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 평전
중국의 문호 소식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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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문인의 오마주, 중국의 문호 소동파 입문서!
중국의 문호 소식의 삶과 문학『소동파 평전』. 소동파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중국 문인으로, 한국 고전문학의 형성과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소동파 연구에 있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중국 푸단대학의 왕수이자오 교수가 쓴 소동파의 전기이다.
소동파의 생애의 순서에 따라 전개하여 그 시대적·가정적·사상적 배경을 중시하며, 그의 인생과 문학 세계를 조명한다.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그 특징’, ‘소동파 문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을 설파하는 동시에, 원서에는 없는 ‘소동파 연보’와 ‘소동파 관직 이동표’, ‘소동파 시·산문 작품명 찾아보기’를 수록하여 소동파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중국의 문호 소식의 삶과 문학『소동파 평전』. 소동파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중국 문인으로, 한국 고전문학의 형성과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소동파 연구에 있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중국 푸단대학의 왕수이자오 교수가 쓴 소동파의 전기이다.
소동파의 생애의 순서에 따라 전개하여 그 시대적·가정적·사상적 배경을 중시하며, 그의 인생과 문학 세계를 조명한다.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그 특징’, ‘소동파 문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을 설파하는 동시에, 원서에는 없는 ‘소동파 연보’와 ‘소동파 관직 이동표’, ‘소동파 시·산문 작품명 찾아보기’를 수록하여 소동파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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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누구나 소동파를 알지만 아무도 소동파를 모른다."
이 말은 그만큼 소동파를 아는 사람은 많으나,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는 의미이다. '소학'(蘇學)이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일군의 학파를 형성한 중국에서도 소동파의 전집을 독파한 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만큼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중국 문인이 바로 소동파다. 한국 고전문학의 형성과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이도, 좋아하는 이도 누구나 한번쯤은 소동파를 이야기하지만, 엄밀하게 소동파를 전공한 학자, 전문가는 손에 꼽힌다.
이 책의 저자 왕수이자오 교수는 중국에서 소동파 학문(소학)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학자이다. 또한 이 책의 역자 조규백 선생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소동파 전문가이며, 왕수이자오 교수에게 사사(師事)하였다. 이 책은 엄밀한 서술과 풍부한 원전 인용 등의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소동파의 방대한 시문집을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 한 권으로 녹여내어, '소동파 입문서'로서 적합하다.
고려와 조선시대 문인의 오마주, 중국의 문호 소동파
_ 소동파(蘇東坡, 본명 소식蘇軾, 1036~1101)는 중국 북송(北宋)대의 정치가·행정가·경학자(經學者)·예술가로 유명하며, 또한 의약·요리·고고학 등에도 공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국 역대의 '문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소동파만큼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문인은 중국문학사상 드물다.
정치가 소동파는 신법당과 충돌했고, 지방 관리로서 민중을 위한 삶을 살았으며, 지적 호기심과 탐구욕이 왕성해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동적인 인생을 영위했다. 평생토록 자연 속에서 여행하고 소요하기를 좋아했다. 또한 차와 술을 좋아해, 그 흥취를 시나 수필로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술을 좋아해 예술가들을 사귀며 배우고,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보탰을 뿐만 아니라, 서법(書法)과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힘과 미(美)를 표현하여 예술가로 알려지기도 했다.
_ 소동파는 우리나라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의 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그의 책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다음 기록을 남겼다.
고려 문인은 오로지 동파를 숭상하여, 과거 급제자의 방이 나붙을 때마다, 사람들이 말하길, "33인의 동파가 나왔구나"라고 하였다.
고려의 문인들은 과거 급제 전에는 과거시험 준비로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 합격 후에 부담 없이 시 짓기를 배우는데, 그 가운데 소동파의 시를 가장 좋아했다는 의미이다.
