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가스파르
유애숙은 현대인의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만남과 이별에 촉수를 내미는 ‘일상적 리얼리즘’의 작가이다.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 『밤의 가스파르』가인간관계의 표면과 이면을 입체화하는 다중주 모음집에 해당한다. 유애숙이 문학적으로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는 ‘사랑’이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각양의 사건들을 통해 초지일관 견지하는 바는 사람보다도 밀도가 높아진 현대 사회의 욕망이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조상들이 생존과 번식에 이바지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게 된 결과물이다. 유애숙 소설의 주인공들이 표방하는 연애담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덜 진화된 존재’들이 지닌 마음의 본성을 추적하는 방식을 택하는지도 모른다. 과거를 추억하거나 새로운 상대를 찾아 배회하는 존재들의 삶이 가까스로 적자생존 하는 양상으로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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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오태호(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생로병사의 순환 속에서 '사람의 온기'를 찾아 타자와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존재론적 숙명이 배우자 찾기에 해당할 것이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의미가 깊어지고,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 관계의 본질적 의미를 각인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만남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 쪽이 없다면 다른 한 쪽 역시 의미가 부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세계의 인연이란 동전의 양면이기보다는 '뫼비우스의 띠'이거나 '클라인 씨의 병'일지도 모른다. 만남 안에 이미 이별의 징후가 포착되어 있으며, 이별 속에 새로운 만남을 잉태하는 씨앗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유애숙 소설은 언뜻 보면 매우 평범한 듯하지만, 에둘러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토끼몰이처럼 목표하는 바를 명확히 성취한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다양한 직업군을 소설에 등장시켰음에도 그 어떠한 직업도 피상적이거나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은 그의 작품이 한 문장도 그냥 스쳐 지나감 없이 공들이고, 다양한 삶에 대해 깊고 치밀하게 탐구한 고뇌의 산물임을 증거하고 있다.
먹는 것에 진심이다.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 생각의 머리맡에 두는 게 요리연구가의 조언이다. 음식에 굳이 나트륨이나 설탕을 많이 쓰지 않고도 양파즙, 레몬즙, 허브 같은 천연 향신료로 맛있는 저염식 저당식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음식은 첫술엔 다소 밍밍할지 몰라도 먹을수록 재료 본연의 깊은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내 글쓰기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저당의 감성과 덜 맵짠한 스토리로 감칠맛이 폭발하지 않더라도 음미할수록 끌리며 본연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고단한 누군가의 소울푸드에 슬쩍 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작품 내용
밤의 가스파르
표제작인 「밤의 가스파르」는 유애숙의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탁월한 문학적 성취에 해당한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우울감에 젖어 있는 '그'를 추적하면서 작가는 자연스런 감정의 흐름을 포착한다. 사별 이후의 허무감뿐만 아니라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라는 양가감정을 섬세하게 형상화한다. 약속 시간을 20분 지나도 맞선 상대 여자는 나타나지 않고, 해 저무는 시간이 되자 '죽음 같은 허무'가 달려든다. 겨울 저녁이 빨리 어두워지면서 호수의 빛깔은 '스모크 블루'에서 '인디고 블루'로 저물어오고, 깜빡 든 잠 속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는 환영에 빠진다. 이처럼 「밤의 가스파르」는 상처한 남자의 재혼을 위한 맞선 자리에서의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부인을 떠나보낸 뒤 1년이 갓 지난 그의 허무감과 함께 '새로운 온기'에 대한 기대와 바람 등이 버무려진 작품이다.
당신의 오후
헤어진 옛 애인의 초라한 현재를 조망하는 풍자적인 작품이다. 즉 새로운 연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헤어진 연인을 찾아나서 '사면권자의 특권'을 행사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희는 8년 전 헤어진 애인 김시준이 경기 남부 '향기수목원' 초입에서 '돈 조반니'라는 제육볶음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직 싱글이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8년 전 그의 마지막 체취는 로즈마리향이었지만, 무덤가에 심겨져 망자를 추억하는 정령이 깃들인 풀이 바로 로즈마리 잎이라는 사실을 아는 소희는 뭉개진 로즈마리 잎을 빈 찻잔에 올려놓고 이별을 통보한다. 옛 연인이었던 남자를 만나 감정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안개 소리
안개가 장악한 도시를 배경으로 시종일관 음울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그로테스크 스릴러물이다. 작품의 주인공 경찰인 '그'에게 이 도시의 안개는 가장 흔한 기상 현상이지만, W시로 발령받은 지 4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먹한 사이처럼 납득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다. 그는 술집이나 시장통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눈 속에서도 안개를 목격하는데, 현장에서 검거된 피의자들은 놀랄 만큼 태연자약하고, 처음부터 죄의식이나 후회를 느낄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처럼 보인다. 안개가 인간의 의식까지 잠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네 일상이 짙고 음험한 안개의 포로가 되어 충동적으로 분노 조절 장애가 생겨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나의 바나나 통조림
작가는 남녀 사이의 엇갈린 연애담을 통해 인생의 성패를 조망한다. 지난 3주 동안 매일 만났던 방사선과 의사는 자신의 진짜 사명이 '출감자들의 갱생을 돕는 일'이라면서 아내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니 같이 한탕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닥터 반의 아내'라는 여인이 다가온다. 여자는 본론만 말하겠다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이혼도 결심하고 숙려 기간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결론이 성급했다고 전한다. 그동안 수많은 이별을 치렀지만 애인의 아내가 와서 정식으로 브리핑을 한 경우는 처음이라 화자(고운정)는 기분이 참담하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외주 제작품이며, 화자의 생모가 화자를 낳은 지 2개월 만에 핏덩이를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0대 여자의 연애 편력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배다른 딸을 잘 키워낸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며 '반전 서사'를 확인한다.
분갈이
「분갈이」는 되바라진 여중생의 시선으로 구어체 문장을 활용하여 이혼 가정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꽃집의 이모와 동거하는 화자는 아빠와의 새로운 삶을 '분갈이'로 비유하며 새로운 생의 2막을 기대하는 것이다. 학습지 교사였던 엄마와 일식 요리사였던 아빠는 이틀이 멀다 하고 다툰다. 화자에게는 6백 가지가 넘는 파스타 디자이너가 되거나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꿈이 있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면서 꿈이 날아갔다. 하지만 5년 만에 나타난 아빠로 인해 외할머니를 통해 엄마가 5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다. 이제는 달라진 아빠가 삼촌네 분식점의 주방 일을 맡게 되면서, 화자는 고등학교를 배정받으면 이모 집을 떠나 아빠와 같이 살 작정을 하게 된다.
목차
목차
밤의 가스파르 …… 11
당신의 오후 …… 43
안개 소리 …… 69
나의 바나나 통조림 …… 99
인터미션 …… 131
바람의 집 …… 157
분갈이 …… 187
작품해설
사랑과 이별의 역설적 다중주, 오감각의 수채화 / 오태호 …… 217
저자
저자
2005년 문예진흥기금을 받았으며, 첫 소설집 『장미 주유소』를 출간했다.
「안개 소리」로 제2회 천강문학상 대상수상.
2022년 두번째 소설집 『밤의 가스파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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