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유목 민족의 관계사 연구
Regular price
$33.71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고구려사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한반도 서북방 유목 민족과의 관계 규명이 중요하다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인 거란 왕조(遼, 907~1124) 건국 이전의 부족시대, 즉 4~10세기의 거란사를 전공한 필자는 한반도 서북방 유목 민족 거란의 동향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데 주목했다.
특히 거란의 동향은 발해의 역사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696~697년 거란이 일으킨 반당 항쟁의 여파로 발해가 건국되었고 926년 거란의 공격으로 발해가 멸망했다. 따라서 고구려사를 보다 온전히 이해하려면 거란을 비롯한 그 북방의 유목 종족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에 필자는 전공인 거란사 연구와 병행하여 본격적으로 고구려와 북방 유목 종족의 관계사 연구를 시작했다.
이 책은 필자가 지난 10여 년 이상 연구한 결과물로,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 ‘조우관 사절’이 당시 사마르칸트까지 사행한 노선과 사행의 원인과 경과, 사행의 시기 및 벽화가 그려진 시기를 비정한 2편의 논문, 그리고 고구려와 선비ㆍ유연ㆍ돌궐ㆍ설연타ㆍ철륵ㆍ위구르ㆍ실위ㆍ거란ㆍ해 등 몽골리아의 유목 민족의 관계에 관한 5편의 논문을 한데 묶은 것이다.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 조우관 사절!
그들은 무슨 이유로 그리고 어떤 경로로 사마르칸트까지 갔을까?
당은 중국 중심의 일원적인 세계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후 그 여세를 몰아 대규모 정벌군을 편성해 무려 7개월 동안 고구려의 평양성을 포위한다.
이러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일본에 이어 당시 당에 반란을 일으킨 몽골리아의 철륵으로 사절을 파견해 그들과 연합하여 당군의 평양성 포위를 풀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들 사절이 고구려를 출발한 이후 당에 의해 철륵의 반란이 진압되자 어쩔 수 없이 서쪽의 사마르칸트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들이 바로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정지 벽화의 ‘조우관 사절’이다.
조우관 사절이 사마르칸트로 간 노선에 대한 탐구는 단순한 사행로에 대한 이해를 넘어 당시 당의 세력권 및 고구려와 몽골리아 유목 민족을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인 거란 왕조(遼, 907~1124) 건국 이전의 부족시대, 즉 4~10세기의 거란사를 전공한 필자는 한반도 서북방 유목 민족 거란의 동향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데 주목했다.
특히 거란의 동향은 발해의 역사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는데, 696~697년 거란이 일으킨 반당 항쟁의 여파로 발해가 건국되었고 926년 거란의 공격으로 발해가 멸망했다. 따라서 고구려사를 보다 온전히 이해하려면 거란을 비롯한 그 북방의 유목 종족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에 필자는 전공인 거란사 연구와 병행하여 본격적으로 고구려와 북방 유목 종족의 관계사 연구를 시작했다.
이 책은 필자가 지난 10여 년 이상 연구한 결과물로,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 ‘조우관 사절’이 당시 사마르칸트까지 사행한 노선과 사행의 원인과 경과, 사행의 시기 및 벽화가 그려진 시기를 비정한 2편의 논문, 그리고 고구려와 선비ㆍ유연ㆍ돌궐ㆍ설연타ㆍ철륵ㆍ위구르ㆍ실위ㆍ거란ㆍ해 등 몽골리아의 유목 민족의 관계에 관한 5편의 논문을 한데 묶은 것이다.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에 그려져 있는 고구려 조우관 사절!
그들은 무슨 이유로 그리고 어떤 경로로 사마르칸트까지 갔을까?
당은 중국 중심의 일원적인 세계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후 그 여세를 몰아 대규모 정벌군을 편성해 무려 7개월 동안 고구려의 평양성을 포위한다.
이러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일본에 이어 당시 당에 반란을 일으킨 몽골리아의 철륵으로 사절을 파견해 그들과 연합하여 당군의 평양성 포위를 풀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들 사절이 고구려를 출발한 이후 당에 의해 철륵의 반란이 진압되자 어쩔 수 없이 서쪽의 사마르칸트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들이 바로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정지 벽화의 ‘조우관 사절’이다.
조우관 사절이 사마르칸트로 간 노선에 대한 탐구는 단순한 사행로에 대한 이해를 넘어 당시 당의 세력권 및 고구려와 몽골리아 유목 민족을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중국 왕조와 한반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유목 민족의 역사.
북방의 유목 민족은 고구려 그리고 중국의 왕조와 어떤 관계였을까?
1. 고구려와 선비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까지 벌어진 고구려와 선비 일부 세력의 대립 양상, 후한에 대한 선비의 공격과 그에 영향을 받은 고구려의 동향, 고구려와 선비가 함께 감행한 후한 변경에 대한 공격과 이에 따른 고구려와 선비의 화친 등은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사에 어떤 단초를 제공할까?
