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장전 1: 이순신(최익한 전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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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과 전쟁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한 명장 이순신의 일대기
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운동가로 활동하다 월북해 격변의 시대를 살다 간 지식인 최익한의 성과를 모은 ‘최익한 전집’의 네 번째 책. 이 책은 최익한이 1949년 북한의 학술지 《역사제문제》에 ‘조선명장론’이라는 주제로 연속 수록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이순신 등에 대한 논문에 이후 김유신, 곽재우 편을 보완하여 1956년 발간한 《조선명장전》을 활용한 것이다. 〈조선명장론〉은 최익한이 북한에서 처음 썼던 글로서 우리나라 역대 명장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단순한 위인전을 넘어 우리 역사의 흐름, 특히 전쟁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보여 주며 다양한 자료에 기반한 결과물로서 그 학문적 가치도 높다.
조선사, 전쟁사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종횡으로 엮다
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초에도 이순신에 관한 책이 몇 편 있었지만, 이 책은 그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작품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세운 전과만이 아니라 그 이전 수군 정비에 관한 내용 등도 꼼꼼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익한은 우리나라 사적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자료를 수집했기에 당시 일본의 전략이라든가 중국의 동향 등도 치밀하게 다루었고, 본래 한학자로서 동양 고전에 풍부한 지식이 있어서 정책 해석에서 그러한 자산을 합리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최익한은 지역의 설화를 활용하고 현장을 답사하여 서술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 지역을 답사한 경험을 살려 이순신이 수군으로 활동한 지역을 답사한 뒤 글을 썼고, 1948년 월북한 뒤로는 이순신 장군이 초기에 함경도 지역에서 활동한 내용에 대한 사료를 확보하기 수월했기 때문인지, 그 부분을 더욱 생생하게 서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최익한이 보여 주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해석과 의미 부여에는 힘이 있다. 조산포 만호로 간 것을 ‘장군의 수군계의 발족은 이것으로써 비롯하였다’고 한 평가라든가, 정읍 현감과 태인 겸관 때의 활약을 ‘장군은 민중과 접촉하면 반드시 그들의 지지를 받은 것을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는 평가는 적절한 평가라 할 만하다. 다만 최익한이 민족의 우월성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이 가끔 보인다. ‘조선 종족의 활발한 여세는 계속적으로 바다를 건너가서 골상, 언어, 생산 기술 및 문화 등 각 방면에 일본족의 우수한 주체를 구성하여 왔으며…’ 등이 그러하다.
한편 이 책에는 문학적이면서 창의적인 서술이 많다. 조선시대 해외 활동이 없었다는 점을 ‘백제와 신라가 광범히 활약하던 동서 해면은 유생 정치의 폐관주의에 의하여 전연 봉쇄되어 버렸다’든가, 임란 직후 육로에서 계속 패배한 것을 ‘극악한 군사적 실패의 근인에 대하여 이제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단적으로 지적하게 하자!’고 서술한 부분이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책에는 대외침략사, 인민항쟁사의 성격을 포함하는 성격이 있어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표현도 적지 않다. 지배층이라든가 왜군, 명나라 파견부대에 대한 감정적인 표현이 그렇다. 최익한은 ‘당파의 앞잡이인 언관들’이 이순신에게 작위를 더하지 않은 것은 ‘당시 관료 계급이 장군 개인을 박대한 것이 아니라 조국의 영예를 경멸한 것’이라고 하면서 당시 관료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탈환을 해방으로 표현하거나 인민 등의 용어를 쓰는 등 현재 우리 시각에서는 조금 어색한 표현이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최익한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연대를 ‘전쟁 몇 년’으로 기록하는 등 내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술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처럼 이 책은 조선사, 전쟁사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종횡으로 엮은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한 명장 이순신의 일대기
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운동가로 활동하다 월북해 격변의 시대를 살다 간 지식인 최익한의 성과를 모은 ‘최익한 전집’의 네 번째 책. 이 책은 최익한이 1949년 북한의 학술지 《역사제문제》에 ‘조선명장론’이라는 주제로 연속 수록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이순신 등에 대한 논문에 이후 김유신, 곽재우 편을 보완하여 1956년 발간한 《조선명장전》을 활용한 것이다. 〈조선명장론〉은 최익한이 북한에서 처음 썼던 글로서 우리나라 역대 명장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단순한 위인전을 넘어 우리 역사의 흐름, 특히 전쟁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보여 주며 다양한 자료에 기반한 결과물로서 그 학문적 가치도 높다.
