 편이 실려 있다. 그의 시 749편 가운데 109편을 가려 뽑아서 이 시선을 엮었다.
그는 큰 포부를 지니고 벼슬길에 나섰지만 그의 이상과 현실은 맞지 않았다. 너무나도 단단한 현실의 벽에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온 그의 삶이 749편의 시에 나타나 있다. 현실에 대해서 불평을 내어 뱉은 것이 그의 시이고, 50년 그의 생애를 그린 것이 그의 시이다. 이 시선에서는 그의 일생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그의 시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다.
-머리말 중에서
그러나 1,400편의 시를 쓰는 동안에도 그는 끝내 현실과 화합하지도 못했고, 극복할 수도 체념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안주하여 화합하며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유배지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현실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위협을 느낀 이이첨은 끝내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뒤늦게야 자기가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는 ‘할 말이 있다’고 했지만, 그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새로 세우려고 했던 사회의 모습이 확실치는 않지만,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탁오가 봉건사회를 비판하다가 끝내 이기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었던 것처럼, 그도 억압적인 현실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다가 끝내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호 교산(蛟山)이 끝내 하늘로 오르지 못할 이무기의 좌절을 암시한 것처럼, 그의 비극적 죽음도 결국은 그의 시 전체를 마무리짓는 커다란 상징이다. 그가 귀거래를 말로만 부르짖으면서 한번도 실천하지 못했을 때, 그의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다. -〈허균, 좌절당한 이무기〉 중에서
그는 큰 포부를 지니고 벼슬길에 나섰지만 그의 이상과 현실은 맞지 않았다. 너무나도 단단한 현실의 벽에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온 그의 삶이 749편의 시에 나타나 있다. 현실에 대해서 불평을 내어 뱉은 것이 그의 시이고, 50년 그의 생애를 그린 것이 그의 시이다. 이 시선에서는 그의 일생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그의 시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다.
-머리말 중에서
그러나 1,400편의 시를 쓰는 동안에도 그는 끝내 현실과 화합하지도 못했고, 극복할 수도 체념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안주하여 화합하며 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유배지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현실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위협을 느낀 이이첨은 끝내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뒤늦게야 자기가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는 ‘할 말이 