고려 문인들이 소동파를 숭상한 예로 대표적인 경우가 김부식(金富軾), 김부철(金富轍) 형제의 이름이다. 김부식의 부친 김근(金覲)이 동파를 흠모해 두 아들의 이름을 동파 형제의 이름(소식, 소철)을 따서 지었다 한다. 소동파와 김부식의 나이차가 29년임을 감안하면, 동파의 명성이 매우 빨리 고려에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동파의 고려에 대한 인식은 소동파가 북송 황제에게 올린 상주문(이 책의 「부록」으로 6편의 주의문을 수록)에 잘 드러나 있다. 대체로 소동파의 고려관(觀)은 부정적이다. 소동파는 고려에 대한 인식이 협소했고 외교 역량이 부재했으며 큰 오해가 있었다. 이에 반해 고려시대 문인들은 대체로 소동파에 열광적이며 우호적이었고, 부정적 관점은 너무 적어 찾아보기조차 쉽지 않다. 이는 편협하고 국수주의적인 소동파의 고려관이 고려 문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고려 문인의 일방적인 소동파 애호라고 할 수 있다.
_ 조선 문인의 소동파관은 소동파의 고려관과 쌍방향적이어서, 부정적 관점도 있다. 이는 북송의 낙촉당쟁(洛蜀黨爭), 소동파의 불교·도가에 대한 애호적 성향, 그리고 소동파의 협소한 고려관, 소동파의 정이(程伊) 비판 등과 관련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선시대 문인의 소동파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높다.
조선 문인들이 소동파의 호방한 문체에 영향을 받아 소동파의 적벽 뱃놀이를 모방해 읊은 한시가 여러 수 전한다. 그중 대표적 인물로는 서거정, 박인로, 윤선도, 홍세태, 이행, 김석주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문인들은 벼슬길에 나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향리(鄕里)로 돌아오거나 폄적(貶謫)되어 전원에서 은거하며 지낼 때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영향을 받아 뱃놀이하고, 적벽가(赤壁歌)를 부르며 소동파를 '소선'(蘇仙) 또는 '파선'(坡仙)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소동파의 「적벽부」에 대한 흠모가 대단했다.
_ 소동파에 대한 열기는 고려 중기에 최고조를 보였고, 조선 전기에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주자학의 성행과 당시(唐詩) 유행의 고조로 소동파 열기가 약해졌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주자학 자체에 대한 반성과 청대 문예사조의 영향으로 소동파 열기가 다시 고조되었다.
중국 소동파학의 대가 왕수이자오가 이야기하는 '소동파'
_ 우리나라에 출간된 소동파 평전으로 3종의 대표서적을 꼽을 수 있다.
린위탕(林語堂)의 『쾌활한 천재-소동파 평전』(2001), 유종목(柳種睦)의 『팔방미인 소동파』(2005), 그리고 왕수이자오(王水照) 교수의 이 책이다. 중국 문필가(린위탕)의 책과 한국 전문학자(유종목)의 책에 이어, 이제 중국 소동파 연구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전문학자 왕수이자오 교수의 소동파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감상을 들어볼 차례다.
이 책은 소동파 연구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학자인 중국 푸단대학(復旦大學)의 왕수이자오 교수가 쓴 소동파의 전기이다. 왕수이자오 교수는 최고 수준의 학자적 소양을 가지고 문학과 문화의 거인 소동파를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적이며, 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자리매김했다.
_ 저자는 소동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동파는 산문으로는 구양수(歐陽修)와 함께 '구소'(歐蘇)로 일컬어졌고 '당송고문팔대가'(唐宋古文八大家)의 한사람이 되었으며, 시가(詩歌)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어 송대 시가의 면목을 일신시켰다. 또 사(詞)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불리어 호방사파(豪放詞派)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최고의 성취를 이룬 북송 문학의 대표자이다. 서화(書?) 방면에서도 대가여서, 서법(書法)에서는 황정견(黃庭堅), 미불(米?), 채양(蔡襄)과 함께 '북송사대가'(北宋四大家)로 불려지고, 회화(繪?)에서는 문동(文同)을 우두머리로 하는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의 중요한 인물이다. 소동파는 이처럼 광대한 영역을 섭렵하면서도 여러 영역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는데, 이는 중국문학예술사에서 극히 보기 드문 일로 평가되고 있다."