조선사, 전쟁사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종횡으로 엮다
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초에도 이순신에 관한 책이 몇 편 있었지만, 이 책은 그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작품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세운 전과만이 아니라 그 이전 수군 정비에 관한 내용 등도 꼼꼼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익한은 우리나라 사적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자료를 수집했기에 당시 일본의 전략이라든가 중국의 동향 등도 치밀하게 다루었고, 본래 한학자로서 동양 고전에 풍부한 지식이 있어서 정책 해석에서 그러한 자산을 합리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최익한은 지역의 설화를 활용하고 현장을 답사하여 서술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여러 지역을 답사한 경험을 살려 이순신이 수군으로 활동한 지역을 답사한 뒤 글을 썼고, 1948년 월북한 뒤로는 이순신 장군이 초기에 함경도 지역에서 활동한 내용에 대한 사료를 확보하기 수월했기 때문인지, 그 부분을 더욱 생생하게 서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최익한이 보여 주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해석과 의미 부여에는 힘이 있다. 조산포 만호로 간 것을 ‘장군의 수군계의 발족은 이것으로써 비롯하였다’고 한 평가라든가, 정읍 현감과 태인 겸관 때의 활약을 ‘장군은 민중과 접촉하면 반드시 그들의 지지를 받은 것을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는 평가는 적절한 평가라 할 만하다. 다만 최익한이 민족의 우월성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이 가끔 보인다. ‘조선 종족의 활발한 여세는 계속적으로 바다를 건너가서 골상, 언어, 생산 기술 및 문화 등 각 방면에 일본족의 우수한 주체를 구성하여 왔으며…’ 등이 그러하다.
한편 이 책에는 문학적이면서 창의적인 서술이 많다. 조선시대 해외 활동이 없었다는 점을 ‘백제와 신라가 광범히 활약하던 동서 해면은 유생 정치의 폐관주의에 의하여 전연 봉쇄되어 버렸다’든가, 임란 직후 육로에서 계속 패배한 것을 ‘극악한 군사적 실패의 근인에 대하여 이제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단적으로 지적하게 하자!’고 서술한 부분이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책에는 대외침략사, 인민항쟁사의 성격을 포함하는 성격이 있어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표현도 적지 않다. 지배층이라든가 왜군, 명나라 파견부대에 대한 감정적인 표현이 그렇다. 최익한은 ‘당파의 앞잡이인 언관들’이 이순신에게 작위를 더하지 않은 것은 ‘당시 관료 계급이 장군 개인을 박대한 것이 아니라 조국의 영예를 경멸한 것’이라고 하면서 당시 관료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탈환을 해방으로 표현하거나 인민 등의 용어를 쓰는 등 현재 우리 시각에서는 조금 어색한 표현이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최익한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연대를 ‘전쟁 몇 년’으로 기록하는 등 내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술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처럼 이 책은 조선사, 전쟁사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종횡으로 엮은 역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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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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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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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글
조선명장전 서문
1 장군에 대한 약간의 전제적 인식
2 장군의 출신과 불우의 시기
3 장군의 전라 좌수사 취임과 해군 중요성의 제창
4 해군 정비에 관한 장군의 창안 및 개선
해군의 질적 향상|전함-거북선(龜船)의 창조와 일반 병기 및 전구의 정비|지리와 근거지에 대한 주의|해군 통제의 필요에 대한 주장
5 임진조국전쟁의 개시, 침략자의 구실 및 침략군의 육상에서의 일시적 우세
6 해상에서 장군의 연전연승
옥포승전-옥포해전, 적진포해전|당포승전-사천선창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영등포해전|적장 유키나가의 위협에 대조되는 장군의 전술적 선포|견내량대승전 및 한산도대승전-한산도대해전, 안골포해전|부산대승전
7 장군의 조국 사수책과 각지 의병부대의 구국전쟁
8 조중 연합군의 평양 탈환, 적군의 총퇴각, 이에 따라 장군의 부산에의 재차 진격
9 적군의 호남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장군의 한산도 이진
10 장군의 삼남 수군통제사 취임과 이에 따르는 장군의 제반 시책
수군 관구 사용권의 확보|수군 절제권의 강화|군량 증산과 수군 군량의 자급자족에 관한 계획|전함 증조|총포 개량|인재 장려|첩보 활동의 여행|일반 과업의 여행
11 화의에 대한 장군의 절대 반대
12 장군의 당항포승전과 담 도사의 〈금토패문〉에 대한 답장
13 전국의 장기화에 따르는 내란의 발생과 이에 대한 장군의 관계
14 장군의 장재와 전공에 대한 원균의 시기, 당파의 중상, 적의 이간책 및 재침략의 준비와 화의의 파열
15 장군의 면직 및 투옥과 원균의 통제사 임명
16 원균의 패전과 정유재란
17 장군의 통제사 재임과 해군 재건
18 장군의 명량(진도)대승전과 고금도에의 이진
19 명량대승전 이후 전국의 재편성
20 조중 수군의 합진,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의 장군에 대한 감복
21 최후 멸적적 공격에 있어서 명나라 장령들의 추태와 장군의 의분심
22 적군의 총퇴주, 진린의 협력, 장군의 노량대승전 및 장렬한 순국
23 장군의 최후 및 일생에 대한 총평
부기: 장군의 사후와 그의 영향
부록: 임진조국전쟁 개사