있다’고 했지만, 그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새로 세우려고 했던 사회의 모습이 확실치는 않지만,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탁오가 봉건사회를 비판하다가 끝내 이기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었던 것처럼, 그도 억압적인 현실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다가 끝내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호 교산(蛟山)이 끝내 하늘로 오르지 못할 이무기의 좌절을 암시한 것처럼, 그의 비극적 죽음도 결국은 그의 시 전체를 마무리짓는 커다란 상징이다. 그가 귀거래를 말로만 부르짖으면서 한번도 실천하지 못했을 때, 그의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다. -〈허균, 좌절당한 이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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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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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젊은 날의 시들]
ㆍ서울 가는 유연숙을 보내면서 _ 15
ㆍ꽃이 지다 _ 16
ㆍ보는 대로 기록하다 _ 17
ㆍ처음 강릉에 이르러서 _ 19
ㆍ피난 와서 잠시 쉬며 _ 20
ㆍ두보의 회고시에서 운을 받아 _ 2
ㆍ덕원 민가에서 자며 _ 23
ㆍ매 _ 24
ㆍ정 스님에게 _ 25
ㆍ흥에 겨워 _ 28
ㆍ죽월헌에서 _ 30
ㆍ칠석날 밤에 회포를 읊다 _ 32
ㆍ스승 손곡을 위하여 _ 34
ㆍ선동요 _ 35
[처음 중국을 다녀오면서]
ㆍ광원루에 올라서 _ 39
ㆍ백상루 _ 40
ㆍ전문령 고개를 넘어서며 _ 42
ㆍ장진보 관운장의 사당에서 _ 43
ㆍ행산에서 _ 44
ㆍ백이 숙제 사당에서 _ 45
ㆍ일년 밝은 달빛이 오늘 밤에 으뜸이라 _ 74
ㆍ요동에 이르러 아내의 편지를 받아 보고 _ 94
[나의 길은 갈수록 어렵기만 하구나]
ㆍ막부에서 일이 없어 우린의 각야 운에 차운하여 회포를 서술하다 _ 53
ㆍ설을 맞으며 _ 55
ㆍ대정강을 건너며 _ 56
ㆍ철산강을 건너며 _ 57
ㆍ의주에서 _ 58
ㆍ포은 선생의 옛 집을 지나면서 _ 59
ㆍ임진강 나루에서 _ 62
ㆍ오명제의 〈남장귀흥 〉에 차운하다 _ 63
ㆍ서담의 시에 차운하여 스님의 시권에 쓰다 _ 46
ㆍ아랑포 _ 65
ㆍ용연 _ 66
ㆍ황주 염곡 _ 67
ㆍ운을 나누어 산(山)자를 얻다 _ 71
ㆍ섣달 그믐 _ 73
ㆍ회포를 풀다 _ 74
ㆍ작은 복사꽃 _ 75
ㆍ참판 박동량에게 시를 부치며 조관 자리를 구하다 _ 67
ㆍ스스로 탄식하다 _ 77
ㆍ아침에 판교원을 떠나다 _ 79
ㆍ스스로 희롱하다 _ 80
ㆍ옛 장성을 향해 떠나며 _ 81
ㆍ교외를 나서며 _ 82
ㆍ숙정헌에 몇이 모여서 _ 83
ㆍ윤계선이 보내온 시에 차운하여 _ 84
ㆍ벗을 그리워하며 _ 86
ㆍ한밤 _ 87
[풍악기행]
ㆍ늙은 떠돌이 아낙네의 원망 _ 91
ㆍ명연 _ 95
ㆍ만폭동 _ 96
ㆍ원통사 _ 98
ㆍ구정봉 _ 100
ㆍ도솔원 _ 103
ㆍ경고에서 정생과 헤어져 산을 내려오다 _ 104
ㆍ사촌에 이르다 _ 106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노라]
ㆍ군에 이르러 화학루에 오르다 _ 109
ㆍ민희안의 첩 노래를 들으며 _ 10
ㆍ시름을 부치다 _ 111
ㆍ이정이 오다 _ 112
ㆍ산으로 돌아가는 무위 스님을 배웅하며 _ 114
ㆍ황주목사가 두 기생을 보내 주다 _ 116
ㆍ석봉이 찾아오다 _ 117
ㆍ석봉의 부음을 듣다 _ 118
ㆍ스스로 조롱하다 _ 119
ㆍ《공동집 》을 읽다 _ 120
ㆍ《대복집 》을 읽다 _ 121
ㆍ방림 _ 122
