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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 박태준(양장본 HardCover)
쇳물보다 더 뜨거운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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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박태준 회장의 일대기!
청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삶을 소설로 그려낸 『강철왕 박태준』. 일반적으로 알려진 강한 이미지보다 박태준 회장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자상하고 따뜻한 면모를 새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들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 하는 가슴 따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모습과 한국 종합제철의 새 역사를 쓰며 이뤄낸 것 등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청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삶을 소설로 그려낸 『강철왕 박태준』. 일반적으로 알려진 강한 이미지보다 박태준 회장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자상하고 따뜻한 면모를 새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들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 하는 가슴 따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모습과 한국 종합제철의 새 역사를 쓰며 이뤄낸 것 등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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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쇳물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영일만의 기적을 이룬 강철왕 박태준!!
2011년 12월 13일 대한민국의 큰 별 하나가 졌다. 청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이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청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2주기를 맞아 박 회장의 일대기를 조명한 『강철왕 박태준』이 출간되었다. 2006년 『비밀의 화원』으로 제2회 대한민국 소설문학 대상을 수상한 신중선 작가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박 회장의 강한 이미지보다는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자상하고 따뜻한 면모를 새롭게 조명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일화들을 박 회장의 부인인 장옥자 여사와 큰 딸인 박진아 씨의 육성 증언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박태준 회장이 장옥자 여사와 선보는 자리에서의 일화와 결혼 후 자신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각오로 살고 있으니 집안일은 장 여사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일 등을 들려준다. 또 박 회장은 평소 트로트를 좋아해 자녀들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틈만 나면 아내의 외모를 자녀들에게 칭송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 주는 가슴 따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1997년 IMF 국가 부도위기 사태를 맞아 일본의 긴급자금 지원을 이끌어 내어, 또 한 번 나라를 구한 일들도 장옥자 여사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포철을 건설할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이 자금 지원을 거부해 포철 건설이 위기를 맞았을 때, 하와이 구상으로 한국에 종합제철의 새 역사를 썼듯, 박 회장은 IMF 국가 부도 위기에서도 또 한 번 나라를 구한 것이다.
'제철보국'으로 국가에 이바지하고 '교육보국'으로 국가에 헌신하다
또한 박 회장은 사람을 가장 큰 재산으로 생각해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해 기초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으며,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을 설립하여 과학 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에 큰 힘을 쏟았다. 박 회장은 포철을 건설하면서 '제철보국'으로 국가에 이바지하고, 학교를 설립하면서 '교육보국'으로 국가에 헌신하였다. 박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 개발의 초석이 된 포스코를 이끌며 한국을 세계 최고의 철강 강국으로 성장시켰지만, 자신은 단 한 주의 포스코 주식도 소유하지 않았고, 개인 명의의 재산도 없었다. 포스코가 빠른 성장을 이룬 원동력의 중심에는 늘 직원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박 회장의 따뜻한 마음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조국애 때문이었다. 또 박 회장은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자신과의 약속을 엄격하게 지킨 삶을 살았다.
1968년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창립식을 가진 포항제철이 1992년 광양제철소 준공으로 건설이 마무리되는 동안 박 회장은 25년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평생을 개인의 삶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며 살았다. 성품이 시냇물처럼 맑고 곧았던 박 회장은 믿고 따를 만한 정신적 지도자가 그리운 이 혼탁한 시대에,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박 회장은 오직 이 땅에 종합 제철소를 세우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숱한 정치적 외압을 견디며 반세기에 걸쳐 세계 최고의 제철소를 건설했다. 포철을 건설하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견디기 힘든 일들을 겪게 한 것이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겉으로는 엄격했지만 안으로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다. 또한 집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였다.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8.15 해방과 6.25 한국 전쟁을 몸으로 겪으면서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박 회장의 나라 사랑은 이미 신화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이 군대를 필요로 했을 때 귀하께서는 장교로 투신했습니다. 한국이 경제 개발을 위해 기업인을 찾았을 때 귀하께서는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이 미래의 비전을 필요로 할 때 귀하께서는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것 그것이 귀하의 삶에는 끊임없는 지상 명령이었습니다.