_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소동파는 물론 소동파를 연구하는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중국은 예로부터 정치와 문학의 관계가 꽤나 밀접했다. 이 책은 문혁의 시기를 거친 시점에서, 객관적이고 타당한 안목으로 집필된 책이다. 원래 소동파의 시집과 문집은 그 양이 워낙 방대하고 고래(古來)의 방대한 문학·사학·철학의 지식, 그리고 유불도의 사상이 아울러 녹아 있어, 전문학자라도 완독하기가 쉽지 않으며, 일반 독자들은 더더욱 접근하기 어렵다.
_ 이 책의 객관적인 서술은 소동파와 그의 문학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이 책은 적은 분량에도 소동파의 주요한 시나 산문을 빠짐없이 인용하여 동파를 잘 모르는 독자라도 일독하면 핵심을 터득할 수 있도록 밀도 있게 꾸며졌다. 동시에 쉽고 간결한 문체로 한 문인의 내면적 고뇌와 환희 그리고 정신세계의 핵심까지 잘 파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소동파의 호방하면서도 섬세하고, 감상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인간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_ 이 책은 소동파의 생애의 순서에 따라 전개하여 그 시대적·가정적·사상적 배경을 중시하며, 그의 인생과 문학 세계를 조명했다. 또한 학문적 관점에서 13장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그 특징」, 14장 「소동파 문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을 설파하고 있다. 「부록」으로 원서에는 없는 《소동파 연보》와 《소동파 관직 이동표》, 《소동파 시, 산문 작품명 찾아보기》를 두어 우리나라 독자들이 참고하기에 편하도록 했다.
이 말은 그만큼 소동파를 아는 사람은 많으나,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는 의미이다. '소학'(蘇學)이라는 용어가 생길 만큼, 일군의 학파를 형성한 중국에서도 소동파의 전집을 독파한 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만큼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중국 문인이 바로 소동파다. 한국 고전문학의 형성과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이도, 좋아하는 이도 누구나 한번쯤은 소동파를 이야기하지만, 엄밀하게 소동파를 전공한 학자, 전문가는 손에 꼽힌다.
이 책의 저자 왕수이자오 교수는 중국에서 소동파 학문(소학)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학자이다. 또한 이 책의 역자 조규백 선생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소동파 전문가이며, 왕수이자오 교수에게 사사(師事)하였다. 이 책은 엄밀한 서술과 풍부한 원전 인용 등의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소동파의 방대한 시문집을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 한 권으로 녹여내어, '소동파 입문서'로서 적합하다.
고려와 조선시대 문인의 오마주, 중국의 문호 소동파
_ 소동파(蘇東坡, 본명 소식蘇軾, 1036~1101)는 중국 북송(北宋)대의 정치가·행정가·경학자(經學者)·예술가로 유명하며, 또한 의약·요리·고고학 등에도 공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국 역대의 '문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소동파만큼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문인은 중국문학사상 드물다.
정치가 소동파는 신법당과 충돌했고, 지방 관리로서 민중을 위한 삶을 살았으며, 지적 호기심과 탐구욕이 왕성해 새로운 곳을 좋아하는 동적인 인생을 영위했다. 평생토록 자연 속에서 여행하고 소요하기를 좋아했다. 또한 차와 술을 좋아해, 그 흥취를 시나 수필로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술을 좋아해 예술가들을 사귀며 배우고,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보탰을 뿐만 아니라, 서법(書法)과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힘과 미(美)를 표현하여 예술가로 알려지기도 했다.
_ 소동파는 우리나라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의 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그의 책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다음 기록을 남겼다.
고려 문인은 오로지 동파를 숭상하여, 과거 급제자의 방이 나붙을 때마다, 사람들이 말하길, "33인의 동파가 나왔구나"라고 하였다.
고려의 문인들은 과거 급제 전에는 과거시험 준비로 풍월을 일삼을 겨를이 없다가, 과거 합격 후에 부담 없이 시 짓기를 배우는데, 그 가운데 소동파의 시를 가장 좋아했다는 의미이다.