ㆍ삼척 고을에 이르자 옛생각이 나다 _ 123
ㆍ우연히 읊다 _ 124
ㆍ두 친구를 꿈꾸다 _ 125
ㆍ서재에 머물며 짓다 _ 127
ㆍ벼슬에서 내쫓겠다는 소식을 듣다 _ 130
[떡을 바쳐야 벼슬을 얻지]
ㆍ홍주목사 자리를 부탁했지만 얻지 못하고 이안눌이 얻다 _ 135
ㆍ스스로 희롱하다 _ 136
ㆍ《서적공집》을 읽다 _ 137
ㆍ《창명집》을 읽다 _ 138
ㆍ《엄주사부고》를 읽다 _ 139
ㆍ오정에게 큰 떡 노래를 부치다 _ 140
ㆍ명주를 그리워하다 _ 143
ㆍ병이 심해 지세와 여장을 생각하다 _ 144
ㆍ내가 화가 동하는 병 때문에 중국에 사신으로 갈 수 없으므로 순군(巡軍)에서 견책을 기다리며 장구를 지어 기헌보에게 주어 회포를 풀다 _ 145
ㆍ벼슬을 내놓으라시니 기뻐서 _ 151
ㆍ전오자시 _ 152
ㆍ《변화천집 》을 읽다 _ 161
ㆍ《사산인집 》을 읽다 _ 162
ㆍ《왕봉상집 》을 읽다 _ 163
ㆍ서천목 오담추의 두 문집을 읽다 _ 164
ㆍ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다 _ 165
ㆍ유감 _ 168
ㆍ나주목사에 제수되었다가 곧바로 빼앗기고서 _ 169
ㆍ의금부 감옥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_ 170
[궁사 - 자물쇠 잠그는 소리만 들려오네]
ㆍ궁사 _ 173
[유배지에서]
ㆍ경포를 그리워하며 _ 185
ㆍ동행에게 바치는 운을 써서 시름을 부치다 _ 819
ㆍ늦은 봄날 _ 191
ㆍ소자정에게 답한 운을 써서 시름을 읊다 _ 912
ㆍ귀양와 머무는 집에서 _ 193
ㆍ손님들을 물리치고 혼자 앉아서 _ 194
ㆍ관아의 벽도가 비에 꺾였기에 _ 195
ㆍ문집을 다 엮고서 _ 197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
ㆍ지난해 압록강을 건너는 날 유격장군 구탄 유융이 망강사 연회에 초청하기에 시를 지어주었는데, 올해에 또 사신으로 다시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건만 구공이 무예 시험의 일로 힐책 공문을 받고 요양으로 갔기에 옛 모임을 이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느낌이 있어 짓다 _ 021
ㆍ길가에서 서상기 연희를 하는 자가 있기에 _ 023
ㆍ연경 시장바닥의 노래 _ 205
ㆍ이씨의 《분서》를 읽고 _ 208
ㆍ원중랑의 〈주평〉 뒤에 쓰다 _ 210
ㆍ19일 자금성에 들어가 천자를 뵙다 _ 211
ㆍ동짓날 자금성에 들어가 조회하다 _ 213
ㆍ종계변무에 관한 복제에 '장차 사관으로 하여금 문안을 찬수하여 초출해서 해내에 보여야 합니다 '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기록하여 시를 짓다 _ 125
ㆍ북원의 낡은 초가를 그리워하면서 앞 시의 운을 가지고 회포를 적다 _ 217
ㆍ이른 아침에 황제 은혜에 감사하다 _ 219
ㆍ용우기 공이 저술한 《성학계관 》을 읽고서 _ 221
ㆍ정월 보름날 밤에 거리에 나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느낌이 있어서 짓다. 상사 지애의 운을 쓰다 _ 223
ㆍ병중에 회포를 기록하면서 평생을 추억하다 _ 224
ㆍ요동에 이르러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아보니 조카 친이 과거에 급제했다 고 하므로 기쁨을 기록하다 _ 230
[부록]
ㆍ허균, 좌절당한 이무기 _ 235
ㆍ연보 _ 239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244
ㆍ서울 가는 유연숙을 보내면서 _ 15
ㆍ꽃이 지다 _ 16
ㆍ보는 대로 기록하다 _ 17
ㆍ처음 강릉에 이르러서 _ 19
ㆍ피난 와서 잠시 쉬며 _ 20
ㆍ두보의 회고시에서 운을 받아 _ 2
ㆍ덕원 민가에서 자며 _ 23
ㆍ매 _ 24
ㆍ정 스님에게 _ 25
ㆍ흥에 겨워 _ 28
ㆍ죽월헌에서 _ 30
ㆍ칠석날 밤에 회포를 읊다 _ 32
ㆍ스승 손곡을 위하여 _ 34
ㆍ선동요 _ 35
[처음 중국을 다녀오면서]