-미테랑(전 프랑스 대통령)
-줄거리
박태준(1927~2011)
박태준은 1927년 9월 경남 동래군 장안리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1945년 일본 와세다 대학교 공과 대학에 입학했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귀국, 1948년 육군사관학교 6기생으로 입교 후 운명적으로 박정희 대위를 사제지간으로 만나, 그와 평생을 동지로 또는 상관으로 모시며 격동의 한국사를 써 내려갔다.
6.25 한국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전쟁이 끝난 후 5.16 군사 혁명에 참여하고 박정희 의장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1963년 제3공화국이 출범하던 그해 12월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발령받아 경영난에 허덕이던 대한중석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고, 1967년 포항종합제철 건설사업 추진 위원장에 임명되어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이 되었다. 그는 포항종합제철소의 자금 조달이 어려움에 처하자 하와이 구상으로 대일 청구권 자금을 포철에 전용하기 위해 일본을 설득하여, 한일 기본 협약을 체결했고, 직원 자녀를 위한 제철장학회도 설립했다.
1977년 박태준은 세계철강협회 이사직을 맡아 활동했고, 1980년에는 광양제철소 건설 계획을 세워 성공리에 완공했으며, 1986년에는 연구 중심 대학인 포항공과대학교를 설립했다.
1987년 철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베서머 금상'과 1990년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종도뇌르'훈장을 수상하는 등 세계 최고 철강인으로서 인정과 찬사를 받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완수한 박태준은 1992년 포항제철 회장직을 사임, 그동안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민주자유당도 탈당했다. 2001년 폐 밑에 생긴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고, 그 뒤 포스코 명예회장으로 재추대받아, 다음 해 포스코에 복귀했다. 2005년 이후 포스코 청암재단을 확장 설립해 이사장으로 지내다가, 2011년 12월 폐 질환으로 타계했다.
2011년 12월 13일 대한민국의 큰 별 하나가 졌다. 청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이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청암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2주기를 맞아 박 회장의 일대기를 조명한 『강철왕 박태준』이 출간되었다. 2006년 『비밀의 화원』으로 제2회 대한민국 소설문학 대상을 수상한 신중선 작가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박 회장의 강한 이미지보다는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자상하고 따뜻한 면모를 새롭게 조명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일화들을 박 회장의 부인인 장옥자 여사와 큰 딸인 박진아 씨의 육성 증언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박태준 회장이 장옥자 여사와 선보는 자리에서의 일화와 결혼 후 자신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각오로 살고 있으니 집안일은 장 여사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일 등을 들려준다. 또 박 회장은 평소 트로트를 좋아해 자녀들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틈만 나면 아내의 외모를 자녀들에게 칭송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 주는 가슴 따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1997년 IMF 국가 부도위기 사태를 맞아 일본의 긴급자금 지원을 이끌어 내어, 또 한 번 나라를 구한 일들도 장옥자 여사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포철을 건설할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이 자금 지원을 거부해 포철 건설이 위기를 맞았을 때, 하와이 구상으로 한국에 종합제철의 새 역사를 썼듯, 박 회장은 IMF 국가 부도 위기에서도 또 한 번 나라를 구한 것이다.
'제철보국'으로 국가에 이바지하고 '교육보국'으로 국가에 헌신하다
또한 박 회장은 사람을 가장 큰 재산으로 생각해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해 기초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으며,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을 설립하여 과학 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에 큰 힘을 쏟았다. 박 회장은 포철을 건설하면서 '제철보국'으로 국가에 이바지하고, 학교를 설립하면서 '교육보국'으로 국가에 헌신하였다. 박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 개발의 초석이 된 포스코를 이끌며 한국을 세계 최고의 철강 강국으로 성장시켰지만, 자신은 단 한 주의 포스코 주식도 소유하지 않았고, 개인 명의의 재산도 없었다. 포스코가 빠른 성장을 이룬 원동력의 중심에는 늘 직원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박 회장의 따뜻한 마음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조국애 때문이었다. 또 박 회장은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자신과의 약속을 엄격하게 지킨 삶을 살았다.
