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에 대하여
『퇴폐에 대하여』는퇴폐의 개념사를 다룬다. '퇴폐'는 형용사이자 동사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퇴폐의 의미는 시대마다 달랐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화해갔다. '가진 자'들은 자기네 입맛대로 그 뜻을 왜곡했고 스스로의 구린 구석을 가리느라 애쓰고 있었다. 퇴폐는 냄새나는 그곳을 덮는 뚜껑이자 숨겨줄 가림막이었다. 생각보다 오랜 세월 사용해온 퇴폐의 또 다른 여백을 찾는데 이 책은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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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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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앞의 편견을 잘게 썰어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만만찮은 부담과 오해를 무릅써야 한다. 게다가 쉽사리 끝나거나 말끔한 뒤처리를 장담할 수도 없는 난감한 사단事端의 원인이 될 때도 많다.
말과 글의 표현에 앞서 각 구성분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내쳐 들여다보는 일이 어찌 병이 될 수 있으랴. 말 한마디의 뜻이 헛갈릴 때 괜찮기로는 그걸 뒤집거나 거울에 되비쳐보는 법도 있긴 있다. 이를테면 '자유'의 의미가 (가을하늘 마냥) 느닷없이 공활空豁할 때 '구속'을 떠올린다든지, '만남'이 뭔지 애매하기만 할 때 '헤어짐'의 순간을 있는 대로 줌인zoom in하여 역설의 묘미를 맛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같이 있는 게 귀찮아서 바라고 바랐던 '홀로 됨'도 정작 다가오면 짐인 것이야 겪지 않고 어디 알 일이랴. 그리하여 맞이한 덜 '성가심'도 아예 이들 두 의미를 합쳐 깨달을 수 있는 경험의 미학이자 언어로 터득한 이미지의 지옥일 것이다. 본디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닳고 닳아 생겨난 상처인지 이제는 헤아리지 못할 아련함만 마음 한 구석 몰려와도 하는 수 없다. 넷째 손가락 마디 옴폭 파이도록 끼고 다니는 민무늬 반지의 하릴없는 '뜻'처럼.
앞이 궁금할 때 뒤를 캔다든지, 속내가 희한하기만 할 때 껍데기에 연연戀戀하는 작업도 반짝일 때는 따로 있다. 더디고 또 더디지만 가야 할 길이 있거나 힘이 부쳐 내려놓고도 싶지만 들고 있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언젠가 끝이 날 때 알아차리게 되는 보람처럼 말이다. 그게 꼭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허울을 뒤집어쓰지 않더라도 유의미한 일이 되는 이치는 다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언어를 통한 의미의 각성과 이미지의 이해를 위해서일 뿐, 본래 그 자체의 의미와 온갖 해석의 번잡마저 아우르는 건 아닐 터이다. '헤어짐'과 '구속'은 '헤어짐'과 '구속' 그 자체일 뿐, 그것이 바로 '만남'과 '자유'의 의미 본령을 장악하는 주체는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랑'이 '혐오'의 '반어反語'라 하더라도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보아야 할 넘쳐나는 의미와 가치들의 온갖 '떨림'일테니 말이다.
언어든, 콘셉트이든, 아니면 단어 한 마디든 '그것'이 '그' 자체가 아닌 반대 사물의 되비침이나 의미의 전도顚倒를 통해 다루어지는 건 '그'에 관한 예우禮遇가 아니다. 허공에 뜬 '달'만 '달'이 아니라 천千개의 강江에 비친 '달' 또한 '달'이라 한 퇴계退溪를 인용하거나 허상과 실체는 일치할 수 없다던 고봉高峯의 논전論戰을 다시 끌고 와 봐도 여기선 모두 동어반복일 터다. 정확하게 보려는 '것'과 애매하면 애매한대로 보며 고스란히 받아들이려는 '일'이 같지 않음도 마찬가지다.
'퇴폐頹廢'만 해도 그렇다. 더럽고 추잡하며 어느덧 나와는 관계없는 동떨어진 개념으로 인식하려는 순간, 본연의 의미들이 내 것이 되긴 애 저녁에 글러버린 일을 당신께선 정녕 모른단 말인가. 언어를 향한, 아니 언어로부터 줄줄이 파생·연상하는 편견의 늪이란 것이 오대양보다 깊고 육대주보다 광활하다 여긴다면 그 또한 과장일까.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 순간부터 아예 외면하고 내외하려는 인간의 자세는 돌보다 굳고 얼음보다 차다. 깨기 어렵고 녹이기 힘겨운 그것을 그리 '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 생각조차 거부할 만큼 사람의 항심抗心과 결기는 대단하다. '퇴폐'는 도무지 왜 '퇴폐'가 되었을까.
그것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거나 그처럼 유도하는 온갖 선입견이 판치는 까닭 역시 따로 있는 건 아니었을까. '퇴폐'를 '퇴폐' 그 자체로 읽지 않고 영영 같이 하지 못할 고결高潔 아니면 순정 혹은 수정처럼 맑고 단아한 '순수 정념'의 반어로만 보려드니 그저 얼룩지고 단지 흠 많은 불결의 단어가 되어버린 건 아니었던가.