창해 최익한 선생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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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장전 서문
1 장군에 대한 약간의 전제적 인식
2 장군의 출신과 불우의 시기
3 장군의 전라 좌수사 취임과 해군 중요성의 제창
4 해군 정비에 관한 장군의 창안 및 개선
해군의 질적 향상|전함-거북선(龜船)의 창조와 일반 병기 및 전구의 정비|지리와 근거지에 대한 주의|해군 통제의 필요에 대한 주장
5 임진조국전쟁의 개시, 침략자의 구실 및 침략군의 육상에서의 일시적 우세
6 해상에서 장군의 연전연승
옥포승전-옥포해전, 적진포해전|당포승전-사천선창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영등포해전|적장 유키나가의 위협에 대조되는 장군의 전술적 선포|견내량대승전 및 한산도대승전-한산도대해전, 안골포해전|부산대승전
7 장군의 조국 사수책과 각지 의병부대의 구국전쟁
8 조중 연합군의 평양 탈환, 적군의 총퇴각, 이에 따라 장군의 부산에의 재차 진격
9 적군의 호남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장군의 한산도 이진
10 장군의 삼남 수군통제사 취임과 이에 따르는 장군의 제반 시책
수군 관구 사용권의 확보|수군 절제권의 강화|군량 증산과 수군 군량의 자급자족에 관한 계획|전함 증조|총포 개량|인재 장려|첩보 활동의 여행|일반 과업의 여행
11 화의에 대한 장군의 절대 반대
12 장군의 당항포승전과 담 도사의 〈금토패문〉에 대한 답장
13 전국의 장기화에 따르는 내란의 발생과 이에 대한 장군의 관계
14 장군의 장재와 전공에 대한 원균의 시기, 당파의 중상, 적의 이간책 및 재침략의 준비와 화의의 파열
15 장군의 면직 및 투옥과 원균의 통제사 임명
16 원균의 패전과 정유재란
17 장군의 통제사 재임과 해군 재건
18 장군의 명량(진도)대승전과 고금도에의 이진
19 명량대승전 이후 전국의 재편성
20 조중 수군의 합진,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의 장군에 대한 감복
21 최후 멸적적 공격에 있어서 명나라 장령들의 추태와 장군의 의분심
22 적군의 총퇴주, 진린의 협력, 장군의 노량대승전 및 장렬한 순국
23 장군의 최후 및 일생에 대한 총평
부기: 장군의 사후와 그의 영향
부록: 임진조국전쟁 개사
창해 최익한 선생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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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최익한
崔益翰(1897??)
호는 창해滄海, 경상북도 울진 출생. 국학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15세에 영남학파의 거두 면우 곽종석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스승의 권유로 21세 때부터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을 나온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다니면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 뒤 사상단체 일월회에 가입하였고 조선공산당과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2년 대전형무소로 이감하는 도중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징역 1년이 추가되어 모두 7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출
감한 후에는 국학연구에 전념하여 여러 신문과 잡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실었는데 특히 1938년 말부터는 유명한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동아일보》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워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사회로동당, 근로인민당 등에서 활동하였고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차 월북한 뒤 계속 머물렀다. 그 뒤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역사와 문학 등에 대해 여러 저작들이 나타난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사회 정책사》(1947), 《조선봉건말기의 선진학자들》(공저, 1954), 《실학파와 정다산》(1955), 《조선명장전》(1956), 《정다산선집》(1957) 등이 있다.
호는 창해滄海, 경상북도 울진 출생. 국학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15세에 영남학파의 거두 면우 곽종석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스승의 권유로 21세 때부터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을 나온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다니면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 뒤 사상단체 일월회에 가입하였고 조선공산당과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2년 대전형무소로 이감하는 도중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징역 1년이 추가되어 모두 7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출
감한 후에는 국학연구에 전념하여 여러 신문과 잡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실었는데 특히 1938년 말부터는 유명한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동아일보》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워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사회로동당, 근로인민당 등에서 활동하였고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차 월북한 뒤 계속 머물렀다. 그 뒤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역사와 문학 등에 대해 여러 저작들이 나타난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사회 정책사》(1947), 《조선봉건말기의 선진학자들》(공저, 1954), 《실학파와 정다산》(1955), 《조선명장전》(1956), 《정다산선집》(195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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