ㆍ광원루에 올라서 _ 39
ㆍ백상루 _ 40
ㆍ전문령 고개를 넘어서며 _ 42
ㆍ장진보 관운장의 사당에서 _ 43
ㆍ행산에서 _ 44
ㆍ백이 숙제 사당에서 _ 45
ㆍ일년 밝은 달빛이 오늘 밤에 으뜸이라 _ 74
ㆍ요동에 이르러 아내의 편지를 받아 보고 _ 94
[나의 길은 갈수록 어렵기만 하구나]
ㆍ막부에서 일이 없어 우린의 각야 운에 차운하여 회포를 서술하다 _ 53
ㆍ설을 맞으며 _ 55
ㆍ대정강을 건너며 _ 56
ㆍ철산강을 건너며 _ 57
ㆍ의주에서 _ 58
ㆍ포은 선생의 옛 집을 지나면서 _ 59
ㆍ임진강 나루에서 _ 62
ㆍ오명제의 〈남장귀흥 〉에 차운하다 _ 63
ㆍ서담의 시에 차운하여 스님의 시권에 쓰다 _ 46
ㆍ아랑포 _ 65
ㆍ용연 _ 66
ㆍ황주 염곡 _ 67
ㆍ운을 나누어 산(山)자를 얻다 _ 71
ㆍ섣달 그믐 _ 73
ㆍ회포를 풀다 _ 74
ㆍ작은 복사꽃 _ 75
ㆍ참판 박동량에게 시를 부치며 조관 자리를 구하다 _ 67
ㆍ스스로 탄식하다 _ 77
ㆍ아침에 판교원을 떠나다 _ 79
ㆍ스스로 희롱하다 _ 80
ㆍ옛 장성을 향해 떠나며 _ 81
ㆍ교외를 나서며 _ 82
ㆍ숙정헌에 몇이 모여서 _ 83
ㆍ윤계선이 보내온 시에 차운하여 _ 84
ㆍ벗을 그리워하며 _ 86
ㆍ한밤 _ 87
[풍악기행]
ㆍ늙은 떠돌이 아낙네의 원망 _ 91
ㆍ명연 _ 95
ㆍ만폭동 _ 96
ㆍ원통사 _ 98
ㆍ구정봉 _ 100
ㆍ도솔원 _ 103
ㆍ경고에서 정생과 헤어져 산을 내려오다 _ 104
ㆍ사촌에 이르다 _ 106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노라]
ㆍ군에 이르러 화학루에 오르다 _ 109
ㆍ민희안의 첩 노래를 들으며 _ 10
ㆍ시름을 부치다 _ 111
ㆍ이정이 오다 _ 112
ㆍ산으로 돌아가는 무위 스님을 배웅하며 _ 114
ㆍ황주목사가 두 기생을 보내 주다 _ 116
ㆍ석봉이 찾아오다 _ 117
ㆍ석봉의 부음을 듣다 _ 118
ㆍ스스로 조롱하다 _ 119
ㆍ《공동집 》을 읽다 _ 120
ㆍ《대복집 》을 읽다 _ 121
ㆍ방림 _ 122
ㆍ삼척 고을에 이르자 옛생각이 나다 _ 123
ㆍ우연히 읊다 _ 124
ㆍ두 친구를 꿈꾸다 _ 125
ㆍ서재에 머물며 짓다 _ 127
ㆍ벼슬에서 내쫓겠다는 소식을 듣다 _ 130
[떡을 바쳐야 벼슬을 얻지]
ㆍ홍주목사 자리를 부탁했지만 얻지 못하고 이안눌이 얻다 _ 135
ㆍ스스로 희롱하다 _ 136
ㆍ《서적공집》을 읽다 _ 137
ㆍ《창명집》을 읽다 _ 138
ㆍ《엄주사부고》를 읽다 _ 139
ㆍ오정에게 큰 떡 노래를 부치다 _ 140
ㆍ명주를 그리워하다 _ 143
ㆍ병이 심해 지세와 여장을 생각하다 _ 144
ㆍ내가 화가 동하는 병 때문에 중국에 사신으로 갈 수 없으므로 순군(巡軍)에서 견책을 기다리며 장구를 지어 기헌보에게 주어 회포를 풀다 _ 145
ㆍ벼슬을 내놓으라시니 기뻐서 _ 151
ㆍ전오자시 _ 152
ㆍ《변화천집 》을 읽다 _ 161
ㆍ《사산인집 》을 읽다 _ 162
ㆍ《왕봉상집 》을 읽다 _ 163
ㆍ서천목 오담추의 두 문집을 읽다 _ 164
ㆍ계랑의 죽음을 슬퍼하다 _ 165
ㆍ유감 _ 168
ㆍ나주목사에 제수되었다가 곧바로 빼앗기고서 _ 169
ㆍ의금부 감옥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_ 170
[궁사 - 자물쇠 잠그는 소리만 들려오네]
ㆍ궁사 _ 173
[유배지에서]
ㆍ경포를 그리워하며 _ 185
ㆍ동행에게 바치는 운을 써서 시름을 부치다 _ 819
ㆍ늦은 봄날 _ 191
ㆍ소자정에게 답한 운을 써서 시름을 읊다 _ 912
ㆍ귀양와 머무는 집에서 _ 193
ㆍ손님들을 물리치고 혼자 앉아서 _ 194
ㆍ관아의 벽도가 비에 꺾였기에 _ 195
ㆍ문집을 다 엮고서 _ 197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
ㆍ지난해 압록강을 건너는 날 유격장군 구탄 유융이 망강사 연회에 초청하기에 시를 지어주었는데, 올해에 또 사신으로 다시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건만 구공이 무예 시험의 일로 힐책 공문을 받고 요양으로 갔기에 옛 모임을 이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느낌이 있어 짓다 _ 021