고려 문인들이 소동파를 숭상한 예로 대표적인 경우가 김부식(金富軾), 김부철(金富轍) 형제의 이름이다. 김부식의 부친 김근(金覲)이 동파를 흠모해 두 아들의 이름을 동파 형제의 이름(소식, 소철)을 따서 지었다 한다. 소동파와 김부식의 나이차가 29년임을 감안하면, 동파의 명성이 매우 빨리 고려에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동파의 고려에 대한 인식은 소동파가 북송 황제에게 올린 상주문(이 책의 「부록」으로 6편의 주의문을 수록)에 잘 드러나 있다. 대체로 소동파의 고려관(觀)은 부정적이다. 소동파는 고려에 대한 인식이 협소했고 외교 역량이 부재했으며 큰 오해가 있었다. 이에 반해 고려시대 문인들은 대체로 소동파에 열광적이며 우호적이었고, 부정적 관점은 너무 적어 찾아보기조차 쉽지 않다. 이는 편협하고 국수주의적인 소동파의 고려관이 고려 문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고려 문인의 일방적인 소동파 애호라고 할 수 있다.
_ 조선 문인의 소동파관은 소동파의 고려관과 쌍방향적이어서, 부정적 관점도 있다. 이는 북송의 낙촉당쟁(洛蜀黨爭), 소동파의 불교·도가에 대한 애호적 성향, 그리고 소동파의 협소한 고려관, 소동파의 정이(程伊) 비판 등과 관련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선시대 문인의 소동파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높다.
조선 문인들이 소동파의 호방한 문체에 영향을 받아 소동파의 적벽 뱃놀이를 모방해 읊은 한시가 여러 수 전한다. 그중 대표적 인물로는 서거정, 박인로, 윤선도, 홍세태, 이행, 김석주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문인들은 벼슬길에 나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향리(鄕里)로 돌아오거나 폄적(貶謫)되어 전원에서 은거하며 지낼 때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영향을 받아 뱃놀이하고, 적벽가(赤壁歌)를 부르며 소동파를 '소선'(蘇仙) 또는 '파선'(坡仙)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소동파의 「적벽부」에 대한 흠모가 대단했다.
_ 소동파에 대한 열기는 고려 중기에 최고조를 보였고, 조선 전기에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주자학의 성행과 당시(唐詩) 유행의 고조로 소동파 열기가 약해졌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주자학 자체에 대한 반성과 청대 문예사조의 영향으로 소동파 열기가 다시 고조되었다.
중국 소동파학의 대가 왕수이자오가 이야기하는 '소동파'
_ 우리나라에 출간된 소동파 평전으로 3종의 대표서적을 꼽을 수 있다.
린위탕(林語堂)의 『쾌활한 천재-소동파 평전』(2001), 유종목(柳種睦)의 『팔방미인 소동파』(2005), 그리고 왕수이자오(王水照) 교수의 이 책이다. 중국 문필가(린위탕)의 책과 한국 전문학자(유종목)의 책에 이어, 이제 중국 소동파 연구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전문학자 왕수이자오 교수의 소동파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감상을 들어볼 차례다.
이 책은 소동파 연구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학자인 중국 푸단대학(復旦大學)의 왕수이자오 교수가 쓴 소동파의 전기이다. 왕수이자오 교수는 최고 수준의 학자적 소양을 가지고 문학과 문화의 거인 소동파를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적이며, 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자리매김했다.
_ 저자는 소동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동파는 산문으로는 구양수(歐陽修)와 함께 '구소'(歐蘇)로 일컬어졌고 '당송고문팔대가'(唐宋古文八大家)의 한사람이 되었으며, 시가(詩歌)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어 송대 시가의 면목을 일신시켰다. 또 사(詞)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불리어 호방사파(豪放詞派)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최고의 성취를 이룬 북송 문학의 대표자이다. 서화(書?) 방면에서도 대가여서, 서법(書法)에서는 황정견(黃庭堅), 미불(米?), 채양(蔡襄)과 함께 '북송사대가'(北宋四大家)로 불려지고, 회화(繪?)에서는 문동(文同)을 우두머리로 하는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의 중요한 인물이다. 소동파는 이처럼 광대한 영역을 섭렵하면서도 여러 영역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는데, 이는 중국문학예술사에서 극히 보기 드문 일로 평가되고 있다."