2. 고구려와 거란
4세기 말 거란이 정치적 집단 세력으로 성립한 이후 요하를 사이에 두고 인접했던 고구려와 거란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측면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따라서 고구려와 거란의 관계는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3. 고구려와 돌궐
552년 무렵 돌궐은 유연을 격멸한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동몽골과 요서에 진출했으며 어떻게 고구려의 요동을 공격했는가. 또한 5세기 말기 이후 고구려가 북위ㆍ돌궐ㆍ수와 차례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거란인이 고구려 영내로 들어오게 되었고 결국 고구려군에 거란부대가 존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4. 여당전쟁 및 거란과 해
동몽골의 거란과 해, 두 부족은 비록 약소 세력이지만 중국과 한반도에서 성립한 왕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644년부터 668년까지 24년 동안 지속된 여당전쟁은 고구려와 당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왕조 및 종족에게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당 태종은 동몽골의 거란과 해, 두 부족의 군대와 고구려에서 이탈하여 중국에 귀부한 후 요서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 군대를 이용해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친정할 때에도 거란군ㆍ해군ㆍ말갈군이 그 선봉대로서 활약했다.
이후 요서의 영주도독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 국지적인 여당전쟁에서도 거란군과 해군이 당군의 주력이 되어 고구려를 공격했고, 이에 대응하여 고구려도 동몽골의 거란 지역까지 군대를 보내 거란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전개된 여당전쟁에서 고구려와 거란 및 해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그리고 왜 거란과 해는 당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들의 반란은 이후 여당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북방의 유목 민족은 고구려 그리고 중국의 왕조와 어떤 관계였을까?
1. 고구려와 선비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까지 벌어진 고구려와 선비 일부 세력의 대립 양상, 후한에 대한 선비의 공격과 그에 영향을 받은 고구려의 동향, 고구려와 선비가 함께 감행한 후한 변경에 대한 공격과 이에 따른 고구려와 선비의 화친 등은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사에 어떤 단초를 제공할까?
2. 고구려와 거란
4세기 말 거란이 정치적 집단 세력으로 성립한 이후 요하를 사이에 두고 인접했던 고구려와 거란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측면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따라서 고구려와 거란의 관계는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3. 고구려와 돌궐
552년 무렵 돌궐은 유연을 격멸한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동몽골과 요서에 진출했으며 어떻게 고구려의 요동을 공격했는가. 또한 5세기 말기 이후 고구려가 북위ㆍ돌궐ㆍ수와 차례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거란인이 고구려 영내로 들어오게 되었고 결국 고구려군에 거란부대가 존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4. 여당전쟁 및 거란과 해
동몽골의 거란과 해, 두 부족은 비록 약소 세력이지만 중국과 한반도에서 성립한 왕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644년부터 668년까지 24년 동안 지속된 여당전쟁은 고구려와 당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왕조 및 종족에게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당 태종은 동몽골의 거란과 해, 두 부족의 군대와 고구려에서 이탈하여 중국에 귀부한 후 요서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 군대를 이용해 고구려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친정할 때에도 거란군ㆍ해군ㆍ말갈군이 그 선봉대로서 활약했다.
이후 요서의 영주도독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 국지적인 여당전쟁에서도 거란군과 해군이 당군의 주력이 되어 고구려를 공격했고, 이에 대응하여 고구려도 동몽골의 거란 지역까지 군대를 보내 거란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전개된 여당전쟁에서 고구려와 거란 및 해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그리고 왜 거란과 해는 당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들의 반란은 이후 여당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목차
목차
책머리에
제1편 고구려와 중앙아시아의 관계
