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신
무의식의 저널 엄브라Umbr(a)
『검은 신』은 종교, 또는 신을 두고 양자 간 결단내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시대에 ‘정신분석은 종교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관해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응답을 갖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서양의 일신교 세 형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 국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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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프로이트는 어떤 행위가 종교적이려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적인 종교적 행위나 믿음이란 없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떤 것이 있다면 정신분석에서는 대문자
타자이며 그것의 욕망이다. 라깡은 이를 검은 신이라 부른다.
주요 내용
종교는 이렇게 우리 삶의 곳곳에 여러 양태로 나타난다. 간단히 말해서, 신을 믿는가 안 믿는가, 그것이 문제가 된 세상이다.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믿느냐 안 믿느냐, 신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입장 차이는 신이라는 개념 혹은 존재 자체를 설정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혹자는 종교적 믿음의 반대는 무신론이 아니라 불가지론이라고 한다. 우리가 신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없다는 밑도 끝도 없는 불확실성에 비한다면, '확고한' 믿음과 '고집스런' 불신은 확실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샴쌍둥이다.
이렇게 종교, 또는 신을 두고 양자 간 결단내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시대에 정신분석은 종교에 대해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호의 출발점이다. 이 질문에 관해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응답을 갖고 있다.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이든 모두 종교의 존재 혹은 목적을 정해놓고 있다. 그리고 종교의 목적에 관해선 양 편 모두 동의한 듯싶다. 이에 대해 편집자인 앤드류 스콤라는 기왕에 가정된 종교의 목적은 종교를 대상화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영어 단어object는 목적과 대상, 둘 다 의미한다. 그리고 정신분석에서 object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서문에서 그는 신 혹은 신이라는 개념은 오직 "우리 자신의 불투명성"을 확인해주며 오직 존재의 결여와 덧없음을 위한 공간을 보존해주는 텅 빈 기호라고 선언한다.
프로이트는 어떤 행위가 종교적이려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적인 종교적 행위나 믿음이란 없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떤 것이 있다면 정신분석에서는 대문자 타자이며 그것의 욕망이다. 라깡은 이를 "검은 신"이라고 부른다. 이번 호의 제목은 라깡에서 빌려 온 것이다.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선언에서처럼 대타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모든 것의 기원은 결여이다. 인간은 신의 기원과 욕망을 알고 따르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내리신 계명들의 언어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신분석은 실증주의적 과학과는 달리, 종교적 문제, 즉 기원과, 신, 창조의 문제를 사유한다. 특히 근대 주체구성의 과정에 개입해있는 일신교에 천착한다. 종교를 비판하는 일이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실증주의처럼 종교를 허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이 될 수 없다. 창조, 주체의 기원, 믿음, 소외, 희생과 봉사, 예외, 신성성, 사랑 등 종교가 전유하고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개념이며 철학적 사유에서 피해갈 수 없다. 기왕의 종교비판이나 분석이 혐오와 경외 양극단의 대립을 상정했다면 정신분석은 신이 부재한 자리를 사유한다.
정신분석적 입장에서 종교의 목적은 정해진 종착역이나 절대적 의미 없이 비판적 사유라는 확실한 믿음만을 무한히 증식시켜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마크 케젤의 논문에서도 나타난다. 일신교의 핵심을 신에 대한 비판적 사유에서 찾는 케젤은 일신교는 여타 의사종교들의 기복적 신앙과 대립하면서 "오직 신만이 신"이라는 믿음으로 신성과의 투쟁을 통해 은총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일신교의 비판적 사유는 궁극적으로 무신론으로 귀결될 것이지만, 현재 추세로는 종교는 위축되기는커녕 점점 더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분석을 위시한 비판이론은 마치 일신교적 비판정신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종교는 승화의 한 형태이다. 케젤은 라깡이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에 대해 한 발언을 통해 정신분석이 종교처럼 승화가 될 지,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떤 형태의 승화가 될 것인지를 묻는다.