_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소동파는 물론 소동파를 연구하는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중국은 예로부터 정치와 문학의 관계가 꽤나 밀접했다. 이 책은 문혁의 시기를 거친 시점에서, 객관적이고 타당한 안목으로 집필된 책이다. 원래 소동파의 시집과 문집은 그 양이 워낙 방대하고 고래(古來)의 방대한 문학·사학·철학의 지식, 그리고 유불도의 사상이 아울러 녹아 있어, 전문학자라도 완독하기가 쉽지 않으며, 일반 독자들은 더더욱 접근하기 어렵다.
_ 이 책의 객관적인 서술은 소동파와 그의 문학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이 책은 적은 분량에도 소동파의 주요한 시나 산문을 빠짐없이 인용하여 동파를 잘 모르는 독자라도 일독하면 핵심을 터득할 수 있도록 밀도 있게 꾸며졌다. 동시에 쉽고 간결한 문체로 한 문인의 내면적 고뇌와 환희 그리고 정신세계의 핵심까지 잘 파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소동파의 호방하면서도 섬세하고, 감상적이면서도 이지적인 인간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_ 이 책은 소동파의 생애의 순서에 따라 전개하여 그 시대적·가정적·사상적 배경을 중시하며, 그의 인생과 문학 세계를 조명했다. 또한 학문적 관점에서 13장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그 특징」, 14장 「소동파 문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을 설파하고 있다. 「부록」으로 원서에는 없는 《소동파 연보》와 《소동파 관직 이동표》, 《소동파 시, 산문 작품명 찾아보기》를 두어 우리나라 독자들이 참고하기에 편하도록 했다.
목차
목차
한국어판 서문 소동파와 고려
옮긴이 서문
일러두기
1장 들어가는 말
2장 가정과 어린 시절
3장 처음으로 벼슬길에 들어
4장 수도에서의 중앙관 시절
5장 지방관 시절-항주,밀주,서주,호주
6장 인생의 전환점-필화사건 '오대시안'
7장 황주 유배지에서 보낸 나날
8장 적벽에서의 감회
9장 황주 유배지를 떠나
10장 제2차 중앙관 시절
11장 다시 지방관으로-항주, 영주, 양주, 정주의 지주
12장 혜주와 해남도의 유배 생활, 그리고 영원으로
13장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그 특징
14장 소동파 문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
부록
1. 소동파 관직 이동표
2. 소동파의 고려 관련 주의문奏議文 6편
3. 증공曾鞏의 고려 관련 문장 1편
4. 소동파 연보
5. 소동파 시, 산문 작품명 찾아보기
옮긴이 서문
일러두기
1장 들어가는 말
2장 가정과 어린 시절
3장 처음으로 벼슬길에 들어
4장 수도에서의 중앙관 시절
5장 지방관 시절-항주,밀주,서주,호주
6장 인생의 전환점-필화사건 '오대시안'
7장 황주 유배지에서 보낸 나날
8장 적벽에서의 감회
9장 황주 유배지를 떠나
10장 제2차 중앙관 시절
11장 다시 지방관으로-항주, 영주, 양주, 정주의 지주
12장 혜주와 해남도의 유배 생활, 그리고 영원으로
13장 소동파의 문학적 성취와 그 특징
14장 소동파 문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
부록
1. 소동파 관직 이동표
2. 소동파의 고려 관련 주의문奏議文 6편
3. 증공曾鞏의 고려 관련 문장 1편
4. 소동파 연보
5. 소동파 시, 산문 작품명 찾아보기
저자
저자
왕수이자오
저자 왕수이자오는 1934년 중국 저장 성 위야오(餘姚)에서 태어났다. 1960년에 베이징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일본 도쿄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현재 푸단대학 중문과 수석교수, 중문과 학술위원회 주임 등을 맡고 있으며, 주로 송대 문학과 중국 고대 문장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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