ㆍ길가에서 서상기 연희를 하는 자가 있기에 _ 023
ㆍ연경 시장바닥의 노래 _ 205
ㆍ이씨의 《분서》를 읽고 _ 208
ㆍ원중랑의 〈주평〉 뒤에 쓰다 _ 210
ㆍ19일 자금성에 들어가 천자를 뵙다 _ 211
ㆍ동짓날 자금성에 들어가 조회하다 _ 213
ㆍ종계변무에 관한 복제에 '장차 사관으로 하여금 문안을 찬수하여 초출해서 해내에 보여야 합니다 '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기록하여 시를 짓다 _ 125
ㆍ북원의 낡은 초가를 그리워하면서 앞 시의 운을 가지고 회포를 적다 _ 217
ㆍ이른 아침에 황제 은혜에 감사하다 _ 219
ㆍ용우기 공이 저술한 《성학계관 》을 읽고서 _ 221
ㆍ정월 보름날 밤에 거리에 나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느낌이 있어서 짓다. 상사 지애의 운을 쓰다 _ 223
ㆍ병중에 회포를 기록하면서 평생을 추억하다 _ 224
ㆍ요동에 이르러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아보니 조카 친이 과거에 급제했다 고 하므로 기쁨을 기록하다 _ 230
[부록]
ㆍ허균, 좌절당한 이무기 _ 235
ㆍ연보 _ 239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244
저자
저자
교산 허균
1569년 허엽의 삼남 삼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건천동에서 자랐다. 1579년 아버지가 경상감사가 되어 내려갔는데 다음 해에 아버지가 상주 객관에서 죽었다. 1582년 작은형을 찾아온 시인 이달을 처음 만났고 이달은 나중에 그의 스승이 되었다. 1588년 작은형이 죽고, 1589년에 누이 난설헌이 죽은 후에 난설헌의 시 210편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홀어머니 김씨와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강릉에 도착했고, 사천 애일당 외가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교산(蛟山)이란 호를 썼다. 1593년에《학산초담》을 지었고, 1596년 강릉부사였던 정구와 함께 《강릉지》를 엮었다.
1598년 중국의 장군과 사신들을 접대하느라고 돌아다녔다. 중국의 종군문인 오명제에게 《조선시선》을 엮어주었으며, 《난설헌집》 초고를 중국에 전파케 했다. 10월 13일, 다시 병조좌랑이 되어 가을에 평안도를 다녀왔다. 1599년 황해도사가 되었는데, 기생을 너무 많이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1년 유배지인 전라도 함열에 도착해서 문집 《성소부부고》 64권을 엮었다. 11월에 귀양이 풀려 서울로 돌아왔다. 1612년 8월 9일, 큰형 허성이 죽었고 가장 가까운 벗 권필이 광해군을 풍자하는 시를 지었다가 매맞아 죽었다.
1615년 정2품 가정대부에 올랐다. 동지겸진주부사(冬至兼陳奏副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이때
다녀온 기록을 《을병조천록》으로 남겼다. 1618년 봄, 스승 이달의 시집 《손곡집》을 간행하였다. 윤4월 7일, 남대문에다 백성들을 선동하는 흉서를 붙인 심복 하인준이 잡혀들어갔다. 17일에 허균도 기준격과 함께 옥에 갇혔다. 그의 심복들이 허균을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돌을 던지며 시위하였다. 22일에 광해군이 친히 허균의 심복들을 국문하였다. 이이첨은 망설이는 광해군을 협박하여 허균의 처형을 서둘렀다. 허균은 결안도 없이 8월 24일에 그의 심복들과 함께 서시에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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