일신교의 신성과의 투쟁은 사도 바울과 야곱이 벌인 천사와의 싸움으로 예시된다. 이 싸움에서 상처를 입은 것은 바울이지만 신성 역시 제한을 받게 된다. 신과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었지만 바울이 온전한 신성을 획득했다는 것은 일신교가 비판, 맥널티의 글에서는상처를 통해서 참 종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라인하드는 유대교의 예외주의를 보편주의 한 양태로 제시한다. 라깡의 "전부아님" 개념을 사용해서 그 내부에 결여와 죽음이라는 텅 빈 공간을 포함하는 보편주의 개념을 설정한다. 서지 앙드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분석가가 성자의 길을 가야할 소명을 갖는다면 정신분석가에겐 어떤 역할이 주어지는지를 모색한다. 환자에 대해 정신분석가는 향유의 대상, 즉 라투즈의 자리에 놓이지만, 그것을 대체하거나 만족시키지 않는다.
주체가 대상의 자리에 놓임으로써 사랑이란 근본적 불일치라는 인식을 획득하고 그를 통해 주체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는 호운즈의 뒤라스 읽기는 대상의 개념에 또 다른 사유를 제공한다. 키에자와 토스카노의 병렬적 토론은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라깡주의의 핵심적 '원인'론을 분석한다. 각각 무의 창조가 제시하는 윤리적 차원과 자본주의적 경제구조 내 무의 개념적 변전을 추적한다. 현재 기독교와 무신론 사이의 대립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양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이 글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기원과 원인에 관한 정신분석의 사색이 갖는 다양한 함의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베의 글은 이슬람에서의 신의 현현에 대한 고차원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 신성을 접하는 것은 오직 현현, 즉 순간적 발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신의 현현은 존재내부의 낯섬과 귀양을 제시한다. 베일로 감싸인 신성이 반짝 드러나는 계시는 신성한 통일성의 징후이면서 주체의 소외를 증명하는 것이다. 베일 뒤에 숨은 신이 주체의 욕망이 투영된 부재와 결여로서의 대타자라는 것은 주체로 하여금 믿음을 포기하기 보다는 존재내부의 낯선 소외를 극복하려는 사유의 여정을 계속하도록 이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종교가 서양의 일신교 세 형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만 국한된다는 점은 아쉽다. 정신분석이론의 틀 안에서 사유하기 때문에 일신교가 중심일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일신교에 집중하다보니 종교라는 좀더 넓고 큰 문화적 형태를 놓친 듯하다. 불교와 힌두교 및 여타 문화권의 종교에서 주체와 믿음의 문제를 어떻게 사유하는지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기다려본다.
얼마 전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오른다. 기독교의 핵심은 인간의 보편적 유죄가능성이므로 이를 통한 공동체의식과 연민이 중요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를 세속적인 시각에서 풀어보면 너와 내가 여리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이다. 정신분석에선 존재의 결여와 욕망의 불가피성이 바로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라는 말이다.
19세기 미국소설가 나사니엘 호손의 한 단편에 나오는 젊은 굿맨 브라운처럼 믿음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말년을 침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면 이 보편적 유죄성의 의미를,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곰곰이 따져봐야 할지 모른다. 신의 유무나 창조냐 진화냐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을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이다.
프랑스 철학자 이브 파칼레는 이렇게 말한다. "신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인류의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이미 내린 결정, 내리고 있는 결정, 앞으로 내릴 결정에 달린 문제다." 정신분석과 종교는 우리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이제 물어야 할 차례이다.
목차
목차
편집자 서문 : 종교의 목적ㆍ13
_앤드류 스콤라
비판으로서의 종교, 종교로서의 비판ㆍ20
_마크 드 케젤
천사와의 씨름 한판ㆍ59
_트레이시 맥널티
보편주의와 유대적 예외 : 라깡, 바디우, 로젠바이그ㆍ84
_케네스 라인하드
성자되기ㆍ141
_서지 앙드레
사랑이 법일 때 : 『롤 스타인의 황홀경』에 관하여ㆍ156
_도미니크 호운즈
윤리와 자본, 무에서부터ㆍ182
_로렌죠 키에자와 알버르토 토스카노
이방인과 신의 현현ㆍ209
_크리스찬 장베
저자 소개ㆍ233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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