제1장 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의 '조우관사절'이 사마르칸트로 간 노선
1.머리말 2. 고구려와 유연 및 돌궐의 관계 및 교류 3. 고구려에서 오르콘강 상류 유역까지의 세 노선 4. 오르콘강 상류 유역에서 사마르칸트까지의 노선 5. 맺음말
제2장 '조우관사절'이 사마르칸트로 간 원인, 과정 및 시기
1. 머리말 2. 7세기 중반까지의 사마르칸트의 정황 3. 당의 고구려 정벌과 '조우관사절'의 철륵행 4. 철륵의 반란과 '조우관사절'의 사마르칸트행 5. 맺음말
제2편 전기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
제3장 고구려 초기 계루부 왕실의 신당과 종묘 및 유목 민족과의 관계
1. 머리말 2. 『삼국지』 [고구려전], 『후한서』 [고구려전], 『위략』의 분석 3.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큰 집은 샤먼의 신당 4. 계루부의 종묘인 '국동대혈'과 유목 민족 5. 맺음말
제4장 고구려와 선비의 충돌ㆍ연합과 후한에 대한 대응
1. 머리말 2. 고구려와 선비의 상쟁 3. 선비와 고구려의 후한에 대한 귀부 4. 고구려와 선비의 후한에 대한 공격과 화친 5. 맺음말
제3편 중ㆍ후기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
제5장 4~6세기 고구려와 거란의 관계사
1. 머리말 2. 거란의 고구려 침입과 광개토왕의 비려 친정 3. 장수왕의 거란 침공과 '물우거란'의 형성과 해체 4. 돌궐과 고구려의 충돌과 거란 일부의 고구려 기탁 5. 맺음말
제6장 6세기 후반 돌궐의 남진과 고구려와의 충돌
1. 머리말 2. 돌궐의 세력권 확대와 남진의 배경 3. 돌궐의 남진과 유연 세력의 소멸 4. 돌궐의 동몽골 진출과 고구려와의 충돌 5. 맺음말
제7장 여당전쟁에서의 거란ㆍ해의 활약과 반당 항쟁
1. 머리말 2. 당 태종의 '이이제이' 방책과 거란ㆍ해 3. 당의 기미지배와 고구려와 거란의 공방 4. 거란ㆍ해의 반당 항쟁과 여당전쟁 5. 맺음말
참고문헌
영문 초록
찾아보기
제1편 고구려와 중앙아시아의 관계
제1장 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의 '조우관사절'이 사마르칸트로 간 노선
1.머리말 2. 고구려와 유연 및 돌궐의 관계 및 교류 3. 고구려에서 오르콘강 상류 유역까지의 세 노선 4. 오르콘강 상류 유역에서 사마르칸트까지의 노선 5. 맺음말
제2장 '조우관사절'이 사마르칸트로 간 원인, 과정 및 시기
1. 머리말 2. 7세기 중반까지의 사마르칸트의 정황 3. 당의 고구려 정벌과 '조우관사절'의 철륵행 4. 철륵의 반란과 '조우관사절'의 사마르칸트행 5. 맺음말
제2편 전기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
제3장 고구려 초기 계루부 왕실의 신당과 종묘 및 유목 민족과의 관계
1. 머리말 2. 『삼국지』 [고구려전], 『후한서』 [고구려전], 『위략』의 분석 3.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큰 집은 샤먼의 신당 4. 계루부의 종묘인 '국동대혈'과 유목 민족 5. 맺음말
제4장 고구려와 선비의 충돌ㆍ연합과 후한에 대한 대응
1. 머리말 2. 고구려와 선비의 상쟁 3. 선비와 고구려의 후한에 대한 귀부 4. 고구려와 선비의 후한에 대한 공격과 화친 5. 맺음말
제3편 중ㆍ후기 고구려와 북방 유목 민족의 관계
제5장 4~6세기 고구려와 거란의 관계사
1. 머리말 2. 거란의 고구려 침입과 광개토왕의 비려 친정 3. 장수왕의 거란 침공과 '물우거란'의 형성과 해체 4. 돌궐과 고구려의 충돌과 거란 일부의 고구려 기탁 5. 맺음말
제6장 6세기 후반 돌궐의 남진과 고구려와의 충돌
1. 머리말 2. 돌궐의 세력권 확대와 남진의 배경 3. 돌궐의 남진과 유연 세력의 소멸 4. 돌궐의 동몽골 진출과 고구려와의 충돌 5. 맺음말
제7장 여당전쟁에서의 거란ㆍ해의 활약과 반당 항쟁
1. 머리말 2. 당 태종의 '이이제이' 방책과 거란ㆍ해 3. 당의 기미지배와 고구려와 거란의 공방 4. 거란ㆍ해의 반당 항쟁과 여당전쟁 5. 맺음말
참고문헌
영문 초록
찾아보기
저자
저자
이재성
1956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동양사를 전공했고, 동국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그리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연구했고, 동국대학교와 중앙대학교 강사 및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古代 東蒙古史 硏究』(법인문화사, 1996)가 있고, 역서로는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민족사, 1990)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初期 庫莫奚의 成長과 周邊 諸族](『東洋史學硏究』 28집), [5~6세기 '勿于契丹'의 성립ㆍ발전과 해체](『中國學報』 42집), ['大賀契丹'에 관한 기존 학설의 批判과 새로운 見解](『東洋史學硏究』 95집) 등 다수가 있다.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연구했고, 동국대학교와 중앙대학교 강사 및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古代 東蒙古史 硏究』(법인문화사, 1996)가 있고, 역서로는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민족사, 1990)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初期 庫莫奚의 成長과 周邊 諸族](『東洋史學硏究』 28집), [5~6세기 '勿于契丹'의 성립ㆍ발전과 해체](『中國學報』 42집), ['大賀契丹'에 관한 기존 학설의 批判과 새로운 見解](『東洋史學硏究』 95집) 등 다수가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