1968년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창립식을 가진 포항제철이 1992년 광양제철소 준공으로 건설이 마무리되는 동안 박 회장은 25년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평생을 개인의 삶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며 살았다. 성품이 시냇물처럼 맑고 곧았던 박 회장은 믿고 따를 만한 정신적 지도자가 그리운 이 혼탁한 시대에,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박 회장은 오직 이 땅에 종합 제철소를 세우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숱한 정치적 외압을 견디며 반세기에 걸쳐 세계 최고의 제철소를 건설했다. 포철을 건설하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견디기 힘든 일들을 겪게 한 것이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겉으로는 엄격했지만 안으로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다. 또한 집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였다.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8.15 해방과 6.25 한국 전쟁을 몸으로 겪으면서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한 박 회장의 나라 사랑은 이미 신화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이 군대를 필요로 했을 때 귀하께서는 장교로 투신했습니다. 한국이 경제 개발을 위해 기업인을 찾았을 때 귀하께서는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이 미래의 비전을 필요로 할 때 귀하께서는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것 그것이 귀하의 삶에는 끊임없는 지상 명령이었습니다.
-미테랑(전 프랑스 대통령)
-줄거리
박태준(1927~2011)
박태준은 1927년 9월 경남 동래군 장안리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1945년 일본 와세다 대학교 공과 대학에 입학했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귀국, 1948년 육군사관학교 6기생으로 입교 후 운명적으로 박정희 대위를 사제지간으로 만나, 그와 평생을 동지로 또는 상관으로 모시며 격동의 한국사를 써 내려갔다.
6.25 한국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전쟁이 끝난 후 5.16 군사 혁명에 참여하고 박정희 의장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1963년 제3공화국이 출범하던 그해 12월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발령받아 경영난에 허덕이던 대한중석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고, 1967년 포항종합제철 건설사업 추진 위원장에 임명되어 포항제철의 초대 사장이 되었다. 그는 포항종합제철소의 자금 조달이 어려움에 처하자 하와이 구상으로 대일 청구권 자금을 포철에 전용하기 위해 일본을 설득하여, 한일 기본 협약을 체결했고, 직원 자녀를 위한 제철장학회도 설립했다.
1977년 박태준은 세계철강협회 이사직을 맡아 활동했고, 1980년에는 광양제철소 건설 계획을 세워 성공리에 완공했으며, 1986년에는 연구 중심 대학인 포항공과대학교를 설립했다.
1987년 철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베서머 금상'과 1990년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종도뇌르'훈장을 수상하는 등 세계 최고 철강인으로서 인정과 찬사를 받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완수한 박태준은 1992년 포항제철 회장직을 사임, 그동안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민주자유당도 탈당했다. 2001년 폐 밑에 생긴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고, 그 뒤 포스코 명예회장으로 재추대받아, 다음 해 포스코에 복귀했다. 2005년 이후 포스코 청암재단을 확장 설립해 이사장으로 지내다가, 2011년 12월 폐 질환으로 타계했다.
목차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1장_박정희 교관을 만나다
2장_영일만 롬멜하우스
3장_포철이 한다면 하는 겁니다
에필로그
참고문헌
프롤로그
1장_박정희 교관을 만나다
2장_영일만 롬멜하우스
3장_포철이 한다면 하는 겁니다
에필로그
참고문헌
저자
저자
신중선
저자 신중선은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숙명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출판잡지를 전공.
1987년 『떠다니는 꿈』으로 『현대문학』 추천.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하루』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
장편소설 『하드록카페』, 『비밀의 화원』, 『돈워리 마미』와 소설집 『환영 혹은 몬스터』, 『누나는 봄이면 이사를 간다』 등이 있다.
숙명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출판잡지를 전공.
1987년 『떠다니는 꿈』으로 『현대문학』 추천.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하루』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
장편소설 『하드록카페』, 『비밀의 화원』, 『돈워리 마미』와 소설집 『환영 혹은 몬스터』, 『누나는 봄이면 이사를 간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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