추하다며 내치는 순간, 마치 자기는 깨끗한 듯 보이는 착시 효과도 그리 오래지 않아 사라진다는 데 세상의 패러독스는 헤일 수 없다. 호통 치는 자들의 그다지 깨끗지 않던 세월도 허망하니 드러나고 안타깝지만 들키는 게 세상 이치이니 말이다. 저지르기 전에 죽는다면 모를까, 모두가 고상하려고만 들 때 그나마 삶을 지탱케 했던 건 하염없이 낮고 지저분하며 만만하게 토악질해댈 만한 타구唾具라도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퇴폐'가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된 까닭 따윈 그러나 도무지 세상 관심사가 아니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피하려 들었어도 어떻게 피했는지조차 애써 알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밝고 맑은 날이면 놀러 다니기 바쁘며 어여쁘고 즐거운 일상의 일들이 기다리는 삶이라면 그걸로 족할 뿐, 어디 음산하고 우울한 주제에 하릴없이 매달릴 일이었으랴. 설령 인생이 아름답지 않다 하여도 굳이 그 단어에 눈길 붙박을 일이었을까.
어쩌다 마주치는 그 단어의 표상이란 게 한낱 음란하고 도발적이며 색기色氣 넘쳐나는 치명적 유혹의 조건이라도 될라치면, 세상은 문란이니 타락이니 떠들어대며 종말론과의 야합은 물론 그보다 더한 압제의 명분을 권력과 함께 찾아 나선다. 아예 나라의 멸망이 멀지않았음을 경고함은 보통인 시절도 있었고 역사가 끊어지거나 삶의 존재이유마저 사라지는 양, 지식이 거들고 언론이 눈 감으며 부추기던 때도 그리 먼 옛날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퇴폐의 개념사는 퍽 오랜 자기변명의 흐름과 지우지 못할 하소연의 언덕을 역사 곳곳에 마련해 두었던 터다. 몇 십 년, 그것도 한 두 세기가 아니라 아예 왕조를 거듭나고 역사가 끊어지는 굴곡의 세월 넘어 오늘에 이르도록 국가는 틈만 나면 통제의 빌미로 악용했고 억압의 명분치곤 참으로 괜찮던 메뉴였다.
망국의 설움조차 달랠 길 없건만, 안 그래도 울적한 심사 씻어내고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 없는 인사들의 애수 달래기로 담배나 술은 턱없이 약했다. 요기妖氣어린 팜 파탈이 내뿜는 지분냄새나 몰래 즐기는 마약의 알싸함도 혁명 한번 후련하게 치러내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을 잊기엔 그다지 충분치 않았다. 자발적 근대화 한번 통쾌하게 이룩하지 못한 여린 민족의 후예로 사느니, 멋이라도 부려보자며 치렁치렁 기른 머리칼조차 풍기문란의 혐의가 되는 세상에서 경찰은 무릎 위 15센티미터 이상 올라간 스커트 역시 퇴폐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길어도 문란했고 짧아도 탈이었다. 야野해도 안 되었고 흘러넘쳐선 더더욱 곤란했다. '통제'의 주체가 먹잇감 낚으려 움켜진 '고삐' 한층 조일 때, '퇴폐'는 파시즘의 봉鳳이었고 '음란'은 나치의 정치적 액세서리로 더없이 충직하게 복무하고 있었다.
정작 썩어가는 건 '권력'이었음을 이젠 정말이지 모두들 알려나. 이미 스러진 나라에서 망국의 징조 다시 찾아 자기 흉터를 덮어씌우려는 흉계란 꽤나 간교했던 셈이다. 그래야 안 들키고 그래야만 늦춰질 또 다른 '부끄럼'이란 민족 전체가 팔고도 남아 돌 그네들의 '쪽'이었다. 자기검열 없이, 자기반성 없이 다시 또 누리며 후리려드는 몰염치의 행렬은 세기를 바꿔 튼튼히 진행 중이다. 그러던 중, '퇴폐'는 졸지에 더 더러워졌고 지금 이 순간 기막히게 서럽도록 구겨지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따져볼 겨를도 없이 내팽개치는 손길일랑 이젠 거둘 일이다. 천착穿鑿하되 집착하지 않기만 바란다.
목차
목차
I. 지치고 고단한 퇴폐 : 돌팔매나 던져대는, 형용사이면서 동사인
II. 유교국가의 타락 : 습속의 퇴행과 지배계급의 문란
III. 식민시대의 애수哀愁 : 정치의 좌절과 문화의 침몰
IV. 해방공간의 자조自嘲 : 충동과 잠행, 아니면 자학
V. '물듦'과 '스밈' : 질병 같은 절망과 그 '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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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되도 않는 국가 걱정이나 하며 헛기침해대도 '몸' 파는 여인의 '몸' 하나 구원 못하는 옛날 정치학이 버거워 덤벼든 게 《한국의 매춘》(1994)과 《권력과 매춘》(1996)이었으나 짜증난 학생들을 위해 영화와 문학을 강의실로 끌어들인다. 《정치와 영화》(1999)를 쓰고 《포르노는 없다》(2003)와 《문학과 정치》(2004)를 출간하는 사이, 세기는 바뀌지만 정치를 들여다 볼 인식의 창은 널려있었다. 《한국 성인만화의 정치학》(2007)도 틈새에서 찾은 '오목렌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역사는 늘 어쩌지 못할 '거울'이었다. 유가의 논리로만 왕조국가를 보는 게 못마땅한 《조선은 법가의 나라였는가》(2007)가 그러하고 《백정과 기생》(2003) 역시 마찬가지다. 《씨네 폴리틱스》(2008) 또한 정치영화의 역사성을 천착한 경우지만 밖에서 들여다 보는 안이 더 환하여 그 기운으로 《패션과 권력》(2010)을 꾸린다. 공부의 빈틈이라 여기며 《사랑하다 죽다》(2012)와 이번 책도 내지만 그랬다고 세상이 어쩌리라곤 꿈도 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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